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25장 요한계시록의 결론
 회복된 땅과 그 수도인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로써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은 끝난다. 이 계시의 책을 종결하면서, 요한은 그의 독자들에게 서두에서 선포한 것들을 상기시키고. 최후의 경고를 발하며, 마무리하는 말을 남긴다. (326.1)
 성경절 : 요한계시록 22:6-21

 요한계시록의 진실성
 요한계시록의 결론 부분은 밧모섬에서 요한이 이상 가운데서 보고 들은 것들은 다 신실하고 참되다는 확언으로 시작한다. 요한은 앞에서도 동일한 확언을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받았다(계 21:5).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러한 확언이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신실하시고 참되시기 때문이다(3:14; 19:11).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시다(22:13; 참고 1:8). 그분은 인간 역사의 A(시작)부터 Z(끝)까지이시다. 그분은 시작부터 그 끝을 아신다. 그분은 그분의 백성에게 “반드시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22:6) 계시록의 예언들을요한에게 주신 분이시다(1:1).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은 그것을 주신 그리스도께서 믿을 만하신 것처럼 믿을 만하며, 따라서 그 모든 것은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다. (327.1)
 여기서, 요한계시록을 읽는 독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책의 저자는 요한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그 책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선언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계 1:1).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에게서 온 책이고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이상 가운데서 그에게 보여 주신 것을 증언했고,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신실하게 기록하였다(1:2). (328.1)
 요한계시록의 결론도 예수님이 이 책의 저자임을 확언한다. 요한계시록 22:16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제1인칭으로 일컬으시면서 말씀하신다. “나 예수는 교회를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이고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이러한 진술은 이 책에 대한 예수님의 서명(署名)으로 보인다. 여기서 그분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이 그분에게서 온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분은 또한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은 교회들—요한 당시의 교회 그리고 전 역사의 모든 교회— 위해 기록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예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역사가 끝날 때까지의 교회의 미래를 열어 주신다. 그분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백성에게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들과 함께하실 것을 확신시키고 그들을 영원한 본향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328.2)
 재림을 보증하심
 요한계시록의 결론부에서 예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그분이 곧 오신다는 것을 세 번이나 상기시키신다(계 22:7, 12. 20).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 책의 중심 주제이다(참고 1:7).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고대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분의 재림을 가리켜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내가올 것이다”(“I will com”)라는 미래 시제를 사용하지 않고. “내가 속히 오리라”(“I am coming soon”)라는 미래적인 의미의 현재진행형을 사용하였다. 재림이 미래의 사건이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께서 권능과 영광으로 오실 때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하여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22:7). (328.3)
 다시 한번 요한은 이상(與像) 가운데서 보고 들은 것에 압도되어, 그에게 말하는 천사에게 경배하려고 엎드렸다(계 22:8). 하지만 앞서 요한계시록 19:10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천사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오직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아야 하며, 천사는 요한과 그의 동료 선지자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 유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종에 불과하다(22:9). (329.1)
 이어서 그 천사는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봉하지 말 것을 요한에게 지시한다(계 22:10). 이것은 다니엘서에 기록된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들을 봉하라고 다니엘에게 명령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단 12:4, 9). 다니엘더러 예언들을 봉하라고 한 이유는 그 예언들이 먼 장래에 일어날 사건들에 관한 것이고, 따라서 다니엘 시대의 사람들에는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은 봉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 까닭은 “때가 가깝기” 때문이다(계 22:10). 이 예언들은 세계의 역사가 그 끝에 이르렀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반복해서 읽고 연구해야한다(참고 1:3). (329.2)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움에 관한 선포가 이어진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계 22:11). 이것은 다니엘의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들의 인(印)을 떼는 것과 평행을 이룬다. 예언에 유의하는 자들과 예언을 거절하는 자들은 서로 분리될 것이다. 예언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자는 깨달으리라”(단 12:10). 요한계시록 22:11은 사람들이 예언적 기별을 얼마 동안은 거절할수도 있으나 때가 지나면 자신의 선택을 변경할수 없을 것임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역사의 어떤 시점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회의 문은 닫힐 것이고, 은혜의 기간은 그 더 이상 없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자의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이다(계 22:12). (329.3)
