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부 록 C.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김”(롬14:5, 6)
 “혹은 이 날보다 저 날을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롬 14:5, 6). (319.1)
 바울이 위와 같이 말했을 때 그의 심중에 품었던 생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를 반대하고 “유대인의 안식일”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취지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었을까? 그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려고 했던 취지는 진정 무엇이었을까? (319.2)
 로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출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 교회에 이 서한을 보냈던 A.D. 58년경에는 이미 로마에 큰 교회가 존재해 있었으며 이 교회는 당시의 대부분의 교회들의 경우가 그러했던 것처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섞여 있는 교회였음이 확실한 것 같다(참조. 롬 1:13-16; 2:9, 10, 17; 11:13, 31). (319.3)
 씨. 에이취. 도드(C. H. Dodd)는 말하기를 “네로의 박해가 발생한 64년경에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큰 단체를 구성하고 있었으며,1 ‘엄청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고 하였다.2 (319.4)
 우리가 이 지면을 통해 논의하려는 위의 구절은 로마서 중에서도 바울의 윤리적, 실천적인 가르침이 개진된 부분(12-16장)에 속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바울은 자신의 새로운 관점을 전개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로마서의 앞부분에서 설명한 중심적인 주장들(1-11장)에 기초하여 부연적인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로마서의 앞부분에서 논의되었던 중심 주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사람의 보편적인 죄스러움. 그리고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였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바울의 주장(롬 14:5, 6)은 로마서의 앞부분에서 다루어진 중요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그리스도인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에 속해 있다. (319.5)
 직접적인 문맥
 로마서 14:5, 6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구절의 직접적인 문맥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로마서 14:5, 6의 직접적인 문맥을 파악하기 위해서 로마서 14:1-6의 본문을 살펴보기로 한다. (320.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 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뉴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며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320.2)
 “혹은 이 날보다 저 날을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롬 14:1-6). (320.3)
 로마서 14장을 대충 읽기만 해도 당시 로마 교회에 먹는 문제와 특정한 날들을 지키는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는” 문제는 본래 이 구절의 기본적인 주제가 아니다. 당시 로마 교회는 고기를 먹는 주장과 고기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은 주장이 크게 대립하고 있었으며 바울은 위의 구절에서 바로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먹는 문제와 마시는 문제를 다루면서 날을 지키는 문제까지 함께 끼워 넣었다. (320.4)
 우리는 당시 로마 교회가 분란을 겪고 있던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행실에 대한 좀더 일반적인 사항들을 다룬 이후에 로마 교회 특유의 문제로 시야를 돌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3 대부분의 교회에서 그러했듯이 로마 교회에서도 “구식” 신앙과 “해방된” 또는 “개몽된” 신앙의 자세 사이에서 긴장이 발생하였다.4 이 특별한 경우에서 “연약한 자들”은 채식주의자들이었고 “강한 자들”은 무슨 음식이든지 개의치 않고 먹을 수 있는 자들이었다. (320.5)
 이 금욕주의자들은 누구인가?
 이 구절에서 “연약한” 신자들로 언급된 사람들은 여전히 구약의 율법의 그림자들로 부터 떨어져 나오지 못하여 아직 그리스도교 신앙을 충분히 정착시키지 못한 유태계 그리스도인들로 보려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육식을 금하고 포도주를 금하는 금욕주의는 유대교에 뿐만 아니라 이교에도 존재한다.5 오르페우스의 신비 종파(Orphic Mystery Cult)와 피타고라스 학파(Pytha-goreans) 의 추종자들은 채식주의자로 알려졌다. 영지주의의 금욕주의적인 성향이 로마 교회에 침투했을 가능성도 있다.6 그러나 이 모든 가능성들로도 로마 교회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바울의 주장에 따르면 로마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특정한 날들을 꼼꼼히 지키는 습관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이러한 관습은 이교 종파에도 흔하지 않았다. (320.6)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바울이 여기서 로마교회의 유태계 그리스도인들이 포도주를 금하고 육식을 반대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왜냐하면 유대교는 서원하는 기간 이외에는 포도주를 금하지 않았으며 부정한 고기를 구분할 뿐 육식을 전면적으로 금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 교회의 일부 철저한 채식주의자들의 동기는 모세의 율법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레위기 율법과는 상관없는 다른 금욕주의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321.1)
 로마서 14:5, 6에서는 일체의 육식이 거부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고린도 전서에 나타난 육식문제와 로마서 14장에 나타나고 있는 육식문제가 동일한 것일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이교 신전에 제물로 바쳐지지 않았던 고기를 시장에서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육식을 전면적으로 금하려는 신앙태도가 나왔다는 것이다.7 사실 로마서 14장고린도전서 8장, 10장의 사이에는 유사성이 많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 14장에서 우상이나 마귀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고 특정한 날을 지키는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로마서 14장고린도전서 8, 10장 사이에 진정한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판단하기가 어렵다.8 (321.2)
 고기와 포도주를 금하는 사람들이 유대교 에세네파 신앙의 영향을 받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 로마에는 유대인 거류자들이 상당수에 달했고 에세네파 사람들은 육체의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더 높은 성화의 단계에 이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에세네 종파는 바리새 종파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 차이점도 있었지만 또한 공통점도 많았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예식적인 성결 못지 않게 모세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결한 고기와 부정한 고기에 대한 차별을 세심하게 지키고자 하였다. 이와같은 열성에 있어서 그들은 바리새인들을 능가하였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최소한 특정한 시기에는 포도주도 마시지 않았으며 짐승의 피를 만지지도 않았다.9 (321.3)
 위의 주장에 대한 반대는 많지 않다. 에세네파가 강력한 조직으로 로마에 존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반대가 없고 단지 당시의 유대교 공동체에 대한 에세네파의 영향에 대해서 약간의 이의가 있다. 그러나 위의 주장은 가능성이 많다. 최소한 이 주장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고 금욕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특정한 날들을 지켰다. 에프. 에프. 브루스(F. F. Bruce)의 주장과 같이 “그 같은 ‘침례파’ 공동체들이 유대와 유대 밖의 지역에 발견되었다는 일부 증거들이 나타났다. 특별히 로마의 유대인 공동체는 일부 ‘비 국교도적’ 유대교의 특성들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또 이러한 특성들이 히폴리투스(Hippotytus)의「사도적 전통」(Apostilic Tradition)에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로마의 그리스도교회로 흘러 들어갔던 것 같기도 하다.”10 (321.4)
 어떤 날들을 다른 날들보다 더 존중하는 문제
 사도 바울은 고기를 먹는 것과 채식주의의 다툼을 다루다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는” 문제를 불쑥 끼워 넣었다. 번역에 관한 한 이 문장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 그러나 바울이 어느 날을 더 존중하거나 또는 모든 날들을 차별하지 않거나 하는 문제가 전혀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자유 재량에 속한다고 주장했을 때 구체적으로 그가 심중에 어떤 날들을 생각하고 있었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322.1)
 일부 주석가들은 여기서 쟁점이 되었던 날이 제칠일 안식일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같은 해석대로라면 바울은 제칠일 안식일을 다른 날들과 구별하는 관습이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철폐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된다. (3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