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6 부 예수님과 함께 같바리에서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28. 온전한 번제 (나의 모든 존재는 그리스도의 것임)
 용서함을 받은 이 기쁨을 말로 충분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것 같고, 삶을 개선하려는 결심을 다지기에 참회자는 감사로써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기를 원한다. 여호와께서는 이 참회자의 간절한 바램을 만족시켜 주고자, 또 선물을 드리고자 하는 이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경배자는 대속물을 고르면서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지니라”(레 1:3, 4)는 약속에 온전히 매달렸다. (362.1)
 번제는 첫째로 구속자, 둘째로 죄인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실재하는 동물 중에서 “흠없는”(레 1:3, 22:19, 21~25), 가장 “정결한”(레 11:1~8) 동물이나 새를 드려야 하였다. 상처나 결점, 몸이 기형이거나 흉터가 있으면 부적격이었다. 이 표준은 번제를 드리는 모든 자에게 파괴적인 죄에 의하여 상처를 입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은 하나님의 크신 희생 예수의 온전하심을 상기시켜 주었다. 마귀조차도 예수를 정죄할 만한 것이 있나 찾아 보았지만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요 14:30). 제물을 죽이기 전에 검사하는 제사장은 하늘이 정하여준 기준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려야 하였다. “고대 이스라엘 당시에 대제사장 앞에 끌려온 제물은 등뼈를 갈라 열어 제물의 속이 병들지 않았는지 확인받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희생은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의 혜안 앞에 열리어져 놓여진다. 그분은 인류가 바치는 모든 희생 제사가 아버지께 바칠만한지를 보시려고, 열어서 검사하신다”(Ms 42, 1901). (362.2)
 비록, 번제가 모두 다 자유로운 의지에서 드리는 희생이 아니지만 그것은 강요되거나 마지못해서 드려서는 안 되었다. 참회자는 사랑과 감사로 가득 찬 마음으로 그가 고른 최상의 선물을 주님께 드려야 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자신의 몸을 아버지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사용되게 하나님의 번제물로서 기꺼이 드리시고, 자신의 생명을 죄인의 속량으로 내어 놓으시는 구세주의 모습을 보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경배드리는 이들이 이러한 태도를 닮기를 원하시었다. 기쁘게 복종하는 것만이 자신을 제단 불에서 “산 제사”(롬 12:1)로 드리게 하였다. 이렇게 될 때에만 경배자는 하나님의 이상에 다다를 수 있고, 하나님께 “열납될” 것이다(레 22:21). (362.3)
 번제를 드린 이유
 번제를 성소에서 드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이 한 나라로서 하나님께 매일 성별하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레 6:9)

 (2) 언약 안에서 문둥병자들이 정결하여지고 다시 복권된다는 것을 표명하기 위하여(레 14:19, 20)

 (3) 어머니가 아이의 출생을 등록하기 위하여(레 12:6~8; 비교 눅 2:22~24)

 (4) 제사장들과 사람들, 그리고 문둥병자들이 예식적인 부정으로 부터 정결하여졌다는 것을 표하기 위하여(레 14:1이하; 15:15, 30)

 (5) 제사장 직분에로의 성별을 알리기 위하여(레 8:18; 출 29:15~25)

 (6) 나실인 서약을 마쳤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민 6:14)

 (7) 개인적으로 성별되기 원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레 1:2~4).

 (362.4)
 경배자들은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한다는 의미를 깨닫는다. 정결하고 흠없고, 저항지 않고 복종하는 온전한 희생 제물이 나타내는 경배자는 자기 삶에 더러움이 없다고 선언된 후에만, 자신의 동기에서 모든 이기심이 깨끗게 된 후에만 제단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비교 고후 7:1).

