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5 부 내 제사장이신 예수님과 함께 (죄와의 교제 관계로부터의 해방) 26· 제사장의 기름부음 (나의 모든 힘은 그리스도의 것임)
 모세는 하나님이 고안하신 관유가 든 금그릇을 취하여 아론의 머리에 그 향유를 부었다. 이 풍부한 기름 줄기들은 아론의 머리를 타고 내려와 그의 의복의 가장자리로 흘러 땅에 떨어졌다(레 8:12; 출 28:41; 29:7, 29, 30; 30:25, 31; 31:11; 40:12, 13; 참고, 레 21:1). 랍비들이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이 신성한 기름은 그의 이마에 부어졌을 뿐만 아니라 희랍어의 크시(chi) 혹은 X자 모양으로 그의 이마에 발랐다(Alfred Edersheim, The Temple 98). 이 기름으로 그려진 십자가는 “하나님의 위임한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라” 라고 하는 성경의 말씀을 확실하게 하여 주었다(레 21:12; 참고, 출 29:7). 대제사장은 이제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이러한 성스러운 예식은 승천하신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자신의 봉사를 위하여 대제사장직에 취임할 것을 예견하였다(시 133:1~3). (330.1)
 히브리어 단어 수크(suk)는 간단한 화장용 기름을 바르는 것을 묘사한다(신 28:40; 룻 3:3). 다른 단어 마르샤크(marshak)는 거의 전적으로 영적 의미로 쓰여서, 수크(suk)의 의미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마르사크라고 하는 이 말은 메시야(Messiah)라고 하는 용어를 파생시켰는데, 이 용어는 이제 특별히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예수를 가리킨다. 좁은 의미로서는 예수의 “왕 같은 제사장들”도 성령의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예수께서는 제사장으로서 특별한 제물을 바쳤다. 그분께서는 십자가를 향하여 가는 도중에 아버지에게 그의 노래—“찬미의 제사”(마 26:30; 히 13:15), 그분의 몸—물질의 제사(히 13:1), 그분의 에너지—봉사의 제사(롬 15:16), 그리고 그분의 생명—그분 자신을 드리는 제사(롬 12:1; 빌 2:8)를 바쳤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같은 제사장들로서 예수가 드린 것 못지않은 제물을 드려야 한다(벧전 2:9; 참고, 벧전 2:5). 영원하신 성령님이여,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를 닮게 하소서. (330.2)
 제사장과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예수
 또한 이 도유 의식이 영원한 제사장이자 왕이신 그리스도의 즉위식이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예수께서 예언자, 주권자, 그리고 제사장으로 대표되는 세가지 직분의 체현으로서 영원한 보좌에 앉으신 후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오순절에 지상에서 기다리는 자신의 아들과 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대관식이 완결된다는 신호를 보내주셨다(사도행적, 39). (330.3)
 아론이 시내산 기슭에서 대제사장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곧 바로 그의 아들들을 도유함으로써 이 기름 부음 사건이 이것을 예견하였다. (331.1)
 바울은 예수께서 왕으로 제사장적인 기름 부음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사실 바울은 “왕에 대하여”(시 45:1)라고 하는 시편 기자의 말을 예수께 특별히 적용하였다. 그리고 나서 예수의 성육신과 부활을 묘사하고, 그분이 승천하였을 때 하늘 아버지와 천군 천사들이 영광스럽게 받아들인 것을 찬양하였다(히 1:5~7). 그 다음에 그는 구세주께서 하나님의 보좌에 왕으로 즉위하였고, 곧 바로 이는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라고 하는 하늘 아버지의 확정적인 선포가 뒤따랐다고 하였다(히 1:8, 9; 참고, 시 45:7). 이제 다시 시내산에 있었던 성막의 뜰로 되돌아 가보자. (331.2)
 아론의 아들들을 성별함
