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전 조사심판의 성경적 기초 다니엘 9장의 이슈들 제24장 칠십 이레의 목적
 “죄악”에 해당되는 히브리말은 아원이며, “죄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다니엘 9:24은 죄에 해당되는 기본적인 세 가지 히브리 닡말을 다 포함한다. 페샤(“반역”), 핫타트(“죄”), 그리고 아원(“죄악”). 구약의 다른 데서 이 세 단어가 함께 나오는 경우는 유일하게 레위기 16장뿐이며, 거기서는 속죄일의 활동들을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다니엘 9:24은 속죄일을 강력하게 연상시킨다. 그리고 물론 예수께서는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드린 제사들을 포함하여 이스라엘의 성막에서 드린 모든 제사들을 십자가에서 성취하셨다. 하늘 속죄일의 나머지 부분은 현재 하늘 성소에서 진행 중인 조사심판으로 성취되는 중이며, 그것은 천년의 끝에 죄가 마지막으로 불못에 사라짐으로써 종결될 것이다. (294.4)
 다니엘 9:24“용서”(<개역한글판>에서는 “영속”)에 해당되는 히브리말은 킵푸르이다. 레위기에서 이 단어는 이스라엘 자손이 1년 동안 지은 죄를 위하여 성소로 가지고 온 희생의 목적을 말해준다. 예컨대, 레위기 4:26은 말하기를, 죄인의 희생의 결과로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킵푸르]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유대인의 유예 기간인 490년 중 어느 시점에 예수께서 세상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은 “죄악이 용서되”게 하실 것이라고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말하고 있었다. (295.1)
 제4행: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것과 정확히 똑같은 표현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다니엘에서 이와 같은 개념을 본 일이 있다. 다니엘 7:27은 말하기를, 조사심판의 결과로 세상의 주권은 인자와 그의 성도에게 넘어가고,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라고 한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인자를 섬기며 복종한다는 말은 “영원한 의”와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295.2)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세워지기를 고대한다. 그러면 다니엘 9:24에서 가브리엘이, 유대인의 유예기간인 490년 동안에 영원한 의가 확립되리라고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95.3)
 예수께서는 자주 그분의 “나라־”가 그분의 시대에 실재하는 것으로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그분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is like)”(마 13:24;강조는 첨가된 것임)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현재형(“is”)으로 되어있음을 유의하라. 그 비유는 그분의 재림 때에 가서야 세상에 예수의 통치가 확립되는 장면을 보여준다(41-43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유 전체는 “천국”이 이미 세워진 것처럼 묘사한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와 열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두 비유에서 모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은가(is like)하는 언급으로 시작하여, 그분의 재림에 앞서 세상에 있는 그분의 백성들이 가지는 사명과 그들의 상태에 이야기하셨다. (295.4)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를 그들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속에 생겨나는 변화를 의미한다. 성경은 이 변화를 “돌이킴” 또는 “거듭 남”이라고 말한다(마 18:3; 요 3:1~8 참조). 구약 시대의 사람들도 돌이킴을 경험하였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이러한 변화의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셨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가브리엘은 “영원한 의”가 유대인의 유예 기간인 490년 동안에 시작되었다고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어서 우리가 경험할 영원한 의는 우리가 예수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돌이키는 능력을 체험하는 순간 언제든지 우리의 삶에 시작된다. (296.1)
 셋째 쌍
 셋째 쌍의 두 줄에서는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칠십 이레 즉 490년의 끝에 일어날 두 가지 일을 말해준다. (296.2)
 제5행: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히브리어로 하면 이 구절은 세 단어로 되어 있다. “봉하다”라는 뜻의 하탐, “환상”이라는 뜻의 하존, 그리고 “예언자”라는 의미의 나비(navi)이다. 이 단어들을 각각 검토해보자. (296.3)
 하탐.
