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24장 회복된 땅
 요한계시록 21-22장은 요한이 밧모섬에서 받은 마지막 이상(異像)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대쟁투는 악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로 종결된다. 사탄과 그의 무리들은 불못에서 멸망당한다. 죄와 악의 모든 자취를 깨끗이 씻어 버린 후, 이 땅은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본향이 된다. 이 책의 마지막 두 장은 새 땅과 그것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을 묘사한다. (312.1)
 새 땅 (계 21:1-8)
 요한계시록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일반적인 기술로써 시작한다. 성경의 다른 부분과도 비슷하게, 요한계시록은 여기서 새 땅을 묘사함에 있어서 그곳의 삶이 어떠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식으로 묘사한다. (313.1)
 성경절 : 요한계시록 21:1-8

 (313.2)
 요한계시록 21-22장의 새 세계에 대한 묘사는 창세기 1-3장의 언어로 기록되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하늘과 땅]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새로 창조된 땅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거처로 에덴동산을 만드셨다. 그러나 죄가 들어옴으로 그들은 에덴을 잃어버렸다. 땅은 부패하고 부식하게 되었다(롬 8:19-22). 고통과 눈물과 사망이 즐거움과 행복과 생명을 앗아갔다. (313.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라고 약속하셨다. 요한계시록 21-22장에서 이 약속이 성취된다. 새 땅과 함께, 하나님께서는그 잃어버렸던 에덴동산을 회복시키신다.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된다. 그와같은 방법으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본래의 계획이 마침내 실현된다. (313.4)
 땅이 회복됨(21:1)
 죄의 근절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이” 처음 하늘과 땅을 대신한다(계 21:1). 유대의 전통에 의하면, 하늘은 셋이다. 첫째 하늘은 지구의 대기권(the earth’s atmosphere, the sky)이고, 둘째 하늘은 별이 있는 우주(the starry universe)이며, 셋째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다(the dwelling place of God)이다(참고 고후 12:2). 요한계시록 21:1의 하늘은 첫째 하늘인 지구의 대기권을 말한다. 앞장[계 20]에서 본 바와 같이, 옛 땅과 하늘은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었다(계 20:11). 그러므로 이 지구라는 행성(行星)은 완전한 변환의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 사용된 “새(new)”라는 단어의 그리스어 카이노스(kainos)는 기원과 시간에 있어서 새로운 것이 아니라, 형태와 품질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새 땅은 불로써 정결하게 되고 그것의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어 새롭게 된 땅이다(벧전 3:10-13). (313.5)
 요한이 새 땅에서 관찰한 첫 번째 것은 “바다도 다시 있지 않다”는 것이다(계 21:1). 이것은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대양(大洋)은 앞으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 묘사는 은유적으로 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바다는 예언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원수인 열 뿔과 일곱 머리를 가진 짐승이 나오는 곳이다(계 13:1). 바다를 제거함으로써, 공포와 고통을 유발한 악(惡)도 제거된다. (314.1)
 그런데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라는 이 말은 요한이 겪은 밧모섬에서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the sea(‘그 바다’)” 라고 일컬은 사실은 그가 어느 특정한 바다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 바다는 그가 환란을 당하고 있는 동안에 밧모섬을 둘러싸고 있던 바다를 가리킨다. 요한에게 있어서 바다는 악과 분리와 고난의 상징이 되었다. 밧모섬에서 겪은 요한 자신의 수난은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겪을 경험의 전조(前北)가 된다. 그런 배경에서 본다면, 요한이 본 마지막 이상에서 새 땅에 “바다가 없는 것”을 보았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요한에게 새 땅에 바다가 없는 것은 고난과 고통을 유발한 악(惡)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314.2)
 새 땅에서의 삶 (21:2-8)
 하나님의 임재는 회복된 땅에 사는 그분의 백성에게 고통과 사망이 없는 삶을 보장한다. 죄는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다. 그러나 죄를 멸망시킴으로써 새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그분의 임재가 회복되었다. 이 임재는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옴”(계 21:2)으로 실현된다. 이 거룩한 도성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일은 천년기의 끝에 있다(계 20:7-9; 21:2).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사실은 그 도성이 팔레스타인에서 중건(重建)된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하늘의 성임을보여 준다(히 11:10). (314.3)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있는 그분의 장막이라고 일컬어졌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며”(계 21:3). 새 예루살렘에는 따로 성전이 없으며, 하나님의 실제적인 임재로 인하여 그 도성은 새 땅의 성전이 된다(21:22). 구약 시대에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계시는 그분의 임재를 상징하였다(출 25:8; 29:45; 레 26:11-12). 이스라엘의 불충성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자신의 임재를 옮기셨다(마 23:37-3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자신의 거처를 그 백성과 함께하셔서 그분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리라고 약속하셨다(겔 37:27).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 도성에는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임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315.1)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는 하나님의 백성의 새 땅에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 준다. 요한계시록은 새 땅에서의 삶을 ‘무엇이 없거나 아니다’라는 식으로 기술한다. 즉 눈물과 사망과 슬픔과 울음과 고통이 없다고 말한다(계 21:4; 참고 7:15-17). 이런 모든 것들은 죄의 결과이다. 이제, 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이다(21:4). 수천 년 전에, 이사야는 예언하기를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 25:8)고 하였다. 요한계시록은 이 이사야의 예언이 새 땅에서 성취되는 것을 기술한다. (315.2)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계실 때, 그분의 임재는 모든 눈물과 고통과 슬픔을 쫓아 내셨다. 이것은, 마리아와 마르다가 그들의 오빠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 한말에서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21). 이 두 자매는 그리스도의 임재 가운데서는 죽음이 존재하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새 땅에서의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고통과 고난이 그곳에서는 없어질 것을 의미한다. (316.1)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나의 선포가 들려온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이 선포는 다음과 같은 진술로써 재확인된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계 21:5). 이 말은 하나님께서 신실하고 참되신 것만큼 신실하고 참되다.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 22:6에서도 반복된다. 약속이 얼마나 확실한가는 그 약속을 하는 사람과 그 사람이 그 약속을 지킬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죄와 고통이 없는 삶에 대한 약속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신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 책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다(참고 1:8; 22:13).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무(無)로부터 만드셨듯이, 역사의 끝에 그분은 이 세계를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실 것이다. (316.2)
 이 부분은 하나의 경고와 함께 끝마친다. 이기는 자들은 상속자의 모든 권리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약속받았다(계 21:7). 그들은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일곱 교회에게 보내신 기별 가운데 있는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들을 상속받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한 자들—겁내는 자들, 불충성한 자들, 가증한 자들, 살인자들, 음행하는 자들, 우상 숭배자들, 거짓말하는 자들, 점술가들—은 하늘 도성에서 제외된다(21:8, 27; 22:15). 그들의 운명은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불못에서 둘째 사망을 당하는 것이다(마 25:41). (316.3)
 새 예루살렘 (계 21:9-22:5)
 회복된 땅에서의 삶을 묘사한 후, 요한은 이제 새 땅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을 묘사한다. 그는 먼저 그 도성의 외부를 묘사하고(계 21:9-21a), 그러고 나서 그 도성의 내부로 옮아 간다(21:21b-22:5). (316.4)
 성경절 : 요한계시록 21:9-22:5

 (3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