다니엘서 새 연구 제 4 장 신앙의 자유와 불 시련(단 3장)
 가시지 않는 분으로 씨근거리던 왕은 차라리 감탄해야 마땅한 용기로 최후까지 그토록 당돌하던 세 젊은이의 결말을 확인하기 위해 멀찌감치서 풀무의 아구를 통해 내부를 드려다 보았다. 아,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갑자기 왕의 낯빛이 하얗게 질리며 보좌관들을 불렀다. 분명히 세 사람을 결박해서 던졌는데 어찌된 일인가. 왕은 부르짖었다. (69.67)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 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단 3:25). (69.68)
 우선 결박된 채 던져진 세 젊은이가 불 속에서 자유롭게 활보를 하는 기상천외(奇想天外)한 기적 외에 더욱 경악할만한 기적은 신의 아들로 보이는 거룩한 존재 곧 네째가 거기 나타났다는 사실이었다. (69.69)
 「이교의 왕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 그와 같은지 알았을까. 바벨론에서 신임받는 자리를 차지한 히브리 포로들은 생애와 품성으로 진리를 왕 앞에 드러냈다 · · · 분명하고 단순하게 그들은 의의 원칙들을 제시하였고 이리하여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가르쳤다. 그들이 오실 구세주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였으므로 불 가운데 있는 네째의 모습에서 왕은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 보았다」 (선지자와 왕, 487). (69.70)
 하나님은 불이시다(히 12:29, 신 4:24). 하나님께서는 불꽃 속, 죽음을 불사하고 불 속으로 뛰어든 그분의 사랑스러운 종들과 함께 그 분의 모습을 나타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불 속의 현현(顯現; theophany)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주자주 불로서 그 분의 임재와 능력을 나타내신다. (69.71)
 불 속에 임재하심(presence) ······ 출 3:1-4

 불로 갈 길을 나타내심(pathway) ······ 출 13:21

 불 속에서 교훈하심(percepts) ······ 출 19:16-18

 불로 징벌하심(punishment) ······ 창 19:23, 24 레 10:2

 불로 능력을 드러내심(power) ······ 왕상 18:24

 불 가운데서 보호하심(protection) ······ 단 3:25

 불로 이루어질 예언(prophecy) ······ 살후 1:6-10, 벧후 3:10, 눅 17:29 (69.72)
 느브갓네살은 바로 불 속에 나타나셔서(3:25), 불 속에서 그 종들을 보호하시고(3:25), 불로 징벌하시며(3:22), 불로 능력을 나타내신(3:27) 하나님을 체험했으며 그 하나님을 서슴치 않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3:26)이라고 고백했다. Strauss, 104. 하나님은 세 젊은이의 고백대로 그것이 그분의 섭리일진대 그들을 능히 불 속에서 구원하실 수 있으심이 입증된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함을 실증했다(히 11:33). 본 교단의 고고학의 권위자인 시그프리드 호온(Siegfried H. Horn) 박사는 당시의 풀무를 상기시켜 주는 생생한 배경을 아래와 같이 들려 주고 있다. (69.73)
 「바벨론 근방에는 벽돌 가마들이 있다. 최근에 이 지역을 방문하면서 나는 이 벽돌 가마들이 뿜어내는 연기로 검게 뒤덮인 하늘을 보았다. 나와 동행한 친구 하나가 나를 그 중 한 벽돌가마로 안내하여 주어서 나는 그런 벽돌 가마의 구조와 불태우는 방법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들 벽돌 가마가 벽돌로 지은 원추형(쇠뿔모양)의 구조임을 발견하였는데 안쪽에는 굽지 않은 벽돌들을 굽기 위해 줄줄히 쌓아 놓은 것을 보았다. 벽 한 쪽에는 아구가 있었는데 나는 한 사람이 맨 손으로 불꽃을 계속 돋우기 위해 원유(原油)와 겨를 섞은 것을 퍼 넣는 모습을 보았다. 때때로 그 사람은 앞 이마의 땀을 씻기 위해 쉬는 때 에 우리는 이 아구를 통해 벽돌 가마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강렬한 불꽃이 벽돌을 달구어 백열광을 내게 하는 것과 실제로는 어떤 곳에서는 진흙이 녹아내려 흐르게 하기까지 했다.