 대다수의 영어 번역본들은 이 구절을 “환상과 예언을 봉인(seal up) [하탐]하며”(강조는 첨가된 것임)라고 번역한다. 이렇게 번역하면 하탐은, 8장의 환상과 9장에 나타난 그것에 대한 가브리엘의 설명이 유효함을 칠십 이레 예언의 정확한 성취로써 봉인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하늘의 하나님만이 다니엘 9:24, 25에 나오는 것과 같이 미래에 대하여 그렇게 정확하고 상세한 지식을 가지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재림교회 내의 꽤 일반적인 해석이었다. 하지만 이 구절을 “환상과 예언자를 끝내며라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구절의 다른 두 단어를 살펴본 후에 이러한 번역의 중요성을 설명할 것이다. (296.4)
 하존.
 제23장에서 나는 하존“환상”을 뜻한다고 언급하였다. 하존에는 관사가 없다. 대다수의 영어 번역본에 “그 환상(the vision)고 예언을 봉인하며”가 아니라 “환상(vision)과 예언을 봉인하며”로 반영되어 있는 부분이다. 이것이 가지는 중요성도 곧 분명해질 것이다. (297.1)
 나비.
 이 단어는 “예언자”를 뜻한다 대다수의 영어 번역본들은 이것을 “예언”(prophecy)으로 번역하지만, 〈표준개정역〉(RSV)은 “예언자”(prophet, 즉, 선지자)라고 하며, 그것이 더 정확한 번역인 것으로 보인다. (297.2)
 이제 우리는 이 구절이 “환상과 예언자를 끝내며”라고 번역되었을 때의 의미심장함을 논의할 준비가 되었다. 재림교회는 스데반의 순교가 칠십 이레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항상 말해왔으며, 나도 그 해석에 동의한다.(다음 장의 끝에 있는 추가적인 해설에서 그 해석의 연대기적인 근거를 설명할 것이다.) 셰이는 산헤드린 앞에서 스데반이 한 연설—그를 순교로 이끈—이 “히브리어로는 리브(rib) 즉 ‘언약관계의 고소장’이라고 하는 것”5)이었다고 지적한다. “언약관계의 고소장”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위반할 때 선지자가 그들을 정죄하던 것을 말한다. 스데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솔로몬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한다. 그 다음 그는 산헤드린 의원들을 질책한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행 7:51-53). (297.3)
 이 시점에 스데반은 하나님의 환상을 받았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56절). 스데반이 “인자”라고 한 것이 예수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산헤드린 의원들은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들을 너무나도 격분하게 하여, 그들은 스데반을 예루살렘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였다. 이 행동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유예 기간을 종결지었으며, 그들의 민족을 위한 유예의 기간 490년을 끝냈다. (298.1)
 셰이는 “성령이 스데반에게 내려오셨고, 그는 하늘의 환상을 받았다. 그 순간 스데반은 문자 그대로 예언자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에게 이와 같이 그분 자신의 환상을 주시니 말이다”6) 그러므로 스데반은 예언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을 하는 중에 산헤드린에 대하여 언약관계의 고소장을 전달한 셈이다. 그리고 산헤드린이 유대 민족의 공식적인 대표자들로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그분의 기별을 거절하였으므로, 그들은 한 민족으로서 자신들의 유예 기간을 끝낸 것이다. 물론 유대인들도 개인적으로 예수를 믿음으로 여전히 구원을 받을 수 있으나, 한 민족으로서는 더 이상 구원의 기별을 세상에 전하는 그분의 택함을 받은 도구가 아니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은 그리스도교회를 통하여 일하셨다. 이것이 칠십 이레의 목적 중 일부는 “환상과 예언자를 끝내”는 것이라고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말한 것을 우리가 이해하기 위한 배경이다. 셰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스데반은 유다 지역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으로서 있는 동안 말씀을 전한 마지막 선지자이다. 그러나 돌에 맞아 죽음으로써 그의 음성은 침묵 당하였다. 그를 침묵시킬 때 그들은 자신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예언자의 음성 또한 침묵시킨 것이다.∙∙∙” (2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