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전 조사심판의 성경적 기초 조사심판과 성소 제21장 다니엘 7-8장의 속죄일
 이 책의 제5장에서 나는 1844년 10월 22일의 대 실망 직전 몇 달 동안에 밀러의 무리가 다니엘 8:14에 나오는 성소의 정결을 레위기 속죄일의 원형으로 해석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그 이후로 계속 이 견해를 고수해왔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틀림없는가? 다니엘8:14에서 성소에 관하여 말한 것이 지상의 속죄일과 상응하는 하늘 성소의 짝이라고 성경 자체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내가 이 장에서 논의하려고 하는 질문이다. (251.1)
 〈제임스왕역〉에서 그 절을 특별히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cleaned) 하였느니라.”(강조는 첨가된 것임)라고 번역하지 않았더라면, 레위기의 속죄일이 다니엘 8:14과 관련되어 있다는 개념은 초기 재림신자들에게 절대로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속죄일에 생각의 초점이 맞춰져 있던 재림신자들은 다니엘 8:14“정결하게 되리라”는 말을 보고 그 동일한 단어를 레위기 16:19에서도 읽었다.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번제단]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하게 할 것이요(cleaned).” 다니엘 8:14“정결하게 되다”레위기 16:19“정결하게 하다”라는 두 단어를 함께 놓고, 그들은 그 둘이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다니엘 8:14은 하늘 성소의 정결에 관한 구절이었다! 그것은 하늘의 속죄일에 관한 말씀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보지 못하고 놓칠 수가 있었겠는가? (251.2)
 물론 성경 원어의 배경이 없는 그들로서는 다니엘 8:14“정결하게 되다”로 번역된 히브리말은 차다크의 수동형이지만, 레위기 16:19“정결하게 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말은 타헤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차다크“정당하다,” “의롭다”를 의미하는 한편, 타헤르“깨끗하다,” “정결하다”를 뜻한다. 그 두 개념은 비슷하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제임스왕역〉에서 두 단어 모두 정결하다는 의미로 말했다고 하여, 그것이 반드시 다니엘 8:14과 레위기의 속죄일 사이를 연결시키는 강력한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251.3)
 초기 재림교회의 해석을 비평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재빨리 지적하였다. 예컨대, 포드는 말하기를, 차다크는 레위기 16장의 의식적인 정결을 나타내는 타헤르와 아무런 중대한 관련이 없다. 그렇게 타헤르는 다니엘 8장에 나오지 않고, 차다크레위기 16장에 나오지 않는다.”1)라고 하였다. (252.1)
 이러한 사실은 다니엘 8:14이 하늘 성소의 속죄일과 아무 관련이 없음을 의미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러나 그 둘 사이의 연결은 그저 겉보기로 다니엘와 레위기에 정결하게 되다정결하게 하다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보다는 더 미묘하다. 나는 이제부터, 다니엘 8:14이 하늘 성소의 속죄일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내가 보기에는 가장 강력한 증거를 소개함으로써 그 둘 사이의 연결에 대한 논증을 제시하려고 한다. (252.2)
 레위기, 다니엘, 그리고 신정론
 바로 앞의 장에서 신정론“하나님이 악의 존재를 허용하는 것이 정당함을 옹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자연 신학의 한 체계”2)라고 사전에서 정의하는 것을 나는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어서 나는, 단순히 선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악이 존재하도록 허락하실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으로만 신정론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였다. 만약 하나님이 참으로 선하시다면, 그분이 참으로 전능하시다면, 그리고 그분이 참으로 인간들을 사랑하신다면, 그분의 궁극적인 목적은 악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즉 끝내시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대쟁투의 주제이며,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야말로 속죄일과 다니엘 8:14 사이의 연관성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252.3)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의 삶에서 악을 제거하시려는 계획의 상징적인 축소도(縮小圖)이다. 연중 매일,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의 동물 희생을 성소로 가지고 왔으며, 그렇게 할 때마다 그들에게서는 자신의 죄가 제거되고 용서를 받았다. 이 죄들은 의식적으로 성소로 이동되었으며, 거기서 하나님은 한시적으로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떠맡으셨다. 하지만 속죄일이 오면, 지난 한 해 동안 쌓인 죄들이 성소에서 도말되고 이스라엘 진영으로부터 영원히 제거되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주에서 악을 제거하시는 계획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었다. (253.1)
