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대표하기 때문에 신자 안의 마음에 임하는 성령의 임재는 그분의 구속 및 그분의 약속을 이룰 것을 미리 보여 주는 보증(고후 1:20-22)이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의 보증이 된다(고후 5:4, 5; 엡 1:13, 14;참조 롬 8:11). 성령의 내주는 마음(롬 5:5), 생각(롬 8:6, 7) 및 영(16절)을 포함하는 “속사람” 안에서 일어난다(엡 3:16). 거듭남의 경험과 더불어 시작되는 성령의 내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마음에 임하여 하나님과 인간 간의 지속적인 관계가 이루어짐으로 신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킨다(엡 3:4-17; 참조 29절).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신자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4-7절), 즉 성령의 내주하심의 결과들인 죄된 행위에 대한 승리(13절), 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인 돌보심(14절), 아들 됨(15절), 하나님의 자녀로 가납하심을 나타내는 보증(16절),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음(17절), 미래에 있을 부활을 하나하나 설명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성령의 내주하심의 구체적인 결과이며, 그것으로 하나님의 법의 영원한 원칙이 신자의 마음과 생각 속에 기록된다(렘 31:33; 겔 36:27; 롬 2:15; 히 8:10; 10:16; 참조 시 37:31; 40:8; 119:34; 사 51:7).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해 신자들 안에 내주하는 관계적 실재에 근거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여(고전 2:16;참조12:3)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벧후 1:4). 그리하여 그들은 매일의 삶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된다(갈 5:22, 23). (169.1)
 그러면 성령이 영혼 속에 스며들거나 침투하는 에너지로서가 아니라 인격으로 신자 속에 내주한다고 말한다면 그가 인간존재 안에 어떻게 내주하시는지에 관한 질문이 일어난다. 바울은 성령의 내주의 관계적 구조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7-18). 바울은 죄된 인간존재가 주의 영광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데(고후 4:4, 5),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기 때문이다(6절). 그러므로 성령의m내주는 성령의 구체적인 사역의 결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수 있다. 성경의 영감과그 내용의 조명을 통해 성령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신자의 의식 가운데 가져옴으로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된다.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주도적 개입에 대한 반응으로 인간이 처음으로 그리스도께 마음을 온전히 열고 굴복하면, 하나님의 임재의 선물로서의 성령 침례와 동시에 거듭남이 발생한다(행 2:38). 그리고 성령의 내주의 계속적인 과정이 뒤따른다.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나는 성령의 내 주는 거듭남의 순간에 단번에 영원한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되는, 성령의 역사에 더 깊이 굴복하는 지속적인 과정이며, 그로 말미암아 신자가 영원히 잃어버림을 당할 위험이 있는 배도에 빠지지 않게 된다. (169.2)
 d. 간구
 성령은 그리스도의 대표자로서 하늘 성소에서 이뤄지는 그리스도의 간구 사역(히 8:1, 2; 참조 롬 8:34)을 보충하는 간구의 기능을 수행한다. 바울은 성령께서 수행하시는 계시-영감(참조 VII. C. 5. a)과 조명(참조 VII. C. 5. b)과 내주(참조 VII. C. 5. c)라는 명백한 매개적 기능 외에 성도의 기도를 위한 성령의 간구 사역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롬 8:26, 27). (170.1)
 e. 성령의 은사
 성령께서는 그분의 내주 사역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을 이루는 일에서뿐 아니라 영적인 은사들을 주심으로 교회가 선교 사명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매개적 역할을 하신다(참조 영적인 은사 II). 하나님의 영이 특별한 임무를 이루도록 신자들에게 은사를 주신다는 개념은 구약에 나타나 있다(민 11:25; 27:18; 신 34:9; 삿 3:10; 삼상 10:6; 미 3:8; 슥 4:6. 그러나 구약에서 영적인 은사는 일반적으로 신앙 공동체 전체보다는 특별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제한성은 오순절에 성령이 도래하여 온 교회에 영적인 선물을 주심으로 요엘의 예언(2:28, 29)이 부분적으로 성취되면서 제거된다(행 2:15-21, 32, 33; 엡 4:8).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가 거하는 신자들에게 선물이 주어진다. 다시 말해, 신자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굴복하고(행 2:38) 계속 순종함으로(행 5:32) 성령을 받아들인다는 근거로 영적인 선물을 받는다. 이 선물들은 교회의 연합을 이루고(엡 4:13) 성도로 “봉사의 일을 하”게(12절)할 목적으로 주어진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존재나 용서의 초자연적인 표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에 계시된 대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그분의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기능으로 주어진다. (170.2)
