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6 부 예수님과 함께 같바리에서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29. 소제와 전제 (나의 모든 소유는 그리스도의 것임)
 하나님께서는 매 번제와 화목재를 드릴 때에 함께 감람유와 포도즙, 그리고 곡물을 드리라고 하시었다(레 2:1; 민 15:2~19).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바치라고, 만나밖에 없던 광야에서는 강요하지 않으셨다(Menahoth 4:3). 하지만 약속된 땅에서 이 제물은 인생의 모든 물질적인 축복에 대한 감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고르반<korban>)이 되어야만 하였다. 이스라엘은 이 제물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드렸다. 이 제사의 히브리어 명칭인 민하(mincah, 레 2:1)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제일 먼저 나오고(창 4:3, 4), 달래다 또는 만족시키다를 뜻하는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 단어의 중요성은 야곱이 에서에게 예물을 주는 이야기(창 32:13~21)와 열명의 형제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예물을 주는 이야기(창 43:11)가 예증하였다. 많은 번역자들은 이 민하를 소제(grain or cereal offering)로 번역하였다. (372.1)
 인간이 원래는 땅의 경작자이었고, 그 산물의 추수자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노동의 열매로 재산을 모으고, 그 재산에서 자신의 관대한 창조자에게 제물을 드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택한 곡식들은 보리, 밀, 염소풀(goat—grass), 귀리이었고(Merahoth 10:7), 때때로는 쌀도 바쳤다(Hallan 1:1, 3:7, 10, 4:3). 레바논 백향목의 장엄함과 난초의 멋, 참나무의 강함과 세쿼이어(sequoia, 미국 캘리포니아산의 거목)의 오랜 수명이 없지만 도움을 주는 이 풀(grasses)들은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에게 매일의 양식을 제공하여 주기에 절대로 필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것들 중에서도 밀가루가 성소 봉사에 드리는 데 가장 좋은 것이었다. 랍비들은 “고운 밀가루는 ∙∙∙ ‘소제’란 용어의 특별한 의미이다” 고 확언하였다(Menahoth 13:1). (372.2)
 떡이 만들어지는 “혹독한” 과정
 밀가루와 떡을 만드는 그 “혹독한 과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이 이야기를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준비시키는 비유로서 읽어보라. 농부는 먼저 땅을 파고, “밀알”의 무덤을 만들고, 그 안에 밀알을 떨어뜨리면, 밀알은 흑암 속에서 홀로 죽어간다(요 12:24). 그러고 나서 하늘의 태양과 비는 배종(歷種)에 생명을 주어 결국에 싹이 터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 되었다(막 4:28). (372.3)
 그러고 나서 “때가 차면” 인간의 낫이 곡식의 머리 부분을 자르고, 도리깨로 그것을 무자비하게 때린다. 그 이유는 “곡식이 부서”졌기 때문이다(사 28:28; 비교 53:5). 강풍이 결국애는 그 겨를 휘몰아 가버린다. (373.1)
 그 다음에는 방앗간에서 돌로 곡식 가루를 빻고, 거친 가루가 고르게 될 때까지 “열 셋 체로” 친다(Menanoth 6: 7). 소제는 그 실체(antitype)와 마찬가지로 모든 준비를 끝마친채 제단에 드려져야만 한다. 이 “고운 밀가루”는 곡식의 생명의 본질로서 인간의 추수, 인간이 힘들여 노력한 산물, 인간의 노동과 가치(부조와 선지자, 72)를 예증하여 주고, 하늘 “곡식”의 추수인 예수에 대한 예언적 모형이다. (373.2)
 만일 경배자들이 밀가루를 떡으로 만들겠다고 한다면 힘센 손으로 반죽하고, 쿡쿡 찌르고, 주먹으로 쳐야만 하였다. 그러고 나서 불로 굽는데, 화덕의 불길이 직접 떡으로 향하여야 하였다. 이 모든 활동들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께서 매맞고, 상처를 입고, 밀림을 당하면서 그릇되게 행하여진 정의와 추한 편견이 그분의 마지막 숨결을 낚아챌 때까지 자신을 인간의 잔학성에 참으시면서 내 맡기면서 받으신 “고난”(막 9:19; 히 5:8)을 묘사하고 있다. (373.3)
 감람나무 열매를 짓이겨 기름을 짜냄
 감람나무 열매를 도리질하거나 돌로 으깰 때에 나오는 감람유(레 2:4; Terumoth 11:3)는 모든 소제의 일부분이었다. 이 방법은 등잔불용 기름을 짜는 방법하고는 다른 방법이다. 왜냐하면 익은 감람나무 열매를 막대기로 치기 때문이다. 랍비들은 “그<민하, mincah> 떡(cake)은 <기름에> 섞어야만 하였고, 그 전병(wafer)에 기름을 부어야만 하였다. 그들이 어떻게 그 떡에 기름을 부었는가? X 모양(희랍어 글자로서 십자가를 긋는 모양)으로 부었다”(Menahoth 6:3). 이 십자형의 성유식(聖油式)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행 10:38)라는 예언적인 노래를 부른다. (373.4)
