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전 조사심판의 성경적 기초 조사심판과 성소 제20장 속죄일 그리고 죄의 문제
 이스라엘 성소 봉사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성소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으로부터도 죄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죄의 제거는 두 단계의 과정이었다. 첫 단계는 연중 항상 계속되었다 백성이 그들의 희생 제물을 성소로 가지고 올 때 그들의 죄는 그들 자신으로부터 제거되어(킵푸르) 성소로, 즉 하나님께로 옮겨졌다. 이 의식의 결과로 백성은 용서를 받았다. 하지만 그 죄의 책임이 실제로 하나님에게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속죄의 둘째 단계가 속죄일에 수행되었고, 1년 동안 성소에 쌓였던 용서받은 죄들이 그 날에 성소에서 씻어졌다. 그 결과로 백성들 자신이 추가적인 형태의 속죄를 경험하였다. 그 때문에 레위기는 “이 날에 [제사장이] 너희 [즉 백성] 위하여 속죄[킵푸르]하”(30절; 강조는 첨가된 것임)리라고 말한다. (239.2)
 하지만 연중 내내 있던 속죄와 속죄일에 있었던 속죄 사이에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매일 봉사에서의 속죄만 용서를 베풀었다. 용서라는 낱말이 레위기 16장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으며, 속죄일의 의식을 묘사하는 다른 어느 구절에도 그 단어는 나타나지 않는다(참조 레 23:26-32;민29:7-11). 둘째, 속죄일에 발생하는 속죄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이었다. 모든 백성의 모든 죄가 한꺼번에 성소에서 제거되었다. 반역적인 이스라엘 백성의 페샤 죄까지도 그 날에는 성소로부터 속죄되었다. 하지만 이 속죄가 이러한 페샤 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용서를 제공한 것은 아니다. 앞에 언급하였듯이 속죄일에 대한 어떠한 묘사에도 용서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239.3)
 4. 백성의 정결.
 앞에서 우리는 속죄일에 성소로부터 죄가 씻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 의식의 결과로 백성들 자신도 그들의 죄가 씻겼다고 레위기는 말한다.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30절; 강조는 첨가된 것임). “깨끗하게 하다”“깨끗하다”를 뜻하는 히브리말은 타헤르(taher)로서, 레위기에서 속죄일에 성소가 죄에서 정결하게 되었다고 말할 때 사용한 바로 그 단어이다. 이제 그 말이 백성을 정결하게 하는 것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된다. (240.1)
 1년 내내 백성의 죄들은 개인적으로 그들로부터 제거되고(킵푸르) 그들은 용서를 받았다. 그러나 아직 이 죄들로부터 깨끗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타헤르, “깨끗하게 하다”라는 단어는 백성의 도덕적인 과실을 속죄하는 것과 관련된 매일의 제사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속죄일의 의식에서는 죄의 용서가 베풀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속죄일에 이루어지는 정결(타헤르)은 집단적인 것이었다. 물론 백성은 개인적으로 자신이 죄에서 정결하게 되었다고 여길 수 있었으나, 정결 의식은 모든 사람 각각을 위하여 동시에 거행되었다. (240.2)
 그러니까 속죄일의 목적은 성소로부터 최종적, 집단적으로 죄를 제거(킵푸르)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속죄의 결과는 성소와 백성을 둘 다 정결(타헤르)하게 하는 것이었다. (240.3)
 5. 진영에서 죄를 제거함.
 속죄일의 최종 목적은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성소와 백성 뿐 아니라 진영(陣營)에서 영구히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를 성취하는 것은 아사셀 염소의 의식이었다. 대제사장은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한 후에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아원]와 그 범한 모든 죄[페샤]를 아뢰고 그 죄[핫타트]를 염소의 머리에 두”(21절)도록 하였다고 레위기는 구체적으로 말한다. 죄를 가리키는 세 개의 히브리 단어가 모두 이 본문에 나오는 것을 주목하라. 그해 동안 핫타트아원 죄들은 백성의 정결 제사를 통하여 성소안으로 옮겨졌고, 반역적인 이스라엘 사람의 페샤 죄는 그 죄가 저질러진 시점에 즉시 성소로 갔다(19장 참조). 이 모든 죄들이 속죄일에 성소에서 제거(킵푸르)되어 염소 위에 놓였고, 그러면 그 염소는 그 유독(有毒)한 짐을 진영으로부터 가지고 떠나갔다. 1년 내내 성소 안으로 죄가 옮겨진 것은 레위기에 그렇게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성소로부터 밖으로 나간 것은 매우 명백하게 기술되어 있다. (240.4)
 아사셀 염소 의식
 속죄일 행사 중 매우 중대한 부분이 바로 아사셀 염소의 의식이었으며, 그로써 백성의 죄는 이스라엘 자손의 진영으로부터 영구히 제거되었다. 영어 성경의 스케이프고트(scapegoat)라는 말은 히브리어 아사셀(azazel)을 번역한 것이다. 일부 번역가들과 주석가들은 아사셀을 하나의 합성어로 생각하는데, 히브리어 아즈(az)는 “염소”를 뜻하고, 아젤(azel)은 “가버리다”를 뜻하므로, “탈출하는 염소” 또는 “희생양”(scapegoat)이 되는 것이다.4)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틀린 말일 것이며, 이제 그것을 설명해 드리겠다(원문에 scapegoat라는 단어가 나올 때, 본 번역에서는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처음부터 “희생양”이라는 말 대신에 “아사셀 염소”로 옮겼다.-역자 주). (241.1)
 아사셀 염소의 원형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단히 논란이 많다. 어떤 주석가들은 아사셀 염소가 그리스도를 나타낸다고 이해한다.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러한 결론에 대하여 적어도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241.2)
• 두 염소 모두 대다수 영어 번역본에서 속죄제(soin offering)로 불린다(5절 참조. 산 염소는 하나님께 바친 제물이 아니므로 “정결 의식”(purification ritual)이 더 적절한 번역이다).
