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한 신약의 계시는 광범위한 신학적 사상에 영감을 불어 넣어 주었고, 그 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금부터 이런 풍부한 자료 가운데서 하나님의 본질과 활동에 관한 이해를 다루는 두드러진 점들에 관한 매우 간략한 개요만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어지는 간명한 개관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주요 역사적 시기들(교부 시대, 중세, 종교개혁 시대, 현대)을 따라 제시된다. (173.1)
 애초부터 하나님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해석은 성경 밖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하나님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가 철학적 개념과 성경적 개념을 융합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의 형성에 영향을 준 주요 철학적 사조들을 간략하게 기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173.2)
 A. 그리스도교 시대 이전의 철학적 개념들
 헬라 철학 및 스토아 철학의 영향과 더불어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하나님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에 지적인 배경을 제공했다. 플라톤은 그의 사상에 대한 신플라톤적인 재해석을 거치면서 교부들의 사상에 주된 영향을 끼쳤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중세 신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실 20세기 말까지 그리스도교 신학을 이해하려면 성경 밖의 철학들의 기초가 필요하다는 방법론적인 신념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173.3)
 1. 신플라톤주의
 철학적 사조로서의 신플라톤주의는 짙은 종교적 경향을 띤 혼합주의적 운동을 일컫는다. 늘 그렇게 되진 않았지만 이런 혼합주의는 플라톤주의와 피타고라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및 스토아 주의의 요소들을 통합한다. 교부들의 사상에 영향을 끼친 자는 알렉산드리아의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 필론(BC 20년경—AD 50년경)과 중기 플라톤주의의 대표자 플루타르코스(AD 46년경—120년경)였다. 이들은 플로티노스(AD 205년경—270년)가 체계적으로 형성한 신 플라톤주의의 선구자들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런 저자들은 플라톤의 두 세계 이론을 수용했으나 그것의 상당한 부분에 수정을 가했다. 이들에게 하늘 영역은 무시간적 실재들의 세계였을 뿐 아니라 무시간적인 존재의 초월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다. 필론은 무시간적인, 초월적인,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무공간적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존재의 모든 완전을 지닌 한 분으로 하나님을 묘사했다. (173.4)
 그는 하나님이 세상과 너무나 판이하여 인식할 수 있는 세계에 속한 일련의 중간 매개적 실재들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하나님은 인식할수 있는 세계 뿐 아니라, 신적인 예지를 통해 그가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섭리적으로 움직이는 우리의 시간적 세계를 창조했다. 플루타르코스에 의해 표현된대로, 중기 플라톤주의는 필론에게서 벗어났는데, 그가 하늘의 이데아를 따라서만 세상에 질서를 부여한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에 비추어 하나님을 생각했다는 점에서 볼 때 그렇다. 플로티노스는 이와 동일한 기본구조를 가지고 일자(一者)와 중간 매개적 존재들과 우리의 세계의 관계를, 모든 것을 포괄하는 발출적인 범신론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174.1)
 2.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플라톤의 체계 위에 세워진 동시에 그것을 비평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는 플라톤주의나 신플라톤주의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플라톤주의에 대한 비판적 산물이었다. 이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유사성도 존재한다. 이런 이유에서 언제나 플라톤주의는 위에서 언급한 신플라톤주의 사조에서도 헬라 철학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한 요인이 되어 왔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체계적인 접근방식으로서 신플라톤주의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교부 시대와 중세초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쳤다. 좀 더 구체적인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은 12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의 발견 및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여러 아랍인 학자와 유대인 학자가 내놓은 번역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옥스퍼드와 파리에서 논의되고 설명되면서 발전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들의 재발견은 중세기의 그리스도교 신학의 학문적인 통합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174.2)
 신플라톤주의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활동에 관해서는 차이점이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외부로 향하는 신의 활동에 여지를 두지 않았다. 하나님은 세계를 모른다. 그는 무로부터 창조하지도, 시공간적 영역에서 영원한 세계를 조성하지도 않았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 역사에 관여하지도, 기적을 일으킬 수도 없다. 하나님의 완전, 자기 충족성, 불변성 및 무시간성에 어울리는 활동은 철학자의 이론적인 명상 생활에 유비되는 것밖에 없다. 하나님께 적합한 행위란 하나님 자신을 아는 것이다. 자기 자신 외에 다른 대상을 요구하지 않는 점에서 하나님의 활동은 자기 충족적이다. 그것이 무시간성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불변적이다. 행위의 “목표”가 하나님 됨 곧 그의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의 행위도 절대적으로 완전하다. (174.3)
