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 주어진 위대한 사명을 위대한 제안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찰스 R. 쉰돌 (91.1)
 프랑스의 유명한 저자이며, 철학자인 볼테르는 그의 시대에서는 정치인들을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명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큰 권력을 가지면 큰 책임이 따른다!” 후일에 헐리우드 인기있는 영화 스파이드맨에서 스파이드맨의 삼촌이 이 구절을 인용하게 됨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91.2)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정확하게 같은 원칙을 말씀하셨을 때는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을 받게 되면 우리에게 유용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큰 권력에는 반드시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91.3)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의셨습니다.(눅 4:1). 그러나 군중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나 기적을 행하실 때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사명이 있었었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사 61:1). (91.4)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역 회당에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참석치 않으시고 아무 이적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류에게 소망을 전해주셨습니다. (91.5)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기꺼이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증인이 되기 원치 않으면 우리 삶에 성령으로부터 어떤 능력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91.6)
 아무도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고 그 선물을 줌으로 그 사람이 그 선물을 사용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선물은 우리가 그것을 강력하게 사용하시기를 바라시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인이 되시기를 바라십니다. (91.7)
 우리가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은 우리가 일하기에 필요하고 또 잘 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어떤 팀을 훈련시키도록 임명된 코치는 그 팀이 훌륭하게 만들 수 있도록 모든 권한을 그에게 줍니다. 어떤 사업가가 회사를 확장시키도록 권한을 받게 된다는 것은, 그분 또는 그 여자 분이 회사를 성장시키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팀의 코치나 사업가가 그들에게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면 그 권한을 빼앗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주게 될 것입니다. 그 권한이 주어진 사람에게는 사업을 완성시킬 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그 직책을 안전하게 지키도록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91.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성장시킬 수 있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 성령의 능력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능력을 주시는 이면의 목적은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기별을 전달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91.9)
 오직 한 집사님
 스데반은 단지 한 집사님에 불과 했습니다. 내가 단지 한 집사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교회의 대부분의 교인들이 집사직을 대수롭게 않게 보고, 심지어 나쁘게 보고 있으며 집사님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91.10)
 그러나 스데반 집사님은 달랐습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 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행 6:8-10). (91.11)
 거기서 열렬한 토론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여러 다른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이 스데반과 토론하기 위해 교회로 모여 들었습니다. 표면적으로 스데반이 상당히 불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성경은 스데반에게 있는 자질 즉, 지식, 직위, 지도능력 등을 언급하지 않고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행 6:1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지 집사의 직분으로 성령이 충만하여 성경을 잘 안다고 하는 스데반을 고발하는 유대인들을 침묵시킬 수 있었습니다. (91.12)
 스데반은 복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설교해 나갔습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그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91.13)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5-60). (91.14)
 스데반 집사님은 성령이 충만하였고, 하늘로부터 이상을 받은 분이었습니다. 그의 이상에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기별은 예수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도 예수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군중들은 충분히 알았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에 관한 어떤 것도 듣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우리도 스데반과 같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면,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우리도 예수님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죽음에 직면한다 해도 성령님께서 이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멈출 수 없게 됩니다. (91.15)
 그들은 스데반을 도성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를 때리고 저주했습니다. 죽음이 임박해 왔을 때,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충만한 사람만이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방법 외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91.16)
 평범한 집사님도 놀라운 능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주님을 위해 순교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는 그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의 생명을 바침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평범한 사람인 우리도 주님을 위한 강력한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91.17)
 생각해 볼 문제
 1.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즐겨한다면 우리에게도 성령의 능력이 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드는 일을 즐겨하시겠습니까? (9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