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들어 온 후로 죄인들을 변화시키고 그들 안에 창조될 당시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사역에서 하나님의 창조 능력의 또 다른 측면이 계시되었다(고후 5:17; 갈 6:15; 엡 4:24). 구속 사역에는 ‘무로부터’(엑스 니힐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거역하는 것에서부터 구원을 이뤄내기 위해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요구된다. 구원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창조 능력은 물리적 세계의 원래 창조에서 그분의 능력이 작동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행사되진 않는다. 이 두 국면을 동일하게 보면, 상호 관련된 성경적 개념, 곧 인간사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는 역사적 개념(참조 IV. E)과 구원의 과정에 관련된 인간의 자유 의지(IV. A)가 배제된다.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따르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칭의와 성화 교리에 대한 해석에도 왜곡이 생긴다. (149.4)
 세계 역사와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창조에 기초하여 시작하고 계속될 뿐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와 더불어 끝마친다(사 65:17; 참조 계 21:1-5). (149.5)
 D. 역사적 임재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에 임재하신 것을 그분 및 그분의 백성들과의 역사적인 거주로 본다. 이사야는 야훼께서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한”다(사 57:15)고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임재를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내재”(immanence)라고 일컫는다. “내재”라는 말은 기본적으로본질적인 어떤 것, 다른 객체나 실재 안에 내주(內住)하거나 존재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내재를 지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계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세계에 거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범신론”(pantheism)으로 해석해 왔는데, 범신론은 만물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상 좀 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만물이 하나님 “속에” 있다는 범재신론(panentheism)을 가리킨다. 범신론이나 범재신론은 모두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이 창조한 실재 사이에 전면적인 차이를 세우는 성경의 창조 교리를 무시한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내재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하나님 자신이 직접 천연계 속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되어 왔다. (150.1)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와 관련을 맺고 있다. 예컨대, 하나님은 그분의 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천연계와 인간 존재의 창조자(창 1:1-2:25; 계 14:7)요 유지자(행 17:25; 히 1:3)가 됨으로써 인간 역사를 가능케 하신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는” 것이다(행 17:28). 그러나 창조 사역과 그 창조의 유지 사역은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의 행사로, 하나님이 세상에 인격적으로 거하는 임재라는 내재의 성경적 개념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창조와 유지는 하나님의 내재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하나님의 역사적 임재는 그분 자신 외의 타자인 세계와의 관계 맺음을 가리킨다. (150.2)
 성경에 기록된 세 가지 주요 역사적 사건을 통해, 교제라는 범주 아래 있는 하나님의 임재(구체적인 의미로 “동거함”)의 구조가 드러난다. 그 세 가지 역사적 사건은 창조 주간 끝에 있는 첫 번째 안식일(창 2:1-3), 성소(출 25:8), 영원한 아들의 성육신(요 1:14)이다. 각각의 사건에서 동일한 관계적 구조가 유지된다. 하나님에 관한 성경적 개념에 따르면, 그분은 자신이 창조하고 계속하여 유지하는 세계와 관계를 맺으시는데, 천연계의 심연 속에 숨겨진 힘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역사의 흐름 안에서 그리고 그 흐름을 통하여 그분이 인류를 다루실 때 그들과 관계를 맺는 인격으로서 그렇게 하신다. (150.3)
 안식일과 성소와 성육신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의 내재성을 “동거(同居)함”으로 이해할 때, “그리스도안에”(“in Christ”, 롬 8:1; 빌 4:7; 딤후 3:12; 몬 6)나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롬 8:10; 엡 3:17; 골 1:27)라는 말의 관계적 의미가 분명해진다. (150.4)
 두 측면 모두에서 관계는 성령의 내주에 해당하는 의미이다(고전 6:19; 딤전 1:14; 히 6:4). 다시 말해, 전통적 신학이 하나님의 내주라고 일컫는 것의 성경적 의미는 그분의 존재와 능력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과 사랑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내재를 그분과 그분의 백성과의 동거로 보는 성경적 이해는 하늘에서 루시퍼가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대해 반역을 일으킨 때로부터(계 12:7, 8) 종말론적 회복이 이뤄지기까지(계 21:1-4)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에 벌어지는 대쟁투에서 하나님의 행동과 그 드러남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150.5)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를 천연계(시 68:8; 114:7), 신자(시 16:11), 불신자(창 4:16; 계 14:10), 하늘의 천사들(눅 1:19), 이스라엘(출 33:13-23), 교회(마 28:20)와 함께하는 그분의 역사적 임재로 이해한다. 더욱이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적 및 인격적인 임재를 스며들고 편재하는 것으로 묘사한다(렘 23:23, 24; 시 139:7-12).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제한된 인간 존재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방법으로 공간과도 관계를 맺으실 수 있다. 하나님의 역사적, 인격적 및 직접적 임재는 그분의 광대한 우주의 모든 곳에서 동시에 실재한다. 하나님의 존재의 이런 능력이 신학적인 용어로는 ‘하나님의 편재성’[무소부재]으로 일컬어진다. (151.1)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은 하나님의 영원성(참조 III. A)과 불변성(참조 III. B)을 무시간적인 것으로 보는 해석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초월성(참조 III.D) 의 개념을 결정한 후에 그분의 내재성에 대한 이해를 설명해 왔다. 이런 견해는 하나님의 역사적 임재에 대한 성경적 개념을 위한 여지가 없으므로 그런 임재를 범신론이나 범재신론으로 이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긴 논증이 필요하다. 성경은 이와 반대쪽 노선을 따른다. 영원성 및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의 불변하는 신실성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 제공하는 맥락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동거하시는” 역사적 임재를 통해 그분 자신을 계시하신다. 초월성의 개념도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제공하는 출발점을 바탕으로 설명된다. (151.2)
 E. 섭리
 “섭리”(providence)라는 말은 “앞을 내다보다, 예견하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프로비데레(providere)에서 나왔다. 이 단어가 성경에 나오진 않지만 섭리는 성경의 중심 개념이며 세상과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 주는 계시를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통치와동의어로 사용된다. (151.3)
 섭리는 하나님의 다양한 행동을 포함하며, 그 모든 행동은 인간 및 우주 역사의 발전과 연관된다. 바울은 섭리(롬 8:28)를 예지 및 예정(29-30절)과 구분한다. 성경적 개념에 따르면, 예지와 예정과 창조는 인간 및 우주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에 필요한 조건들이다. 성경의 기록은 하늘에서 발생한 죄의 기원과 존재(욥 1:6-12; 2:1-6; 사 14:12-20; 겔 28:11-19; 계 12:4, 7, 8) 그리고 죄의 땅으로의 확산 및 아담과 하와의 타락(창 3:1-7)이라는 맥락에 비추어 하나님의 섭리를 언급한다. 하나님의 통치로서의 섭리는 인간의 본성과 역사에 있을수 있는 사건과 제한성 안에서 세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의 제정을 다룬다. 성경적 관점에서 섭리는 하나님의 구원 활동의 핵심에 속한다. 성경에 따르면, 구원은 하나님의 한 가지 행위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결과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그밖에 하나님이 이루시는 모든 구원 활동의 토대이지만 그것들만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예정)이 완성될 수 없다. 다양한 복합성을 지닌 하나님의 섭리는 인류와 우주 구원에 극히 중요한 역할을 띤다(참조 골 1:20). (151.4)
 신자들과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역사를 통치하는 방식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역사를 역사적으로 통치하신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인간 역사의 과정을 결정하는 영원한 작정(decree)으로 통치하시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반대로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성경적 그림은 인간 역사의 제한성과복잡성 안에서 당신 자신의 계획을 이뤄가는분으로 하나님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섭리 활동은 두 가지 주된 형태 곧 간접적인 활동과 직접적인 활동으로 나타난다. (151.5)
 1. 간접적인 섭리 활동
 성경에 제시된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 활동의 간접적인 양태에는 다음과 같은 패턴이 포함된다.

