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부 록 D. 골로새서 2:16, 17의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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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로새서 2:16에 대하여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취해온 역사적인 입장은 이 구절의 “안식일”이 십계명의 안식일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들(레 3:22, 37-39)에 나와있는 절기의 안식일들이라는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신학자들 가운데 위와 같은 주장의 논점이 설득력이 약하다고 개인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나타났으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역사적인 위의 입장이 흔들리게 되었던 일은 없었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에서 나온 출판물들을 통해서 살펴볼 때 역사적인 입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4개의 논점에 의해 옹호되고 있다. (324.1)
 1. 골로새 교회의 신자들은 그들에게 여러 가지 유대교 절기 율법의 요구들을 강요하려는 이단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혼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토라(율법)의 도덕적인 요구와 예식적인 요구를 구별할 필요가 있었다 골로새서의 이단은 이교적 요소들과 영지주의적 요소들을 다소 포함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러나 그 이단 사상의 핵심은 갈라디아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계율적이고 유대적인 제사주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 논리적인 결과로서 바울은 제사 의식을 구원의 수단으로 이행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명백히 부인하는 행위라는 진실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표상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표상으로서의 제례 의식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토라(율법) 중에서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력이 없는 부분들에 대하여 바르게 알려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예식 율법에 소개되어 있는 여러 가지 제사들과 축제의 예식들을 언급하였다. (324.2)
 2. 골로새서 2:16에 나란히 언급되고 있는 종교행사들은 그 순서와 내용상으로 볼 때 성경의 다른 곳에서 공포되고 있는 희생제사와 축제 행사들과 대단히 유사하다. 예컨대 에스겔 45:17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왕은 본분대로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절기에 드릴지니라” 하셨다(참조. 대하 2:4; 8:13; 호 2:11). 에스겔과 그 밖의 곳에 언급된 이 안식일들이 일차적으로 제칠일 안식일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절기의 안식일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324.3)
 3. 더 크고 더 직접적인 문맥에서 볼 때 골로새서 2:16에서 바울은 일차적으로 절기 율법의 축제들과 법령들을 언급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골로새서 1장과 또 2장의 첫 부분에 걸처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주로, 예배와 존경을 받아야 할 자로, 용서와 구원을 베푸시는 이로,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주님으로 영접해야 할 자로 칭송하였다. 그는 여기서 그가 즐겨 사용하는 주제의 하나를 강조하였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경험은 종교적 경험의 “수뭄 보눔”(Summum bonum:최고 선)에 이르는 것이라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세상을 하나님께 화목시킨 자로, 그리고 교회의 머리이신 분으로 주장하였다. 그는 단호한 태도로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믿음만이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보좌들이나 주관자들이나 정세들이나 권세들일지라도”(골 1:16; 2:15) 우리의 두려움이나 존경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들도 모두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어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골 2:16의 직접적인 문맥은 그리스도가 신자들에게 베푸시는 완전한 용서를 말하고 있고(골 2:13, 14), 골 2:16의 더 큰 문맥이면서 바울의 기별의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는 부분은 그리스도의 위대함과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골로새교인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고수하고 할례와 제사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 같은 것들이 구원을 위하여 전혀 가치가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325.1)
