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의 결혼 언약 제 6 장 성경의 이혼과 재혼 6. 고린도전서 7:10-16에 나타난 바울의 교훈
 고린도전서 7:10-16에서 이혼 문제에 대한 바울의 취급은, 그것이 예수님의 이혼에 관한 교훈이 사도교회에 어떻게 이해되고 구체적인 결혼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나타내기 때문에 중요하다. 여기에서 바울은 결혼에 관한 일반적인 원칙들을 제시한다. 성적 음행의 유혹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전 7:2). 부부가 함께 적절한 결혼의 권리를 수행해야 한다(고전 7:3-5). 독신의 은사를 가진 혼인하지 아니한 자와 과부는 독신으로 살 수도 있다(고전 7:7-8), 바울은 세 가지의 다른 이혼 상황을 설명한다.

   (1) 양편 신자 간의 이혼(고전 7:10-11),

   (2) 신자와 이혼하길 원하지 않는 불신자 간의 이혼, 그리고

   (3) 신자와 이혼을 원하는 불신자 간의 이혼이다. (254.1)
 (1) 두 신자 간의 이혼
 먼저 바울은 그들의 결혼 문제를 이혼이란 수단으로 해결하려는 결혼한 신자들에게 말한다.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전 7:10~11). 예수님의 교훈에 호소하면서(비교- 막 10:9, 11, 12; 눅 16:18; 마 19:3-9), 바울은 절대 용어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인 부부는 이혼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포한다. 두 번씩이나 무이혼의 원칙을 선언한다. “여자는 남편과 이혼 하지 말라. ∙∙∙ 남편은 아내와 이혼하지 말라”(고전 7:10-11). 바울이 금지한 기초는 부부는 한 몸으로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그리스도의 교훈에 기인한 것이다. (254.2)
 그러나 바울은 인간의 본질은 편벽적이되 심지어 그리스도인 부부로 상대 배우자에게 견딜 수 없는 결혼이 되게 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나님과 교제함에서 벗어난 배우자는 편협하고 오용적이고 불신실하고 지배적이고 아량이 없다. 의심할 것 없이, 바울은 이런 상황을 직면하고 때때로 분리가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바울은 분리가 필요한 경우에 그리스도인 배우자들이 선택 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1) 영원히 결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든지, 혹은

