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4 장 신앙의 자유와 불 시련(단 3장)
 I. 느브갓네살의 금 신상
 앞서의 다니엘 2장은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에게 보여주신 두려운 신상이 그 주제였다. 그런데 3장에서 이번에는 “느브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3:1)다는 또 하나의 신상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또 하나의 신상이 세워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금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게 하는 의도의 배후는 무엇이며 그 영향과 결과는 어떠했는가. (69.1)
 느브갓네살에 의하여 세워지고 경배하도록 명령되는 금 신상의 제막(除幕)사건은 그 배후를 이루고 있는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선악의 대쟁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여러가지 목적으로 헤아릴수 없이 많은 조각상(彫刻像)이 만들어지고 세워져 왔다. 예술적인 목적, 정치적, 역사적인 목적, 종교적인 목적 등 여러 경우 가운데 경배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적인 것일 때, 그것은 우상(偶像) 곧 신상(神像)이 되는 것이다. (69.2)
 가. 신상의 크기
 고대 세계에서는 거대한 신상들이 흔히 세워졌다. 이집트 제4왕조 카프르(Kh- afre)왕의 모습인 스핑크스는 밑에서 머리 끝까지 70피트(약 21미터)였고 아멘 호텝 3세(Amenhotep Ⅲ)의 거대한 멤논(Memnon)의 조각상들도 그 높이가 69피트였다. 이것들은 천 톤씩이나 되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누비아(Nubia)의 아부심벨(Abu Simbel)에 있는 신전에는 람세스 2세(Ramses Ⅱ)의 거상들도 그 높이가 65피트나 된다. (69.3)
 그런데 느브갓네살이 만든 신상은 그 높이가 육십 큐빗(약 103피트) 폭이 6 큐빗(약 10피트)로 대단히 높은 것이었다. 그러나 마치 미국의 뉴욕항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女神像)의 총 높이가 305피트이지만 받침대(台座)의 높이를 빼면 실제 높이는 발뒷꿈치에서 머리 끝까지 111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금 신상의 실제 높이와 폭도 30 큐빗(52 피트) : 6 큐빗(10 피트)의 비례가 될 것이다. 다니엘서 주석, 86. (69.4)
 신상의 높이를 60 큐빗 폭을 6 큐빗으로 한 것은 의미심장한데 이는 6이라는 숫자와 그 배수(倍數)는 고대 바벨론의 종교와 연결되어 흔히 쓰던 숫자이다. 주신 마르둑 신의 고유 숫자가 60이었는데 이는 그 이전의 바벨론의 주신이었던 아누(Anu)신의 숫자가 60이었던 것을 마르둑이 들어서면서 그대로 이어 받았다. Thiele, 35. (69.5)
 계시록 13장 18절에서 짐승의 숫자를 600-60-6으로 하여 666이라고 한 것에는 심상치 않은 배후가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7을 그 분 자신이 택하신 숫자로 삼은 반면에 사단은 6을 그가 택한 숫자로 삼았음을 보게 된다. 동시에 고대 바벨론에서는 십진법(十進法)이 아니라 60을 기초로 한 60 진법(六十進法)을 썼음을 알게 된다. (69.6)
 나. 신장의 자료—금
 참으로 그렇게 엄청난 금이 어떻게 쓰였을까. 기원전 5세기의 희랍(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터스(Herodotus)는 바벨론 신들의 예배에 엄청난 금이 쓰였음을 바벨론에 있던 한 신전을 예로 들면서 증언하고 있다. (69.7)
 「바벨론 성에 있는 두번째 신전에는 모두 금으로 된 제우스(Zeus)신의 좌상(座像)이 있다. 그 신상이 자리잡고 있는 앞에는 금으로 만든 큰 테이블과 신상이 좌정한 보좌와 그 보좌가 놓여진 받침이 있는데 모두가 금이었다. 갈대아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 금을 모두 합치면 800 달란트(30톤 이상)가 된다고 했다. 그 신전 밖에는 두 개의 제단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속까지 금으로 된 것이었다. · · · (페르샤 왕)고레스 당시 이 신전에는 모두 금으로 된 높이 18 피트의 사람 모양의 상(像)이 있었다. 나는 직접 이 상을 보지는 못했지만 갈대아 사람들이 그 것에 관해 알려 준 것을 말한다.」 Herodotus, Persian Wars, I. 183. (69.8)
 느브갓네살은 비록 우상을 섬기는 이교도였지만 자기의 신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종교를 번영하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아낌 없이 바쳤다. 그는 엄청나게 큰 신상을 제작했고 그 막대한 금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그러나 참 하나님이시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학 2:8)고 말씀하신 그 분의 사업을 위하여 드리는 헌금과 그 분을 예배하는 전(殿)인 교회의 유지와 건축을 위해 바치는 일에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내는 인색함과 이기심은 느브갓네살에 의해 견책을 받는다. (69.9)
 다. 장소—두라 평지
 느브갓네살의 금 신상이 세워진 곳은 “바벨론 도(道)의 두라(Dura) 평지”라고 했다(3:1). 그런데 이 지명은 지금의 힐라(Hilla) 아래 약 4 마일 지점에 있는 유프라테스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支流)에 연한 “나르 두라”(Nahr Dura)라는 평지에서 발견된다. 그 이웃에 있는 언덕들도 두라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S. H. Horn, The Spade Confirms the Book.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n., 1957), 63. (69.10)
 II. 금 신상을 만든 목적
 3장의 금 신상 사건이 언제 있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기원전 594/593년 경이 아닌가 한다. 그 까닭은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그의 재위 4년에 바벨론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는데(렘 51:59), 이는 느브갓네살이 “각 도 모든 관원”(단 3:2)들로 와서 자기의 금 신상에게 경배하도록 명령했기 때문에 당시 바벨론의 봉신(封臣)이었던 시드기야가 이를 계기로 바벨론을 방문한 것으로 추측될 수도 있다. (69.11)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3장의 금 신상 사건이 2장의 꿈에 본 신상의 사건 후에 있었음에 틀림 없으며 단 3:12, 30의 세 친구의 직위에 관한 언급을 보면 그것이 2:49의 사실을 토대로 하고 있다. 4장의 정신 이상이 된 사건보다는 먼저 있었음이 확실하다. 3:28, 29의 하나님께 대한 찬송과 4:14-37의 경험적인 찬송에서 이 사실이 암시되고 있다. (69.12)
 3장의 금 신상을 만든 때 쯤에 느브갓네살은 대제국의 기반을 공고히 하고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승승장구의 기록을 자랑하며 자신감(自信感)에 넘쳐 있었음에 틀림 없다. 다니엘 2장의 사건에서 받은 인상과 교훈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는 자신의 위대함과 그의 왕국의 확고부동함을 과시하고 공인받기를 바란 것이다. (69.13)
 「그 후 한 동안 느브갓네살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감동되었으나 그의 마음은 아직도 세속적인 야심과 자신을 높이려는 욕망을 버리지 아니하였다. 그의 통치에 따른 번영은 그를 교만심으로 충만하게 하였다. 차제에 그는 하나님께 광 돌리기를 그치고 더욱 증가된 열심과 고집을 가지고 우상 숭배를 다시 시작했다」(선지자와 왕, 481,482). (69.14)
 이러한 배경을 기초로 그가 금 신상을 세운 몇가지 가능한 이유를 들어 본다. (6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