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5 부 내 제사장이신 예수님과 함께 (죄와의 교제 관계로부터의 해방) 23. 제사장의 의복 (나의 모든 의는 그리스도의 것임)
 요세푸스는 이 띠의 길이가 손가락 네개 정도의 넓이와 사람 몸을 두번 두를 정도의 길이였다고 기억한다. 그 때는 앞에서 묶었고, 띠의 끝은 발까지 매달려 있었다. 제사장이 번제단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에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하여 그 띠의 끝을 왼쪽 어깨 위에 걸치곤하였다(Antiguities I:3:8). (281.1)
 사랑의 띠
 성경 전체에 걸쳐 “띠”는 항상 봉사하기 위하여 준비되어 있음을 뜻한다(눅 17:8; 행 12:8; 엡 6:14; 삼하 22:40; 왕상 18:46; 왕하 4:29). 이 표상은 예수께서 매일의 삶을 사시면서 자신에게 지우신 내적인 억제에 의하여 성취되었다.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예고 되었고(사 11:5), 예수께서는 이 요구 조건을 확실하게 성취하셨다. 요한은 이상중에 승천하신 예수께서 제사장으로서 일곱 금촛대 사이에서 봉사하시는 것을 볼 때 예수께서는 이 길고 흰 옷을 입고, 예수의 믿음과 사랑을 상기시켜 주는 금띠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계 1:13). 예수는 의로 봉사하는 임무에 매인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281.2)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왕같은 제사장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을 ∙∙∙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이다(눅 12:35). 우리 마음의 허리띠(벧전 1:13)가 연구로 단련될 때 “성경 말씀이 그들에게 안내자요 의지임이 판명되었다[될 것이다]”(선지자와 왕, 428). 구세주께서는 다락방에서, 종들의 종으로서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었다.” 대제사장의 에봇 혹은 무릎 덮개 천은 이런 봉사의 태도를 나타내었다. 그리고 이제 허리띠를 동여맨 종은 항상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고 계신다. (281.3)
 그리스도의 삶은 완전한 사랑의 삶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속하게 항상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셨다. 그분의 순종은 이 세상의 곤궁한 자들을 위한 억수같은 봉사로 차고 넘치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깨진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었고, 완전한 의의 삶으로 분노한 공의를 달랬다. 이제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완전한 품성을 은혜를 통하여 주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은혜, 값없는 은혜, 최고의 은혜에 빚졌다. 언약 안에 내재된 은혜는 우리의 입양을 명하였다. 구세주의 은혜는 우리의 구속, 우리의 중생, 그리스도와 같은 상속자에로의 우리의 입양에 영향을 끼쳤다. 은혜가 다른 이들에게도 나타내어 지도록 하자”(6T 268). 그것은 죄인이 재판관의 호의를 얻을 수 있다는 보증이다. 믿음이여, 네 팔을 펴 이 능숙한 하늘 베짜는 사람인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이 값없이 주는 흰 옷 선물을 받으라. (281.4)
 마지막으로, 꽃받침(미그바아하<migba’ah>)의 모양을 닮은 하얀 모자 또는 “보네트(bonnet)”는 평 제사장이 썼다(출 28:40; 29:9; 39:28; 레 8:13에만 나온다). 이 모양과 색깔이 죽어 가는 꽃과는 정반대인 봄에 꽃피는 것과 베짜는 사람의 산 품성 발달을 제시하지 않았는가(벧전 1:24; 약 1:10; 시 103:15; 사 40:6~8)? 의(義)가 마음속에 쌓여져야만 한다. (281.5)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는 제사장 의복
 이 네가지 제사장 옷들의 재료와 그 디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탁월성을 가리켰다. 그리스도는 제사장의 세마포 옷이 그 모형인 실체이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소명을 받았듯이 우리도 그분의 의와 순결성의 옷을 입어야 하겠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형제와 자매들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벧후 1:4)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였기 때문이다(히 2:17).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품성의 옷이라는 선물을 받아들이냐, 무시하느냐, 혹은 털어 버리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편 기자도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시 132:9)라고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시 132:16)이라고 화답하셨다. 영원하신 성령이시여, 우리를 도우사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약속들을 우리의 것으로 요구하도록 하소서. 그것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義)가 되게 하려 하”심이기 때문이옵니다(고후 5:21; 실물교훈, 311; 치료 봉사, 506). (282.1)
 세마포 옷은 공중에서 치르어지는 혼인 잔치의 또 다른 노래를 아직도 부르고 있다. 승리자 대제사장은 오늘날 하나님의 보좌 곁에 서 계신다. 곧 다가올 어느 날 그는 하늘 신랑으로서 오랫동안 사랑하였던 신부를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데리고 가기 위하여 오실 것이다. (282.2)
 그분은 신부를 환희가 넘치는 혼인 예식을 위해 치장하고자 결혼 예복을 준비하였다(계 19:8). “하늘의 베틀로 짠 이 두루마기에는 사람이 만든 실은 한 올도 섞이지 않았다”(실물교훈, 311; 비교 요 19:23). (282.3)
