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6 부 예수님과 함께 같바리에서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28. 온전한 번제 (나의 모든 존재는 그리스도의 것임)
 “번제드리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 ”(대하 29:27; 타미드<Tamid> 7:3). 이 말씀은 참으로 많은 점을 드러내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희생을 제공하였고, 이스라엘은 찬양하였다. 이스라엘의 마음은 번제단에 놓인 그 유일한 선물로 인하여 기뻐하며 노래하도록 감동되었다. 갈바리는 인간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았고, 광대한 우주에 노랫가락이 은은히 흐르게 하였다. 인간 창조시에 샛별이 환희의 절정 가운데서 노래할 때에 아버지 하나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천사들이 아들의 영광스러운 탄생을 노래로 찬양할 때에 아버지 하나님은 침묵하시었다. 그러나 사단의 혹독한 시련이 골고다에서 포효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가납하는 불이 십자가의 희생을 소멸할 때에 아버지의 환희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의 나라는 영원히 안전하다! (359.1)
 각종 희생과 그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이 정확하게 규정되었지만 번제는 항상 여호와께 드리는 “선물”(고르반<korban>), 즉 각 사람이나 전 민족이 자진해서 드리는 헌신의 서약이었다. 히브리어로 번제는 “올리워지게 하다”를 뜻하는 동사에서 파생된 올라(olah)로서(신 33:10; 시 50:9) “하나님에게까지 다다르는 제물”이란 개념을 강조한다. “불티가 위로 날”으기에(욥 5:7) 히브리어 단어 올라는 공중으로 올라가는 연무 구름으로 태워 버리는 것을 뜻한다. (359.2)
 희랍어 번역자들과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가 사용한 명칭(홀로카우토마<hoe Hokautoma>또는 홀로카우스타<holocausta>, 막 12:33; 히 10:6)에는 제물을 완전히 태워버렸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단어는 영어화 되어 전번제(全潘祭)를 뜻하는 holocaust 단어로 변천되었다. 또 다른 용어(칼릴<kalil>은 신 33:10; 시 51:19에서만 사용됨)는 완전함을 뜻하고, 전체가 다 살라졌다는 뜻을 덧붙이고자 “온전한(whole)번제”에도 사용되었다(레 6:22, 23; 삼상 7:9). 타오르는 향기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어근(과테르<quater>), 창 8:21; 레 1:9, 17)은 향기롭게 연기나는 것을 뜻하는데, 번제 묘사에 사용되었을 때에는 번제가 “단 향기”“만족스럽게 하는 향기”로서 하늘에 다다르는 것을 묘사한다. (359.3)
 우리는 이미 사법적인 분노로 멸망시킨다는 것을 뜻하는 다른 용어(사랖)가 이스라엘 진영 바깥에서 바쳐진 속죄제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았다(레 4:12). (359.4)
 이 동사는 경솔한 나답과 아비후가 취중에 행한 신성 모독의 결과로 불로 사형당한 사건에 깊은 의미를 더하여 주었다(레 10:1, 2). 성경은 이 다섯 단어를 사용하여 마치 마리아가 깨뜨린 순전한 나드 향유와 같이(비교 요 12:3), 제단에서 온전하게 불살라지지만 향기로운 선물로서 혹은 향기를 풍기는 사랑의 희생 제사의 날개로서 하늘로 올라가는 번제의 여러 모습을 경배자들에게 일깨워 준다. (360.1)
 여섯 종류의 제물
 여호와께서는 여섯 가지 종류의 제물을 허용하시었다. 세 가지 동물들과 세 가지 새들이 바로 그것이다. 길들여진 유순한 수소, 떼와 무리의 양과 염소, 산 비둘기와 집 비둘기, 그리고 때때로 산 참새(레 1:2, 4, 10, 14; 14:4, 난외주). 사려 깊은 경배자는 드릴 제물을 선택할 때에 자신을 대신하여 죽을 피조물의 타고난 특질을 잘 고려하였을 것이다. (360.2)
 때때로 “힘센 소”(시 22:12; 사 34:7)라고 칭하여진 황소는 가장 존중되고 값비싼 제물이었다. 이 동물은 종종 수소라고 칭하여졌는데, 오늘날 이 수소(bullock)라는 단어는 거세된 동물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거세되었기에 흠없는 희생으로 드려질 수 없는 것이었다. 뿔과 굽으로 상징된(시 69:31) 이 동물의 힘은 “황소가 힘”을 발휘하여 멍에를 씌워(민 7:3; 삼상 6:10), 밭을 갈거나(신 22:10; 왕상 19:19), 곡식을 추수할 때(신 25:4; 호 10:11) 많은 것을 얻어 내도록 한다(잠 14:4). 항상 짐을 걸머질 준비를 하고 있고(시 144:14, 난외주), 기뻐 뛰며 희생적 봉사를 참을성 있게 하는(시 29:6) 황소는 “첫 송아지”로서(시 33:17) 하루의 노동이 마칠 때에 항상 자기 목표점인 주인의 구유만을 바라본(사 1:3) 그분을 예표한다. (360.3)
