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드라마 성소 제 1 장 에덴의 상실과 인류의 구원을 위한 성소
 4. 뜰문
 뜰로 들어가는 뜰문 휘장의 폭은 20규빗이며 4개의 놋기둥과 은 갈고리에 걸려 있다. 뜰문 좌우휘장의 폭은 각각 15규빗이다. 휘장이 은 갈고리에 걸려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두 손과 두 발이 못 박혀 있는 형태를 묘사해 준다. 정문의 휘장은 그리스도의 육체(히 10:20)와 그리스도의 의의 옷(사 61:10), 그리고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거룩함에 이르는 유일한 문(요 10:7)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것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아름다운 아름답게 수놓아 짜여졌다(출 38:18). 그리스도께서는 가는 베실이 상징하는 것처럼 우리 낮은 몸을 입으셨지만 희생과 순종을 통하여 영화롭게 되셨다. 흰색은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완전하신 품성을, 청색12은 신성(출 24:10)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스도의 충성과 순종을, 홍색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나타낸 희생과 봉사를 상징했다. 그리고 자색은 붉은 색과 푸른색을 혼합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인성과 신성의 연합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애의 완전한 순종과 거룩한 품성을 우리의 인성 안에 짜 넣으시기를 원하신다. 또한 자색은 우리의 인성으로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색 옷을 입은 왕이요, 제사장의 자격을 얻으신 것을 상징한다. (32.2)
 5. 성막에 사용된 울타리 놋기둥(출 27:9~13, 18~19)
 뜰 둘레에는 60개의 조각목 위에 놋으로 입힌 기둥들이 각각의 놋 받침대 위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각각의 기둥들은 5규빗 간격으로 동쪽 11(10)개, 서쪽 11(10)개, 남쪽 21(20)개, 북쪽 21(20)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면의 코너의 4개의 기둥이 중복되어 세어지므로 64개가 나오지만 실제로 중복된 4개의 기둥을 빼면 실제 기둥은 60개이다. 그러므로 뜰의 포장은 50X100의 크기에 둘러져 있었다. 그런데 60의 배수는 땅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구원 얻을 자들의 숫자인 144,000이 되기도 한다. 뜰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면서 숫자를 계산해 보자. 6013X2414X1015X10=144,000. 60개의 기둥(계 3:12; 딤전 3:15)은 진리를 가진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을 상징한다. 기둥이 60인 것은 사람의 수 6을 뜻하고, 24는 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한 24장로를 뜻하며 10은 완전한 수이다. 10X10는 지성소의 크기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연히 일치일 수 있지만 144,000인은 지성소의 하나님의 보좌와 율법을 옹호하는 사람들임을 암시할 수도 있다. (32.3)
 6. 성소와 지성소 벽을 이루는 48개의 황금 널판
 기둥과 대에 의해서 성소와 지성소를 둘러싸고 있는 조각목 널판은 금으로 입혀졌으며 넓이가 1.5규빗이며 모두 48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성소와 지성소의 내부의 황금벽은 쉐키나 영광과 촛대의 빛을 충만하게 반사하였다. 각각의 벽은 하나님의 영광을 충만히 반사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48의 배수는 144,000인이 되기도 한다. 48×316×1000=144,000. 48은 하나님의 보좌를 옹호하는 자들, 3은 삼위의 하나님, 1,000은 충만한 수를 말한다. 그러므로 144,000인은 하나님의 삼위 하나님의 영광을 충만히 반사하여 하나님의 품성과 계명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암시할 수도 있다. (33.1)
 참고
 1) 부조와 선지자(Patriarchs and Prophets), p.68.

 2) 동사 ‘두었다’, ‘장막에 거한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샤칸(shakan)은 “쉐키나”의 어근이 되었다. 리즐리 하딩은 “두었다”는 말은 “쉐키나”라는 히브리어가 파생된 셈어의 어근에서 볼 때, “장막을 치다”는 뜻이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안교신 외 역(서울: 시조사, 1993), p. 30-31.