 나는 느브갓네살이 이러한 벽돌 가마를 써서 신실한 세 히브리인을 벌하려 했었음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 이락에서 벽돌 가마를 달구는 방법을 보고난 뒤 나는 어떻게 벽돌 가마를 평시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메소포타미아의 노천(露天) 유전(油田)들에서 언제나 넉넉히 공급되는 원유를 좀 더 퍼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Horn, 64. (69.74)
 “절할 것인가 불탈 것인가”(bow or burn)의 갈림길에서 세 젊은이가 내린 결정은 하나님과 신앙과 순종이 자신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優先)임을 행동으로 증명한 것이다. 영국 성공회의 목사로 1차 대전 당시 군목으로 종군한 스튜데르트케네디 목사는 프랑스의 참호에서 그의 아들에게 써 보낸 편지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69.75)
 「나는 나의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기도 드림에 있어 배우기를 바라는 첫번째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안전히 지켜 주옵소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용감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가 해야 할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그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아버지를 강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드리기를 바란다. 사는가 죽는가는 별 문제가 아니다.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다. 죽은 아버지도 여전히 아버지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떳떳지 못한 아버지는 말하기조차 꺼려지는 두려운 것이다. 나는 너나 네 엄마가 나의 안전을 어느 정도라도 포함시키기를 원하는 줄로 안다. 좋다, 그렇게 하려므나. 그렇더라도 그 문제는 나중에 항상 나중에 두거라. 왜냐하면 그건 정말로 그토록 절실한게 아니거든. 남자나 여자나 아이들이나 누구든지 기도에 있어서 평화시에나 전쟁시에라도 먼저 것을 먼저 두기를 배워야 한다. 내가 믿기로는 그 점이 바로 우리가 실패하고 있는 점이거든.」 Criswell, 114.

  (69.76)
 이 어려운 교훈을 히브리 세 젊은이는 행동으로 옮겼으며 그 결과는 느브갓네살의 고백으로 나타났다. (69.77)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단 3:28). (69.78)
 II. 교훈과 의의
 가. 역전(逆轉)된 사람의 노(怒)
 「진실로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는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 · · 저가 방백들의 심령을 꺾으시리니 저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시 76:10-12). (69.79)
 느브갓네살의 금 신상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사람의 부질없고 어리석은 분노가 어떻게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지를 보게 된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분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보았다. 그것은 역사의 엄연한 교훈이다. (69.80)
 중세기 동안 교황권의 발판이 되었고 혁명을 전후하여 그토록 대담하고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영적으로 · · · 애굽”이(계 11:8) 됐던 프랑스가 계획에도 없었던 이집트를 원정하여 1799년 그 유명한 로제타석을 발견해냄으로써 성서 고고학을 탄생시켜 성서의 권위를 드높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 것도 그 실례 가운데 하나이다.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혼란한 세상에 살면서 만사가 사람의 의지와 감정에 의해 결정되는 듯하여 신자들마저도 하나님께서 너무 멀리 계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에 우리는 3장의 풀무불 사건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69.81)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선명한 대답이 “메시야 시편”(Messianic Psalms) 가운데 하나인 시편 2편이다. 금 신상을 만들고 야단법석하는 3장의 느브갓네살처럼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과 통치를 대적하기 위해 소동하는 세상을 향해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시 2:1)로 시작되는 이 시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대응 태세를 본다. (69.82)
 · 보좌에 앉으셔서 잠잠히 주시하시는 하나님 (2:1-3)

 · 인간의 부질 없는 처사를 보시고 어이 없어 웃으시는 하나님 (2:4)

 · 마침내 입을 열어 결의를 밝히시는 하나님 (1:5)

 · 세우신 뜻을 강력히 집행하시고 적대 세력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2:6-9)

 · 마침내 땅에 임하셔서 통치권을 장악하시는 하나님 (2:6-9)

 · 잠잠하여 지혜롭게 그 분의 뜻과 교훈을 좇아 살라고 권고하시는 하나님 (2:10-11)

 · 행한 바에 따라 구원과 파멸을 공의롭게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 (2:12) DeHaan, 102. (69.83)
 느브갓네살은 금 신상과 풀무불의 경험에서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알현(謁見)했으며 그 교훈을 터득했다. (6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