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3 장 신적 권위를 직접 드러내신 기적들 기적 7 ►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본문 : 막 5:1-20, 참조:마 8:28- 9:1, 눅 8:26-39
 예수님의 일행을 태운 돛단배는 바람에 미끄러지듯 갈릴리 바다를 동쪽으로 항해하여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향하였다. 전날 예수님께서는 서쪽 해안 지역에 계셨고, 게네사렛 평지 쪽 해변에서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를 설교하셨으며 그날 밤 동쪽으로 건너오시다 광풍을 만나 말씀으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셨다. 노도(怒濤)를 이긴 배는 계속 항해하여 아침에 동쪽 바닷가에 다다랐다. 마침 배를 댄 곳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항상 무서워하는 해변가 공동묘지 지역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무덤 사이에서 갑자기 두 명의 광인(狂人)이 쫓아 나와 마치 야스(野獸)처럼 울부짖으며 이를 드러내고 손을 뻗쳐 갈기갈기 찢을 듯 달려들었다. (176.1)
 “으흐흐” (176.2)
 눈에는 광기(狂氣)가 서려 번뜩거렸고, 두 손목에는 도망올 때 끊어 버렸던 쇠사슬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으며, 얼굴과 몸에는 자해(自害)로 간간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달려드는 광인에게 놀라 제자들은 마구 달음질쳐 도망가 버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홀로 그 자리에 남으셨다. 당신을 해하려고 달려드는 광인의 흉한 몰골을 보시자마자 바로 귀신이 그들을 비참하게 만든 것을 단번에 알아차리셨다. 귀신은 사람의 마음을 할퀴어 인성을 파괴시키고 짐승같이 만든다. 주님께서 노한 음성으로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이 명하셨다. (176.3)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176.4)
 예수님은 마귀보다 힘이 더 세므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이다. 두 광인을 지배하던 귀신은 최후 발악을 하며 나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을 결코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귀신은 예수님께 큰 소리로 간청했다. (176.5)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176.6)
 “네 이름이 무엇이냐?” (177.1)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177.2)
 예수님은 사실 마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그러나 상관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일은 마귀를 내쫓고 그가 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 로마의 일개 군단은 6천 명 가량이므로 자기 이름을 군대라고 한 것은 많은 귀신의 무리에 자기가 속해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귀신은 주님께 간청하였다. (177.3)
 “부디 우리를 이 지방에서 쫓아 내지 마소서. 꼭 이 사람들에게서 나가야 한다면 저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하소서.” (177.4)
 마침 산허리에 약 2,000여 마리의 돼지떼가 풀을 뜯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돼지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는 사귀들의 요청을 허락하셨다. 이에 더러운 귀신들이 그 두 광인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멀쩡하던 돼지떼가 귀신들의 장난으로 혼란이 일어났다. 그만 광돈병(狂探病)에 걸린 이천 마리의 돼지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뛰어들어 몰사하는 게 아닌가! 귀신이 하는 일은 파괴하고 죽이는 것임이 증명된 것이다. 돼지를 치던 목동들이 깜짝 놀라 겁에 질려 급히 도망하여 주인에게 보고하러 갔다. (177.5)
 오랫동안 마귀의 모습으로 광기를 발하며 헛된 소리를 질렀던 두 광인은 즉시 정상인이 되었다. 그러나 귀신이 할퀴고 간 그들의 마음은 처참하게 파괴돼 있었다. 마귀는 사람의 인성을 파괴하고 정신을 미치게 하며 야수같이 생활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두 광인이 정상인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완전히 치유해 주셨다. (177.6)
 돼지를 치던 목동들의 보고를 들은 주인과 읍내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려고 몰려들었다. 놀랍게도 두 광인이 정상인이 되어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서 설교를 듣고 있는 게 아닌가! 한편으론 고맙고 의아했다. 사실 두 광인이 살던 곳은 아무도 무서워 지나가지 못했다. 사귀들린 이 광인들이 욕을 하며 대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귀들린 자들은 그 지방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제는 멀쩡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온순하고 예의바르고 모든 게 정상이었다. (177.7)
 큰 손실을 당한 돼지떼의 주인은 두 광인이 정상인으로 회복된 것을 확인하고 예수님께 손실에 대해 항의하지는 않았다. 예수님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인은 단지 재정적인 손실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합세하여 예수님께 그 지역에서 떠나주기를 간구하였다. 어리석게도, 만일 예수님이 계속 그곳에 계시면 더 큰 재난과 손실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제자들과 여러 사람들이 어젯밤에 말씀으로 폭풍을 잔잔케 하신 일과 예수님의 여러 행적들을 들어 설명하면서 그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 거라사 사람들은 합심하여 예수님의 일행이 떠나 주기를 간청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간청대로 호수 맞은편으로 떠나려고 곧바로 배에 오르셨다. 이 때 고침 받은 두 광인들은 저희를 구원해 주신 분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예수님께 무릎 꿇고 간청했다. (178.1)
 “우리도 항상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해 주소서.” (178.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178.3)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178.4)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데가볼리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고쳐 주신 이야기를 전파했다. 자신들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전하였는데, 그들은 데가볼리에 파송된 최초의 복음 선교사들이 되었다. 그들의 간증을 듣는 모든 사람들은 기이히 여기며 예수님이 그 지방에서 쫓겨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광인이었던 두 사람은 사실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웠거나 설교를 여러 번 들은 게 아니었다. 단지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보고 들은 것을 전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복음 전도는 교회에 오래 다니지 않았어도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면 된다. 다음의 말씀을 보면 과거의 사도들도 그러하였음을 알 수 있다. (178.5)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1-3). (1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