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몇 페이지 앞에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첫 여섯 나팔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 기사들을 다 읽고 났을 때 독자들의 머리는 온통 사자의 이(齒)를 가진 메뚜기들의 소리로 윙윙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유브라데 강을 뛰어넘는 말(馬)들의 모습이 눈앞을 어른 거렸을 것이다. 독자들은 세상이 피로 물들여진 모습과 화염으로 불타는 모습, 해가 어두워지는 이야기들을 읽었다. (231.1)
 이러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이 이야기들은 문자 그대로의 실제적인 일들인가 아니면 상징적인 표현일 뿐인가? (231.2)
 구약에서의 의미
 앞 부분에서도 지적한 바와같이 요한계시록은 구약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구약의 구절과 사상(思想)을 끌어다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다 합하면 아마 일천 회수가 넘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쓰던 당시 요한의 생각은 구약의 언어로 가득차 있었다. 앞에서도 난해한 구절을 이해함에 있어서 구약의 구절들을 살펴봄으로써 도움을 얻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여기서도 우리는 동일한 방법에 의해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31.3)
 구약 성경의 요엘서가 가장 손쉽게 도움을 준다. 요엘서는 부피가 3장(章)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그 표현이 다양하고 극적이어서 여러 면에서 요한계시록의 표현을 닮고 있다. 요엘 1장 4~7절과 2장 2~11절에는 사자의 이(齒)를 가진 메뚜기들이 말떼처럼 움직이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 요한계시록의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다. 요엘서의 메뚜기들이 말(馬)들 같고 사자의 이를 가진 듯한 것은 그들이 떼지어 이동하면서 발닿는 모든 곳을 황폐화시키는 곤충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셀 수도 없는 이 떼는 먹을 만한 것은 거의 모두 먹어 치웠다. 많은 백성들이 먹어야 할 곡식들은 물론이고 크게 자란 나무 줄기까지 갉아먹고 말았다(욜 1:7). 요엘서의 메뚜기들은 나라의 대지를 다 황폐시킨 후에도 마치 잘 훈련받은 군대처럼 성벽을 뒤덮고 성중에 뛰어들며 열린 창 넘어로 기어들어갔다(욜 2:7~9).(메뚜기들이 여러분들의 집안으로 새까맣게 몰려와 마당과 마루와 가구와 주위를 뛰어 다니고 얼굴과 몸 위에 내려앉고 옷에 벌벌 기어다. 닌다고 상상해 보라). (231.4)
 요엘서의 메뚜기 떼가 하늘로 날아갈 때 그 수백만의 등뼈 없는 곤충들의 몸과 키틴질의 날개들로 엄청난 크기의 구름이 형성되어 하늘을 캄캄하게 뒤덮었다. 그 메뚜기들이 땅에 내려앉을 때는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떠는 것 같았다: (231.5)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日月)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욜 2:10).
(231.6)
 요엘은 선지자였다. 그는 메뚜기 떼들을 신앙 부흥의 이유로 사용했다. 그는 부모들과 자녀들에게, 전 가족들에게 그들의 제사장들과 함께 열심을 내어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232.1)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聖會)를 선고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욜 2:15~17).
(232.2)
 하나님께서는 만약 백성들이 진지하게 응하기만 하면 당신께서 기필코 백성들의 옛 번영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듯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욜 2:25)라. (232.3)
 

고대의 선지자들은 재난들이 나팔처럼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고 가르쳤다.
(232.4)
 그러나 백성들이 회개를 하지 않는다면 어찌 되는가? 요엘은 선지자의 안목으로 마지막 시대, 곧 우리들의 시대까지 미래 역사를 훑어보았다. 그는 병사(兵士)들이 메뚜기 떼처럼 모여드는 것을 보았다. 그는 또 하나님의 하늘 전사(戰士)들이 전쟁 마당에 당도하는 광경을 보았다. 그는 아마겟돈이라고 이름하는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발생하는 지구의 마지막 대회전(大會戰) 즉 최종 심판의 모습을 보았다. 요엘은 선지자였기 때문에 그 시대의 메뚜기 떼에서, 백성들을 회개케 하여 그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경고를 간파하였다. 만약 백성들이 응하기를 거절한다면 어느 날 최후의 심판으로서 아마겟돈이 뒤를 잇게 될 것이었다. (233.1)
 요엘은 백성들이 모여 회개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나팔을 불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요엘서는 나팔과 메뚜기 떼들을 민족과 가족의 중심어린 회개에 연관시켰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나팔과 회개가 서로 연결되고 있다(계 9:20, 21). (233.2)
 그러나 다시 요한계시록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이사야 선지자와 다윗 왕에 관한 구약 성경의 기사를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233.3)
 이사야 선지자는 회개치 않는 유다 영토에 대한 적군의 임박한 침략을 내다보고(주전 700년경에 발생했다),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지경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 틈과 가시 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사 7:18, 19). (233.4)
 이사야 선지자는 이때 실제로 파리와 벌들이 진짜 가시나무 울타리와 초장에 “앉을 것” 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그는 애굽과 앗수르(앗시리아)의 병사들과 관리들과 징세원들이 떼지어 침입해 오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인상적인 언어들을 사용한 것이었다. 이사야가 애굽 인들을 묘사하기 위한 상징으로 파리를 사용한 것은 애굽에 그 때나 이제나 파리가 많은 사실을 감안한다면 퍽이나 적절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233.5)
 이사야 선지자는 몇 장(章)뒤에서(사 10:16~19) 앗수르를 맹렬히 불타는 숲으로 비유했다. (233.6)
 다윗 왕도 자신의 군사적인 경험을 묘사할 때, 인상적인 언어—극적이고 시적인 심상(心象)을 사용하였다. 시편 18편 7~14절에서는 그가 치른 여러 전투 경험 중 하나가 뇌우(雷雨)였던 것처럼 모사되었다. (233.7)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뇌성을 발하시고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시며∙∙∙
그 살을 날려 저희를 흩으심이여
   많은 번개로 파하셨도다(시 18:7, 8, 13, 14).
(233.8)
 이번에는 시편 11편 4~6절을 살펴보자. 여기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그 성전에 계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악인에게 불과 유황의 비를 내리신다”고 묘사한다. 「예루살렘 성경」에서 이 구절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습관적인 행위를 묘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2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