 이 구절에 있는 중심 단어 즉 16절의 “안식일”이 절기의 안식일을 뜻하는 것임이 분명하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단어는 17절에 있는 “그림자”란 낱말이다. 17절에서 그림자(스키아, Skia)는 몸(소마, Sdma)의 반대의 말이다. 히브리서 8:510:1에서도 그림자와 몸은 비슷한 방식으로 대비되고 있다. 바울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라고 주장하였다(골 2:17). 그림자는 본질도 아니고 궁극적인 가치도 아니다. 그림자가 존재하려면 어떤 본질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몸(소마)이 그림자(스키아)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자는 그것이 실체에 도달할 때 소멸된다. 이처럼 “그림자”는 연례적인 절기의 안식일들을 포함하는 예식 율법의 여러 요소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예식 율법들은 그리스도의 생애나, 봉사, 그리고 그의 왕국을 자신의 실체로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골로새서 2:16, 17에서 십계명의 제칠일 안식일을 가리켜 그림자라고 표현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제칠일 안식일은 어떤 것이 그림자가 아니고 그 자신이 실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제칠일 안식일은 어느 정도까지는 그리스도안에 약속된 안식을 가르치고 있지만(히 4장), 제칠일 안식일의 일차적인 의의는 “장래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일어난 사건, 즉 6일 동안에 이루어진 창조의 사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창 2:2, 3; 출 20:8-11). (325.2)
 재림교인들의 인식에 따르면 신약성경에는 안식일이란 낱말이 60여 회에 걸쳐 언급되었는데 그 중에서 59회가 제칠일 안식일을 지칭하였다. 그리고 골로새서 2장의 경우는 절기의 안식일을 지칭한다. 재림교인들은 이러한 주장을 언어학적인 기초 위에서 펴는 것이 아니라 문맥에 기초하여 펴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한 단어가 어떤 방식으로 상용된 회수는 모든 상황에 있어서 그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문맥이다. (325.3)
 예컨대 영어 단어 “프로그”(Frog)는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꼬리 없이 뛰어 다니는 작은 양서류 동물을 뜻 할 수 있고 아프고 부어오른 목을 뜻할 수도 있고 말의 발굽 가운데 있는 삼각형 뿔 모양의 받침을 뜻할 수도 있다. 또 외투의 단추를 죄일 때 사용하는 고리 장식을 뜻할 수도 있고 기차 선로의 레일에 부착하여 교차되는 철로 위로 기차 바퀴가 굴러 갈 수 있게 전환시키는 장치를 뜻할 수도 있다. 59회에 걸처 “프로그”(Frog)란 단어가 네 발 달린 동물을 뜻했다고 해서 “내 목에 ‘프로그’ 가 생겼다”고 했을 때에도 그 “프로그”는 네 발 달린 “개구리”를 뜻한다고 고집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뜻은 언제나 문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326.1)
 이 원칙은 너무도 분명한 것이기 때문에 부연적인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골로새서 2장에 기초하여 제칠일 안식일이 십자가에서 폐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두가지 예증적인 설명을 추가할까 한다. 예컨데 토라(Torah)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여러 가지의 의미들은 모두 문맥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때로는 토라가 모세 5경을 뜻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십계명을 뜻하기도 하며 또 어떤 때는 밖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의지 전체를 뜻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왕이나 선생이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지혜로운 아내나 시인의 교훈을 뜻하기도 한다.1 (326.2)
 마찬가지로 날(day)도 24 시간의 기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24시간 기간의 낮을 의미하기도 하며 어떤 불분명한 시간의 기간을 즉 한 시대를 뜻하기도 한다. 분명히 날(day)이란 단어가 59에 걸쳐 24시간의 기간을 뜻했다고 해서 60회 째 사용된 날(day)이란 단어도 꼭 24시 간의 기간을 뜻해야 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326.3)
 많은 성경 주석가들이 다르게 주장하고 있지만 가장 존경받는 여러 학자들이 골로새서 2:16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날은 제칠일 안식일이 아니라 절기의 안식일이라고 선언하였다. 감리교 신학자인 아담 클라크(Adam Clark)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여기에서는 기독교의 교훈에 의해 제칠일 안식일이 폐했다든가, 또는 안식일의 도덕적인 용도가 다른 날에 의해 대체 되었다는 암시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은 ‘영원한 의무’의 명령이며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결코 대체될 수 없는 명령이다.”2 제미손(Jamieson), 파퍼지트(Fausset), 브라운(Brown)등은 “대속죄일과 초막절의 안식일들(레 23:32, 37-39)이 유대 제사 제도와 함께 끝났으나 제칠일 안식일은 좀 더 영속적인 기초 위에 세워졌다”고 주장했다. 즉 제칠일 안식일은 여섯 날 동안에 이루어진 완전한 창조를 기념하기 위하여 낙원에서 제정되었던 날이라고 주장하였다.3 (326.4)
 장로교 신학자인 알버트 반즈(Albert Banes)는 다음과 같이 관찰하였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바울이 어떤 거룩한 시간을 지킬 의무가 없음을 가르치고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바울이 십계명의 하나가 더 이상 인간에게 구속력을 상실했음을 가르쳤다고 믿을수 있는 가장 미약한 이유도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 그는 히브리인들이 그들의 절기 율법과 표상적 율법의 한 부분인 절기를 지키고 있던 수많은 날들에 시선을 두고 있었으며 결코 십계명이나 도덕적인 율법을 문제 삼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도덕적인 율법의 어떤 부분도, 십계명의 어느 하나도 미래에 도래 할 선한 일들의 ‘그림자’로 표현될 수 없다. 이 계명들은 도덕적인 율법에서 온 것이며 영속적이고 보편적인 용도의 율법이다.4 (326.5)
 4. 만약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제칠일 안식일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면 틀림없이 이 뉴스는 단지 골로새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들의 교회들에까지 막대한 소란을 야기 시켰을 것이다. 침묵의 증거는 강력한 논거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초대 교회 시대에 사도 바울의 서한들이 복사되어 다른 교회들에도 전달되고 읽혀졌기 때문에 만약 다른 교회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안식일이 폐했다는 가르침을 접하게 되었을 때 대단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이에 따른 후속적인 토론이 격렬하게 전개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할례, 우상숭배, 간음, 그 밖의 다른 사건들 때문에 격렬한 논쟁이 유발되었던 것을 우리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행 15장 참조). (327.1)