 6. 종말에 부어질 성령의 은사
 구약은 구속사가 끝나기 전 종말 시대를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범세계적으로 전파되는 시기로 제시한다. 복음의 이런 범세계적, 종말론적 확산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통해 일으킬 것이다(시 72:8-11; 사 14:1; 45:14; 56:6, 7; 60:5, 11; 렘3:17; 학 2:7; 슥 2:11; 8:21-23). 성령이 모든 육체 위에 범세계적으로 부어질 것이라는 요엘의 예언(2:28, 29)은 종말에 하나님의 나라가 범세계적으로 확장될 것에 관해 구약의 이상이 말하는 복음의 통로가 무엇으로 형성될 것인지를 명시한다. (170.3)
 요엘의 예언은 오순절 성령의 도래와 더불어 성취되기 시작했지만(행 2:16-22; 참조 VII. C. 2), 그 범세계적인 완전한 성취는 아직 미래에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19-21절). 구속사가 끝나기 전에 있을 복음의 범세계적 확산을 말하는 이상은 신약의 종말론적인 기별에 계속 나타난다(계 14:6, 7; 18:1).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분의 역사적인 구원 행위에 일관되게 표현된다(참조 III. B). 따라서 하나님이 종말에 복음을 범세계적으로 전파함으로 구속사를 역사적 절정과 완성으로 끌고 가실 때 오순절에 사용하신 것과 동일한 도구 곧 교회 위에 성령의 은사를 제한 없이 부어주심을 통해 하실 것이다. 종말에 성령을 이렇게 부어주실 일이 요한계시록 18:1에서 천사가 온 땅을 환하게 하는 것에 암시되어 있는데, 오순절에 성취되기 시작된 요엘의 예언이 그 일로 완성될 것이다. (170.4)
 따라서 성령의 도래와 그분의 은사들이 부상하고 있던 초기교회를 특별한 방식으로 힘 있게 하신 것처럼, 종말에도 성령이 복음 사업의 완성을 위해 회에 그분의 은사를 부여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의 은사를 개인적 및 역사적 차원에서 이른비와 늦은비처럼 부어주실 것이다(욜 2:23; 참조 호 6:3). 종말에 부어질 성령의 은사에도 동일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길을 예비하는(마 24:14; 벧후 3:9, 12; 계 14:6-12) 복음 진리의 전파이다(계 18:2, 4). 그러나 성령이 신자 안에 내주하는 것이 은사를 받는 데 필요한 조건이듯이(참조 VII. C. 5. E), 종말에도 교회가 성령의 조명과 내주에 마음을 열고 전적으로 굴복하는 것을 토대로 성령의 나타남이 있을것이다. (171.1)
 D. 신약에 나타난 삼위일체
 아버지 및 아들과 구분된 위격으로서의 성령에 관한 구체적인 계시가 한 하나님의 복수성에 관한 성경적 묘사를 보여 주는 신약의 설명을 완성한다. 그리스도교의 한하나님 안에는세 분의 구분된 위격이 존재한다. 신약은 서로 다른 위격들을 분명하게 언급함으로써 그리고 간단한 삼위일체적인 공식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본질을 표현한다. 이위일체적인 공식(참조 VII. B. 6)이나 삼위일체적인 공식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본질을 표현한 것이지, 그것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묻는 확대된 질문을 말한 것은 아니다. 다음은 신약에서 삼위일체적인 공식이 암시되거나 직접 언급된 주요 용례들이다. (171.2)
 예수의 침례 사건으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삼위일체에 관한 가장 분명한 계시가 나타났다. 아들은 성육하신 존재로 나타났고 성령은 비둘기처럼 임하고 아버지는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마 3:16, 17; 막 1:10, 11; 눅 3:21, 22; 참조 벧후 1:17). (171.3)
 삼위일체 개념, 곧 세 분이 하나라는 개념이 여기에서는 명시되지 않고 암시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 본문들은 삼위일체적인 공식으로 볼 수 없고 삼위일체 교리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신성의 세 위격이 각각 구속사에 관여해 온 구체적인 활동을 언급함으로써 통합되고 밝혀진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신자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었다(벧전 1:2)고 분명하게 강조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함께 있”기를 소원하면서(고후 13:13) 고린도후서를 끝맺는다. 이 두 진술은 성령과 그리스도의 신성 및 세 분의 통일성을 나타낼 뿐이다. 여기서는 삼위일체적인 공식이 아니라 다만 삼위만을 언급한다. 교회에 성령의 은사를 부어주시는 것에 대해 바울이 고린도전서(12:4-6)에서 말한 배경(VII. C. 5)도 삼위일체를 가리킨다. 영과주와하나님은 각각성령과 아들과 아버지를 가리키며, 이렇게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행위로써 삼위의 통일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삶 즉 구속적 행위의 통일성이라는 개념으로 하나님의 하나 됨을 축소시켜는 안 된다. (171.4)
 삼위일체적인 공식은 예수의 선교 위임 진술에 분명하게 표현돼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직접 언급한 점은 세 위격이라는 복수성을 가리키지만, 그들 모두를 하나님의 “이름”(단수)으로 일컬은 점은 신적 존재의 하나 됨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본문은 셋과 하나가 함께 속한다고 말하는 분명한 삼위일체적인 공식을 표현하고 있다. (171.5)
 결론적으로 말해 신약은 삼위일체 교리를 신학적인 이슈로 더 이상 폭넓게 논의하지 않지만, 그리스도교의 한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본질의 실재가 성경적 가르침이라는 광범위한 증거가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삼위, 곧 역사에서 직접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행동하고 삼위일체적인 존재를 구성하는 세분의 구분된 위격으로 그분 자신의 초월적 본질을 계시하셨다. (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