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성령의 작용과 영향을 바람, 공기, 호흡에 비유한다. 성령을 가리커는 히브리어 루아흐와 헬라어 프뉴마는 그 어원이 바람에서 유래하였다. (117.1)
 이 용어들은 “영”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바람, 공기, 호흡”으로 번역된다. 바람 혹은 호흡은 성령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성경에서 바람 혹은 호흡의 상징은 성령의 오심과 가심을 의미하는데 사용되었다. 창세기 2:7에는 첫 사람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 가운데 이 말이 사용되었다. 또한 에스겔 37:1~10에서는 아골 골짜기의 이상 중에 생명을 주는 바람으로 성령의 작용이 예시되었다. 그리고 요한복음 3:3~8에서는 거듭남을 설명하면서 바람이 예증으로 사용되었다. (118.1)
 1. 생명의 능력
 바람과 호흡은 생명력을 상징한다. 바람은 움직이는 공기요, 호흡은 생명을 불어 넣는 공기이다. 공기는 생명에 필수적이다. 공기가 없다면 모든 생물체는 죽고 말 것이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자연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의 하나이다. 우리는 음식 없이 몇 주일을 살수 있고, 물 없이 며칠을 살 수 있다. 그러나 공기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다.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제일 먼저 공급하는 것이 호흡이다. 그리고 사람이 숨쉬기를 그칠 때, 우리는 죽음을 확인하게 된다. (118.2)
 성경은 성령을 호흡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이 오히려 내 코에 있느니라”(욥 27:3). “사람의 속에는 심령이 있고 전능자의 기운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시나니” (욥 32:8).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욥 33:4).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 104:30). (118.3)
 이 말씀들은 창조에 있어서 생명을 주는 거룩한 대리자가 성령이심을 말해준다. 성령은 언제나 창조의 도구로 나온다. 창세기 1:2은 성령께서 창조에 갚이 관여하심을 나타낸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갚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119.1)
 아담에게 생명이 주어진 것은 “전능자의 기운[호흡]” (욥 33:4)을 받음으로 가능하였다. 성경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아골 골짜기에 있던 마른 뼈들도 생기가 들어가자 큰 군대가 되었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 때에도 바람처럼 성령이 임함으로써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행 2:2-4). (119.2)
 이와 같이 성령은 인간의 모든 생명의 근원적 원천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성령을 거두시면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바람과 호흡으로 상징된 성령은 생명의 수여자인 동시에 주관자요 창조주이다. (119.3)
 2. 중생의 능력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인류는 범죄로 인해 잃어버리게 되었다. 죄는 우리에게 타락, 분리, 죽음을 가져왔다. 따라서 생명의 성령의 사역이 인류가 본래의 생명을 회복하는 일에 다시 필요하게 되었다. (119.4)
 중생은 재창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120.1)
 성경에서 중생의 과정을 가장 생생하게 설명한 곳은 요한복음 3:5~8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5-8). (120.2)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그 영향은 분명히 볼 수도 있고 감촉할 수도 있는 바람과 같이 사람의 마음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신도 또한 그러한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이 거듭나게 하는 능력은 사람의 마음 안에 새 생명을 나게 하나니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 사람을 만들어 낸다. 비록 성신의 역사는 소리가 없고 감각할 수 없을지라도 그 영향은 현저하게 드러난다.”2) (120.3)
 중생은 “물과 성령”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물”은 성경에서 침례를 가리키는(벧전 3:21) 동시에 중생의 다른 도구인 “말씀”을 가리킨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성경에서 물과 그 깨끗케 하는 기능이 자주 말씀으로 상징되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6).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요 15:3). (121.1)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여 재창조, 즉 중생의 역사를 이루신다. 그것은 첫 창조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말씀(“하나님이 가라사대”, 창 1:3, 6, 9 등)과 성령(“하나님의 신”, 창 1:2)의 연합으로 창조가 이루어졌다. 또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루아흐)으로 이루었도다”(시 33:6)고 말하였다. 최초의 창조에서와 같이 중생, 즉 재창조에서도 성령과 말씀은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21.2)
 말씀과 성령의 분리할 수 없는 연합이 나타난 실례가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들의 골짜기에 대한 에스겔의 이상이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37: 1~6). (121.3)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 37:7~10). (122.1)
 에스겔은 마른 뼈들에 대해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대언할 것을 명령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뼈들에게 설교해야만 하였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그 말씀이 죽은 자의 귀를 뚫고 들어갔으며, 그러자 뼈들이 맞추어지고 근육들이 채워졌다. 그러나 생명은 없었다. 그 후에 생기를 대언하자 생기가 들어갔으며 그러자 그들이 살아 일어나 지극히 큰 군대가 되었다. (122.2)
 오늘날도 성령의 살리는 감화가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론적으로 전하는 사역은 일시적인 변화나 개선은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부흥과 생명의 활력은 제공할 수 없다. 우리의 삶과 교회, 그리고 사역에 말씀과 성령은 언제나 함께 연합되어야 한다. (122.3)
 3. 봉사의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