 그런데도 불구하고 골로새 교회에 보낸 바울의 서신은 기독교의 다른 신앙 공동체들에게 아무런 충격의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다. 골로새 교회의 신자들이 바울이 유대교 신앙과 관련된 예식들과 축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음이 분명하다. 그가 그들에게 가르치고자 한 것은 제칠일 안식일에 이행되었던 예식들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철폐되었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327.2)
 골로새서 2장에서 바울은 일차적으로 절기의 안식일을 지목하여 이야기했다는 입장을 지지하기 위하여 위의 네가지 논지를 내세우고 있는 재림 교회 신학자들은 물론 골로새서 2장 16,17“안식일”이란 단어가 형태상으로는 분명히 복수형으로 나타나있지만 단수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같은 사실이 자신들의 입장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주의 깊은 학자들은 안식일을 나타내는 희랍어가 단수의 의미로 사용되었던 대부분의 구절들에서 그 형태는 단수 중성 명사인 삽바톤(Sabbaton)이며 몇 개의 구절에서는 단수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복수 중성 주격 명사인 삽바타(Sabbata)가 사용되었다. 골로새서 2:16에서는 이 형태의 소유격이 사용되었다. (327.3)
 70인역에서는 단수의 의미를 띤 복수 형태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출애굽기 16:23, 25; 20:8; 신명기 5:12; 예레미야 17:21, 22; 에스겔 46:1 등이 그 일부의 예들이다. 신약 성경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나타난다. 마태복음 12:1; 28:1; 누가복음 4:16등이 그것들이다. (327.4)
 재림 교도들은 널리 존경받고 있는 신약학자 에이. 티. 로버트슨(A.T. Robertson)이 삽바타(Sabata)와 삽바톤(Sabbaton)이 어찌하여 복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수의 뜻을 나타내는지에 대해서 가장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식일의 아람어는 샤베타(Shabbetha)이다. 이 단어가 희랍어로 삽바타(Sabbata)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삽바타는 단수 샤베타(Shabbetha)를 나타내고 있지만 희랍어로는 어쩌다가 복수로 철자화 되었으며 그런데도 희랍어 삽바톤(Sabbaton, 안식일)의 복수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삽바타(Sabbata)로 표기된 어떤 경우에도 삽바톤(Sabbaton)의 다른 어떤 형태의 경우에서처럼 우리들은 그것이 아람어로 단수인 샤베타(Shabbetha)를 나타내고 있는지 또는 진정으로 삽바톤의 복수를 뜻하는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5 (327.5)
 가장 변호력이 강한 입장은 골로새서 2:16의 복수 소유격 “삽바톤”(안식일)을 단수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학적인 관점에서만 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문맥상으로도 논리적이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먹는 것, 마시는 것, 절기, 월삭이 단수인 것처럼 안식일도 단수를 사용했다. 다른 네 단어들과 일치시키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이다. 모세의 율법에는 제칠일 안식일에 이행하도록 명령된 몇가지 예식적인 규칙들이 있기 때문에(예컨대 매일 드리는 번제를 안식일에는 갑절로 드리도록 되어있다), 아마도 바울은 연례적인 절기 안식일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예식들과 나란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철폐될 “그림자”의 하나로 “안식일”을 포함시켰는지 모른다. 물론 이 같은 예식들 때문에 제칠일이 안식일로 되었던 것은 아니다. (328.1)
 안식일은 이미 창조의 때에 제정되어 도덕적인 계명에 의해 명령된 것이다. 따라서 제칠일에 할당된 예식적인 규칙 등이 철폐되었다고 해서 안식일이 철폐된다든가 또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한 하나님의 계명이 폐하게 된다든가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골로새서 2:16을 논의한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회 문헌들 가운데 몇을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328.2)
 Bible Reading for the home(Washington. D. C.1958);William Henry Branson, Drama of the Ages(Nashville, Tenn., 1950):Early Hilgert, “Sabbath Days in Colossians,” Ministry, Tely 1953. pp. 42,43:W. E. Howell, “Sabbath in Colossians 2:16,” Ministry, Sept.,1934, p.10:Idem, “Anent Colossians 2:16,”Ministry, April. 1936, p.18:Arthur E. Licky, God Speaks to Modern Man (Washington D. C., 1952);Francis David Nichol, Answer to Objections (Washington,D.C.,1932);idem, Problems in Bible Translation(Washington D. C.. 1954);idem, The Seventh- 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Washington, D. C., 1957), 7:205, 206:Ellen G. White, Patriarchs and Prophets(Mountain View, Calif., 1913);idim, Selected Messages(Washington D.C∙∙∙ 1958), book 1. (3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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