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6 부 예수님과 함께 같바리에서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29. 소제와 전제 (나의 모든 소유는 그리스도의 것임)
 사도 바울은 고린도의 형제들에게 마게도니아의 그리스도인들이 보여 주는 희생적인 너그러움을 상기시키면서 “우리가 바라던 것 뿐만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쫓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5)고 말하 였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물질적인 선물을 주님을 위한 목적으로 바치기 전에 먼저 성별하기를 원하신다. 경배를 드리는 이들은 번제를 드림으로써 “내 모든 존재는 그리스도의 것”임을 확언하였고, 이런 헌신에 근거하여 소제를 드리면서 “내 모든 소유는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우리의 몸을 제단에 산 제사로 드린 후에만 오직 우리의 물질적인 제물이 가납되어진다. 영원하신 성령님이시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어 이리 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377.4)
 전제
 광야에서 방황하던 때에는 땅을 경작하지도 않았고, 수확한 것을 모으지도 않았다. 그 결과 성소에 소제와 전제를 드릴 수가 없었다. 여호와께서는 가나안의 농산물을 예견하시면서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터이라고 선언하셨고, 그 때에 소제와 전제를 드리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었다(레 23:10, 18, 37). 이 시기에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고, 무교병이 발효되지 않은 포도 음료가 필요하지 않았다. (377.5)
 여호와께서는 “전제로는 포도음료를 ∙∙∙ 쓸 것이며”(레 23:13; 민 28:7)라고 설명하면서 전제를 모든 소제의 부속 제사로서 행하라고 하셨다(민 15:4~11; 28:7~15; 레 23:18). (377.6)
 랍비들은 “감람나무와 포도나무 산물을 제외한 그 어떤 과일즙도 제단 위에 드려서는 안 된다”(Terumoth 11: 3)고 덧붙 인다. 몇몇 성경 학도들은 소제와 전제를 따로 드릴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소제를 드리라는 명이 내 렸을 때는 언제나 전제 또한 드리는 것이 항상 필요하다고 이해되었었고,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자면, 미쉬나는 “개인이나 회중이 드리는 모든 제물은 전제물을 요구한다”고 상기시켜 주고, 미쉬나 편집자 허버트 댄비(Herbert Danby)는 “소제도 여기에 의도되었다”고 덧붙인다(Menahoth 9:6; 비교 민 15:3). (378.1)
 전제이었던 포도즙
 포도즙이 전제이었기 때문에 컵(chalice)에는 “포도의 붉은 피”(신 32:14; 개역성경은 ‘포도즙의 붉은 술’로 번역하였음)로 가득 찼다. 전제는 히브리어로 네섹(nesek)인데 이 단어의 어근의 의미는 붓다이다(사 19:10; 출 30:9; 호 9:4). 하지만 구약성경 어디에도 전제를 부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지시가 나온 곳은 없다. 그렇지만, 시락 지혜서(1:15)에는 포도의 피를 제단 아래에 부어야만 한다고 분명하게 나와 있다. (378.2)
 랍비 전승에 의하면 두번째 성전의 제단 아래에는 남서쪽과 남동쪽 모퉁이에 두 개의 구멍이 뚫여 있었다고 한다. 이 구멍으로부터 두 개의 관(管)이 기드론 계곡으로 연결되어 있었고(Middoth 3:2), 그 곳으로부터는 사해로 흘러 나갔다. 여러 피를 뿌리는 예식에서 나온 피와 포도즙은 한쪽 구멍에 부었고, 장막절 때 사용된 물은 다른 한쪽 구멍에 넣었다(Sukkah 4:9; 비교 시대의 소망, 449). 요세푸스(Antiquities II:9: 4)는 전제를 제단 위에 부었다고 선언하면서, 전제를 “번제”와 화목제 뿐만 아니라 타고 있는 소제의 “기념물” “위에 부었다”고 덧붙인다(Wars V: 13:6). 미쉬나는 전제를 제단 위에 실제로 부었다고 확증하여 준다(Tamid 7:3). “전제”를 뜻하는 네섹이라는 파생어의 히브리어 어근은 액체를 무엇인가 위에(출 30:9; 호 9:4) 혹은 온통(민 28:7) 붓는 것을 뜻하였고, 그리하여 덮다를 뜻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보호하다를 의미하게 되었다(사 25:7; 28:20; 민 4:7, 난외주; 출 25:29, 난외주). (378.3)
 결코 마시지 않았던 전제물
 전제는 결코 마시지 않았다! 여호와께서는 실제로 전제를 마시는 자나 피를 먹는 자에게 저주를 선언하시었다(신 32:36, 38). 사실 제사에서 쓰였던 포도 음료는 피의 상징이었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즙 틀에서 부어 나온 메시야의 온전하신 희생적 삶을 가리키었다. 제사용 포도즙을 마시는 것을 금한 것은 이 상징적인 사용 용례와 일치하는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피를 먹는 것을 금지하신 것과 일맥상통한다(레 3:17; 7:23~27). (378.4)
