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대한 아들의 종속은 성육신 그 이상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종국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것(고전 15:24)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종속은 하나님의 역사적 내재성의 차원, 곧 아버지와 아들 두 분이 함께 창조된 역사 안에서 그들의 섭리적 통치를 행사할 때 일어난다. 그러나 아들의 이런 기능적인 종속에는 아들의 존재론적인 의존이나 열등이 수반되지 않는다. 넓은 의미에서 아버지께 대한 아들의 종속은 신성이 대쟁투의 역사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면서 삼위일체적인 내적 삶이 연합된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들이 아버지께 존재론적으로 종속되었다거나 기원의 관점에서 아버지의 신적인 실재가 아들의 신인 실재보다 월등하다는 개념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가 성경에는 없다(참조 IX. B. 6,7). (159.3)
 B.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한”다면(골 2:9)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분은 하나님인가? 그분과 아들 하나님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159.4)
 1.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버지 됨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개념은 구약에서 낯선 개념이 아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일컬을 때 그것은 그분의 택한 백성을 향한 그분의 자애로운 돌보심을 강조한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이스라엘을 안고 가셨다(신 1:31).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자애로운 섭리적 돌보심에 주의를 돌리라고 촉구했다. “우매무지한 백성아 야훼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신 32:6). 하나님은 아버지처럼 그분의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고(시 103:13) 징계하신다(잠 3:1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아들”(호 11:1, 8)이라고 일컬으심으로 그들과 깊이 관련돼 있음을 드러내셨다. 반대로 그분의 백성들도 야훼를 그들의 아버지로 인식하였다(사 63:16; 64:8; 말 2:10). 야훼가 왕의 아버지라고 언급된다(삼하 7:14; 시 2:7). 힘과 지혜와 권위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대표자인 왕 사이의 긴밀한 관계가 강조된다. 구약은 한 하나님의 복수성을 어렴풋하게 보여 주지만 구체적인 위격들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아버지라는 칭호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위격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 그런 분명한 용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약의 계시에 나타난다. (160.1)
 2.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골 2:9) 나사렛 예수(참조 VII. A. 1; 그리스도 I)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제시했다. 그는 기도에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마 26:39, 42; 눅 10:22), 간단하게 “아버지”로(막 14:36; 눅 10:21; 요 11:41) 불렀다. 예수께서는 생명의 떡에 대한 설교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일컬었다(요 6:27). 이뿐 아니라 신약은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증언한다.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골 1:3)로 칭한다(참조 엡 1:17). 성육하신 하나님인 예수께서도 하나님을 지칭하기 위해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따라서 아버지-아들 이미지는 한 하나님의 신적 복수성이 내비치는 개체적이고 관계적인 특징을 드러낸다. (160.2)
 3. 아들을 보내심
 예수께서는 아버지가 자신을 세상에 보냈다고 가르치셨다(요 5:36, 37; 6:44, 57; 8:16, 18).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시간과 공간 안에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명을 이루도록 하셨다(요일 4:14).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분은 “영원한 구원의 근원”(히 5:9)이 되셔야 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늘에서 온 자로 묘사함으로써(요 6:38) 역사적인 내재성의 차원에서 자신의 사명의 기원을 강조했다. (160.3)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다(요 7:28-29)고 주장하셨다. 아들을 보내심은 피조물과 하나님의 내재적 관계의 차원에 속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이 행위는 하나님의 초월적 존재에서 비롯된다 역사적인 행위로서의 아들의 보내심은 하나님의 역동적인 삶의 중요한 측면을 증언한다. 그것은 한 하나님의 실재적인 궁극적 “포기”[내어 주심]의 신적인 실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셨다(롬 8:32)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아버지]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고 천명한다. 이런 포기는 아버지의 행위인 만큼 동일하게 아들의 행위이다. 그것은 신성 자체 사이의 관계적인 행위이다. 하나님의 구속적 행위인 십자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하나님(아버지와 아들)의 버림받음을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 그들 자신 뿐 아니라 창조된 우주에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인격적이고 의식적인 존재들로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포함하는 성경적 삼위일체적인 구조 안에서 한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때 하나님의 버림받음의 실재가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160.4)