 또 흰 세마포는 신부가 결혼 예복을 입고자 오랫동안 간절히 원한 노래를 부른다. 그것은 신랑이 흰옷을 입은 신부를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영원히 데리고 갈 때 혼인의 기쁨을 속삭인다. 오늘날 신부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녀는 왕비 제사장이며, 다음과 같이 증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제사장의 관을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다(사 61:10, 난외주). 요한은 그의 이상에서 신부가 모두 다 흰 옷을 입고, 그들의 주님께 구속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무수한 동료들과 서 있는 것을 보았다(계 7:9~17). (282.4)
 품성을 상징하는 네 벌의 흰 옷
 네벌의 흰 옷들은 모든 제사장들의 일정한 옷차림이었다. 또 흰색은 그들의 품성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나타나야 하는지를 묘사하였다(비교 계 19:8). 그들은 하얗게 묘사되었고, 순수성을 반사하기에 빛난다(비교 계 15:6).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가 제사장들의 봉사의 토대를 이루어야 한다고, 또 그들의 구세주의 삶이 그들의 벌거벗음을 가리고 그들의 생각에 불어 넣어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네벌의 옷들은 모두 다 모든 제사장들의 내적인 “존재”의 특성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상징하였다. 이 옷들은 봉사자들이 외적으로 하나님께 어떤 봉사를 할 수 있기 전에 예수의 입혀 주시고 나누어 주시는 품성을 통하여 내적으로 순수하여야만 하고, 본성상 거룩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증거한다. (282.5)
 그들이 “찬양과 감사의 옷, 즉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치료봉사, 506) 다음에야만 오직 그들의 하늘 제사장을 대표할 수 있었다. 이 내적 자질은 항상 또 언제든지 가납될 수 있는 외적 활동의 선결 조건이다. 이 네벌의 흰 세마포 옷들이 항상 선포하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283.1)
 대제사장의 복장에 추가된 다섯 가지 품목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평 제사장이 입는 네 벌의 흰 옷으로 입힌 다음에 추가로 다색(多色) “금 옷” 네 벌을 입혀 대제사장으로서의 아론의 제복을 완결지었다. 이렇게 불린 이유는 이 옷들이 금실로 아름답게 꾸며졌기 때문이다(레 8:7~9; 출 28:1~38, 42, 43; 29:4~9; 39:1~31). 이 봉사 제복을 네 벌의 흰 옷 위에다가 입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여야만 한다. 이 네 벌의 금 옷에다 아론을 “백성의 관원”(행 23:5)으로 구별하고자 챙이 없는 모자(터번)와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겨진 금관이 추가되었다. 이 추가적인 다섯 품목들은 아론의 독특한 대제사장적 기능을 나타내고, 아론의 직무와 성품의 “영화와 아름다움”을 보이고자 의도된 것들이었다. 이 추가 품목들은 또 대제사장이 자신의 독특한 의무에 부가하여 평 제사장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 상징적인 표현은 하늘 성막의 제사장이자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대제사장의 복장의 이 각 품목들을 좀 더 자세히 연구하여 보자. (283.2)
 청색 예복
 아론은 첫번째로 한 폭으로 짜고, 무릎 바로 아래까지 닿는(덮는다를 뜻하는 어근의 파생어 메일<me’il>은 사 59:17, 61:10), 소매없는 담청색 모직 겉 옷을 입었다. 요세푸스는 주후 1세기에 기록한 자신의 책에 “대제사장은 실제로 우리가 묘사한 것과 똑같은 옷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입었다. 오직 이 옷들 위에 청색 옷을 입었다. 이것은 긴 옷으로 대제사장의 다리까지 닿았다”고 말하였다(Antiquities, III: 7:4). 그 옷의 두 어깨 사이에 낸 구멍은 갑옷 깃 같이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였다(출 39:22). 세마포 옷의 흰색과 같이, 이 청색은 의미심장하였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색에는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겔 1:16).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율법의 봉사를 마음속에 분명하게 새겨 놓기 위하여 청색 리본의 소맷부리와 가장자리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독특한 의상의 일부분이 되도록 고안하셨다는 것을 배웠다(민 15:37~40). 백성들은 이 청색을 볼 때마다 십계명을 생각할 것이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청옥(靑玉)두 돌비에 직접 손가락으로 십계명을 새기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이것은 단순한 연관 개념이 될 것이다. (283.3)
 한 폭에 짠 이 청색 예복은 율법 전체를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상징하였다. 율법의 온전성은 십계명이 벌을 받지 않고 범할 수 없기 때문에 찢어져서는 결코 아니 되었다(레 10:6; 출 39:23). 자신의 옷을 찢은 대제사장은 그 행위로 인하여 자동적으로 사형의 정죄함을 받았다(시대의 소망, 708). 가야바는 기록상 옷을 찢은 유일한 대제사장이다. (283.4)
 이스라엘 백성 모두는 이 색이 암호로 말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깨끗하고 흰 고운 세마포가 나타내는 의로운 삶의 토대에서만 오직, 이음새가 없는 청색 예복이 제시하는 참된 순종이 있을 수 있다. 그리스도는 열의와 의를 옷으로 입고 있는 분으로서 나타내어졌다(메일<me’ il>, 사 59:17; 61:10). 이와는 대조되게 악한 자들은 수치의 옷을 입고 있다! (메일에드<me’iled>). (2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