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부 록 F. A.D. 2세기에 있어서 “주의 날”
 A.D. 3세기에 이르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주의 날”이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한 종교적 집회로 모이는 주간의 일요일이란 인식이 일반화되었다. 2세기초의 어떤 자료들에 등장하는 “주의 날”이 일요일을 뜻한다는 주장들이 자주 제기되어 온 것이 사실이지만 교부(敎父)자료에서 일요일을 “주의 날”로 지칭한 분명한 증거는 2세기 말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타나고 있다. (332.1)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와 이레나이누스(Irenaeus)
 아직도 현존하고 있는 자신의 저술에서 주간의 일요일을 “주의 날”로 호칭한 최초의 교부(Church Father, 敎父)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였다. 자신의 신학적인 논의에서 알레고리적인 설명을 많이 했던 클레멘트는 A.D. 190년경에 자신보다 5세기 반전에 활동했던 플라톤이 일요일에 대해 예언적으로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즉 플라톤이 그의「공화국」(Republic)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일요일에 대해 말했다는 것이다. 즉 “초원에 있는 그들 각 사람에 이제 일곱날이 지나갔으며, 그들은 제8일에(여행을) 출발하여 4일안에 도착한다”고 하였다는 것이다.1 (332.2)
 분명히 그리스도인의 일요일이나 기독교 자체가 5세기 반 전의 플라톤에게는 전혀 생각밖의 대상이었다. 플라톤이 그리스도인의 일요일 준수를 예언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플라톤이 그리스도인의 일요일 준수를 예언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클레멘트가 자신의 글에서 주간의 일요일을 “주의 날”로 지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32.3)
 이 때보다 약간 더 이른 시기인 A.D. 180년이나 185년경에 갈리아의 감독인 이레나이우스(Irenaeus)가 “주의 날”을 언급했으나 이 때 그가 “주의 날”이란 호칭으로 뜻한 것은 주간의 일요일이 아니라 부활절 일요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이레나이우스의 언급이다. “일요일에 무릎을 꿇지 않는 이 관습은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케 하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지금의 이 관습은 사도 시대에 비롯하였는데 리옹(Lyons)의 감독이며 순교자인 복받은 이레나이우스(Irenaeus)가 오순절에 대해서도 언급한「부활절에 관하여」(on Easter)란 논문에서 주장하였다. 즉 오순절에도 우리는 무릎을 꿇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오순절도 앞에서 이미 주장했듯이 ‘주의 날’과 대등한 중요성을 가진 날이기 때문이라 하였다.”2 (332.4)
 「니케아 이전 교부들의 전집」(Ante-Nicene Fathers:니케아 공회의 이전에 활약한 교부들의 저술들을 모아 편찬한 전집:역자주)의 편집자들이 관찰한 바와 같이 이레나이우스가 “주의 날”로 지칭한 날은 부활절이었다.3 즉 이레나이우스는 두 개의 연례적인 기념일인 부활절과 오순절에게 대등한 중요성을 부여하여 두 날에는 무릎을 꿇지 말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333.1)
 몇 가지 경외서 자료들
 2세기 중엽의 기록으로 보이는 일부 경외서 기록에서도 “주의 날”이란 호칭이 나타나고 있으나 이 호칭이 주간의 일요일을 뜻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 한 예로서 「베드로의 복음」(Gospel of Peter)은 두 차례에 걸쳐 “주의 날”에 그리스도의 부활이 발생했다고 하였다.4 그리고「사도들의 서한」(Epistle of the Apostles)은 “주의 날”“오그도드”(Ogdoad:8, 또는 8개로 된 1조)로 언급하였다.5 「요한의 행적」(Act of John)에는 토요일을 지칭하여 “주의 날”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 같은 언급이 나타나고 있다.6 (333.2)
 그러나「베드로의 행적」(Act of Peter)은 주간의 일요일을 지칭하여 “주의 날”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 같은 언급이 나타나고 있다.7 「베드로의 행적」과「요한의 행적」에서 “주의 날”을 언급한 연대는 2세기 후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33.3)
 알렉산드리아의 바라나바스와 로마의 유스티 노스 마르튀르
 알렉산드리 아의 바르나바스(Barnabas of Alexandria. ©A.D. 130)와 로마의 유스티노스 마르튀르(Justin Martyr in Rome ©A.D. 150)가 매 주간의 일요일을 “주의 날”로 호칭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8 사실을 말한다면 이 두 교부들은 모두 현존하는 자신들의 글에서 “주의 날”이란 용어를 사용한 일이 없고 그 대신에 주간의 첫째날을 지칭하여 “제 8일”“일요일”이란 용어로 사용했다.9 (333.4)