 요한계시록은, 영생에 들어가는 길은 우리의 두루마기[옷]를 빠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 22:14). 이것은 요한계시록에 있는 일곱 축복 중의 마지막 것이다. 깨끗하고 흰 세마포 두루마기는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이다(19:8). 그들의 옷은 어린양의 피로 희게 되었다(7:14).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의 의로운 행실은 그들의 삶 가운데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역사(役事)의 결과이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그분의 성전—새 예루살렘—에서 그분을 계속해서 섬길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 안에서 행하신 일의 결과이다(7:15). (330.1)
 다니엘 12:10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이, 마지막 때의 예언들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정결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나, 악한 자들은 그들의 악한 행위를 지속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그들을 개들과 거룩하지 않는 자들(마 7:6), 점술가들, 음행하는 자들, 살인자들, 우상 숭배자들 그리고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들이라고 밝힌다(계 22:15). 이러한 자들은 모두 새 예루살렘성에서 제외되고, 불못에서 그들의 종말을 맞게 된다(21:8). (330.2)
 최후의 호소와 경고
 속히 오시리라는 예수님의 선언에 대한 응답으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통해 “오라!”고 부르신다. 이 부르심에 응하는 자들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리스도에게 오라고 불러야 한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자도 올 것이요.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리라”(계 22:17). 이러한 부르심은 예수께서 초막절 때에 하신 호소를 반향(反響) 한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물은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라”(계 21:6). 이 생명수는 이 물을 마시는 모든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 줄 것이다. (330.3)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물은 요한계시록의 기별들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거기에 있는 말씀들을 “마시고” 그 기별들을 연구하여, 우리의 마음과 심령에 간직해야한다(계 1:3).1 “보라. 내가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자는 복이 있으리라”(22:7). (331.1)
 이 시점에서 예수님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 더하거나 제하는 일에 대하여 경고하신다. “만일 누구든지 이 예언의 기록된 것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예언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할 것이요. 마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이 경고는 광야 여행이 끝날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교훈을 상기시킨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하거나 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참고 12:32).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계 1:2).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조작하는 것은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 더하는 자들은 이 책에 기록된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위협을 받는다. 그 책에서 감하는 자들은 새 예루살렘에서 누릴 영생을 빼앗길 것이다. (331.2)
 위에서 말한 경고는, 마치 언어 영감의 어떤 개념이 위기에 처한듯이, 요한계시록에 사용된 실제적인 단어들을 조작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말씀들에 더한다는 것은그 예언들을 자기 자신의 목적에 맞도록 왜곡하거나 그릇 해석하는 일과 관계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성경 본문의 보증을 받지 못하는추상적인 사상이나 견해들을 억지로 주입하는 일과도 관계된다. 이 경고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들에 특별히 적용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여기서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을 다루고 있으며. 그런 예언들은 성취된 이후에야 우리가 비로소 확실히 이해할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 14:29). 우리는 성경 본문에 분명히 밝혀진 것에서 멈춰야하며, 뉴스 표제나 근래에 일어난 사건들에서 가져온 풍유적(諷諭的)인 해석에 기초한 추측들은 모두 피해야 한다. (331.3)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그 예언이 인기가 없거나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그 예언의 신성한 원천과 예언적 성격을 훼손시킴으로써 요한계시록의 어떤 부분을 제하여 버릴 수도 있다. 요한계시록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그 책에다 어떤 것을 더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그 책의 예언들을 조작하는 것과 동일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영원한 상실을 당할 것이다. (332.1)
 다시 한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독자들에게 그분이 속히 돌아오실 것임을 상기시키신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 22:20).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대표하여, 요한은 간절한 열망의 외침으로 대답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3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