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본체를 붙잡다 제5부 재림교회의 토대와 성서적인 그리스도론 제16장 성서에 근거한 그리스도론 자료
 이 이유는 근본적이면서도 모든 다른 것들을 정당화 한다. 분명히 만약 태초에 죄가 없었더라면 그리스도의 성육신도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죄 때문에 그리고 인간을 위한 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성경 전체는 죄 문제에 대한 하나님 편의 답변이시다. (377.2)
 죄가 창조주의 율법에 대한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의 결과로 세상에 들어 오자마자 하나님은 구원을 위한 계획을 밝히셨다. 우리의 첫 조상들에게 죄의 결과를 제시하시기 전에 여인의 씨로부터 구주가 태어나실 것을 그들에게 약속하셨다. 뱀이 당신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때 그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맹세하셨다(창 3:15). (377.3)
 이와 같이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구주의 약속은 계속되었다.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하나님은 선지자 다니엘에게 메시야가 당신의 구속사업을 성취할 특별한 시간에 오실 것을 선포하셨다. 곧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단 9:24). 궁극적으로 예수께서 친히 요단 강가에 침례 요한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요한은 그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외쳤다. (377.4)
 그리스도의 사명이 일단 성취되었을 때에 바울은 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롬 8:3)시고 육신 속에 있는 죄를 멸하셨는지 그 이유를 동시에 설명한다. (377.5)
 2. 육신 속에 있는 죄를 멸하기 위해
 특별히 육신 속에 있는 죄를 멸하심은 ‘대리적으로’ 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어떤 단순한 법적 변화의 기초로 한 것이 아니었다. 죄 때문에 말씀이 육신이 될(요 1:14) 필요가 있었고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다는 것이다. (377.6)
 육신 속에 있는 죄를 멸하사 바울은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골 1:22) 그리스도는 죄를 이기시고 피 흘리기까지 죄에 대항하셨다(히 12:4)는 것을 강조한다. ‘그의 육체’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새롭고 산 길을 여”(히 10:20)셨는데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함이셨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 전 2:24)고 선포하였다. 더욱이 모든 “마귀의 일”(요일 3:8)은 물론 사망을 폐하기 위해(딤후 1:20) 그리스도는 인간의 혈과 육에 참여하셔야 만 했는데 이는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히 2:14)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히 7:26)신 자가 되기 위해, 그리고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히 2:15)는 위치에 계시기 위하여 필요 불가결 하였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바울에게 주어진 세 번째 이유이다. (378.1)
 3.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자유케 하기 위해
 육신 속에 있는 죄를 멸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사람의 속박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행동하실 수 있으셨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그러므로 죄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것이 성육신의 첫 목적이다. (378.2)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성경기자들은 노예를 훈련시킨 당대의 언어를 사용했으며 노예를 자유케 하려고 속량물을 그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그러나 그분은 당신의 공적 유익을 위하여 부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롬 8:34, 36)고 하신다. (378.3)
 “인자의 온 것은 ∙∙∙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379.1)
 바울은 이와 같이 다음과 같은 표현들을 사용하였다. 그가 갈리디아인들에게 편지하기를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ransom)(문자적으로는 값을 주고 사들이는 것)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 5).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서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딤전 2:6)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 다음 디도서에서는 예수께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to set free) (문자적으로는 해방시키다는 의미)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고 쓰고 있다. 간략히 말하면 예수께서 우리 죄를 없이하시려고(요일 3:5)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다(계 1:5; 요일 1:7~9). (379.2)
 4.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신 궁극적인 목적이시다. ‘하기 위하여(in order that)’란 접속사는 바울의 마지막 진술을 소개하는 것으로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행위의 목적을 나타낸다. 여기서 다루려고 하는 것은 칭의(justification)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righteous)가 율법을 요구한다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죄의 법 아래 있는 죄수들인 인간으로서 우리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십계명을 순종 할 수 없다. 우리가 원하지만 능력이 없다. 더 나아가 우리를 죄의 권세로 부터 해방시킬 능력이 율법 자체에는 없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아무튼 이것은 율법이 폐하여졌다거나 우리가 더 이상 그것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379.3)
 반대로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전 7:19)고 단언한다. 예수는 우리로 당신의 율법에 표현되어 있는 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으니 이를 위해 그분은 우리를 위해 본을 보이셨다. (380.1)
 당신께서 인간의 혈육에 참여하심으로, 그리고 육신에 거하는 죄를 당신이 이기셨기 때문에 예수는 우리에게 살리는 활력소 곧 모든 죄인이 “믿어 순종케”(롬 1:5; 16:26) 할 능력을 받을 수 있고 변화를 위한 권능을 받을 수 있는 활력소의 근원이 되셨다. 만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인간의 연대 책임을 통하여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는 것 또한 보증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고 바울은 역설한다. (380.2)
 그리스도께서 중보자가 되신 약속된 새 언약에 일치해, 율법은 더 이상 돌비에 새긴 것만은 아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히 10:16). 이런 방법으로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서 성취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이후로는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영을 따라 그리스도를 본보기로 살 것이다. (380.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통한 승리
 로마서의 같은 페이지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명의 이유를 설명할 뿐 만 아니라 그는 또한 우리에게 죄에 대한 당신의 승리의 비결을 보여주시며 불가능이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들에게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두 번이나 사도는 성령에 대해 언급한다. 첫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을 말하고, 그 다음은 그리스도의 영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예수께서 행하신 대로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요일 2:6). (380.4)
 1. 그리스도:‘영으로 새롭다 하심을 입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