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6 부 예수님과 함께 같바리에서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성경 독자들 중에는 성소와 관련된 다양한 희생 제사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이 쓸모 없는 연구라고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여러 다른 예식들의 빼어난 점들이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다루고 있는 장들을 빠뜨린다. 성경이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믿고(고전 10:11), 또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이 <예수에 의하여> 이루어” 질 것을 믿고(눅 24:44), 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 유익” 한 것을 믿는(딤후 3:16) 성경 연구자들에게 이 복잡한 사물은 대단히 귀중하고, 도전을 주는 것들이다. 그러한 연구자는 열의를 가지고 그 의미를 탐구할 것이고, 구속의 경륜과 그리스도의 사업에 관한 풍부한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다. 또 연구자는 이 세부 사항 각각이,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께서 중차대 한 구속의 드라마의 마무리 국면을 행하고 계시는 장소인 하늘 성소에 드려진 그 큰 희생(예수)의 중요성을 들여다보는 창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352.1)
 이스라엘의 성막에 드려진 유혈 희생과 무혈 제물은 하나님의 어린양의 고난을 보여 주고, 어린양이 어떻게 자기 삶으로 죄인들을 속죄하여 주는 지를 설명하여 준다. 이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제사에는 세 가지 공통 요소가 있다.

 (1) 제사를 드리도록 정해진 제공자,

 (2) 규정된 제물,

 (3) 집행하는 제사장.

