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 주님의 보석들을 담고 있는 보석 상자이다”(6T, 261).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의 보석들, 곧 그분의 특별한 보물이라고 불리운다”(산상보훈, 134). 이 보석 세공인은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보석들이 협력하여 주기를 요청하신다. “모든 영혼들은 하나님의 손이 행하는 이러한 일에 순종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영적인 건강(健康)과 근육에 의무를 지워주어, 그 품성이 보다 순전하여지고, 언어가 보다 유용하고, 행동은 하나님이 쾌히 인정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3BC, 1154). 영원하신 성령님이여, 우리에게 은혜와 인내심을 허락하시어 당신께서 우리를 깎으심과 연마하심을 견디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293.2)
 우리의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가지고 계시는 두 가지 관심을 설명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족속들은 그 이름을 통하여 기억되었다. 이 이름은 대제사장의 사랑의 가슴에 놓인 흉패의 보석들에 새겨져 있고, 대제사장의 힘있는, 호마노(縞瑪瑙)로 된 어깨 위에 의기 양양하게 자리 잡고 있다. (293.3)
 보석의 기초석 위에서 개발되는 품성
 각 지파는 그 지파 이름이 새겨진 기초석의 색깔의 빛을 반영하였다. 이러한 열 두개의 보석들로부터 나오는 각 광선이 다른 빛과 색채와 결합될 때, 충만하게 각 단일 보석이 내는 광선을 훨씬 능가하는 가장 순수한 빛이 눈부신 빛을 발하였다. 교회가 이 세상의 빛(예수)으로부터 빛을 발산하는 것은 이러한 협동적인 노력에 의거하여서이다. 그리고, 경이로운 것 중에서 가장 경이스러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이 일을 하라고 하시면서 땅의 어두운 부분에 우리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293.4)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당신을 표상한 아론처럼 성전에 들어가실 때에 모든 당신의 백성들의 이름을 가슴에 붙이고 들어 가신다. 우리의 대제사장께서는 우리로 당신을 격려하여 주신 그 모든 말씀을 기억하신다”(실물교훈, 148). 그 화려한 의복은 지성소에서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가슴에 그 이름들이 기록된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양육하는 대제사장의 이러한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를 예기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를 사랑하시는 변치 아니하는 사랑에 대해서 얼마나 아름답고 뜻 깊게 표현한 말인가! 아론으로 표상된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마음에 기억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땅 위에 있는 주의 교역자들은 당신의 사랑과 동정과 격려에 함께 참여하여야 하지 않겠는가?”(복음 교역자, 34). (293.5)
 오늘날 우리들의 대제사장은 자신의 양들을 다정하게 품에 안으시고, 각 사람의 이름을 마음판에 새겨 두어서, 자신의 교회의 영광이 이 암혹 세상을 비추도록 하신다. 그리고 곧 그분께서는 보석들을 완전히 모아들이기 위하여 다시 돌아오실 작정이시다(말 3:17). 당신의 이름은 지금 그분이 가지고 있는 명단에 기록되어 있는가? 당신의 빛이 하늘에 계신 당신의 아버지를 찬양하기 위하여 지금 광채를 내고 있는가? (294.1)
 반드시 빛을 내야 하는 보석
 “빛을 내지 않는 보석은 가치가 없다. 우리의 교회들을 가치있게 하는 것은 죽어버린 광택 없는 돌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돌들, 주춧돌로부터, 한층 더 나아가 의의 태양—이 환한 영광 가운데에 자비와 진리의 광선들이 서로 만나고, 서로 입맞추는 의와 평화의 광선들이 서로 결합한다—으로부터 밝은 광선들을 받아들이는 돌들이다”(6BC, 11 16). (294.2)
 “사도시대 이후의 여러 세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 건축은 결코 그치지 아니하였다. 우리가 그 세기들을 회고할 때에 오류와 미신의 어두움을 통하여 쏟아져 나오는 빛처럼 빛나는 산 돌들을 볼 수 있다. 영원을 통하여 이 귀중한 보석들은 증가되는 광택을 가지고 비추이겠고 하나님의 진리의 능력을 증거할 것이다. 이 닦은 돌들의 번쩍이는 빛은 빛과 어두움, 진리의 금과 오류의 찌꺼기 사이의 현저한 대조를 나타낸다”(사도행적, 598). (294.3)
 하나님께서 각 지파를 위하여 유일한 기초석을 선택하심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의 이름을 돌들 위에 새기셨는데, 이 돌들은 각 지파의 성장을 위하여 가장 적절하고, 그러므로 그 발전을 독려하는 것이었다. 그 색깔이 상징하는 독특한 기별을 담고 있는, 그들의 독특한 빛이 지파의 마음에 비쳐 올 때 그 돌은 특별히 품성의 발달에 필요한 용기와 경고를 전달하여 주었다. 그 물질과 결정체도 이러한 조언에 무게를 더하였다. 흉패에 박힌 보석이 가르쳐주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이 가장 잘 성장하고 그분의 영광, 그들 자신의 만족, 그리고 그들이 접촉하는 사람들의 삶에 축복의 빛을 비추일 수 있도록 항상 두신다는 것이다. (294.4)