 B. 교부시대
 교부 시대에 하나님에 관한 그리스도교 교리는 하나님에 관한 신플라톤적인 개념이 전반적으로 성경적 계시와 양립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발전되었다. 늘 한결같진 않았지만 헬라 철학과 성경적 개념의 점진적인 통합이 이뤄졌다. 신학적 구조들 안에서 내적인 모순들이 나타났고, 그 결과 성경적 사상보다는 헬라 철학을 기초로 한 하나님에 관한 이해가 나왔다. (174.4)
 1. 유스티노스 마르튀로스(100년경—165년경)
 유스티노스와 변중가들은 영원하고 불변하고 무감정하고 무형의 하나님에 관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채용함으로써(First Apology 13, 61;Second Apology 6 [ANF 1:166, 183, 190]) 고전적인 신학을 위한 청사진을 그려놓았다. 그러나 유스티노스는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인격적인 하나님, 곧 그가 암묵적으로 채택한 영원하고 불변하고 무감정한 하나님이라는 철학적 개념과 양립할 수 없는 하나님에 관해서도 말한다. 이런 하나님에 관한 묘사는 그리스도가 말한 아버지에 해당한다. 그에 따르면, 그런 존재는 역사 속에서 활동할 수 없으므로 중재자가 필요하다 유스티노스는 후기 유대교와 스토아주의와 필론의 개념을 끌어들여 신적인 로고스에 대해 말한다. 이 로고스는 하나님의 이성으로 하나님안에 선재하고 있었고, 그분의 본질 속에 들어 있다(Dialogue With Trypho 128, 129 [ANF 1:264]). 로고스는 발출을 통해 아버지의 뜻으로부터 태어나 창조 직전에 위격이 되었다(Dialogue With Trypho 61, 62 [ANF 1:227, 228). 로고스는 말씀이자 하나님의 독생자이기 때문에 그 역시 신적이다(First Apology 63[ANF 1:184]). 아버지가 아니라 로고스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육해다(First Apology 5; Second Apology 10 [ANF 1:164, 191]). 로고스 교리에 명백하게 들어 있는 모종의 종속론과 더불어 내재적인 삼위일체 교리를 위한 무대가 놓였다. (175.1)
 2. 이레나이우스(115년경—202년경)
 이레나이우스는 영지주의 이단에 대한 자신의 변중적 관심에서 하나님에 관한 교리에 접근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성경에 호소하지만 신플라톤주의의 철학적 범주가 그의 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띠진 않는다. 따라서 이레나이우스는 하나님에 관한 교리를 그분의 본질보다는 그분의 역사(役事)의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두 개의 주요 개념 곧 창조와 삼위일체가 하나님에 관한 이레나이우스의 견해의 중심을 이룬다. 이레나이우스에 따르면,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다(Against Heresies 2. 1. 1; 2. 10.4 [ANF1:359, 370]). 삼위는 역사적 영역에서 활동하며, 성경은 하나님을 거기서 구원을 이루고 있는 분으로 제시한다. 이렇게 삼위일체에 관한 이레나이우스의 개념은, 예컨대 하나님의 내적인 실재를 그분 자신 속에 그리고 그분의 구원 행위를 인간의 역사 속에 몰입시켰다는 점에서 경륜적이다. 이 견해는 철학적 사변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얄팍한 사상으로 여겨져 후대의 신학적 사상에 의해 무너졌다. (175.2)
 3. 오리게네스(185년경-254년경)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절정기에 오리게네스의 사상은 신학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이단을 극복하려는 최초의 노력을 대표했다. 안타깝게도 오리게네스는 신학에 대한 그의 접근방식을 이레나이우스처럼 성경만이 아니라 신플라톤주의의 철학적 개념을 토대로 발전시켰다. 이런 개념들이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오리게네스의 개념을 전반적으로 지배했다. 하나님은 단일적이고 무시간적이고 무공간적이고 변하고 무감정하고 비가시적이고 지성적이며 인격적인 실재이다(On First Principle 1.1.6; 1. 2.4, 6; 1.3.4 [ANF 4:245, 247, 252, 253]). (175.3)
 오리게네스는 동일한 신플라톤주의의 철학적 범주들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성경적 계시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성경이 하나님을 계시하는 방식인 경륜적/역사적 차원에서부터 하나님의 본질에 해당하는 내재적이고 무시간적이 고무공간적인 차원으로 옮겨갔다. 따라서 아버지만이 홀로 만물의 기원됨이 없는 원인(原因)이다(위의 책, 1.3.5 [ANF 4:253]). 오리게네스는 실재들의 신적 “복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영원한 발생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는데, 그것에 따르면 아들은 무시간성 속에서 아버지에 의해 발생되었다(위의 책, 1. 2. 4, 6 [ANF 4:253]). 성령도 삼위의 통일성에 속하지만 아들보다는 더 낮은 존재론적 지위에 속한다 아버지는 만물의 근원으로 가장 높은 존재론적 지위에 있으며, 따라서 아들보다도 위에 있다(위의 책, 1. 3. 4, 5[ANF 4:252, 253]). 명백한 이중 종속론이 내재적 삼위일체에 관한 오리게네스의 이런 해석에 내포되어 있다. 오리게네스는 삼위가 창조자, 은혜를 베푸는 자, 섭리자로 영원히 활동한다고 본다(위의 책, 1. 4. 3; Butterworth edition 1973). 삼위의 복된 통치력이 “만물을 통제한다.”(위의책).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시간 안의 창조물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엔 관여하지 않는다고 본다. 오리게네스는 기본적으로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존재론을 따라 만물이 “선재된 형태와 형상으로 지혜 속에 늘 존재하고 있었다.”라고 가르쳤다(위의 책, 1. 4. 3, 5). 이것은 예정론을 위한 토대를 구성했다 창조 시에 하나님이 창조한 것은 이미 만들어진 것이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영원한 활동 안에서 예정된 것이었다. (175.4)
 4. 삼위일체에 관한 이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