 따라서 이 두 교부의 시대와 그들의 고장에서 일요일이 주의 날로 호칭되었다는 증거로 이 두 교부를 내세워서는 안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두 교부가 “주의 날”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것을 그들이 일요일을 “주의 날”로 호칭하는 일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증거로 삼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이 일요일을 “주의 날”로 호칭하고 있는 실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해도 그들이 “주의 날”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 없는 문맥에서 일요일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르나바스는 대단히 알리고리적이며 종말론적인 토론에서 “제 8일”이란 용어를 쓰고 있으며 유스티노스는 로마황제와 원로원을 향하여 기독교를 변호하는 그의 변론에서 “일요일”이란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만약 그가 로마 황제와 원로원에게 보내는 자신의 이 변증서에서 “주의 날”이란 표현을 사용했다면 기독교에 대하여 상당한 오해를 야기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주의 날”이 로마 제국의 “황제의 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스티노스는 유대인 랍비와의 토론에서 “제 8일”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여기서도 그가 이 용어를 선택한 이유가 분명해 지고 있다).10 그러므로 간단히 말해서 바르나바스나 유스티노스가 일요일을 “주의 날”로 알고 있었느냐 모르고 있었느냐 하는 토론은 무의미하다. 어느 쪽으로도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333.5)
 이제는 일요일이 주의 날이었다는 증거로 자주 제시되고 있는 세개의 초기 자료들을 살펴보고자 한다.「디다케」(Didache:12사도의 교훈)와「마그네시아 사람들에게 보내는 이그나시우스의 서한」(Ignatius’ letter to the Magnesians)과「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내는 플리니 우스의 서 한」(Pliny’s letter to Trajan) 이 그것들이다. (334.1)
 디다케 제 14장
 일종의 침례요람이며 교회조직이나 교훈을 위한 편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디다케」는 1세기 말에서 2세기 말까지의 어느 시점으로 그 편찬 연대가 추정되고 있으나 근래에 와서는「디다케」의 대부분의 내용들을 미루어 볼 때 그 편찬 연대가 상당히 앞쪽으로 당겨질 것으로 학자들의 의견이 기울어지고 있다. 최초에 이 문서는 시리아에서 편찬되었던 것 같다.11 (334.2)
 「디다케」의 제 14장에 나타나고있는 흥미있는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카타 쿠리아케엔 데 쿠리우 수낙스텐테스 클라스테 아르톤 카이 에욱사리스테사테”(kata Kuriakn de kuriou sunaxthentes klasate arton Kai euxaristesate).—번역하면 “주님의 주님의 것에(on the Lord’s of the Lord)〔또는 주님의 주님의 것에 따라(Accordung to the Lord’s of the Lord)〕함께 모여 떡을 떼고 성찬식을 가진다.”12 “주님의 주님의 날”이라고 기록되었으면 독자들의 이해가 더 쉬울터인데 이 본문에는 “날”이라는 단어(희랍어 대격 단어 “헤메란”)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어 번역가들은 “날”이란 단어를 추가시켜 “주님의 날에∙∙∙”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희랍어 본문을 “주님의 계명에 따라”로 번역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13 사무엘레 바키오키는 존 밥티스테 티바우트(John Baptistte Thibaut)의 번역을 따라,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증거에 기초하여 “주님의 ∙∙∙주권적인 교리에 따라”라고 번역하였다.14 (334.3)
 여러 해 전에 영국의 저명한 학자 C.W. 더그모어(C.W. Digmore)는「디다케」의 “주의 날”은 주간의 일요일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연례적인 부활절 일요일을 지칭한다는 주장을 내 놓았다. 더그모어는 신약 성경과 속사도들의 문서들에 그리스도인들이 기념하는 주간의 일요일에 대한 언급이 매우 적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만약 주간의 일요일이 진실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면 2세기 중엽의 유스티노스 마르튀르가 언급할 때까지 신약성경이나 교부들의 문서에 일요일을 그리스도인의 예배일로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상한 일로 생각했다.15 (334.4)
 로런스 티. 케라티(Lawrence T. Geraty)는「디다케」의 이 본문의 뜻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의심할 나위없이 유월절이 연례적인 주의 날 축제로 기념되었다는 것을 암시 하는 최초의 자료의 하나가 고대의 침 례교본 또는 교회 조직 교본이 라 할 수 있는「디다케」안에 있는 ‘주의 날’이다. ‘카타 쿠리아케엔 데 수낙스텐테스’에 근거한 이 번역이 논란을 빚어 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다른 번역들 보다 나은 번역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 문맥에 비추어 볼때 이 날은 침례와 성찬을 기념하기 위한 연례적인 일요일 가능성을 시시하고 있다.”16 (335.1)
 게라티는 19세기에 제이. 렌델 하리스(J. Rendel Harris)가「디다케」의 “주의 날”이 문맥상 대속죄일같은 좀 더 큰 연례적인 축제일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었던 사실을 주목하고 더그모어가「디다케」와 「사도헌법」(Apostolic Constitution)에 있는 유사한 본문을 분석한 후에 쿠리아케에가 부활절의 날을 뜻하는 기술적인 용어라고 주장한 것은 근거 있는 것이라고 뒷받침하였다. (335.2)
 또 “주의 날”이 일반적으로 매 주간의 첫째날을 뜻하는 용어로 인식되게 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을 정규적인 예배일로, 그리고 부활을 주간 단위로 기념하기 시작한 이후에나 가능했을 것이라고 하였다.17 (3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