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에는 캄펜하우젠의 경향을 계승하는 연구가 독일의 하인리히 카르프(Heinrich Karpp)의 “전쟁과 군복무에 대한 초대교회의 태도”(Die Stelling der Alten Kirche zu Kriegsdienst und Krieg)에 의해 이루어졌다.52 본(Bonn) 대학의 카르프는 첫째, 시간과 지역 및 직책적 상황에 따른 그리스도교회 군복무관의 차이와 변화를 추적하였다. 유프라테스 일대와 같이 로마 군대가 주둔해 있는 국경분쟁 지역의 그리스도교 병사들과 카르타고나 로마 같은 대도시의 성직자들과 학자들이 군복무 문제에 똑같은 의식을 갖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테르툴리아누스와 오리게네스 같은 교부들의 주장이 전체 교회의 입장을 대변했던 것이 아니며 그나마 테르툴리아누스의 경우에는 주관적인 ‘기대사항’으로서의 반군사주의와 구체적 현실로서의 그리스도인 군복무 사이에, 그리고 그의 호교론적, 수사적 표현과 교회의 실제적인 현실 사이에 발생하고 있는 긴장 요소를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또 374년에 성 바실리우스(Basilius)가 전투 중에 살해 행위를 저지른 병사들에게 3년 동안 성찬식 참가를 금지시키고 개인적 동기로 살인한 사람에게는 20년 동안 성찬식 참가를 금지시켰던 사실에 기초하여 살인의 개념을 살적(殺敵)과 살인(殺人)의 두 개념으로 구분하고자 하였다.53 그러나 이미 이러한 구분은 하르낙이 지적했듯이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 이후의 신학적 산물이며 따라서 카르프는 후기의 개념을 이전 시대에 소급하여 적용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30.2)
 70년대 이후로는 제로(S. Gero),54 헬제란드(J. Helgeland),55 스위프트(L. J. Swift)56 등이 정전론의 전통을 잇는 좋은 연구를 내놓았다. 제로는 테르툴리아누스의 전쟁관을 세베루스 이후에 특별히 현저해진 로마 제국의 군사 중시정책의 배경에서 다룬 점이 새로웠다. 그에 의하면 세베루스 황제에 의해 이루어진 군사 개혁으로 그리스도인의 군입대가 촉진되었다. 그리고 테르툴리아누스에 대해서는「변증론」(Apologeticum) 같은 초기 논문보다는「화관론」(De corona)이나「우상론」(De idololatria) 같은 후기작품에 나타난 입장이 테르툴리아누스의 도덕적, 신학적 엄격주의와 일치한다고 하였다.57 (31.1)
 헬제란드의 연구는 교부 중심의 논의를 지양하여 경외서와 병사순교열전, 특히 군대종교 자료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 병사들의 구체적인 군복무 경험들을 주목한 좋은 연구였으며 논지는 시종일관 평화주의 입장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스위프트의 연구는 교부들의 사상들을 국가권력과 그리스도교 평화복음의 변증법적 긴장 관계에서 좀 더 심도 있게 분석한 것이었다. (32.1)
 漢字권에서의 연구 결과로는 일본 동경대의 季村欣二의 연구가 있다.58 季村은 하르낙의「그리스도의 병사론」(Militia Christi)에 소개된 자료들을 기초로 하여 평화주의적 논지를 폈다. 주목을 끄는 관찰로는 살인개념을 전투에서의 살적 행위와 개인 동기의 살인 행위로 구분하려는 로마 카톨릭적 시도에 대한 비판으로 언어학적 분석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그는 구약성서의 모세 법률에 사용된 ‘살인하다’ 라는 히브리어 원어 라짜흐(ה󰘽󰙜. Rachah, 출애굽기 20:13)는 공적으로 승인된 보복이나 형집행같은 것과 구별되는 개념이지만 신약성서에서 “살인하다”의 뜻으로 사용된 희랍어 동사 포뉴오(πονευὡ. 야고보서 2:11, 마태복음 23:31, 35))는 구약성서 70인역에서나 고전 희랍어 등의 모든 용례에서 살인과 살적 개념에 모두 구별 없이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살인하지 말라’는 그리스도교 규범에서는 살적 행위가 제외되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해석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제외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와도 일치한다고 하였다.59 (32.2)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그간 초기 그리스도교회와 전쟁 및 로마 군대의 관계에 대한 수많은 훌륭한 연구들이 반전론과 정전론으로 입장을 달리하는 여러 탁월한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초기 단계에는 교파적 편견이 많이 작용했고 사상사적, 윤리적 관심이 주종을 이루었으나 해가 거듭할수록 자료 해석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근래에 와서 이루어진 로마 군대 조직과 생활, 군대 종교, 군대법 등 여러 관련 분야에서 이루어진 연구 성과에 힘입어 본 주제에 대한 종교, 사회적 분석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본 주제에 관련된 이념적 편견, 사상사 중심의 서술태도, 사건 분석의 지나친 단순화 등 자주 지적되어온 문제들이 만족할 만큼 극복된 것이 아니며, 지금까지 이루어진 다채로운 설명에도 불구하고 초기 그리스도교회의 전쟁 및 군복무에 관한 역사적 실상이 충분히 드러난 것은 아니다. 여기에 새로운 연구들을 위한 여지가 아직도 넓게 비어있는 것이다. (33.1)
 참고
 1. 본 주제의 연구역사를 위와 같이 명확히 세 시대로 구분해서 취급한 사람은 없다. 단지 C. J. Cadoux는 Grotius를 근대적 연구의 출발로 거론했고(The Early Christian Attitude the War [London, 1919], 6), J. Helgeland는 자신의 硏究史 서술을 19c 말, 20c 초로부터 시작했으며(“Christian and Roman Army from Marcus Aurelius to Constantine,” Aufstieg Und Niedergang der Rēmischen Welt 11. 23. 1 [New York, 1979], 725-732), Jacques Fontaine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연구성과를 하나의 논문으로 묶어 발표한 바 있다(“Christian and military Service in the Early Church,” Concililum, 7, 1965, 107-119.).

