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4 장 신앙의 자유와 불 시련(단 3장)
 가. 만세(萬歲) 왕국을 위한 몸부림
 ① 그가 만든 금 신상은 다니엘 2장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계시된 각종 쇠붙이로 이루어진 신상에 대한 불만을 충족시키고 해석이 가져다 준 불안을 일소하려는 보완(補完)이요, 대안(代案)일 수가 있다. 금으로 확인된 그의 나라가 목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는 선언은 불쾌하고 불만스러운 것이다. 그는 이제 머리 뿐만 아니라, 전신을 금으로 함으로써 앞서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시도한 것이다.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2:38)라는 말은 이 통치자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 나라의 박사들은 이러한 인상과 왕이 우상숭배로 복귀한 것을 이용하여 왕이 꿈에 본 우상과 비슷한 우상을 만들어 그의 나라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 금 머리를 모든 사람이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세우자고 제의했다. 이 아첨하는 제안을 좋게 여긴 왕은 이 일은 수행할 뿐더러 그 이상의 일을 하려고 결심했다. 그가 본 바와 꼭 같은 신상을 만드는 대신에 그 원형보다 더 뛰어난 것을 만들고자 했다. 그의 신상은 머리에서 발가락으로 내려오면서 그 가치가 떨어져서는 안 되어야 할 뿐더러 영원하고 멸망하지 않을 강대국이 되어 다른 나라들은 산산이 부숴뜨리고 영원히 설 상징으로서 전체를 금으로 만들어야 했다」(선지자와 왕, 482).

 그의 뇌리를 맴도는 흉몽(凶夢)을 길몽(吉夢)으로 바꾸고 화액(禍厄)을 제해 보려는 화려한 푸닥거리를 벌인 것이다. (69.16)
 ② 느브갓네살은 그가 꿈꾸고 있는 통일된 세계적인 대제국을 이룩함에 있어 종교가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하려 했으며 이 일을 위해 하나로 통일된 강력한 종교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이러한 시도는 그 후 로마제국의 역대 황제들이 통일된 대제국을 유지하려는 방편으로 황제예배(emperor worship)를 강요하고 그리스도교를 끈질기게 핍박한 것과도 일치한다. 또한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가 분열된 동서 로마 제국을 재통일시키기 위해 533년 로마 교회의 감독을 세계 교회의 머리로 인정하여 교황이 되게 한 것이라든지 신성 로마제국의촬스 5세가 사분오열된 유럽의 통일된 대제국을 재건하려는 일념으로 방금 일어나고 있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억압하고 교황권을 뒷받침한 까닭도 그것이었다.

 영국에서도 같은 시도가 강행되어 국교(國敎) 이외의 신앙을 일체 용납지 않은 것이며, 프랑스가 개혁파를 핍박한 것도, 일본이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신사 참배를 강요한 것등은 모두 같은 조치였다. 이른 바 현명한 듯한 통치자들이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종교를 이상으로 하여 종교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고 정교(政敎)일치의 정책을 취할 때는 언제나 유혈의 핍박이 뒤따랐고, 신앙과 양심의 자유가 짓밟혔다. 그것이 바로 계시록(13:14, 15)에 예언된 세상의 마지막 파멸을 가져 올 요인이며 그 결과가 짐승의 표, 곧 일요일 휴업령인 것이다. 레바논에서 발견된 느브갓네살의 고대 기념 비명(碑銘)에는 이런 인상깊은 문귀가 적혀있다.

 「이전의 어느 왕도 성취하지 못한 것을 (나는 했다) · · · 아무도 혼란을 일으키지못하도록 하기 위해 나는 나의 왕다운 상(像)을 영원하도록 세웠노라.」 R. W. Rogers, Cuneiform Parallels to the Old Testament, 366. (69.17)
 ③ 사람은 사람 스스로를 여러가지 양상으로 신격화(神格化)하려는 심리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다. “너희가 · · · 하나님 같이 되”리라(창 3:5)는 사단의 유혹에 따라 범죄가 시작되었다. 느브갓네살의 금 신상은 자아 숭배의 전형이다. 사람 모양의 금 신상을 경배하려는 경향은 범죄한 인간의 빗나간 신앙심을 심리적으로 만족시켜 주는 대용물이 되어 왔다.