 3) 개역성경의 “제삼월 곧 그때에”를 제임스왕역에는 “셋째 달이 되는 그날”(출 19:1), 표준 새 번역에는 “셋째 달 초하룻날”이라고 번역하였다. 출애굽기 12장 2절에 의하면 여호와께서는 민력 7월을 성력으로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출애굽한 때는 성력 1월 이었다. 일월 중에서도 무교절(출 12:17)인 15일에 애굽에서 나와 “제삼월 곧 그때에” 에 시내산에 도착하였다. 대부분의 영역본(KJV, NKJV, NIV, ASV ...,)들은 “제삼월 독 그때에”“In the third month”라고 번역함으로서 “셋째 달 초하룻날”이라는 해석을 지지하고 있다. 호크마 주석에도 “제삼월 곧 그 때에”“70인역(LXX)과 유대 전승”에 의거하여 “제3월의 첫째 날”이라고 밝히고 있다. 더욱이 “월”을 나타내는 ‘호데쉬’(khodesh)가 새달의 시작인 월삭에 사용되는 단어(민 10:10; 삼상 20:5; 왕하 4:23 등)이기 때문에 더욱 확실하다.

 4) 부조와 선지자(Patriarchs and Prophets), p.312.

 5) 상게서, p. 312.

 6) 리즐리 하딩, p. 434.

 7)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6일 동안 머물렀다는 것은 쉐키나의 영광이 장막을 치신 것을 의미한다. 여호와의 임재의 영광을 나타내는 쉐키나의 어근이 되는 솨칸은 “머물다”, “장막을 치다”라는 뜻으로 여호와께서 쉐키나의 영광으로 산 위에 장막을 치심으로 시내산을 자신의 성소로 삼으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8) “제칠일”“제칠”에 해당하는 형용사 ‘쉐비이이’는 서수 ‘일곱 번째의’라는 뜻을 지닌다. 모세가 “육일 동안” 자신을 살핀 후인 “제칠일”에 여호와의 알현실로 들어간 것은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출 20:9~10)이라는 말과 비교해 볼 때 이 날이 제칠일 안식일이라는 확신이 든다.

 9) 부조와 선지자(Patriarchs and Prophets), p. 313.

 10) 시대의 소망(Desire of Ages), p. 23.

 11) ‘규빗(cubit)’이라는 말은 라틴어 ‘꾸비뚬(cubitum)’을 음역해서 ‘규빗’이라고 사용하는 것이다. 원래 히브리어는 ‘아마(ammah)’이다. 자세한 것은 다음 문헌을 참고하라. 오태주, 建築學的 解析에 의한 聖幕建築의 再現設計 基準設定에 관한 硏究(홍익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06, p.35-39.

 보통의 규빗은 ‘팔꿈치에서 중지 끝까지’를 나타내지만 성소에서 사용되는 규빗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자보다 큰 자였을 것이다. 에스겔서에의 성소를 측량하는 자는 큰 자였다.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척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장이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로 육척이라”(겔 40:5). 일반 규빗이 약 45cm이고 여기에 한 손바닥 넓이를 더하면 대략 53cm가 된다. 부조와 선지자의 기록에서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막은...규모가 작은 것으로 길이가 55피이트, 너비와 높이가 각각 18피이트에 지나지 않았다”(부조, 347)고 되어있다. 위의 기록대로 계산하면 성막의 길이와 너비인 18피이트(1피이트는 30.38cm)는 성경에 10규빗과 같은 치수이므로 계산해 보면 1규빗은 54cm가 된다. 이것은 ‘큰 자’‘왕실 규빗’과 거의 일치한다. 호크마 주석에는 ‘왕실 규빗’을 53.2cm라고 기록하고 있다. 규빗은 지방과 시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1규빗은 54cm정도로 생각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12) 청색은 신성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하나님을 보니 그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출 24:10). 또한 순종을 상징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외투의 끝단에 술을 만들고 그 술에 청색 끈을 만들어 달았다. 이것은 그들로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도록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민 15:39).

 13) E. W. 벌링거, 성경에 나타난 숫자 해설, 장성선 역(서울 : 도서출판 나단, 1992), p.191. “육은 ... 혹은 7 빼기 1즉, 인간의 영적 완전의 부족함, 따라서 어떤 경우든지 인간과 관계가 있다. ”또한 이것은 인간의 시간과 관계가 있다. 시간은 6의 배수로 이루어진다. 24시간, 60분, 60초 등.

 14) 벌링거는 “24는 하늘의 통치와 경배에 연관된 수 ... 이십사(24) 장로가 구속되었다는 것이 전승되어야 영화롭게 된 인간들인 것이다.”라고 말한다(상게서, p. 338).

 15) 벌링거는 “십(10)이 완전수 중의 하나이며 새로운 일련의 수들을 합하여 시작하는 하나님의 질서의 완전함을 상징한다.”고 말한다(상게서, p. 311).

 16) 벌링거는 “한 하나님 안에 세 분이 계시기 때문에 삼(3)은 신성과 관련 있는 수”라고 말한다(상게서, p.141). (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