   (2) 다시 배우자와 화합하는 것이다. (255.1)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그리스도인 부부의 이혼에 대한 가능성을 권면할 때 예수님의 교훈(“내가 아니요 주시라”)에 호소한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브루스(F.F. Bruce)는 논평한다. “그리스도인 부부에게 이혼은 그리스도의 법에 의하여 제외된다. 주께서 이 문제에 관하여 명백하게 하셨기 때문에,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판단을 제시할 필요가 없었다.”27 (255.2)
 그와 같은 진취적인 교훈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혼과 재혼이 유대와 로마 사회에서 모두 허락되었음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바울은 기꺼이 받아들여질 주님의 말씀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무이혼 원칙을 확언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이후 거의 25년여 동안 사도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결혼연합의 영원성을 선포하심을 믿고 가르쳤다. 이 신념은 그리스도인 사명에 있어서 사회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였다. (255.3)
 바울의 시대에는 아내가 이혼당하지 않고는 남편으로부터 법적으로 분리되는 조항이 없었다. 오늘날 법은 이혼에 대한 선택권으로 법적 분리(역자 주: 이 책에서는 “다시 결합하기 위하여 기간을 가지되 법적 보호를 받는” 것의 뜻으로 쓰임)를 제공한다. 법적 분리는 화해의 문이 열려 있는 한 그리스도인에게 법적 보호를 부여한다. 그런 문호는 열려져 있어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해결하지 못하실 결혼 문제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255.4)
 법적 분리가 없었던 사도 바울의 시대에, 사도는 이혼의 형태로서 법적 분리를 추천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혼(apoluo)에 대한 전형적인 동사를 사용하심에 대하여, 여기서 바울이 동사 “분리하다”(koridzo)를 사용한 데서 나타난다. 법적 분리 형태의 이혼을 추천하면서, 바울은 예수님의 교훈의 정신을 존중하는 반면, 동시에 화해가 현실화될 때까지 신앙을 가진 아내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256.1)
 (2) 결혼을 한 신자로서 이혼을 원하지 않는 불신자에 대한 이혼
 바울이 권면하는 두번째 상황은 불신자와 결혼을 한 믿는 배우 자에 대한 것이다.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고전 7:12-13). (256.2)
 주께서 신자와 불신자 간의 결혼 생활에 관하여 교훈을 주시지 않았지만, 바울은 자신의 권위와 영감에 따라(“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분리가 없는 원칙을 명하였다. 바울의 개인적인 교훈이 권위를 약화시키지 않는 것은 그가 주의 자비하심을 따라 충성된 자(고전 7:25)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고전 7:40)로서 말하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명령을 인식하며 바울은 두려움 없이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전 7:17). (256.3)
 바울의 교훈은 분명하다. 만약 불신자가 이혼을 원치 않으면, 신자는 이혼하기를 구할 수 없다. 결혼결속의 보존을 위하여 주어진 이유는 신자가 불신자인 배우자와 자녀에게 끼치는 거룩한 감화 때문이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고전 7:14) (256.4)
 결혼연합을 유지하기 위하여 바울이 주는 이유는, 고린도의 개종자들의 마음에 품은 곧, 불신자와 결혼함으로써 더럽혀질 가능성에 관한 두려움을 감안해 볼 때 적절하다. 바울은 그런 두려움을 안정시키고자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거룩하게 하는 능력을 계시 한다. 신앙을 가진 배우자의 믿음은 불신자인 배우자에게 구원하는 은혜의 통로가 된다. 가정에서 신자의 임재는 거룩한 것이며 불신자인 배우자와 자녀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그리스도인의 감화력을 주는데 바울이 16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257.1)
 (3) 결혼을 한 신자로서 이혼을 원하는 불신자에 대한 이혼 (257.2)
 바울이 권면하는 세번째 상황은 이혼하기를 원하는 불신자에 관한 것이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고전 7:15). 바울은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 갈리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수의(隧意)의 명령형 “그렇게 하라(kopisesto)”는 불신자인 배우자가 이미 의도적으로 분리하고자 주권을 행사하거나 수행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결과적으로 바울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고, 사실대로 되게 하라고 충고한다. 신자는 자신을 버린 배우자를 쫓아갈 필요가 없으며 모든 결혼 의무로부터 자유케 되었다. 헬라어 동사 “우 데도우로타이”(ou dedoulotai, 문자적으로 “더 이상 예속되지 않는다”의 뜻)는 신자가 그런 사람과 동거자가 되는 것은 노예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화평 중에서 우리를 부르셨으니, 그런 경우에 신자는 노예에서 벗어나야 한다. (257.3)
 이로써 우리는 신약 구절의 해석에 있어서 가장 논란이 심한 질문들 중의 하나를 접하게 된다. 문제는 “구속함이 없다” 혹은 “예속되지 않다”는 동사의 정확한 뜻을 찾는 데 있다. 이것은 믿는 자의 편에서 나누인 후에 재차 결혼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하는가, 혹은 재혼이 아닌 갈리는 것에 대한 자유인가? 환언하면, 바울은 믿는 배우자에게만 살아가는 것을 달리하라고 하는 것인가 혹은 갈리고 타인과 결혼할 권리를 가지라는 것인가? 버림받은 무죄한 쪽에 재혼의 자유와 함께 이혼할 권리도 주는 것인가? (258.1)
 혹자는 바울이 버림받은 신자에게 오직 헤어질 자유만 주었지 재혼할 자유까지는 아니라고 믿는다. 그들은 “바울이 15절에서 갈린 배우자들을 위한 재혼에 관하여 아무런 권면을 하지 않은 ”28 사실을 주장한다. 그들은 바울의 침묵을, 갈린 신자에게도 신자간에 서로 나누인 자들에게 준 동일한 두 가지 곧 평생 동안 홀로 지내든지 화해하는, 양자 택일권을 제시하는 것(고전 7:11)으로 해석한다. (258.2)
 이 견해는 10절11절에 언급된 신자간에 조건적 갈림과 15절에서 불신자의 배우자로써 야기된 조건 없이 갈림 사이에 큰 차이점을 무시해 버리는 것 같다. 전자의 경우에, 바울은 각 배우자들에게 결혼을 하지 않고 갈린 대로 지내든지 화해하라고 엄격하게 명령한다. 후자의 경우 바울은 “갈리게 하라.” 곧, “그 경우는 종결짓고 이혼하라”고 말함으로써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고 최후 확정을 인정한다. (258.3)
 머레이(Muray)는 지적한다. 15절에서 우리는 계획된 이혼에 비추어서 검증되어 단호한 결정과 최후 확정을 나타내는 간결하고 엄격한 단어인 ‘(남녀가) 갈리게 하라’ 곧, ‘풀어놓아 자유케 하라’를 사용하였음을 발견한다.”29 갈림은 최후적이기 때문에 조건이 없다. 즉, 그냥 지내든지 혹은 화해하라는 명령이 없다. 대신에, 파약된 배우자가 “구속받을 것이 없”(고전 7:15)다고 확언한다. (259.1)
 “구속받을 것이 없다”(ou dedoulotai)는 말은 결혼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결과적으로 갈림을 당한 배우자가 재혼할 자유가 있음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바울은 이 결론을 같은 장 39절에서 지지하는 데 곧 남편의 사망은 아내를 결혼의 구속에서 해방시키고 다시 결혼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사실이다.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전 7:39). (2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