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창조와 종말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창세기 1-3창세기 6-9장‘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상응관계를 맺고 있다. 아담이 축복을 받은 것처럼 대홍수 후에 노아가 축복을 받았으며, 창세기 5장이 창조 때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성취인 것과 마찬가지로 창세기 10장은 대홍수 후에 동일한 축복의 성취인 것이다.13 비록 노아가 경건한 사람이긴 했지만, 후에 술 취하는 수치를 보여주는 죄인에 불과했다(창 9:20-21). 대홍수를 초래한 인간의 죄성이 홍수 후에도 전혀 고쳐지지 않고 인류에게 전수되었으며, 종말이 있어야 할 당위성이 인간 본성 속에서 발견된다(창 9:20-21. 비교, 창 8:21). (332.1)
 게이지(W. A. Gage)는 창세기 1-7의 기원론의 기초 위에서 창세기 8-12장으로부터 ‘창세기의 종말론적 구조’를 제시한다. 대홍수 전의 역사(창 1-7)와 대홍수 후의 역사 사이에는 평행점이 발견이 된다. 그가 창세기 12장을 포함시킨 것은 ‘씨앗’ 모티브를 통해서 보편적인 인류의 역사를 이스라엘의 역사와 연결시키려는 의도에서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각각의 기사들 속에서 다섯 개의 종말론적 구조를 제시했다.

   ① 창세기 8장: 새창조

   ② 창세기 9장: 새아담

   ③ 창세기 9:20-27: 타락의 갱신

   ④ 창세기 11-12: 씨앗의 쟁투의 갱신

   ⑤ 종말론적 기대: 새심판14 (332.2)
 인간의 사악한 본성 때문에 하나님이 필히 인간을 심판하셔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통한 ‘에스카톤’은 불가피하다(창 8:21). 창세기 1-11장은 인류의 보편적 역사를 다루고 창세기 12장은 세상 창조와 이스라엘의 역사를 연결시키기 때문에 창세기 1-11장의 신학적 기사들 속에 간직되어 있는 종말론적 요소들은 전세계적인 ‘에스카톤’과 이스라엘의 민족적 ‘에스카톤’의 중요한 특색들을 이해하는데 유용하다(참조, 렘 4:23-26).15 (333.1)
 창세기 1-11장의 기원론과 종말론 사이의 상관관계를 역사에 적용하는 것은 예수님(마 24:36-39; 눅 17:26-27)과 베드로(벧전 3:19-21; 벧후 3:6-7)가 그랬던 것처럼 노아홍수에 대한 신약의 표상학적 접근의 타당한 기초를 제공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베드로는 세계적 적용을 통해서 보편적 인류역사의 ‘에스카톤’에 관심을 갖는다. (333.2)
 4. 종말론적 기간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전지하시기 때문에 한 순간에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으며, 심판을 위해 지속되는 특별한 기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재림전 심판, 혹은 조사심판은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심판은 종말론적 사건에 속하며, 대홍수 기사는 이 문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333.3)
 대홍수의 시작과 끝에 있는 종말론적 술어인 ‘끝’(창 6:13)과 ‘땅이 있을 동안에는’(창 8:22)을 통해 창세기 6-9장은 하나의 종말론적 단위를 이룬다. 이들의 용법을 통해서 종말은 어떤 한 시점이 아니라 기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신약도 지지한다. 마태복음 24:36-39에서 ‘노아의 때’(마 24:37)는 창세기 6-7장에 기술된 ‘홍수 전’‘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마 24:38)과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마 24:39)를 포함한다. 베드로는 창세기 7-9장을 언급하여 물로 노아 시대의 ‘세상’이 멸망 당한 것과 하나님께서 노아와 일곱 식구를 홍수로부터 보호하신 것을 말한다(벧후 2:5; 3:6). (334.1)
 ‘케츠’(קֵץ, qëc,) (‘끝’)는 ‘에스카톤’으로서의 어느 시점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지 않는다. 시간적 용법에 있어서 ‘케츠’‘어느 정해진 기간(a set term), 확정된 시간적 기간의 완성’(합 2:3; 시 39:5; 욥 6:11)을 의미하며, 아모스 8:2예레미야 애가 4:18에서처럼 멸망(doom)을 내포할 수 있다.’16 창세기 6:13‘케츠’(קֵץ, qëc, ‘끝’)는 문맥 속에서 두개의 종말론적 실체를 가리킨다. 첫째는 직접접 문맥 속에서 모든 육체의 ‘멸망’을 가리키고(창 6:13) 둘째는 점 더 넓은 문맥 속에서 120년간의 유예기간과 일년의 집행기간과(창 6:3; 7:11; 8:14-18)17 대홍수 후의 완화기간이다. (334.2)
 대홍수기사의 시간적 요소들은 세계의 에스카톤이 하나님의 심판의 측면에서 인류의 운명과 관련하여 삼대 시상(three phases of time)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① 심판전 시대