 성육신에서 발생한 하나님의 분리의 경험은 십자가에서 극적인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십자가에서 예수께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라고 부르짖는다. 십자가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고통을 당한다.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존재에 관한 교리는 성육신과 십자가를 적절하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전제가 된다. 다른 한편, 이런 역사적인 실재들로 말미암아 신약에 나타난 신성의 복수성에 대한 더 명확한 계시가 가능해진다. (161.1)
 4. 아들에게 위임함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며(요 3:35;참조 13:3) 심지어는 심판까지 맡기셨다는 사실(5:22)을 드러내셨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요 16:15)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위임하신 것과 아들이 아버지께 종속된 것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데 신성이 함께 참여한 것을 나타낸다. 아버지께서 구속적 사명을주어 아들을 보낼 때 모든 것을 아들의 손에 맡기고, 역으로 아들은 성육신적 상태에서 아버지께 대한 순종과 종속을 배워야 했다(히 5:8). (161.2)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구속의 과업을 위임하면서 그리스도가 해야 할 과업의 결정적인 성격을 강조하신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일을 위임하면서 그리스도가 감당해야 할 구원 사역에 자신도 묶어 매신다. 심지어 아버지께서 구원의 계획에 친히 관여하실 때에도(참조VII. B. 5) 믿음으로 말미암는 순종의 삶에 뒤따를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그분의 신적인 능력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를 예정하진 않으신다. (161.3)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아버지께 대한 그의 종속이 끝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도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상호 관련되고 보완되는 일을 계속 위임하셨다. 그리스도는부활후에 아버지께서 “하늘과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마 28:18)고 천명했다. 베드로는 부활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벧전 3:22)고 썼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신 것은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히 10:13) 계속될 과도기로 묘사된다. 바울은 승천과 재림 사이의 이 과도기에 그리스도께서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보다는 이 과도기에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리”라(고전 15:25)고 말한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28절). (161.4)
 그리스도께 위임된 구속 사업이 이뤄질 때, 아버지께 대한 아들의 전면적인 종속으로 생긴 일 곧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위임한 일이 끝날 것이다. 삼위의 내적 삶의 상호 연관된 측면들 곧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위임한 것과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종속(참조 VII. A. 4)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본질을 구성한다기보다는 그런 양상을 띤다. (161.5)
 5. 구원 사역
 구속을 이루기 위한 모든 권위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위임했지만 신약은 아버지께서도 구원 사역에직접적으로 관여하신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아버지께서 예지(마 24:36; 막 13:32)와 전지성(마 6:32; 눅12:30)을 소유하신다고 말한다. 아버지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그분의 사랑은 그들 안에 있다(요일 2:15; 3:1). 그분은 구원과 관련된 진리들을 계시하고(마 11:25; 16:17) 그분의 자녀들을 섭리를 통해 돌보고(마 6:26; 10:29) 역사의 발전을 이끌고(마 20:23)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구원을 발견하게 하고(요 6:45)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고(골 1:12) 죄를 사하고(마 6:15; 막 11:25) 기도에 응답하고(마 6:6, 18; 7:11; 18:19; 요 15:16; 16:23)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신다(벧전 1:17;참조 마 10:32, 33). 이런 모든 활동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위임하신 일의 틀안에서 이해되어야한다. (161.6)
 6. 이위일체적인 공식
 나사렛 예수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성육신은 영원하신 한 하나님의 복수성에 관한 구약의 암시들을극적으로 밝혀준다. 성육신은 나사렛 예수가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임마누엘)일 뿐 아니라 영원하신 한 하나님 안에 포함된 복수성에는 구체적으로 두 위격 곧 아버지와 아들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드러내 주었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교의 신성을 삼위일체(trinitarian)가 아니라 이위일체(binitarian)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을 명백하게 포함하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만을 언급하는 성경의 본문들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1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