 온순하고 온유한 어린양은 벌거벗은 죄인들을 덮도록 자신의 가죽을 주시고(비교 창 3:20), 양털을 의복으로(레 13:47), 육신을 음식으로 주신(삼상 25:18), 불평하지 않고 복종하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과같이 저항하지 않는 예수님에 관하여 속삭여 준다(사 53:7, 8). 양과 어린양들은 공물로서도 드려졌고(왕하 3:4),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영혼을 위한 속전으로서 드린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양들은 목자에게 순종하고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요 10:3), 목자의 명령을 실행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360.4)
 강건한 염소나 새끼 염소는 비록 양떼와 종종 연관되었다 할지라도 그렇게 가치있게 여겨지지 않았고(눅 15:29), 이 염소를 예수께서는 악한 자들을 나타내는 데에 사용하시었다(마 25:32, 33). 이 동물은 성소 예식에서 인류의 죄책을 짊어지는 속죄제로서 “위풍 있게”(잠 30:29, 31)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번제단에로의 길로 오시는 그 분을 상기시켜 주었다. (360.5)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는 비둘기들은 유순한 자를(아 1:15; 4:1), 순전한 자(미 10:16), 혹은 저항하지 않는 자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 새는 하도 슬프게 울기 때문에 의성어적으로 호도애(turtle-dove, taurtur auriius)라고 칭하여지기도 한다. 비둘기는 원래 하나님과의 화평과 화목의 전주자로서 사용되었고(창 8:8~12), 인간의 무관심에 “슬피 울”지만(사 59:11; 38:14; 시 74:19) 결국에는 잔인한 손톱에 움켜 잡히어 죽임을 당한(레 1:15, 난외주) 그 분을 상징하였다. (360.6)
 비둘기는 이주시에(렘 8:7; 아 2:11, 12) 멀리 날아가고(시 55:6~9), 먼 곳에서 자신의 보금 자리에로 찾아 올수 있다(사 60:8). 비둘기는 평생동안 같은 짝하고 살기 때문에 다정다감하고 헌신적인 사랑과 영원한 정절의 상징이다(아 1:15; 2:14; 등등). 이 새들은 가난한 자들의 제물이었고(눅 2:24), 예수님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예수를 도와준(히 9:14) 성령님을 명료하게 가리킨다(마 3:16; 막 1:10; 눅 3:22; 요 1:31). (361.1)
 참새는 문둥병자들의 정결 예식에 사용되었다(레 14:4, 난외주). 인간에 의하여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고, 버려지는 참새는, 매일 아버지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한다(마 10:29, 31; 눅 12:6, 7). 빠르고, 주위를 경계하는 참새는 인간의 집 처마에 거하기를, 때때로는 지붕 위에 홀로 앉아 있기를(시 102:7), 또 하나님의 제단에 쉴만한 곳을 찾아 보기를 기뻐하며 오신 그분이 어느 분이신지를 가르켜 준다(시 84:3). 하지만 이 분은 너무나 “멸시를 받아서 ∙∙∙ 싫어 버린 바” 되어(사 53:3), 무관심하게 땅바닥에 던져 버림을 당한 분이시다. (361.2)
 제물의 특성은 예수의 특성들임
 이 피조물들 각각의 독특한 특색은 경배자들이 스스로 희생이고 희생 제사를 드리는 자이었던 예수의 본성에 내포된 여러 면들에 초점을 맞추는 렌즈들이다. 참회자들은 언젠가 자신을 위하여 죽으실 하늘의 번제에 대하여 참회자 자신이 이해하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하는 희생 제물을 택하였을 것이다. 희생 제물을 택할 때에는 물론 경제적인 요소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각 경배자들의 상황을 아시었기에, 경배드리는 이들의 상황에 맞는 여러 대치물들을 허용하시었다. (361.3)
 번제에 사용될 희생 제물의 선택은 하나님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천 마리의 황소든지(비교 왕상 3:4), 한 마리의 비둘기이든지 혹은 한 마리 참새 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드리는 이 선물—제물을 받으시고, 그 선물 제물을 통하여 번제드리는 이를 받아 주신다. (361.4)
 본래드렸던 희생이었던 번제
 번제는 타락한 인간이 드린 최초의 제사였고, 성경에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제사이다. 율법은 어느 제사도 이 제사를 대치할 수 없고, 다른 모든 제사는 이 “상번제(常燔祭)”에 부가되어 드려야만 한다고 적어도 16번 이상 강조하였다(민 28:10, 15, 24, 31). 조석으로 수세기 동안 죽임을 당한 이 번제는 이스라엘 성소의 매일 드리는 핵심 제사로서 개인과 회중의 성별(聖別)을 나타내었다(출 29:38~46). 또 계속 반복하여 드린다는 것은 각 개인이 일어날 때와 누울 때에 여호와께 헌신하여야 할 필요를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제도와 질서의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셨다(레 1:7, 8, 12; 고전 14:33, 40). (361.5)
 성령께서 제사에서 행하는 역할
 성령께서는 먼저 죄인들을 감동시켜 회개케 하고, 경배하라고 권면하신다(요 6:44, 12:32). 죄인의 마음이 구원에 대한 감사로 타오르면서 구세주에 대한 사랑도 타올라 표현하고자 한다. (3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