 이러한 의도는 정치가는 물론 철학자, 과학자, 사회학자, 교육자, 빗나간 다수의 종교인들에게 매력있는 일이 되어왔다. 황제 숭배, 위인(偉人) 숭배, 소련의 레닌 숭배,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 로마 카톨릭의 성자(聖者)숭배, 스포츠계와 연예계의 스타 숭배, 이 모든 것들이 사람 스스로가 사람을 신격화하려는 타락한 본성의 노골적인 발로(發露)인 것이다. 하나님을 첫째로 삼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는 사람 자신이 신이되는 것이며 그것이 우상 숭배가 되는 것이다(눅 14:25-27, 마 10:37, 38). (69.18)
 ④ 금 신상이 세워진 것은 더욱 근본적으로는 사단의 시도였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우상숭배에 빠뜨리는데 성공하는 한편 자신의 지상 대리자인 느브갓네살과 바벨론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짓밟고 그 백성을 포로로 함으로써 승리가 확정된 듯한 순간에 앞서 2장의 사건으로 느브갓네살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공공연히 그분 앞에 굴복함으로써 일대 위기를 겪는다. 특별히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히브리 포로들을 그의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제거하기 전에는 그의 왕국이 결코 안전하지 않음을 확신했다. 이리하여 이들을 우상숭배로 굴복시키거나 아니면 제거할 수 있는 방편으로 금 신상 제막식을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사단의 저의(底意)는 제막식 벽두에 들어났다(3:7-12). (69.19)
 이 의식에 왜 다니엘은 참석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나 몇 가지 가능한 추측은 있을 수 있다. 즉 왕 자신이 앞서 2장의 사건을 통해 스스로 어리석음을 인정한 우상숭배를 다시 공식화하고 확실함을 고백한 꿈의 진상과 해석에 역행하는 처사를 단행함에 있어 거북스러운 입장과 분위기를 고려하여 다니엘을 어떠한 구실을 주어 불참시킬 수 있음직하다. 국사를 위한 먼 여행, 혹은 와병, 또는 궁전 당직(當職) 근무등도 있을 수 있는 여건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만약 그가 참석했더라면 그의 세 친구와 같은 길을 택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69.20)
 나. 고고학의 새로운 빛
 근년에 대영제국 박물관에 소장되었던 점토판 가운데서 발견되어 출판된 느브갓네살의 연대기(年代記)는 다니엘서 3장의 배경 이해에 새로운 빛으로 풀이되고 있다. D. J. Wiseman, Chronicles of Chaldaean Kings (London: The British Museum, 1956), 73. (69.21)
 ① 이 연대기가 알려지기까지는 그토록 유능한 전제군주였던 느브갓네살의 통치는 평탄했던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근년에 판독된 느브갓네살의 연대기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있다.

 「아카드(註: 신바빌로니아를 가리킴)왕 제10년 그의 땅에서, 제9월로부터 제10월까지 아카드의 반역이 있었다. 본문에는 제9월을 Kislev월로, 제10월을 Tebet월로 썼다.

 · · · 그는 무기를 가지고 그 자신의 군대 가운데 다수를 죽였다. 그 자신의 손으로 그의 원수를 사로 잡았다.」 Wiseman, 73.

 이토록 너무나 긴박하여 대왕 자신이 무기를 들고 백병전을 해야했던 이 반역은 느브갓네살의 재위 10년 제9월과 제10월이라 했는데 이는 기원전 595년 12월과 594년 1월 쯤에 해당된다. William H. Shea,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Third Chapter of Daniel”, a syllabus, Andrews University, Berrien Springs, Michigan, 5. (69.22)
 ② 그런데 예레미야 51장 59-64절을 보면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그의 재위 4년 째에 바벨론을 방문한 사건이 나온다. 방문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봉신왕(封臣王)이었던 그는 종주국에 어떤 형식이든 충성을 다짐하기 위해 갔음은 있음직하다. 유다가 최후로 망한 것은 시드기야 11년째였으므로 아직은 그가 바벨론을 반역하지 않은 때였다. 가을부터 시작되는 유대의 민력으로 계산하면 시드기야 4년은 기원전 594년 가을에 시작된다. (69.23)
 ③ 그렇다면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방문한 것은 느브갓네살에 대한 반역이 일어난지 1년이 채 못되는 때로 그의 바벨론 방문이 느브갓네살 재위 10년째에 일어난 반역과 필경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다. 즉 본국에서 일어난 반역에 자극을 받아 다른 종속국들이 덩달아 반역하지 못하도록 충성을 재다짐시키려 했을 것이다. (69.24)
 ④ 이러한 배경을 두고 볼 때 이때 일어난 반역을 계기로 느브갓네살은 자신의 왕위를 다시 한번 공고히하고 그의 제국을 영구하게 함으로써 그렇잖아도 불안을 주는 다니엘 2장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각 계급의 신하들에게 충성을 다짐받기 위해 3장의 금 신상을 세우고 그 제막식에 그들을 참석시켜 자신의 권위에 복종시키려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단 3:2). (69.25)
 ⑤ 3장의 금 신상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고고학적 사실이 바벨론에서 발견되어 지금은 터키의 이스탄불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점토 각주(角柱) 기념비가 읽혀짐으로써 나타났다. E. Unger, Babylon: Die Heilige Stadt nach der Beschreibung der Babylonier. (Berlin, W. de Gruyter, 1931), 282. 이 점토 각주 (角柱) 기념비의 다섯 면 위에는 다섯 단(段)으로 된 기록이 쓰여 있는데 마지막 두 단에는 느브갓네살이 친히 임명하는 50명 이상의 각계 각층의 공무원들의 이름과 직위가 또박 또박 적혀 있다(상당 부분은 훼손됨).

