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실재로서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빛을 비추어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는 신성에 대한 구약의 기본적인 이해 곧 하나님의 단독성(참조 V) 및 개체적인 구별성(참조 IV)을 포함하는 구약의 접근 방식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신약은 이미 구약에 제시된 신성의 복수성이라는 역학적인 개념을 심화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단독성을 확인한다. 그런 결과가 바로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에 관한 계시이다. 신약은 하나님의 단독성의 개념을 추가적인 설명 없이 받아 들이지만 하나님의 복수성의 영역은 확대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아들 하나님의 영원한 위격에 관한 구체적인 계시는 신성의 다른 한 분에 대한 더 구체적인 계시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구약의 성소와 신약의 성육신을 통해 계속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적 및 인격적인 임재가 계속될 것을 설명해 주었다. 영원한 개체를 지닌 성령 하나님에 관한 계시와 그분의 파송됨은 하나님의 인격적이고 역사적인 내재가 역사 안에서 계속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하였다. (156.1)
 A. 아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인간이었다(마 1:16). 그분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그분을 알았던 사람들은 예수를 선지자로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웠다(막 6:3-5). 그러나 신약에 따르면, 인간 예수는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직접적이고 분명한 계시였다(요 1:18; 14:8; 히 1:2, 3). 그분은 성육하신 하나님이었다. 사실상 삼위일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기독론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단독성 속에 있는 복수성에 대한 구약의 계시의 맥락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볼 때, 아버지와 성령의 위격에 관한 추가적인 계시를 위한 무대가 놓인다 구약의 배경 및 신약의 기자들이 제시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영원하신 아들에 관한 특정한 역사적인 계시를 고려하지 않고 아버지와 성령에 대해 논하는 것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내적 본질을 드러내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에 들어가려면 이런 두 단계가 필요하다. (156.2)
 1. 신성
 신약의 몇몇 본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언급한다(요 1:1, 18; 20:28; 히 1:8, 9; 벧후 1:1; 요일 5:20). 요한은 그리스도의 선재성을 가르칠 뿐 아니라(요 17:5), 하나님께만 속하는 절대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한다(요 1:1, 2; 8:58;참조 골 1:17). 그리스도가 신적인 특성들을 소유한 것으로 말한다. 즉 그분은 영원성(히 1:11, 12)과 창조의 능력(요 1:3; 히 1:2, 10; 골 1:16)을 소유하고 그분 안에는 빌려오지 않고 파생되지 않은 생명이 있다(요 1:4; 14:6). 히브리서의 서언에 따르면,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다”(히 1:3).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본체”(빌 2:6)로 묘사한다. (157.1)
 “나는..이다”(I am) 진술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신성을 가리키는 또 다른 방법으로 보인다. 그리스께서 “나는∙∙∙이다”(I am)라는 칭호를 스스로 취하심으로써 신적 현현을 통해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야훼가 그분 자신의 이름으로 선포하신 바로 그 이름을 사용하신 것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출 3:14)가 바로 그 이름이다 이 용어는 전능성(요 6:20, 21), 영원성(요 8:58), 예지(요 13:19) 같은 하나님의 속성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의 발현(요 18:5, 6, 8) 및 구원의 원천으로서의 예수(요 8:24)를 강조하는 선언들에 적용된다. 마지막으로 신약은 그리스도를 구약의 야훼와 동일시함으로 그분의 신성을 확언한다. 구약에서 야훼의 구원을 인해 그분께 드리는 찬양(사 44:23)도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에 적용된다(빌 2:10). 히브리서 1:10-12시편 102:25-27에 기록된 야훼의 권능과 영원성에 대한 진술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께 적용한다. 이런 논증을 강화하기 위해 히브리서 1:8, 이은 시편 45:6, 7을 인용하여 그리스도를 하나님(엘로힘)과 동일시한다. (157.2)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육신의 신비를 분명하게 진술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신약의 증언을 요약한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 나사렛 예수로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임마누엘, 마 1:23; 요1:14; 참조 사 7:14), 곧 하나님의 복수성에 대한 초기의 구약적 개념은 구체성과 복합성을 띠면서 발전하여 하나님의 존재의 삼위일체적인 본질을 드러낸다. (157.3)
 2. 아들 됨(Sonship)
 하나님의 내재성의 역사적 개념(참조 IV. D)은 나사렛 예수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에 관한 신약의 놀라운 계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이 된다. 하나님의 단독성을 적절하게 이해해야 유일하신 하나님인 야훼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는 결론에 이를수 있다. 따라서 성육신은하나님의 전 존재를 아우른다. 그렇지만 신약은 또한 나사렛 예수 안에 신성의 충만이 거하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전 존재를 아우르는 것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충분하게 보여 준다. 나사렛 예수의 신성은한하나님 안에 있는 복수성이라는 구약의 개념을 한층 구체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의 실재의 삼위일체적인 본질에 대한 계시로 인도한다. (157.4)
 요한복음과 히브리서의 서언은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제시한다 두 책 모두 신성의 이중성, 곧 신성에는 적어도 두 신적 존재인 아버지와 아들이 포함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요한은 나사렛 예수의 신성을 “하나님이었던” 말씀으로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으로 제시한다(요 1:1). 신성의 다른 한분이 바로 로고스(말씀)이다. 히브리서의 서언은 그 다른 한분을 로고스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인 아들(히 1:2, 3)로 제시한다. 그 “아들”이 나사렛 예수 안에 성육했다는 점에 비추어 그분 안에 거하는 “신성의 충만”(골 2:9)은 전 신적 존재를 아우르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158.1)