 기름은 성령의 부드럽게 하고 위로하는 사역의 상징이다(비교 삼상 10:1, 6; 16:3, 13). 성령께서 구세주의 삶을 탄생 전부터(눅 1:35)시작하여, 전 인생의 매 순간 능력으로 입히시고, 죽으실 때와 무덤에서 부활하실 때에 도와주고(히 9:14; 벧전 3:18), 인간의 완전한 소제가 되도록 하여 주시는 과정에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관찰하여 보라(눅 3:22). (373.5)
 본분을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삶의 활동에서 추수한 것, 즉 성령의 기름으로 부드럽게 되고 향기나는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비교 눅 4:18; 엡 5:23; 갈 5:22~26). 성령께서는 거룩하시기에 그분의 임재는 경배자들을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만들며 거룩하게 한다(벧후 1:4). 성령께서는 능력이 있기에 제자들에게 모든 능력을 주시어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토록 도와 주신다(행 1:5~8). (373.6)
 모든 소제에 필요되었던 소금과 유향
 소금은 소제를 준비하는 과정에 그 속에 넣어 섞여졌다(레 2:13; 막 9:49). 소금의 방부제 역할로 인하여 소제는 부패되지 않았다. 이 상징은 은혜의 향기를 내게 하고 보전하여 주는 성령의 영향을 나타낸다. (373.7)
 유향은 모든 소제의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일부분으로서 금 재단에서 태워졌고(레 2:1, 2, 15, 16, 24:7; 민 5:15), 그 향기는 불길 속에서 사그라 들면서 드리는 제사에 향기가 가득 차게 하였다. (373.8)
 이 향기로운 나무의 진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흰 것을 뜻하고, 그 어근에서 흰눈 덮인 레바논 산이란 명칭이 파생되었다. 유향의 연기가 하나님에게로 올라가면서 그 향기로움은 소제의 분위기를 돋구고, 번제단에서 제물의 살이 타는 악취를 중화시켜 주었다. 동시에 유향의 색깔은 경배드리는 이들에게 메시야의 순전성을 상기시켜 주었다. 귀한 향료로 여겨진 유향은 향의 기본적인 한 요소이었고, 제사장으로서의 향기로운 중보가 인간의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도록 하시는 아름다운 분(아 1:3)이신 구세주의 “공로와 중보”(부조와 선지자, 353)를 상징하였다. 하지만 소금은 반죽에 섞여 보이지 않아야 가치가 있다. 유향은 불길 속에서 태워져 올라갈 때까지 운동력이 전혀 없다. 기름과 유향은 인간의 선물을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만드는 예수의 기쁨과 사랑스러움에 관하여 말하고(시 45:7, 8), 소금은 성령의 보존하여 주는 임재가 항구적으로 머물 것을 증거하여 준다. (374.1)
 소제에 금하여진 누룩
 여호와께서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레 2:11)라고 경고하시었고, 그래서 제단에 어떠한 종류의 누룩도 드리지 않았다. 네섹(nesek)혹은 전제에는 누룩도 같이 제단에 드렸지만, 그 누룩은 발효되지 않은 것이어야 하였다. 이스트에는 발효시키는 영향력이 있다. 그 혼합물에 꿀을 넣으면 그 발효 과정이 촉진된다(유월절을 다룬 장에 누룩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꿀은 이 때문에 금하여졌다(레 2:11; 비교 “date honey,” Terumoth 10:2, 3). 성경 학도들은 꿀에 있는 물리게 하고 신물나게 하는 단 맛(잠 24:27)을, 처음에는 즐거우나 결국은 영적인 삶을 해치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육체의 탐욕의 상징으로 여기었다(1BC, 721). 이러한 상징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이기적인 계획과 목적으로 벗어나서 노력한 것의 “수확”을 제단에 바치기를 원한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374.2)
 그러나 만일 감사하는 농부가 하늘에 감사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첫 열매”를 가져온다면 누룩과 꿀을 신선한 열매들과 함께 드릴 수 있었다(레 23:17). 이 점은 여호와께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로 인한 자발적인 행동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시고 계신다는 것을 뜻하였던가? (374.3)
 소제는 세 가지 방법 중의 한 방법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세 방법 모두 다 “미지근한 물을 넣어 반죽하고, 반죽이 발효되지 않도록 주의를 하여야 하였다”(레 2:11; Menahoth 5:2). “산 물”은 구세주의 사랑의 새롭게 하고 온화하게 하는 봉사를 가리킨다(요 4:10). 기름과 소금을 넣은 이 반죽은 인도인들의 샤파티스(chapatis: 후라이 판에 얇게 구운 팬케이크 모양의 무교병)나 멕시코의 톨탈라(totillas: 납작하게 구운 옥수수 빵)와 비슷한 납작한 떡이 되도록 눌렀다. (374.4)
 소제를 준비하는 방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