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본체를 붙잡다 제5부 재림교회의 토대와 성서적인 그리스도론 제16장 성서에 근거한 그리스도론 자료
 오늘날 이와 같은 고백을 하는 신학자들은 원죄설을 성서의 가르침과는 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3 (368.2)
 죄 문제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하여 “죄는 불법”(요일 3:4)이라고 아는 것만으로 족하지 않다.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롬 5:12)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성서의 기록자들, 특히 바울과 같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모호하지 않고 확실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첫째는 죄를 행함의 원인으로서와 행함으로 죄를 짓는 것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368.3)
 1. 능력으로서의 죄와 행함으로서의 죄
 성경은 시험(유혹)의 능력으로서의 단순한 죄와 율법에 대한 범법이 행위로서의 복수로 되어있는 죄들 사이에 중대한 차이를 말하고 있다. 바울은 특별히 그를 “죄수(prisoner)”(롬 7:23)로서 붙들고 있는 ‘죄의 법’이라고 부르는 것과 “육체의 일”(갈 5:19~21; 딛 3:3)로 그가 분류하고 있는 죄 사이에 분명한 차이를 말하고 있다. (368.4)
 ‘죄 아래 팔린’ 사람으로 분석하면서 바울은 죄의 법이 그 안에 곧 자기의 육신 안에 살아있다고 말한다. 이런 법칙이 그가 자체 속에서 역사하며 “내 마음의 법과 싸”우고 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그는 말한다. (368.5)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결론적으로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4~23). (368.6)
 바울은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죄의 법의 포로’로 만드는 원칙에 대해 규정한다. 첫째로 그는 그것을 ‘육신의 생각’이라고 부르는데, ‘영의 생각’(롬 8:6)과 반대되는 것이다. 생각(phronema)이라는 말은 애정(affections)을 포함하는데 ‘육신을 좇는 자(according to our sinful nature)’ 혹은 ‘영을 좇는 자’의 이성은 물론 의지를 포함한다(롬 8:4, 7). 바울은 또한 다음의 표현을 사용한다. “육체의 욕심”(갈 5:16, 17). 이는 매우 자주 마음의 “정욕”(롬 1:24, 6;12, 7:7) 이 말로 번역이 된다. 결국 ‘죄의 권세’란 표현은 아담 안에서 역사하여 그들 죄의 종으로 사로잡는 다이나믹한 원리로 잘 전달된다. 이런 표현들로 말미암아 바울은 죄의 행동에 대한 것으로 언급하지 않고 단순히 우리를 죄 짓도록 이끄는 육신의 경향에 대한 것으로 언급한다. 이것들은 단지 성향들이지 죄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자연적인 불순종에 대한 경향들은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것이며 우리가 그런 나쁜 유혹들에 굴복하게 될 때 필연적으로 죄가 된다. (369.1)
 시험의 과정에 대한 분석 가운데서 야고보는 ‘정욕(lust)’과 죄 된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간결하게 말한다. 그에 의하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봉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 15). 다시 말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이니 이것들은 모든 시험의 근원이며 광야에서의 그리스도의 경험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는 자가 동의할 때만이 죄가 되는 것이다. (369.2)
 엘렌 G. 화잇은 자신의 저서 가운데 이 점을 확고히 했다. “사람들이 최선을 다할지라도 괴롭히는 사단에 의해 암시되고 유발되는 생각들과 감정들이 있다. 그러나 만약 그것들이 품어지지 않거나 또는 그것들이 죄에 대한 증오심으로 격퇴된다면 영혼은 범죄로 나쁜 영향을 받게 되지 않을 것이며 어떤 다른 것도 그것들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다.”4 유혹의 정도가 어떠하든지 그 자체는 결코 죄가 아니다. “어떤 사람도 강제로 범죄하게 할 수는 없다.” (369.3)
 “그 자신의 동의를 먼저 얻어야 한다. 정욕이 이성을 지배하고 불의가 양심을 이기기 전에 심령은 범죄의 행동을 의도해야 한다. 유혹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죄에 대한 핑계는 결코 있을 수 없다.”5 (370.1)
 엘렌 G. 화잇의 증언을 들어보자. “독생자께서는 인간을 공격하는 모든 유혹들 곧 격렬하고 겉으로 보기에 압도적인 시험과 씨름하셨는데 그 시험들이란 식욕의 방종,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 않는 일에 나타내는 주제넘은 모험심, 이 세상의 우상숭배, 이생의 현혹적인 쾌락 때문에 영원한 축복을 희생시키는 것 등이다. 모든 사람이 시험을 받을 것이로되 우리들이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받도록 허락하시지 않겠다는 성경 말씀이 있다. 우리들은 교활한 원수를 항거할 수 있으며 패배시킬 수 있다.”6 “그분께서는 경험을 통하여 인간의 약점이 무엇이며, 우리의 소원이 무엇이며, 우리를 시험하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아신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히 4:15)기 때문이다.”7 (370.2)
