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재림교회 저자들이 신론에 대한 고전적인 신학적 해석을 배격했다고 그것이 삼위일체에 관한 성경의 계시를 완전히 거부했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런 해석을 거부했지 삼위일체에 관한 사실들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삼위일체”(trinity)라는 단어가 성경적 용어가 아니라거나 삼위일체 교리가 하나님이 주신 인식과 이성에 맞지 않다는 매우 약한 논리에 근거하여 고전적인 교리를 거부했다. 때때로 삼위일체 교리가 성령이 비인격적인 영향력이 아니라 위격이라고 가르친다는 잘못된 논리로 그 교리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위일체에 관한 고전적인 가르침을 거부하기 위해 좀 더 심각한 신학적인 이유를 제시했다. 몇몇 재림교회 선구자들은 내재적 삼위일체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이 성경에 제시된 경륜적 삼위일체와 양립할수 없다고 이해했다(Frisblie, in RH Mar. 12, 1857). 다른 이들은 그런 해석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삼위의 역사적 행동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 더 나아가 십자가에서 이룬 그리스도의 속죄의 신적인 실재에 관한 가르침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임스 화잇은, 고전적인 삼위일체론이 내재적 삼위일체의 단일성에 강조점을 둔 것은 하나님의 위격들 사이에 있는 구별성에 관한 명료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Day—Star, Jan, 24, 1846). 한편 러프버러는 하나님이 삼위가 아니라 한 위격으로 되어 있다고까지 말함으로(RH Nov. 5, 1861)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한 위격임을 내비쳤다(Canright, in RH June 18 1876; Bates 204, 205). 그리스도와 영원하신 하나님을 동일한 분으로 여김으로써(J. White, in RH June 6,1871) 역사적 예수의 신적인 위치(J. White, in RH Nov. 29,1877)와 속죄의 위상(Stephenson 151; Hull, in RH Nov. 10 and Nov. 17,1859; J. H. Waggoner 174)을 격하시킨 것으로 본 것은 위격들에 대한 이런 혼동을 올바로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초기 재림교인들은 성경적 사실들과 헬라의 철학적 개념들에 영향을 받은 고전적인 해석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재림교회 역사의 초기 수십 년 동안 반(反)삼위일체적인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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