 이러한 보석들 각각은 흉패 위에 있는 단단한 금고리들에 의하여 고정되었다. 이 매력적인 바탕천은 대제사장의 심장 박동에 따라 움직였다. 상상을 통하여, 이 감미로운 박동에 내포된 감동을 감지하여 보라. 우리들의 하늘 중보자 심장 박동이 각 보석의 바탕천 아래에서 느껴진다. 사랑으로 가득 찬 그분의 가슴의 움직임을 곧 바로 우리의 마음이 느끼고, 우리들이 감동된 것이 그분의 가슴 안에서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 이 둘이 얼마나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지 보라! 성소에서 대제사장이 직임을 수행할때 그 가슴에는 흉패가 매여있어야 되었다. (294.5)
 우림과 둠밈을 통한 인도와 심판
 판결 흉패에서 가장 눈에 잘 뜨이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림과 둠밈이라고 하는 두 개의 보석들이었다. 여호와께서는 거룩한 복장의 모든 부분들이 완성된 후에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다. (294.6)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 가슴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출 28:30). 루터는 이 말씀을 “빛과 의”(Licht und Recht)라고 번역하였고, 70인역은 “현현(顯現)과 진리”를 의미하는 델로시스 카이 알레티이아(delosis kai aletheia)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295.1)
 성경에 처음으로 이 돌들에 관하여 언급된 곳이 이 말씀이다. 정관사와 더불어 나오는 “우림과 둠밈”이라고 하는 말(출 28:30; 히브리 성경과 70인역의 레 8:8)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림과 둠밈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흉패를 이루는 여러 가지 부품들을 상세하게 표현하는 반면에, 우림과 둠밈에 대해서는 마치 브사렐이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이유를 강조하여 준다. (295.2)
 모세는 대제사장이 “주의 둠밈과 우림”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인도하는데 직접 연루되어 있음을 주지시키고 있다.(신 33:8, 여기서는 두 보석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 것을 주목하라). 우림과 둠밈은 정관사 없이 두 번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그것들의 기능에 주의를 돌리기 위함이었다(스 2:63; 느 7:65). 이 거의 동일한 두 절에는 우림과 둠밈을 가진 대제사장이 제사장단의 자격있는 구성원을 가려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간절한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우림 및 둠밈과 더불어 보석들이 수놓인 판결 흉패는 주전 586년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에 사라져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문제가 풀리지 않고 남아 있다. (295.3)
 “우림”이란 단어는 홀로 두 번 나오는데(민 27:21; 삼상 28:6), 하나님의 더욱 견고히 하는 지혜를 가리키기 위하여서이다. 이 돌들이 성경에서 정확하게 일곱번 기록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 돌들의 히브리어 이름들이 번역되지 않아왔다는 사실 때문에, 성경 학도들은 이러한 용어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탐구하도록 자극을 받는다. (295.4)
 우림과 둠밈의 의미
 빛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복수형인 우림은 불(우르<ur>을 의미하는 말의 어근으로부터 파생되었다. 이 단어에서 파생되는 동사는 하루가 동틈(삼상 14:36), 밝아짐(삼하 2:32), 혹은 빛이 비추임(욥 33:30)을 의미한다. 그것은 종종 조명하여 주거나(시 77:19, 97:4, 105:39), 혹은 가르치는 것(시 119:130)을 의미하기도 한다. 빛은 행복의 상징(욥 22:28; 사 9:1, 30:26), 혹은 지식의 상징(사 49:6)이다. 여호와께서는 직접 이스라엘의 빛이라고 불리웠다(사 10:17). 우르, 곧 빛이라고 불리우는 도시로부터, 영원한 복음의 빛이 고대 세계의 도처로 퍼져나갔다. 아사야는 독자들에게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촉구하였다(사 60:1). 그래서 우림의 기능은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하여 계몽하거나, 의혹이 있는 경우에 빛을 비추거나, 불확실의 때에 길을 인도하였다. (2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