 예수님과 인간 사이의 차이는 육신의 수준이나 시험의 수준 여하에 있지 않다. 이는 그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이셨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선을 행할 육망을 가지고 있을 때조차도 그는 자기 안에 거하는 죄(롬 7:117, 18)의 권세를 대항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그 짐을 진자 만이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히 12:4) 대항할 수 있었다. 엘렌 G. 화잇은 “주께서는 비록 그가 인간이 갖는 모든 감정을 갖고 계셨지만 결코 유혹에 굴복하므로 정결하고 고상하고 숭고하지 못한 단 하나의 행동도 하지 않으셨다.”8 (370.3)
 예수께서 어떻게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죄 없이 사실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위하여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이 있지 않으면 안 되리라. 그것은 ‘유전의 큰 법칙’9에 따른 모든 아담의 자손들에게 유전된 아담의 죄의 결과들과 부모로부터 자녀들에게 유전되지 않은 죄(guilt) 사이에 차이인 것이다. (370.4)
 2. 오직 죄를 범한 자들만이
 원죄설에 의하면 육신의 죄에 대한 갈망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아담의 죄 때문에 출생시부터 본질적으로 죄인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것은 죄의 저주를 멀리하기 위해 유아침례를 행하는 데서 설명된다. 이런 믿음의 실행은 총체적으로 성경에서 멀리 떠난 것이다. 원죄설의 근거가 되는 로마서 5장 12절에서 조차 모든 인간이 죄인들로 태어난다는 것을 전혀 확증하지 않는다. 그 밖에도 바울은 모세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류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롬 5:14)하였다. (371.1)
 성경은 죄를 짓는 것은 유전에 의해 전달되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오직 죄는 죄를 지은 자만의 것이다.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 24:16; 왕하 14:6). 선지자 에스겔은 다음 구절 가운데 이 동일한 법칙을 반복한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20). (371.2)
 그러므로 각 사람은 자기 허물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만일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시 51:5)다면 시편 기자의 말에 따라 자기 조상들의 죄를 범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바울은 출생 전에 이삭과 리브가의 자녀들은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롬 9:11)하였다고 말한다. 분명히 그들은 스스로 유전으로 말미암아 아담의 죄의 결과를 졌다. 아담의 죄는 그들을 필연적인 죄인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범죄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를 행치 않았고 본질적으로나 유전에 의해 죄를 짓지 아니한 것이다. 이와 같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갈 4:4)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인데 이는 예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371.3)
 이런 점에서 엘렌 G. 화잇은 기록하기를 “자녀들이 부모의 비행의 결과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나 그들이 부모의 죄에 동참하지 않는 한 부모의 죄 때문에 그들이 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자녀들은 부모의 발자취를 따른다. 유전과 부모들의 모본으로 말미암아 아들들은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짓는다. 나쁜 버릇과 그릇된 식욕과 저열한 품행은 육체적 질병과 퇴화 현상을 지니고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전승물로 내려간다.”10 (372.1)
 아담과 하와의 자손이 유전으로 받은 것은 죄에 대한 경향과 결과이다.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뱀의 독이 죽음을 주는 바이러스와 같이 인간성 안에 주입되었다. (372.2)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