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사라가 두 살일 때 우리 가족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찾았다. 운전을 하는 동안 우리는 여러 마리의 코요테를 보았다. 그 녀석들은 잘 먹어서인지 건강해 보였고 아름다운 꼬리털을 가지고 있었다. 사라가 소리쳤다. “코요테를 한 마리 갖고 싶어요.” 그 후 아내와 내가 사라의 세 번째 생일선물로 강아지를 사주었을 때에 사라는 “코요테”라고 이름을 지었다. (231.1)
코요테는 여우처럼 생긴 외모의 혼혈 테리어 종이었다. 완전히 자랐을 때에는 비록 작지만 힘이 세서 다루기 힘들었다. 교회에 다녀을 동안 코요테를 화장실에 남겨두는 실수를 했을 때 화장실 문의 나무 모서리가 물어뜯겨 나간 적도 있었다. 코요테가 안마당을 뛰어다닐 때에는 가장 흥분했다. (231.2)
코요테를 마당에 가두기 위해서 나와 아내는 땅 밑에 철사를 묻었다. 코요테가 그 철사를 넘으면 전기충격을 받도록 특수한 목걸이를 달아 주었다. 그 장치가 얼마 동안은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녀석은 달리기에 좋은 출발 방법을 배워서 선을 통과할 때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속 30마일로 달렸다. 그의 속도는 경이로운 것이었다. 특별히 UPS 트럭(미국의 택배 회사—역주)이 지나갈 때는 더 빨리 달렸다. (231.3)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 트럭은 그를 자극하고 날뛰게 만들었다. 우리는 코요테가 한 번이라도 UPS 트럭을 잡아탄다면 무엇을 할까 궁금해 했다. 어느 날 우리는 그가 트럭 뒤에 올라타고 짧게 드라이브하는 것을 보았다. (232.1)
코요테는 결점들이 있었지만 충성스러웠다. 내 아내가 간단한 수술을 받고 온종일 침대에서 쉬어야 했을 때에 코요테는 뭔가 일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온종일 아내의 침대 곁을 줄곧 맴돌았다. 아내가 약을 먹고 나면 그 녀석은 아내가 괜찮은지를 확인하기 위해 아내의 얼굴에다 자기의 코를 슬쩍 대곤 하였다. (232.2)
불행히도 트럭을 잡으려는 코요테의 집념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코요테는 쓰레기차 앞을 달렸고 그것이 끝이었다. (232.3)
우리는 코요테를 정원 곁에 묻고 그의 무덤을 꽃으로 장식하여 주었다. 몇 달 후 우리가 그 집을 팔았을 때에 남겨두고 떠나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코요테의 무덤이었다. 우리는 여러 달 동안 그 강아지 때문에 슬퍼하였다. 우리는 그의 충성스러움 때문에 그의 결점들을 용서하였다. 그는 우리를 사랑했고 또한 우리도 그를 사랑했다. (232.4)
하나님께서도 충성을 귀하게 여기신다. 사실 그분에게 있어서 충성은 핵심이다. 충성은 고대 이스라엘과 그분과의 관계에서도 핵심이었다. 이스라엘은 범죄하고 제의적으로 부정한 불완전한 백성이었다. 하나님은 완전할 수 없는 백성에게서 절대적 완전을 요구하지 않으셨지만 충성은 요구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당신께 충성하는 한 그들의 불완전에 대한 구제방법을 성소를 통해 나타내셨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그분을 거역하거나 그분의 구제방법을 무시한다면, 그들은 이미 대속죄일 전에 정죄를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민 15:30~31; 19:13, 20). (232.5)
만일 그들이 대속죄일에 자아부정을 실천하고 노동을 금함으로써 그분께 충성하지 못할 때 그들은 “끊쳐”지거나 멸망되었다(레 23:29~30). (233.1)
이스라엘의 성소에 좌정하신 그들의 거룩한 왕과 백성들 사이의 관계는 이 세상의 왕과 그 신복들 사이의 관계와 유사하였다. 예를들어 개인이 다윗과 솔로몬과 맺었던 다양한 관계들을 생각해 보라. (233.2)
다윗은 죽기 직전에 솔로몬에게 그의 마지막 유언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233.3)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왕상 2:5~9).
(233.4)
요압은 살인으로 이미 정죄되었지만 다윗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지체되었던 그의 처형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반면에 바실래와 그의 가족은 충성하였고(삼하 17:27~29; 19:31~32) 그에 따른 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시므이의 경우는 다루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다윗은 그를 저주한 시므이를 용서하였다(삼하 19:18~23). 그러나 지금 그는 시므이를 용서받을 가치가 없는 자로 간주하였다. (234.1)
우리는 다윗이 죽은 후에 솔로몬이 요압과 시므이와 관련하여 그의 아버지가 내린 유언을 어떻게 수행했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그가 바실래의 아들들을 공궤하였다고 생각한다. 다윗이 생존해 있을때에 요압은 왕위를 찬탈하려는 아도니야의 불행한 시도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왕상 1:5~10, 18-49, 24-26) 그의 운명은 아도니야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었다. (234.2)
솔로몬이 만세와 양각나팔 소리로 왕위에 올랐을 때(왕상 1:39~40),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재판관이 되어 그에게 조건적인 용서를 허용하였다. “저가 만일 선한 사람이 될진대 그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 하려니와 저의 가운데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하고”(왕상 1:52). 본 문맥에서 분명한 것은 솔로몬이 훌륭함과 악함을 그에 대한 충성과 불충성에 의해 정의했다는 것이다. 솔로몬에게 충성이 핵심이었다. (234.3)
다윗이 죽은 후에 아도니야는 다윗에게 수종들었던 아비삭과의 결혼 허락을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통해 솔로몬에게 요청했다. 이전의 왕에게 속했던 여인을 취하는 것은 왕의 특권이었기 때문에 (참고 삼하 16:21~22) 솔로몬은 보좌를 다시 취하려고 시도하는 아도니야를 처형할 것을 명했다. (234.4)
제사장 아비아달과 요압은 아도니야를 지지했기 때문에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유배시키고 요압을 처형함으로 그들도 처벌하였다. 요압이 성소로 도망쳐 나오기를 거절하고 성소에서 죽기를 구하였을 때(왕상 2:30)에 솔로몬은 브나야에게 다음과 같이 명했다. (235.1)
왕이 이르되 저의 말과 같이 하여 저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홀린 피를 나와 내 부친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저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대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대장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부친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저희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 자손과 그 집과 그 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왕상 2:31~33).
(235.2)
요압을 죽임으로 솔로몬은 “일석이조”를 거두었다. 그는 그의 보좌에 위험 요소가 되는 것을 제거했다. 동시에 그는 살인한 요압을 처형시키라는 다윗의 유언을 받들었다. 브나야에게 행한 솔로몬의 말은 요압이 군사령관으로서 오랜 기간 탁월하게 임무를 수행하였음에도 다윗이 왜 그의 처형을 원했는지 설명해준다. 단순히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다윗에게 중요했던 장군들을 죽인 것에 대한 복수나 처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윗은 요압의 상관이었고 따라서 그의 재판장이었기 때문에 그는 요압을 처형할 책임이 있었다. (235.3)
만일 다윗이 요압을 처형하지 않는다면 그는 요압의 피 흘린 죄를 짊어져야 했고, 솔로몬도 요압을 처형하지 않는다면 그도 이 죄를 짊어져야 했다. (2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