   (1) 인간 역사의 전반적인 차원에서(창 3:8-15) 그리고 좀 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시 81:12, 13; 마 19:8; 행 14:6; 롬 1:24, 26, 28) 죄가 그 자연스런 노정을 따라가도록 허용한 하나님의 결정이 근간을 이룬다

   (2)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으누이 실제로 미치는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한하신다(욥 1:12; 시 124:1-3; 고전 10:13;참조 행 17:26).

   (3)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유발된 상황을 역이용하여 자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실 수 있다(창 50:20; 행 2:36).

   (4) 때때로 하나님은 인간 존재가 죄 짓는 것을 막기 위해 개입하신다(창 20:6; 시 19:13;유 24). 신학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섭리 활동의 이런 패턴들은 각각 허용적, 제한적, 간접적 및 예방적인 하나님의 의지로 알려져 있다. (151.6)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 발생하는 모든 일을 의도하고 집행하신다는 의미로 인간 역사를 통제하시진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 역사에 친히 개입하여 그분이 의도한(예정한) 목표로 나아가도록 지도하신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하나님이 의도하신 인간의 본성에는 자유와자기 결정이라는 본질적인 특성이 포함되므로 하나님은 역사의 전영역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 존재를 강제하거나 통제하시 않으신다. 강제하는 완력은 자유 및 사랑의 본질과 양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의지의 자유를 가진 모든 인간 존재를 그분 자신에게로 이끌기 위한 역사안에서의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의 자유를 강제하거나 무시함으로써는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 역사에 개입하심으로 다양한 차원 즉 개인적, 사회적, 우주적 차원에서 구원을 이루고 계신다. 그러나 그 결과들이 예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의 끝의 결과를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도록 불확실성 속에 내버려두진 않으신다. (152.1)
 하나님의 예지는 미래의 확실성을 위한 토대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의 과업을 이루는 데 그분이 역사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개입하고 심지어는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는 하나님의 예지 안에서 이미 이뤄진 것이 아니고 단지 예기될 뿐이다. 하나님의 예지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 없다면 하나님과 신자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 살 것이다. 다른 한편, 하나님의 진실하고 확실한 예지의 내용은 그분이 역사에 친히 개입하고 지도하심으로 실현될 것이다(참조 요 1:17).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하늘에서 영원하고 저항할 수 없는 작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 실재들의 흐름과 복합성 안에서 친히 인간 역사를 지도하신다. (152.2)
 2. 직접적인 섭리 활동
 성경에서 섭리를 통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도는 당신의 백성과 동거하고 그들을 지도하기 위해 그들 가운데 거하고자 하신 그분의 선택에 드러나 있다(출 3:1-14; 25:8; 40:34-38). 성육신은 인간 역사에 대한 섭리적 지도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패턴의 연속으로 분명하게 제시된다(요 1:14).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 하나님의 섭리의 이런 패턴은 그리스도의 대표자인 성령의 임재와 사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인간 역사를 지도하시는 데 나타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에는 선지자들과 기적적인 행위들과 교회의 선교를 통해 그분의 뜻을 드러내는 것도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섭리를 통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은 그분께는 이질적인 사역, 곧 전 인간 역사를 통해 그리고 우주에서 죄를 근절하는 종말론적인 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를 포함한다(참조 Ill. C). (1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