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종말론’(eschatology)은 그리스어의 ‘에스카토스’(:escatoj, eschatos, ‘마지막, 최종적인’)와 ‘로고스’(lo,goj, logos, ‘말씀’)가 합성된 것으로 ‘마지막 사물에 관한 말씀, 혹은 교리’를 기본적으로 의미한다.1 종말론은 개인의 운명2과 역사의 운명3을 다룬다. ‘전통적으로 종말론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운명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성경 종말론에서 개인의 운명은 전체적인 역사의 운명과 관련해서 이해해야 한다.’4 ‘구약은 공동체(이스라엘)의 미래를 강조하는 한편 신약은 개인의 운명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다.’5 (328.1)
 창세기는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시는 분(사 46:10)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에 개인과 역사의 운명에 관한 기본적 이해를 제공한다. (328.2)
 1. 개인의 운명
 인간의 본질에 관해 창세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328.3)
 하나님의 형상.인간은 ‘각기 종류대로’ 창조된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창 1:26-27. 비교, 창 1:21, 24, 25). (328.4)
 흙으로 창조됨. 인간은 존엄성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물들과 동일하게 흙으로 창조되었다(창 2:7, 19). 인간은 물질적 구성 성분을 놓고 타 동물들과 우열을 논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이것은 인간을 겸손하게 하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자신을 ‘티끌’(עָפָר, `äpär)이라고 고백하였다(창 18:27). 이 고백은 인간의 본질이 흙임을 인식한 창조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6 (328.5)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심.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받았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전능자께서 살게 하신다(욥 33:4). (329.1)
 조건적 불멸.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한도 내에서만 생명의 영속성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조건적 불멸성을 가진 존재이다. 인간은 생명나무 실과를 먹어야 했으며(창 2:9)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아야 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329.2)
 죽음은 창조의 역행. 인간의 죽음의 창조의 역행이다. 범죄 후에 인간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선고를 받았다(창 3:19). 죽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호흡이 거두워진 것이며, 인간은 흙에서 창조되었으므로 그의 근본인 흙으로 돌아간다(욥 34:15; 시 104:29; 전 3:20). (329.3)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하는 죄인임. 아담의 죽음은 죄의 값이 사망임을 증거하며, 창세기 5장11장의 부조들의 족보는 아무도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담은 구백삼십세를 살고 죽었다(창 5:5 ).그의 죽음은 성경상 최초의 자연사에 해당하며, 당대인들에게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깊은 자각을 끼쳤을 것이 분명하다. (329.4)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 아담의 족보에 있는 므두셀라로 구백육십구세를 살았다(창 5:27). 일천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을 산다고 해도 결국 죽음의 권세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대홍수 후에 급격한 수명의 감소가 발생했음을 창세기 11장의 셈의 족보는 말한다. (329.5)
 영생의 희망이 열려있음.족보는 죽음의 행렬에 선 사람들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다. 아담의 칠세손 에녹은 그 예외에 속한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 하였더라.’(창 5:24) 죽음의 결박을 끊을 수 있는 길이 인간에게 열렸다. 이 길은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 가운데 마련되었다(창 3:15).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만나고(요 14:6) 하나님과 화목하고(롬 5:1-2) 영생을 누릴 수 있다(요 3:16; 5:24). (330.1)
 죄와 사망에 종말을 가져오신 예수 그리스도. 아담의 범죄와 함께 아담 안에서 온 인류가 종말에 직면했으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종말을 유보하셨다.7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개인과 인류의 역사의 궁극적 운명에 관여하셨다(창 3:15). 창세기 5장11장의 족보는 인류의 죽음의 행진을 끊기 위해서 믿음의 부조들을 통해서 구속의 역사가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눅 3:38)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해 드디어 그분이 사망의 결박을 풀어 인류에게 새 시대를 열어 주셨다고 선언한다. 예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류에게 새 생명을 주고 불의의 시대를 끝내고 사랑과 정의의 시대를 가져오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초림은 종말론적 사건이다. 이것을 가리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했다(히 1:2). (330.2)
 2. 역사의 운명
 개인과 역사의 종말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음을 대홍수 기사는 보여준다. ‘고대에 명성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업적은 대홍수로 완전히 사라졌다. 예수님께서는 대홍수가 장차 임하게 될 세상 종말에 대한 하나의 본보기라고 말씀하셨다(마 24:37-38; 눅 17:26-27) 대홍수 기사에서 역사의 종말에 대한 언급을 발견할 수 있다. (331.1)
 종말론적 술어. 종말론적 전문술어인 ‘케츠’(קֵץ, qëc) ‘끝’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대홍수 기사 속에서이다(창 6:13). 이 용어는 드물게 ‘공간적 경계’를 가리키고(렘 50:26) 자주 ‘종말’(eschaton)을 가리키는데, 특히 다니엘은 후자적 의미로 사용했다(단 8:17, 19; 11:40; 12:4, 6). 이 용어는 하나님의 심판의 문맥 속에서 대홍수 전 시대의 종말과 이스라엘과 유다의 종말을 가리킨다(창 6:13; 암 8:2. 참조, 겔 7:3).8 (331.2)
 ‘땅이 있을 동안에는’(עֹד כָּל־יְמֵי הָאָרֶץ, `öd Kol-yümê hä´ärec, 창 8:22)는 땅이 존재하지 않는 때가 있을 것임을 예견한다. 이것은 ‘예언적 계시의 말씀’(prophetic oracle)으로 ‘종말론적 종착지(eschatological terminus)를 예견하고’9 ‘인류의 역사가 끝나게 될’10 때를 가리킨다. (331.3)
 대홍수 전 시대의 종말은 창조 질서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최종적으로 성취될 궁극적 종말의 표상이 된다.11 ‘우리는 여기에서 원시시대와 마지막 시대 사이의 상응관계를 본다.’12 기원론(protology)과 종말론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331.4)
 3. 기원론과 종말론의 상관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