 포도즙을 만드는 것에도 떡을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혹독한” 비유적 표현들로 가득 찼다. 가을에 포도나무는 철저하게 가지침을 당하여 거의 죽은 것처럼 보인다! 또 포도 송이가 익었을 때 사람들은 칼로 무자비하게 잘라 내어 포도즙틀에 던져 넣어 버린다. 그러고 나서 즙이 콸콸 흘러나올 때까지 발로 짓밟아 으깬다. (378.5)
 “포도의 피”(창 49:11; 개역성경은 “포도즙”으로 번역)란 말이 얼마나 생생하게 냉혹한 인간들에 의하여 짓밟혀 으깨진 참 포도나무(예수)열매의 양홍(洋紅)성분을 예견하여 주는지! (379.1)
 발효되지 않은 전제물
 제단에 발효된 그 어떤 것도 올릴 수 없었기 때문에(레 3:11) 오직 알콜 성분 없는 포도즙만이 전제로 사용되었다. 이 금지 사항은 성경에 나오는 주정 음료에 관한 모든 언급—모두 다 정죄적인 언급이다—과 일치한다. 히브리인들은 일 년 내내 발효되지 않은 제물로 드릴 포도즙을 보유하고 있으려고 고대 세계에서 잘 알려진 몇 가지 방법들을 사용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은 물속에 건포도를 부드럽게 될 때까지 담가 놓았다가, 포도액을 짜내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서는 신선하게 수확된 즙을 부드럽게 몇 시간 동안 열을 가하여 그 양이 1/2 또는 1/3으로 줄어들게 하는 방법이다(SDA Source Book, 122 ∙∙∙ 124쪽). 때때로 “강한” 음료 혹은 농축 음료라고 불리워진 이 발효 되지 않은 시럽은 오랜 기간 알콜 성분이 없는채 저장할 수 있다. 여러 예식에 필요할 때에는 적합한 배율을 맞추기 위하여 물을 더하면 되었다(Berakoth 8:2; Pesahim 10:2, 4, 7). 이 물과 “포도 음료”를 섞는 것은 창으로 찔린 예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을 예견하였던가?(요 19:34~37; 시대의 소망, 772). (379.2)
 엘렌 화잇은 구세주께서 다락방에서 사용하신 유월절 포도즙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통찰력 깊은 말을 남겼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취하게 하는 포도 음료를 음료로서나 그리스도의 피의 상징으로서 마시라고 가르친 곳은 없다. 우리는 천연적인 이유를 발판으로 삼아, 포도의 순수한 즙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피를 더 잘 나타내는가 아니면 포도즙이 발효되어 취하게 하는 포도 음료가 된 이 후가 그리스도의 피를 더 잘 나타내는가 하고 묻는다. 우리는 전자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를 적합하게 나타내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신 유일한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또 후자, 발효된 포도 음료는 결코 성만찬 상에 올려서는 안된다.”(Signs, 1878. 8. 29.). 예수께서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항상 동일한 분 이시기에 고대 성막의 제단에 알콜 성분이 있는 포도 음료를 올려 놓는 것을 확실하게 허락하시지 않았다. (379.3)
 전제의 의미
 전제가 나오는 성경의 이야기들은 전제가, 생명력을 증류하여 주는 헌신을 예증하여 준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379.4)
 여호와께서는 야곱이 라반의 노예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에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창 35:9, 10)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아브라함과 맺었고(창 17:1~12), 이삭에게 반복하였고(창 26:2~5), 야곱에게 받아들이라고 청하였던 그 언약의 약정들을 반복하시었다(창 35:11, 12). 야곱은 자신이 순응하겠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나삭> 또 그 위에 기름을 부”었다(야차크<yatsaq>)(창 35:14). (379.5)
 성경에 첫번째로 언급된 이 전제는 야곱이 언약에 복종하여 부은 야곱의 의지를 나타내고, 기름은 승인하는 성령을 표상한다. (380.1)
 다윗은 사울에게 이곳 저곳에서 괴롭힘을 당하면서 그가 소년이었을 때 갈증을 종종 축이던 베들레햄의 우물물을 먹고 싶어 한탄하였다. 왕의 병사 세 사람은 왕을 만족시켜 주려고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 적진영으로 발각되지 않고 들어가 경애하는 지도자를 위하여 물을 길어 왔다. 길어 온 물을 바쳤을 때에 다윗은 두려움 가운데서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였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나삭<nasak>)었다(대상 11:19, 18). 다윗이 베들레헴의 우물에서 길어온 물로 전제를 드린 행위는 자신을 높이고자 한 생명들을 기념하고, 언젠가 베들레헴 사람의 찔린 옆구리에서부터 부어져 나올 생명수를 속삭여 주었다. (3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