 그 다음에 모세는 자신이 목욕시키고, 네 벌의 세마포 제사장복들로 옷입힌 아론의 아들들(레 8:13, 30; 출 28:40~44; 29:8, 9; 40:12~16)의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성별하였다. 이 예식은 하나님께서 하늘 왕의 자녀들, 곧 지상의 교회를 위하여 세우신 계획을 가리켜 주고 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나는 나를 하나님의 “왕들과 제사장들”로 따로 구별하는, 이러한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았는가? (331.3)
 이미 연구하였던 향기름 성분에 관한 요점들을 재검토하여 보자.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감미로운 향료들”을 섞어 만든, 이 관유의 세부사항들에는 어떠한 의미가 감추어져 있는가? “향료들”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에 “감미로운 냄새를 내다”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향료들은 공기에 감미로운 향기를 발한다(출 30:22~33). 오로지 “주요 향료들”만이 그 희귀하고 가장 순도 높은 양질을 감람나무의 기름에 첨가하였다. 시편 기자는 왕—제사장인 자의 승귀와 도유에 관한 자신의 예언적인 기술을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으로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시 45:1~8). 시편 기자는 이러한 향기를 내는 관유를 암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의로운 삶과 친절한 행위의 옷들은 여호와의 동산과 같이 향기롭다. (331.4)
 우리는 이 값비싼 향유가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들의 주변을 그 진한 감미로움으로 감싸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거기 있는 향유의 임재에 마음이 끌린다. 이러한 감미로움은 우리의 감각을 돌이켜서 예수의 향기로운 품성에 향하게 한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품성이라는 이 향유로 자신의 백성을 다른 차원의 예배로 인도한다. 그들의 눈은 금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왕—제사장의 영광을 보아왔다. 그들의 귀는 무죄한 희생 제물들의 죽어가는 신음 소리를 들어왔으며, 그들의 마음은 이러한 희생자들이 당하는 고통으로 아픔을 당하여 왔다. (331.5)
 이런 경험은 레위 지파의 성가대로 하여금 그들이 하늘의 것을 깊이 생각함에 따라 귀로 들은 그 찬양의 송가들을 감격에 차 부르게 하였다. 그들의 혀는 원수의 목전에서 베풀어진 빵과 포도즙을 맛보아 왔다. (332.1)
 그리고 그들의 후각은 신랑—제사장의 예복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훈훈하고 가장 감미로운 향유들의 냄새를 맡았다. 신부가 이 환상적이고, 불가시적이고, 만져볼 수 없고, 심오하고, 신비스럽고, 상쾌하고, 이 향유를 바른 자가 보이지 않을 때에조차도 맡을 수 있는 향기에 대하여서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 신부는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며, 하나님도 말로서 표현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신부의 생각은 매우 개인적인 다른 영역에 속하여 있다. 예배드리는 각 사람이 자신의 마음의 성소에서, 향기나는 구세주—제사장이 예배자 자신에게 의미하는 바를 독특하고 개인적으로 인식하는 가운데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이 향료들을 다시 재검토하여 보자. (332.2)
 이 향료들의 의미
 몰약은 예수께서 자발적으로 바친 자신의 희생 제사의 쓴 향내를, 육계는 만물을 소멸할 정도인 그분의 열정에 관하여 속삭여 준다. 몰약과 육계는, 예수의 온화한 사랑을 뜻하는 창포와, 그분의 심오한 겸손을 나타내는 계피와 결합하여, 익은 감람열매에서 짜낸 기름과 완벽한 비율로 합하여졌다. 이 상징물은 항상 그분의 치유와 조명하는 권능 가운데 역사하는 성령을 노래하며, 각처에 충만한 일치의 띠로서, 진한 향료들을 부드럽게 용해시킨다. (332.3)