 “나는 (다음)의 궁중 관리들을 나의 공식적인 수행자로서의 지위를 차지하여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도록 임명한다”는 서언을 시작으로 관직과 명단이 쓰여 있다.

 그 가운데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불태웠던 시위대 장관 느브사라단에 해당하는 이름이 맨 먼저 나오고(왕하 28:8, 렘 39:13), 역시 이 때 참전했던 고위 방백인 네르갈사레셀에 해당되는 이름도 나타난다(렘 39:13). (69.26)
 ⑥ 만약 느브갓네살이 이렇게 많은 고위 관리를 한꺼번에 새로이 임명한 것이 그의 재위 10년째에 있었던 반역의 결과로 불충성한 자들을 숙청(肅淸)한 까닭이라면 다니엘 3장의 사건으로 오히려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아”진 히브리의 세 젊은이의 이름들도 나올 법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든다(단 3:30). (69.27)
 ⑦ 이러한 관심을 두고 이 명단을 살펴 보면 제일단 맨 마지막에 수석 상무관(商務官; chief trader)의 직책을 가진 “하누누”(Hanunu)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 이름은 바벨론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서방 즉 페니키아나 이스라엘 계통의 이름인 것이다. A. L. Oppenheim, Ancient Mesopotamia : Portrait of a Dead Civilization.(Chicago: Univ ersity of Chicago, 1964), 94, cited by Shea, 10. 이 이름은 세 젊은이 가운데 하나인 “하나냐”(Hannaniah; 단 3:30)의 이름과 어학적으로 밀접히 일치하고 있다. 이 이름은 같은 어원(hnn)에 근거하여 여러가지 형태로 성경의 이름으로 나타나 있다. Hanan으로 9 사람, Hanani로 5 사람, Hananiah로 14 사람, Hanael로 1 사람. 그런데 느 7:2 에는 “Hanani”“Hananiah”가 같은 사람의 다른 형태의 이름임을 보이고 있다. Shea, 20, 21. (69.28)
 ⑧ 또 다른 이름은 아벳느고(Abed-Nego)의 이름인데 “아벳”(abed)은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종”(servant)을 뜻하는데 이 말이 고대 아카드어(Akkadian)로는 “바르둠”(wardum)이었고 신바빌로니아 당시에는 앞의 글자가 떨어져나가 “아르두”(ardu)가 되었다. Shea, 22. 그래서 “아벳-느고”를 바벨론식으로 부르면 “아르디-나부”(Ardi-Nabu)가 되는데 바로 이 이름이 바벨론의 왕 세자(世子)인 아멜-마르둑(Amel-Marduk)의 비서관의 이름으로 점토 각주에 쓰여 있다. (69.29)
 ⑨ 만약 이 비서관이 참으로 다니엘 3장의 그 아벳느고라면 열왕기하 25장 27, 28절의 기사가 새로운 이해를 받게 된다. 즉 아버지 느브갓네살을 이어 왕위에 오른 아멜-마르둑(성경에는 에윌므로닥으로 불리움)이 “즉위한 원년 12월 27일에 (포로되어 온) 유다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 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선히 말하고 그 위를 · · · 모든 왕의 위보다 높이고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한 후대(厚待)가 아마도 그의 비서관이었던 다니엘의 친구 아벳느고의 영향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Shea, 23. (69.30)
 ⑩ 나머지 한 사람인 “메삭”(Meshak) 혹은 “미사엘”(Mishael)의 이름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바벨론 사람들이 “미사엘”의 이름에서 “하나님”을 뜻하는 “엘”(el)을 떼어버리고 바벨론의 신인 마르둑의 이름을 대신 넣었을 경우 그 점토 각주의 제일단에 나와 있는 궁전의 여자 노예들의 감독자 이름인 무샬림-마르둑(Mushallim-Marduk)에 가깝게도 여겨진다. Shea, 23, 24. (69.31)
 III. 강요되는 예배— 우상 숭배
 나는 새라도 떨어뜨릴 전성기의 느브갓네살이 반포한 명령에 따라 바벨론 전역으로부터 각계 각층의 지도자와 “각 도 모든 관원이 느브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 예식에 참집하여 · · · 신상 앞에서”게 되었다(3:3). 그 가운데 2장의 사건 후에 지방 행정의 고관이 된 세 친구도 참석했다(2:49). 마침내 의식이 시작되고 돈으로 고용된 관인(官認) 반포자에 의해 예배가 명령된다. (6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