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에 대한 유대인들의 제1차 반란(66-70) 때부터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에 대하여 군사, 정치, 종교, 경제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탄압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군사적인 탄압으로는 두 차례의 유대전쟁(70, 135)을 통해서 로마 군대가 팔레스타인에서만 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살육한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17 그리고 유대민족을 정치-종교적으로 탄압하기 위하여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산헤드린제도와 대제사장직을 폐지시켰고 하드리아누스는 135년경부터 유대교의 관습 전체를 불법화시켰으며 그 중에서도 특별히 안식일 준수를 가장 심하게 단속하였다.
18 또 유대민족을 경제적으로 탄압하기 위하여 로마제국은 유대인들에게만 가해지는 차별적인 과세(the Fiscus judaicus)를 부과하였는데 이 세금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도입되어 도미아누스 황제(81-96)와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19 유대인들에 대한 이같은 탄압적인 조치가 제국의 어느 지역에서보다도 그 수도인 로마 시에서 가장 가혹했다는 사실은 세네카(d. 65), 페르시우스(34-62), 페트로니우스(약 66년경), 퀸틸리아누스(35-100), 마르티알(40-104), 풀르타르크(46-119), 유베날(125년경), 타키투스(55-120)같은 그 시대의 저술가들이 남겨놓은 반(反) 유대적인 글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직업적인 활동의 대부분을 로마에서 보낸 사람들인데 자신들의 글을 통하여 유대인들을 인종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모욕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안식일의 준수와 할례를 가장 비열한 미신 행위의 본보기로 조롱하였다.
20 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 티투스(Titus)도 유대인들에 대한 로마 시민들의 적개심 때문에 자신이 결혼하고자 했던 유대인 여자 베레니케(Berenice: 소(小) 헤롯의 누이)에게까지도 마지못해(invitus) 로마를 떠나도록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21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유대인 문제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유대교에 대하여 더욱더 급진적인 탄압정책을 펴나감으로써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대체로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기독교인과 유대인들 사이에 차별과 대립 의식이 증대하여 갔으며 기독교 측의 이같은 차별 의식은 기독교 내에서 탈(脫) 유대주의와 유대인 경멸의 신학
22을 표방하는 문필 활동을 부추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의 실제적인 결과로서 유대인의 특징적인 절기인 유월절과 안식일이 기독교 안에서 철폐되고 그 대신에 부활절 일요일과 일요일 주일 제도가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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