 이 향기름은 이제까지 만들어진 것들 가운데서 가장 향기롭고, 신성하였으며, 대제사장이라는 사람과 그의 의복에 부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사역에 의하여 이 세상에 오신 예수의 인성을 가리켰다. 대제사장이 입은 의와 봉사의 예복은 그 위에 향유를 뿌림으로써 그 의미가 더욱더 고양되었다. 그 예복의 은은한 향기, 즉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고, 심오한 향기는 예배자들의 생각을 다른 차원으로 이끌었다. 그 상쾌하고 사랑스러운 향기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느껴지고 에워싸, 보이지 않는 그들의 대제사장이 행하시는 사역을 상기시켜 주었다. (332.4)
 그리스도의 흰 세마포의 의복은 그분의 거룩한 품성을 나타내며, 그분의 금색 예복은 그분이 행하시는 사역의 영광을 묘사한다. 이 두 예복은 예수의 인격의 아름다움과 예수의 생애가 보여주는 긍휼을 묘사한다. 예수께서는 자신보다 먼저 살았던 그 누구보다도 “더 아름다운 직분”을 맡고 계시다(히 8:6). 예수의 봉사가 “더 나은” 이유는 그분이 자신에 앞서 일하였던 사람들보다도 더 신실하기 때문이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히 3:1~6). 예수의 염려가 “더 나은” 까닭은 그 염려가 결코 피상적이지 않고, 그분께서 영원히 사시기 때문이다(히 7:17). 정의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예수의 자비가 “더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이 재판하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신 재판관이기 때문이다(요 3:17; 고후 3:6). 영원한 성령님이시여, 우리들을 가르쳐 예수를 더욱 사랑하게 하옵소서. (332.5)
 죽음을 통한 헌신
 여호와께서는 의식 진행 과정의 이 시점에서 세 종류의 희생 제사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하여 바쳐질 것을 요구하였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이 예식에 참가하여, 모두 무죄한 희생물의 머리에 손을 놓아 자신들의 죄를 이 희생물에게 전가하도록 되어 있었다(레 8:14). 물론, 이 동물들의 피는 구주의 피를 의미하였는데, 이 피는 필수적으로 하늘 성소 예식이 개시되기 전에 흘려져야만 하였다. (333.1)
 첫째 제물은 속죄제로 바치는 황소이었다. 제사장들을 위한 다른 모든 속죄 제물들과 더불어, 그 소의 피는 금제단에 있는 네 개의 뿔 위에 뿌려졌다(참고, 레 4:3~12). 모세는 성소에서 손가락으로 피를 뿌림으로 이 일을 행하였으며, 그리고 나서 나머지 피를 놋제단의 아랫부분에 부었다. “손가락”은 언제나 성령의 특별한 봉사를 상징한다. 이 제단은 갈바리 십자가의 상징이며, 이 의식은 제사장들의 죄를 씻을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사용되지 않았던 제단을 그 행할 봉사를 위하여 거룩하게 하였다. 피를 제단의 기초에 부었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제단 위에 놓인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화목을 이룰 수가 있었다(레 8:15). 소의 기름은 제단 위에서 번제로 드려졌고, 소의 내장과 변과 가죽을 포함하여 몸 전체는 성막의 바깥에서 재로 화하여졌다(레 8:18; 참고, 히 13:11, 12). (333.2)
 이 속죄제는 갈바리에서 세상 죄를 위하여 자신을 바친 예수의 죽음을 상징하였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그 날 아침에 하늘 성소에서 자신의 피를 아버지에게 바쳤을 때 그분의 속죄의 희생이 가납되어졌으니,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히 1:6; 참고, 시대의 소망, 790). 이 선포를 통하여, 타락한 세상을 위한 제사장과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의 중보는 정당성을 인정 받게 되며,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기 위하여 하늘 성소의 봉헌식만을 기다리었다. 이 속죄 제물은 특별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한 것이지만, 또한 “백성을 위하여 속”하였고(레 9:7), 그리스도의 만사를 포괄하는 죽음을 가리켰다. (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