 우리는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의 복수성에 대한 더 깊은 계시로 나아간다. 요한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요 1:14)라고 증언한다. 아버지—아들 관계는 관련된 두 신적 존재를 일컫기 위해서 뿐 아니라 그 둘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158.2)
 요한복음 1:18은 동일한 아버지—아들 관계를 성육신과 독립된 것으로 제시한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마태도 하나님이 계시를 통해 피조물과 관련을 맺기 이전 또는 그것과 상관없이 이뤄진 아버지—아들 관계에 대해 말한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참조 눅 10:22). (158.3)
 이런 진술들은 아버지—아들 칭호로 드러난 복수성을 한 하나님의 본질에 두고 있다 이런 진술들은 하나님의 내재성의 차원을 넘어 그분의 초월성으로 인도한다. 더 나아가, 이 본문들은 복수성이 하나님의 초월성의 차원 안에서 서로를 독특한 방식으로 알 수 있는 의식의 두 중심과 관련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성의 복수성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된 아버지—아들이라는 표현은 인간 존재의 차원에서 끌어 낸 것이지만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 표현은 또한 우리가 위격이라 일컫는 실재라는 것에 이중성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이들 사이의 지속적인 관계가 하나님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을 드러내 준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는 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두 차원 모두에 존재한다. 신약 전체를 통틀어, 아버지 됨과 아들 됨은 한 하나님의 칭호들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도 나사렛 예수 안에 성육하신 신성의 존재를 지칭한다(참조 마 14:33; 막 3:11; 눅4:41; 고전 1:9; 히 4:14). (158.4)
 신약이 성육신을 근거로 신성 안에 존재하는 복수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아버지의 위격(참조 VII. B)과 아들의 위격(참조 그리스도 I)에 대한 적절한 이해 및 이들 사이의 구분에 대한 질문들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또한 이 두 신적인 위격이 서로 어떻게 관계하는지에 대한 질문들도 야기한다. 하나님의 존재의 복수성에 대한 성경적 개념에는 상호간의 관계라는 개념이 따라온다. “아버지”“아들”이라는 단어에서 유추되는 의미로 보면, 아버지가 아들보다 우위에 있음을 내비치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아들의 인간적인 관계라는 유비가 나타내는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하나님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발생했다거나 아들이 아버지에게 종속된 것처럼 가르치는 몇몇 성경 본문에 의해 지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158.5)
 3. 아버지로 말미암아 태어남
 인간적인 관점에 비추어 보면 아버지—아들의 관계는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발생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리우스(참조 IX. B. 4)는 아버지가 아들을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158.6)
 이런 주장을 이단으로 배격했지만 정통 그리스도교 가르침은 종속론자들의 강조점을 아들의 영원한 발생에 관한 개념 속으로 융합했다(참조 VII. B. 4, 5).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발생했다는 것은 인간의 발생과정에서 유추해 낼 수 없다. 이런 유추는 계시에 근거를 두지 않은 사변적인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몇몇 성경적 표현은 모종의 발생을 내비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하나님의 아들은 “먼저 나신자, 맏아들”(프로토토코스, 골 1:15; 롬 8:29; 히 1:6; 계 1:5) 또는 “독생자”(모노게네스, 요 1:14, 18; 3:16, 18; 요일 4:9)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프로토토코스 역시 은유적 의미로 사용된 것이며, 그것이 그리스도를 지칭할 때는 우월성과 탁월성을 나타낸다(〈70인역〉출 4:22; 시 89:27). 비슷한 맥락에서 모노게네스에는 태어남보다는 독특성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그리스도께 적용될 때는 그분과 아버지와의 독특한 관계를 강조한다. 다른 한편, 히브리서 1:5은 육체적 또는 영적인 탄생이라는 개념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성에 대한 성경의 이해 안에는 아들이 아버지께로부터 발생되었다는 개념을 지지하는 근거가 없다. (158.7)
 4. 아들의 종속됨의 본질
 몇몇 본문은 아들이 아버지께 분명하게 종속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요 5:19)라고 말씀하셨다(참조 36절). 예수께서는 그분 자신의 권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것만 말했다고 주장하셨다(요 8:28; 참조 12:50; 15:15).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명하신 것을 행하고(요 14:31; 참조 10:18; 12:50; 15:15) 아버지께 기도하셨다(요 17:11). 예수께서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요 14:28)고 천명하셨다. 이런 진술들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모종의 종속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런 본문들이 표현하는 종속을 존재론적인 종속으로 이해하여, 마치 아들 하나님의 실재가 아버지 하나님의 실재에 의존된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아들 하나님과 아버지 하나님 사이의 이런 종속을 나타내는 성경적 개념은 하나님의 실재의 내적인 구조가 아니라 구원의 계획을 성취시키는 국면과 관련된다. (159.1)
 구원의 계획에는 아들 하나님이 인간의 형상을 입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이 요구 되었다(빌 2:8). 또한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야 했다(히 5:8). 따라서 아들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종속된 것으로 말하는 진술들은 아들의 성육하심의 결과, 곧 아버지께 대한 그분의 순종을 말하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종속이 없다면 성육신 자체는 그것이 지닌 구속적인 목적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1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