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본체를 붙잡다 제5부 재림교회의 토대와 성서적인 그리스도론 제16장 성서에 근거한 그리스도론 자료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성(fallen human nature)을 취하셨다는 입장은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다만 소수의 지지자들로 이어져 왔다. 또한 이것을 가르쳤던 사람들은 자주 이단으로 간주되었는데 이것은 일반에게 쉽게 인정되지 않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진리는 추종자들의 수 여하에 달려있지 않다. 다수의 성서적 진리들은 선입관이나 성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가르침의 결과로 생긴 그릇된 개념들에 의해 여러 세기동안 왜곡되어 왔다. (364.1)
 인간의 본질이나 운명 같은 문제는 가장 중요한 실례가 된다.1 영혼불멸설에 대한 플라톤의 사상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선조들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영생에 관한 심각한 오류들을 남기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인성 문제에 대한 신약성서의 자료들과 관계없이 독자적인 이론들이 자리를 굳히고, 그 결과로 잘못된 신조를 남기게 되었다. (364.2)
 신약성서의 증거
 어떤 문제를 풀기위해 사람은 주의 깊은 자료 분석을 가지고 시작하여야 한다. (364.3)
 잘 이해가 되면 그 문제의 절반은 풀린 것이다. 그리스도론이 기초하고 있는 분명하게 정립된 성서자료는 다음과 같은 하나의 패러독스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어떤 죄에도 참여하지 않고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참여하셨다. (365.1)
 이런 이중적인 단언은 요한복음 서두의 핵심으로 제시된다. 한편으로 사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선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고 선언한다. 이 역설은 타락한 상태 가운데 인간이 되신 반면, 그럼에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여, 죄 없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365.2)
 요한은 이 진리를 자신의 그리스도론의 기준으로 삼는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 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2, 3). (365.3)
 요한이 사용한 ‘육체(flesh)’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가치를 떨어뜨리는 어감을 함축하고 있다. 인간은 “육정으로”(요 1:13)태어난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를 따라 판단”(요 8:15)한다. 요한은 결론짓기를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좋아온 것이라”(요일 2:16)고 하였다. 예수는 친히 습관적으로 ‘육신(the flesh)’을 따르지 않고 ‘영(the spirit)’을 좇았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임하니라”(요 6:63). (365.4)
 바울은 이와 같이 자신의 편지서 가운데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있는 육과 영 사이의 반대됨에 대해 강조하였다. 로마서의 서문에서 그는 이 용어로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규정한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롬 1:3, 4). (365.5)
 ‘경건의 비밀’을 호소하면서 바울은 그리스도론의 근본적인 것을 다시 한번 진술한다. “그(하나님)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딤전 3:16, KJV). (366.1)
 그리스도는 ‘육신’이시면서 동시에 ‘영’이시라는 것, 곧 진실로 사람이면서, 또한 진실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단언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육신 속에 있는 죄를 멸하시고”(롬 8:3),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롬 8:3)으로 보내셨다고 말한다. ‘모양’이라는 말에 주어진 의미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그리스도의 육신이 당신의 출생시에 인성을 취하신 그 육신과 차별화하기 위해 의미를 부각시킬 수는 없다. 그러므로 예수는 타락 전 아담과 같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창조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366.2)
 빌립보인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바울은 인간의 상태의 실재와 예수님께서 당신의 생애의 바로 마지막까지의 완전한 순종 사이에 존재하는 패러독스를 강조한다. 한편으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인성에 온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참여하심에 관하여 강조한다. 그는 ‘종의 형체’(글자 그대로는 노예)를 취하셨다. 그는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7, 8). 다시 말하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으며 모든 사람과 같으셨을지라도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심으로써, 그리스도는 “육신 속에 있는 죄를 멸하셨”(condemn은 폐기처분하다. 멸하다는 의미가 있음: 역자 주)을 뿐만 아니라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의 구속자로 오셨다. 강조해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366.3)
 히브리서에서 이 동일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업에 관한 이중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6, 17). 형제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히 2:14)셨다. (366.4)
 그러므로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이것이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7, 18). (367.1)
 이것이 그리스도론에 대한 기본이 되는 성서적 근거이다. 어느 누구도 성서적 기준이 부족한 논증을 가지고 그 근거를 약화시키거나 변화시킬 권리가 없다. (367.2)
 죄에 대한 성서적 개념
 그리스도론의 주요 문제점들 중 한 가지는 죄의 본질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첫째로 죄에 대한 성서적 개념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 세기를 통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성서의 가르침과는 거의 조화되지 않았다. (367.3)
 가톨릭이나 많은 개신교들은 원죄설을 가르치고 있다. 이 교리는 이해하는 다양한 길들이 있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우리가 출생시부터 죄인들 곧 우리가 아담의 후손들로서 아담의 가족에 속하기 때문에 단순히 허물이 있는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의 요점으로부터, 만일 예수께서 모든 사람들과 동일한 죄 있는 인성으로 태어나셨다면 그는 출생시부터 허물이 있는, 죄인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우리의 구주가 되실 수 없으실 것이다. (367.4)
 이런 전제를 채택함으로 복음주의 신학자들을 따라 재림교회 신 그리스도론의 지지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타락 전 아담의 본성을 취하셨다”고 결론 지을 수 있다. 온 세상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는 죄 없는 본성을 취하셔야만 했으며 그가 만약 타락 후 아담의 본성으로 출생하셨다면 죄 없는 본성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367.5)
 원죄설은 성서적 뒷받침이 없기 때문에 전통적 재림교도들은 그것을 정죄하거나 혹은 단지 그것에 무지하다. 엘렌 G. 화잇은 그녀의 모든 저서들에서 결코 그것을 언급한 사실이 없다. 다만 한번 ‘원죄(the original sin)’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최초에 아담이 범한 죄와 관련하여 사용한 적이 있다. “범해진 모든 죄마다 원죄를 일깨운다.”2 (3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