 이 공통 요소들은 예수께 초점을 맞춘다. 제공자로서 예수께서는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품성을 인간에게 보여 주신다. 제물로서 예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완전한 대속물로서의 자신의 삶을 바치신다. 제사장으로서 예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완전한 신인으로서의 자신의 승리를 이유로서 내세운다. 영원하신 성령님이시여, 우리가 모형으로 나타난 희생 제물되신 예수를 연구할 때에 당신의 빛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352.2)
 그리스도의 희생을 분명하게 밝혀 주는 제물들의 미묘한 차이점들
 여러 다양한 예식에 사용된 제물에 관한 세부 사항들은 영광으로 불타오르는 그리스도의 품성의 특성, 그분의 인격의 본성, 그분의 봉사의 범위를 보여 준다. 구주께서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하실 수 있기에, 그분을 묘사하는 데는 많은 상징들과 모형들이 필요하다. 어떤 하나의 설명도 완전하지 못하다. 분명하고 종합적인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이 세부 사항들을 통합하여 연구하여야 한다. (352.3)
 예수께서는 궁극적인 제공자이시다. 랍비들은 “하나님의 길들은 인간의 길과는 다르다. 인간은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타인보고 어떤 일을 하라고 지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하시는 것만을 이스라엘에게 행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신다”고 생각한다(Midrash Erodus Rabbah, 30:9, 355).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의 제단”에서 죽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요 10:18; Signs 1898년 12월 1일).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정죄받은 형제 자매들을 대신하여 아버지께 자신을 기꺼이 드렸다. 이 일을 행하시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독자적인 신권 행사를 스스로 포기하셨는데, 이 독자적인 신권 행사는 예수로 죽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던 것이었다(빌 2:5~9).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피의 복수를 피하여 비참히 도망을 하는 범죄한 인류(히 2:14~18)의 고엘(goel), 즉 “기업 무르는 자” 혹은 “혈족 구주”(血族 救主: Kinsman-Redeemer)의 역할을 맡으셨다(레 25:25; 비교 룻 2:20; 3:2, 9, 12).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빚을 지불할 것이 없고, 죽어야만 하기 때문에 구세주께서는 궁극적인 제공자로서 자신의 피로 인간의 빚과, 인간이 마땅히 죽어야 함을 무효화시키고자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다. (353.1)
 죄인의 할 일을 보여 주는 예식
 희생 제사 예식들은 회개한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희생 제물과 동일시하는 지를 설명하여 준다. 랍비들은 죄인이 자신의 희생 제물의 생명을 취할 때에 마치 자기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것이라고 믿었다.(Midrash Leviticus Rabbah 3:5, 40, 41). 밴델레오(G. van der Loeuv)는 “희생 제사는 그 희생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자리를 차지한다. 희생 제사는 그 사람과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희생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그 자신을 제물과 함께 드린다. 이러한 굴복으로 희생 제사는 그 사람을 돕는다”고 정확하게 이해하였다(Religion in Essence and Manifestation). (353.2)
 예식법은 참회자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있는 동안에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어 놓아야만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 행위는 상징적으로 그 사람의 죄를 대속물에로 옮기는 행위이다. 참회자는 그 피조물이 이제는 자신의 죄짐을 지었다고 믿으면서, 직접 자신의 손으로 제물을 도륙한다. 참회자는 이런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이 죄인으로서 죄되고, 그러므로 죽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시인한다. 그리고, 참회자는 제물이 자기 대신 죽기 때문에, 그 죽음에 책임이 있다. 그러고 나서 참회자는 믿음으로써 자신이 겪어야 하는 형벌인 죽음을 제물이 당하였다고 믿었다. 이제 참회자의 형벌은 치르어졌기에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그에게 내렸던 사형 선고가 취소된 것을 인하여 기뻐하였다. 이 상징적인 세부 상항들은 죄인들이 하나님의 어린 양의 희생 제사적 봉사와 가질 관계를 예견하였고, 죄인에게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엡 1:6)받아들여졌다고 확신시켜 준다. (353.3)
 궁극적인 제물이신 예수께서는 율법 아래서 정죄 받은 인간의 입장을 취하였다. 자신을 비우시는 예수님의 장엄한 행위의 목적은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그러하”게 되도록 확실케 하기 위함이었다(요일 4:17). (353.4)
 평화의 의논을 나눈 태고적에 신성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인간의 “흠없는 모본”(교회증언 5권, 223)으로, 또 “거룩한 대속 제물”(가려뽑은 기별 1권, 256)로서 오시는 것에 동의하셨다(초기문집, 149). 예수께서는 성육신 하시기 이전에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 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고 언명하시었다(시 40:6~8; 비교 히 10:5~19). “거룩한 분”께서 마리아의 아이로 인간의 몸으로 되신 것은 특별히 그분의 투쟁과 임무에 “적합하게 되었고”(히 10:5, 난외주), 또 그분은 속죄제로서 온 인류를 위하여 죽으시기 위하여 제단에 의도적으로 몸을 놓으셨다. 예수께서 인간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었기 때문에 인류는 그분 안에서 처형당하였다. 예수께서는 삶과 죽음에서 궁극적인 제물로서 완전한 모본을 보이셨다. (354.1)
 희생 제사의 많은 면을 나타내는 다양한 제물들
 모든 희생 제사가 거룩하신 예수를 나타내었기 때문에 짐승들과 새들도 “티나 주름잡한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완전하여야만 하였다(엡 5:27).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창조자이기 때문에 인류는 태초부터 그분에게서 나왔고, 그러므로 예수께서 인간이 되셨을 때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우리를 포함하여—이 “그 안에” 있다. 예수께서 어떠한 죄와도 상관이 없으시기 때문에 인간의 속전을 치르실 자격이 있었다. 십자가에서 인류는 그분 안에서 죽었다. 예수께서 자신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자신의 희생 제사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실제 목적은 죽음을 초월한다는 것을 아셨다. 신성(Godhead)은 예수께서 죽는 것 이상을 요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순종과 만물에게 미치는 자비를 요구하였고, 단지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제사를 위한 살생에 만족하지 않으셨다. 구세주께서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5~9; 마 9:13; 12:7)라고 확언하시면서 이 요구를 완전하게 충족시키셨다. 그리고 이제 그분께서는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러한 복종을 하시기를 원하신다. (354.2)
 하지만 타락한 인류에게는 존중해야 할 구주의 대속적 죽음과 본받아야 하는 모본 이상이 필요하다. 신자들이 신앙 생애를 시작하기 위하여서는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임재하여 있어야 한다. 부활하신 대제사장의 봉사를 통하여서 그리스도가 임재하실 수 있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삶에 거하는 성령을 통하여 전능한 은혜의 능력을 주실 채비를 갖추시고 계신다(요 3:3, 5; 갈 2:20, 21). (354.3)
 궁극적인 제사장인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연약하고 단명하는 중보자들이 희미하게 예증하여 주었던 궁극적인 제사장이시다. 제사장은 희생 제물의 생명의 피를 부은 다음에 이 “뿌린 피”를 죄인이 가기를 원하는 곳, 즉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한 곳으로 가지고 들어가야 하였다. 거기서 제사장은 경배자들이 속죄함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피를 “뿌렸다.” 제사장이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이 속죄함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하늘 성소에 들어가셔서 자신이 갈바리에서 뿌린 피를 가지고 봉사하시었다. (354.4)
 그분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절대로 필요한, 매일의 연결 고리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원형적 대속죄일에, 자신이 발달되도록 도와준 회개하는 영혼들의 품성을 옹호하고자 지성소의 은혜의 보좌 곁에서 자신의 “뿌린 피”의 공로로 봉사하실 것이다. (355.1)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자신의 모든 제자들을 포용하시기 때문에 이들을 자신의 아들들과 딸들로서 하나님 앞에 내보일 수 있다. 하늘 성소에서 그분은 제공자, 제물, 그리고 제사장이시기에 그들을 대표하여 자신의 승리를 주장할 수 있다. 이 진리들은 모든 희생 제사에 나타난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받으신다. (355.2)
 이러저러한 면으로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모든 희생 제사
 여러 제사를 공부할 때 세 가지 개념에 주의하여야 한다.

 (1)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대한 인간의 견해,

 (2)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

 (3) 그리스도 안에서 드려진 인간의 희생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정하여 준 제물의 제도는 희미한 윤곽으로 그려진 그림책이다. 이것은 때가 차면 행하여질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성취될 일들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리킨다”(R. B. Girdlestone, Synonyms of the Old Testament, 185). (355.3)
 정결케 하는 요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