 (362.5)
 번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363.1)
 경배자는 제사장과 동행하여 자신의 대속물을 “성막 문”이나 성소의 입구 휘장에 데리고 간다. 거기서 “제단 북쪽”(레 1:3, 11), 즉 뜰과 성막을 동서로 갈라 놓는 상상의 선(線)북쪽의 한 지점을 본다. 그 곳에는 막대기들 혹은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24개의 청동 고리가 고정되어 있었다(Midoth 3:5). 여기에 경배자는 동물을 “줄로” 잡아 매었고, 그동안 제사장은 재차 그 동물을 검사하였다. 만일 뜰이 복잡하였으면 잠시 “제단 뿔”(시 118:27)에 제물을 메어 놓기도 하였다. 동물을 잡아 매는 행위는 경배자에게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인”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자신을 대리하는 동물이 죽지 않으면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될” 것이었다(잠 5:22, 23). (363.2)
 제사에서 죄인이 담당하는 부분
 그런 다음에 죄인은 동물의 앞다리를 묶고, 뒷다리는 풀매듭으로 묶어, 네 다리를 함께 쥔다. 그렇게 하면 그 동물은 옆으로 땅바닥에 눕게 되고, 얼굴은 지성소쪽을 향하게 된다. (363.3)
 경배자는 그 다음에 자신의 “양”손을 동물의 머리에 “얹어 놓아”(레 1:4; Menahoth 9:8) 자신의 죄가 자신을 대표하는 동물로 전가되었음을 알린다. “얹어 놓다”는 동사는 몸 전체가 그 동물에 기대는 것을 뜻한다. 성인의 몸무게에 의하여 깔려 버린 한 어린양을 상상해 보고, 그 다음에 겟세마네에서, 또 돌로로사 대로(Via Dolorosa)에 세워 십자가 아래서 안간의 죄 아래 “엎드리 신”하나님의 어린양을 마음속에 그려보라(시대의 소망, 742). 회개한 죄인들은 이런 방법을 통하여 성령께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고 하시는 초청에 순종하고자 하는 소원을 표현한다. 시편 기자는 “내 죄악이 무거운 짐 같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희생 제도의 의미를 이해하였기 때문에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시 38:4, 18, 22)라고 탄원하였다(시 38:4, 18, 22). (363.4)
 참회자는 손으로 제물의 머리를 누르고 있으면서, 동물의 머리를 지성소로 향하게 한채 조용히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고, “내가 회개하면서 되돌아오겠나니, 이것이 내 속죄[문자적인 의미는 ‘덮음’ 임]가 되게 하소서”로 끝나는 고대 히브리 기도를 드리면서 개심을 서약하였다(A. Edersheim, The Temple, 114쪽에 인용됨). 경배자들은 자신의 희생 제물이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모두 다 책임지고(롬 3:25), 자기 대신 죄를 짊어진다는 것을 믿었다. 이 믿음의 길을 한 발씩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번제단인 십자가에 달려 있는 당신의 희생에 당신의 죄짐을 “굴리”어라(수 5:9). (363.5)
 그러고 나서 죄인은 칼을 들어 희생 제물의 목을 신중하게 자른다(레 1:5, 11). 죄인은 이런 직접적인 행위를 통하여 자기 죄가 자신의 대속물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고통 가운데서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몸서리친다. (363.6)
 죄인이 희생 제사의 모든 규정에 따르는 행위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율법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여 주고, 사망이 자신의 범죄의 결과인 것에 동의하고, 자신이 유일하게 피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의 자리에 대신 서 주실 그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서만 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행위이다. 희생 제물의 목에 꽂혀 있는 죄인의 피묻은 칼을 보고,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다는 것과(히 6:6),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는 그 추한 함성을 우 리도 질렀다는 것을 시인하자. (364.1)
 번제로 드린 제사장의 것과 새들
 만일 새를 번제로 드릴 경우 죄인의 서투른 손가락에는 살생용 칼이 없었다. 대신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었다(레 1:15). 내 영혼아, 이 머리를 비틀어 죽이는 행위에 몸서리쳐라! 제사장은 그리고 나서 그 새의 멀떠구니(crop)와 깃털을 손가락으로 떼어 내어 제단 동쪽 잿더미에 버리고, 후에 없애 버렸다. 제사장은 그 조그만 몸에서 피를 짜내어 제단 곁에 발랐다. 그러고 나서는 칼을 가지고 몸통을 심장이 보이도록 잘라 내어, 소금에 절인 다음, 제단 위에 던져 올려 놓는다. 이 모든 일을 소리하나 내지 않고 해야 하였다(Zebahim 4, 5, 7). (364.2)
 이 잔인한 제사는 제사장 희생 제물이신 예수께서 너희를 위하여 “내가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 17)고 서약하시면서 스스로 갈바리에서 죽으실 것을 보장하여 주었다. 이 잔인한 제사는 15세기 동안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시는 전율케 하는 제사장적인 의무를 예견하였다. 하나님이나 마귀 누구도 그리스도께서 보좌에서 내려와 해골이라고 하는 곳까지 걸어가, 그 곳에서 스스로 자초한 죽음의 고통을 견디도록 강요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보도록 잘려 열려진 새의 가슴은 전 우주에 노출된 하나님의 생명의 가장 깊은 비밀인 구세주의 죽음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비틀어진 호도애의 운명은 우리의 구원의 대가의 고뇌를 느끼도록 우리를 감동시켜야만 한다. 희생 제물—제사장이신 예수께서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생명의 피를 부어 우리가 자신의 깊은 사랑을 깨닫도록 하시었다. 이만 중단하고 다시 성소와 경배자, 그리고 피를 흘리는 희생 제물로 돌아가 계속 연구하여 보자. (364.3)
 제물의 가죽
 죽은 동물은 뜰에 있는 틀에 고정된 걸쇠에 걸어 놓고(Middoth 3:5), 제물을 드리는 자가 그 껍질을 벗기고, 가죽은 제사장에게 주었다(레 7:8). 이런 행위들은 원복음의 옛 노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를 상기시켜 준다. 죽인 양의 “가죽”은 인간의 죄를 벌거벗음을 감출 옷을 제공하여 주고, 그리스도의 “세마포” “혼인 예복”을 예견한다. 이 혼인 예복은 그리스도의 의(義)로 빛나고 있고,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한 신부들의 세마포를 이 의(義)로 만들어 주신다(계 19:7, 8). 신부가 과거 인생이라는 더러운 누더기를 “벗으”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순종의 생애를 신부에게 신부의 하늘 옷으로 입혀 주신다. 그리고 매일매일 그분께서는 신부가 주님을 닮아 자라갈 수 있도록 은혜를 “입혀 주”시거나 나눠 주신다(골 3:8~10). (364.4)
 날카로운 칼에는 또 다른 의무가 있다. 제사장은 “그것의 <희생 제물의>각을 뜨”어야 하였다(레 1:12).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희생을 절개(開)하는 정확한 기술까지 “명령하시었다”는 것을 기억하였다(신 12:21; Hullin:1, n.7). 그러므로 율법에 규정된 바에 따라 칼로 사지를 하나씩 잘라내고, 몸통을 잘라 내었다. 이 때 제사장은 그 희생의 심장을 열어 피가 막히지 않고 잘 통하는 지를 살펴보았다. 로마인의 창에 찔러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슥 13:1)이 터져나왔다. 아름다움, 장엄함, 귀중함을 뜻하는 지방 혹은 기름을 그 “내장”에서 제거하였고(레 1:8, 9), 아마 이 제사에서 빌려왔을, 바울의 표현대로 희생 제물 전체를 “옳게 분변”하였다(비교 딤후 2:15). (3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