   ② 심판시대

   ③ 심판후 시대 (334.3)
 5. 종말론적 기간으로 본 이스라엘 말기 역사
 구원사의 넓은 맥락에서 포로기와 귀환시대에 걸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의 양식과 동일하다. 고완(D.E. Gowan)은 이것을 사망(722-587 BC)—부활(538 BC와 포로후기)이란 공식으로 요약했다.18 사망은 심판전 시대와 심판 시대를 포함하기 때문에 이 공식에 따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심판전 시대, 심판시대, 심판후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심판시대는 앗시리아의 위협과 이스라엘의 사망,(아모스, 호세아, 미가, 이사야 1-39) 신바벨론의 위협과 유다의 사망(스바냐, 나훔, 하박국, 예레미야, 오바댜, 에스겔, 요나)을 포함한다. 예언서들은 멸망과 회복 속에서 에스카톤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성취될 이상적인 시대를 바라본다. (335.1)
 6. 종말론적 기간으로 구성된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은 ‘에스카톤’을 다루는데,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기록한다. 이 책의 대부분은 역사를 다루지 않지만, 반복되는 이상들을 통해서 전심판,(prejudgment) 심판, (judgment) 후심판 (postjudgment)의 양식으로 ‘에스카톤’을 다루고 있다.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계 14:7)고 선포하는 첫째 천사의 선포에 이어 바벨론(계 18)과 마귀(계 20)가 멸망하고 새 예루살렘과 생명강이 있는 새 세상이 온다(계 21-22). ‘전심판—심판—후심판’으로 이뤄지는 ‘에스카톤’의 세 양상이 매우 명백하다. 창세기에 내재된 기원론적이고 종말론적인 양상이 소망하는 궁극적인 새 창조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요한계시록에서 성취된다. (335.2)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의 실현이 신천지를 주시는 측면에서 창세기 8장과 짝을 이루는 요한계시록 21-22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새롭게’(계 21:5) 하시고, 모든 부패가 영원히 사라진(계 21:8, 26; 22:15) 신천지에서(계 21:1) 주님의 거룩한 백성들과 함께 거하신다(계 21:22-24; 22:3-5. 비교 22:11). 성경의 마지막 두 장은 창세기 8장이 참고로 하는 성경 첫 두 장인 원창조의 온전한 회복이다. (336.1)
 참고 문헌
 1. Virgil H. Todd, ‘Biblical Eschatology: An Overview,’ Cumberland Seminarian 22 (1984): 3-4.

 2. 죽음과 부활

 3. 주의 날, 세상 끝, 심판, 천년기와 죄악의 종말, 새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왕국

 4. G. E. Ladd, ‘Eschatology’, ISBE 2:130.

 5. ‘Eschatology’, The Eerdmans Bible Dictionary, (Grand Rapids, MI: Eerdmans, 1987), 347.

 6. 아브라함은 창조신앙을 통해서 하나님을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불렀다(창 14:22).

 7. David J. A. Clines, ‘Themes in Genesis 1-11’, Catholic Biblical Quarterly 38 (1976): 490.

 8. Andrew E. Hill and Gordon H. Matties, ‘קץ’, NIDOTTE 3:955.

 9. Gage, 8.

 10. Claus Westermann, Creation, trans., John J. Scullion (London: S.P.C.K., 1974), 22.

 11. 종말론을 하나님이 아닌 사건 중심으로 정의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동적인 활동을 포함하기에는 지나치게 편협하다. 브라워(K.E. Brower)는 종말론을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그리고 창조 질서를 위한 하나님의 능동적인 언약적 성실성의 방향과 목적’이라고 정의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넓게 연결시켰다. Kent E. Brower, ‘Let the Reader Understand’: Temple & Eschatology in Mark,” Eschatology in Bible & Theology: Evangelical Essays at the Dawn of a New Millennium,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7), 119.

 12. Westermann, Creation, 22.

 13. Ibid., 23-28.

 14. Gage, 7-16.

 15. 이스라엘의 ‘에스카톤’은 반창조(uncreation)로 이해될 수 있다. 참조, Jack W. Vancil, ‘From Creation to Chaos: An Exegesis of Jeremiah 4:23-26,’ Biblical Interpretation: Principles and Practice, ed. F. Furman Kearley et al.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86), 181-192.

 16. Sarna, 51.

 17. 대홍수는 노아의 600년 2월 17일에 시작했고(창 7:11), 노아는 601년 2월 27일에 방주를 떠났다(창 8:14-18).

 18. Donald E. Gowan, Theology of the Prophetic Books: The Death & Resurrection of Israel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8). (3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