 2. J. F. Bethune-Baker, The Influence of Christianity on War (Cambridge, 1888). 이 책은 앞선 연구들에 비하여 고대저술가들의 인용과 토의에 있어서 진일보한 것이었으며 正戰論의 입장을 견지했다.

 3. 平和主義의 입장을 나타낸 저술들로는 Robert barclay, A Apology for the true Christian Divinity, as the same is Held forth, and Preached, by the People Called, in Scorn, Quakers, (1678); Jean Barbeyrac, Traite de Moralé des Pēres de l`Eglise (Amsteldam, 1728); Thomas Clarkson, Essay on Doctrine and Practise of the Early Christions as they relate to War, 2nd ed. (1817); Jonathan Dymond, Three Essays on the Principles of Morality and on the private and political Rights and obligations of Mankind (1828) 등이 있고, 正戰論側의 저서로는 앞서 언급한 J. F. Bethune-Barker의 The Influence of Christianity on War와 Johannes Goltlieb Calov의 Examen Sententiae Veterum Christianorum de Militia (Magdeburg, 1745) 등을 들 수 있다.

 4. 19세기 말에 나온 연구들로는 John Gibb, “The Christian Church and War,” The British Quarterly Review, vol. lxxiii (Jan. and April), 1888, 80-90; J. F. Bethune-Baker, Ibid.; K. J. Neumann, Der romische Statt und die allgemeine Kirche bis auf Diochetian (Leipzig, 1890) 등을 들 수 있다.

 5. R. Bainton, “The Early Church and war,” Harvard theological Review 39 (1964), 189; H. Von Campenhausen, “Der Kriegdienst der christen in der Kirche des Altertums,” Festschrift K. Jaspers (Munich, 1953), 255.

 6. Andreas Bigelmair, Die Beteiligung der Christen am őffentlichen leben in Vor-Constantinischen Zeit (Munich, 1902), 164-201.

 7. Ibid., 166-170.

 8. Ibid., 176-178.

 9. Ibid., 8.

 10. Henri Leclerq, “Militarisme,” Dictionnaire d`Archéologie Chrétienne et de Liturgie, ed. Fernand Cabrol and Henri Leclerq, XI (1933), 1108-1181.