 다니엘 7장은 한 작은 뿔이 하나님, 그분의 율법, 그리고 그분의 백성을 공격하는 것을 보여준다. 8장은 한 작은 뿔이 하나님의 백성과 그분의 성소, 그곳의 봉사 그리고 그분의 대제사장(군대의 주재)을 공격하는 것을 보여준다. 두 장에서 공히 악의 세력은 세상에서 살아있고, 건재하고, 활동적이며, 하나님은 그것이 한동안 그렇게 지내는 것을 허용하신다. 하지만 두 장에서 모두, 악의 문제는 결국 해결된다. 7장에서는 하늘에서 심판이 열리며, 하나님의 백성은 신원(申案)을 받고 영생을 얻는 한편, 짐승 권력과 그 작은 뿔은 정죄를 받고 불로 멸망당한다. 그 후 하나님의 나라는 인자와 그분의 성도에게 넘겨진다. 8장에서는 악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공격 아래 있던 거룩한 것들, 즉 성소, 그곳의 봉사 그곳의 대제사장 그리고 백성에 대한 정결 또는 “옹호”로나타난다. (253.2)
 그러니까 레위기와 다니엘 둘 다, 우주에서 악을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하지만 그 접근 방법은 서로 상당히 다르다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악을 어떻게 취급하시는지 우리에게 말해주기 위하여 종교적인 의식을 사용하는 한편, 다니엘는 묵시적인 예언을 통하여 그렇게한다. 그러나 레위기와 다니엘에서 모두 최종적인 결과는 동일하다. 악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요점은, 속죄일과 다니엘 7-8장이 둘 다 악을 제거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둘이 어느 모로든지 연관되어 있음을 기대할 만하다는 것이다. 다니엘에 속죄일이 반영되어 있다고 하여 놀랄 것이 없다. (253.3)
 다니엘 7장8장에서 속죄일이 드러나는 증거를 찾기 위하여 다니엘를 상세하게 검토해 보자. (254.1)
 다니엘 7장에 나타난 속죄일
 얼핏 보기에는 옛적부터 계신 이가 그분의 보좌에 앉아계신 다니엘 7장의 환상을 보고, 속죄일은 고사하고 성소 장면으로 이해하는 것만도 너무 과장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래의 분석을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 (254.2)
 먼저,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께서 그분의 보좌에 앉아계신 장면은 성소 장면이다. 왜냐하면, 구약 기자들에 따르면 하나님의 보좌는 그분의 성전, 즉 그분의 성소 안에 자라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사야는 “주[여호와]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았다(사 6:1;강조는 첨가된 것임). 또한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시 11:4; 강조는 첨가된 것임)라고 말하였다. 이 본문은 둘 다 하나님의 보좌가 성소에, 하늘에 있는 그분의 성전 안에 위치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254.3)
 요한계시록도 동일한 개념을 분명히 보여준다. 4장에서 요한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실을 본 것에 대하여 기록하는데, 그 중에서 그는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5절)고 말한다. 이 일곱 등불은 므노라(지상 성소 안에 있던, 가지가 일곱인 등대)에 해당되는 하늘 성소의 기물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이 일곱 등불은 “보좌 앞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 성소에 있는 것이다. (254.4)
 요한계시록 8장에서도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 성전 안에 자리 잡고 있다. 3절에, 금향로를 든 한 천사가 단 앞에 서 있다. 이것은 분명히 향단(香壇)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가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향단이 있다는 것은 지금 이것이 성소의 장면임을 나타내는 분명한 증거이며, 요한계시록은이 향단이 “보좌 앞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가 하늘 성소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255.1)
 하나님의 가시적인 임재가 시은좌 위 두 그룹 사이에 나타났기 때문에 지상 성소의 언약궤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표상이라는 이해를 재림교회는 늘 고수해왔다. 하나님의 보좌가 그분의 성전, 하늘 성소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이러한 견해는 우리가 조금 전에 검토한 증거에 의하여 뒷받침된다. 그러므로 다니엘 7장옛적부터 계신 이가 그분의 보좌에 앉아계신 환상은 우리를 하늘 성소의 지성소 안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히브리 종교력에서 1년 중 지성소에서 거행되는 유일한 의식은 속죄일뿐이므로, 다니엘 7장의 하나님의 보좌 환상은 지상의 속죄일에 대응하는 하늘의 장면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우리는 고려해 보아야 한다. (255.2)
 물론 구약에 있는 하늘 성소의 하나님 보좌에 대한 언급이 모두 속죄일과 관련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예컨대, 하나님이 그분의 성전 안에 있는 보좌에 앉아계신 이사아의 환상을 속죄일 장면으로 이해하도록 시사하는 점이 있는지, 나는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다니엘 7장에 나오는, 보좌에 앉은 옛적부터 계신 이의 환상에는 이것이 실제로 그러한 장면이라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 (255.3)
 1. 그것이 발생하는 시점.
 첫째는 그 환상이 세상 역사의 끝,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세워지기 직전에 일어나는 일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앞 장에서, 이스라엘의 종교력으로 한 해의 끝에 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속죄일에 강력한 종말론적 의미가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세워지기 직전, 세상 역사의 끝에, 하늘 성소에서 옛적부터 계신 이가 그분의 보좌에 앉아계신 다니엘의 환상은 분명히 종말론적이다. 따라서 그 장면은 세상 역사 중 하늘의 속죄일 장면에 걸맞은 시점에 일어나는 것이다. (2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