• 두 염소 모두 그것에 의해서 속죄(atonement)가 이루어졌다(여호외를 위한 염소에 대해서는 15,16절; 아사셀 염소에 대해서는 10절 참조).
• 아사셀 염소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를 “그 위에 지고 ∙∙∙ 접근하기 어려운 땅”으로 가게 되었다(22절; 강조는 첨가된 것임).
(242.1)
 물론 속죄제가 되는 것이나 죄를 지고 가는 것이나 모두 구원의 경륜 속에 그리스도께서 맡은 역할의 일부였다. 이 때문에 어떤 주석가들은 아사셀 염소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의 일면을 나타낸다고 결론을 내린다. (242.2)
 하지만 다른 주석가들은 아사셀 염소를 사탄이라고 해석하였다. 우리 역사 대대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후자의 견해를 취하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해석에 대하여 비평가들로부터 가혹한 비난을 견뎌왔다. 그들은 그렇게 해석하면 사탄이 죄에 대한 우리의 속죄 제물 우리의 죄를 지고 가는 이가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에 대한 최근의 비평가 중 하나인 데일 라츨라프(Dale Ratzlaff)는 전에 재림교회 목회자이며 고등학교의 성경교사였는데, 지금은 한 선교기관을 운영하면서 재림교회의 일부 가르침들을 반대하는 데 몰두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재림신앙으로 부터 끌어내려고 애쓴다. 그가 만드는〈프로클러메이션〉(Proclamation!)이라는 간행물에서 라츨라프는 “어떤 사람들은 아사셀 염소가 사탄을 나타낸다고 가르친다. 철저한 연구를 하고 나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신성모독의 절정이라고 느낀다.”5)라고 썼다. (242.3)
 그러면, 아사셀 염소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가? 아니면 사탄을 나타내는가? 나에게 가장 타당해 보이는 대답은, 그것이 사탄을 나타낸다는 것이 진리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둘 다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왜 그런지 설명하겠다. (243.1)
 몇 단락 앞에서 나는 영어 낱말 “스케이프고트”가 히브리어 아사셀의 번역이며, 일부 해석자들은 그것을 합성어로 여긴다고 언급하였다. 더 개연성이 있어 보이는 주장은 아사셀이 본래 하나의 단어이며, 염소가 아닌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다. 8절에서 대제사장이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강조는 첨가된 것임)라고 한 것을 보면 분명하다. 두 염소 중 하나는 야훼(여호와)를 위하고, 다시 말해서 그분에게 소용이 있다는 것이다. 야훼는 인격성이 있는 존재이신 것이 분명하므로, 아사셀도 역시 어떤 인격적 존재(아사셀)이고 염소는 그를 위하여 지명되었다, 즉 그(아사셀)에게 소용이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논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 염소 자체가 아사셀은 아니다. 그것은 아사셀을 위한 염소이다. (243.2)
 그러면 아사셀이란 누구? 또는 무엇인가? 그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유일하게 레위기 16장에만 나오며, 레위기는 아사셀이 누구 또는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레위기는 분명히 우리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Gane자신의 책 Cult and Character, 251에서 “아사셀의 성격의 본질은 레위기에 나타나지 않는데, 아마도 사람들이 그를 숭배할 유혹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243.3)
 연중 내내, 어떤 이스라엘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는 자신의 희생 제물을 성소로 가지고 와서 그것을 잡았고, 제사장은 적합한 의식을 거행하였다. 나는 앞의 19장에서 이 의식이 그 사람의 죄를 그 자신으로부터 짐승에게로, 그리고 짐승으로부터 성소로 옮겼다고 말하였다. 죄가 성소로 옮겨진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것에 대한 책임을 떠맡으셨음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하나님의 죄가 아니었다. 그분은 단지 한시적으로 그것에 대한 책임을 맡으셨을 뿐이다. (243.4)
 그 후 속죄일이 되면 지난 해 동안 성소에 쌓여 있던 모든 죄가 제거되었다. 성소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도 그러하였다. 이 죄들이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게 지워졌고, 그 염소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만큼 멀리 광야로 쫓겨났다. 그 염소가 아사셀을 위하여 지명되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아사셀에게로 배달하는 목적으로 광야에 보내졌음을 시사한다. 바꿔 말하면, 이 죄들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과 그분의 성소로부터 제거되어 아사셀에게로 운반되었다는 것이다. (244.1)
 그러면 아사셀은 누구인가? 게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2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