 11. Ibid., 1130.

 12. Ibid., 1134.

 13. C. J. Cadoux, The Early Christian Attitude to War (Oxford, 1919)를 이후 The Attitude로 표기한다; The Early Church and the World. A History of the Christian Attitude to Pagan Society and the State Down to the time of Constantinus (Edinburgh, 1925)를 이후 The World 로 표기하고자 한다.

 14. 李村欣二, “古代キリスト敎の軍隊 戰爭觀-具體的 態度の 考察,” 西洋史學 XXI (1954), 29.

 15. The Attitude, 256

 16. Ibid., 119-128

 17. The World, 587.

 18. The Attitude, 16.

 19. The Fall of Christianity: A Study of Christianity, the State and the War, trans. J. W. Thompson (London, 1930).

 20. Ibid., 9.

 21. Ibid., 40-43.

 22. Die Mission und Ausbreitung des Christentums in drei ersten Jahrhunderten (Leipzig, 1902).

 23. Adolf von Harnack, Militia Christi. Die Chrisliche Religion und der Soldatenstand in den ersten drei Jahrhunderten (Tübingen, 1905).

 24. Ibid., 30.

 25. Ibid., 41-42.

 26. Ibid., 18.

 27. Ibid., 46-47.

 28. Adolf von Harnack, The Mission and Expansion of Christianity in the First Three Centuries, Vol. II. trans. James Moffatt (London, 1908), 59.

 29. Ibid., 87.

 30. Ibid., 87-92.

 31. The Attitude, 3.

 32. James Moffatt, “War,” Dictionary of the Apostolic Church, ed. James Hastings, II (1918), 646-673; “The War and Religious life in Great Britain,” American Journal of Theology, XX (October, 1916), 483-497.

 33. the “War,” 663.

 34. “The war and the Religious life in Great Britain,” 489.

 35. Roland H. Bainton, “The Early Church and War,” Harvard Theological Review 39 (1946), 189-212. 이 논문은 The Church, the Gospel and War (New York, 1948)에 포함되었다.

 36. Christian Attitudes toward War and Peace (Nashvillei Abingdon, 1960), 72-73.

 37. Ibid., 75-76; “The Early church and War,” 202.

 38. The Christian Attitude, 74-75; “The Early church and War,” 203.

 39. “The Early church and War,” 206-207.

 40. Ibid., 193-195.

 41. Jean-Michel Hornus, “Evangile et Labarum. Etude Sur l‘attitude du Christianisme Primitif fdevant les Problemes de l’Etat, de la guerre et de la violence,” Nourelle série théologique, 9 (Geneva, 1960).

 42. E. A. Ryan, “The Rejection of Millitary Service by the Early Christians,” Theological Studies 13 (1952), 1-32.

 43. Ibid., 30.

 44. Ibid., 24-28.

 45. Ibid., 30.

 46. Hans Freiherr von Campenhausen, “Der Kriegsdienst der Christen in der Kirche des Altertums” Offener horijent, Festschrift K. Jaspers (Munich, 1953), 255-264. 이 논문이 다시 Tradition und leben (Tubingen, 1960), 203-215 에 재수록 되었으며, 이 책이 Tradition and life in the Church, trans. A. V. Littledale (Philadelphia, 1968)이란 책명으로 英譯되었다.

 47. Tradition and life, 162-163.

 48. Ibid., 164-165..

 49. Ibid., 166.

 50. Ibid., 160-161.

 51. Heinrich Karpp, “Die Stellung der Alten Kirche zu Kriegsdienst und Krieg,” Evangelische Theologie XXⅢ (1957), 496-515.

 52. Ibid., 510.

 53. Stephen Jero, “Miles Gloriosus: The Christian and Military Service According to Tertullian,” Church History, 39 (1970), 285-298.

 54. John Helgeland, “Christian and the Roman Army: A.D. 173-337,” Church History 43 (1974), 149-163.

 55. Louise J. Swift, “War and the Christian Consience I: the Early years,” Aufstieg und Niedergang der Romischen Welt II. 23. I (New York, 1979), 835-867.

 56. Stephen Gero, “Miles Glorious,” 298.

 57. 李村欣二, “古代キリスト敎の軍隊 戰爭觀-具體的 態度の 考察,” 西洋史學 XXI (1954), 29.

 58. Ibid., 28-29.

 59. Ibid., 2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