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24. 야훼 샴마—거기 계시는 여호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에스겔처럼(겔 47:1-12), 시편 기자도 강을 보았다. “강이 있으니, 그 시내들이 하나님의 도성, 곧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막의 성소를 기쁘게 할 것이라”(시 46:4). 그는 이렇게 그의 광상(狂想市)를 계속했다: “주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도성과 그의 거룩한 산[성소]에서 크게 찬양하리로다.... 우리가 들은 바대로 ... 우리 하나님의 도성을 ... 하나님께서 그것을 영원히 세우시리이다. 셀라”(“셀라”의 뜻은 “생각을 해보라!”) (시 48:1, 8). (353.1)
 요엘 역시 하나님께서 하늘 시온 성을 당신의 집으로 삼으실 것을 기억했고(욜 3:17, 21), 스가랴는 언젠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리란 약속을 기록했다(슥 2:10; 14:20, 21): “내가 ...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라”(슥 8:3). (353.2)
 사도 바울도 이 주제를 간혹 생각했다.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은 부르심을 받고 시온 산에 모여 장엄하고 두려운 경험을 했으나 그리스도인들은 거기 있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 예루살렘이니, ... 총회, [곧]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교회라.... ”(히 12:22, 23). (353.3)
 우리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들의 격려를 위해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요한계시록에서 발견되는 가장 은혜로운 약속을 기록하게 하셨다: “또 내가 그 사람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도성, 즉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하리라”(계 3:12). 사도는 여기서 구원받은 자들이 갈 최종 목적지를 묘사한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로 가득한 이 도성을 향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신실한 무리는 삶의 여정(旅程)을 이어왔다. 그들이 길에서 낙오됨을 막기 위해 예수께서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과 당신의 이름이 적힌 표를 달아 주고, 거기에 그들이 갈 최종 목적지까지 표시해 주셨다. 그들의 행선지는 야훼 샴마- 온 우주 앞에 “여봐라”는 듯이 밝힌 하나님의 주소인 것이다. (353.4)
 계시자는 이 도성의 꾸밈새가 “마치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이” 예비된 것을 보았다(계 21:2). 예수님 자신이 하늘 신랑이시다. 역사적인 대 신방(新房)을 맞아 그는 기쁨으로 그 성에 들어갈 것이다. 이것은 그가 여러 해 전, 지상의 대리 도성인 예루살렘에 종려 축제일에 들어가실 때 시작된 행렬의 마감이다. 이번에는 그가 배척 당하지 않고, 도성을 차지하고 자기의 신부를 포옹하듯, 새 예루살렘을 품에 안으실 것이다. 이사야는, 왕이 준비한 혼인 잔치를 위해 “어린양의 아내”는 예복을 입으라고 노래했다: “오 거룩한 성 예루살렘아, 네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사 52:1). 그녀에게는 구주께서 당신의 예복을 주어 입게 하실 것이 약속되어 있다(계 19:7, 8). 그 때 온 우주는 야훼 샴마 는 하나님의 겸양과 사랑을 이해시키는 창(窓)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354.1)
 당신의 말세 백성에게 하시는 그의 마지막 호소에서 그리스도는 누구든지 요한계시록 책에 담긴 진리와 예언에서 무엇이든 제하는 자는 이 거룩한 성에서 그의 자리가 제거될 것이라고 엄숙히 경고하신다(계 22:19). 그에게 끝까지 충성하는 자들은 이 큰 성에서 주님을 모시고 영원히 살 것이다. (354.2)
 아브라함은 이 성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자주 언급한 것처럼 각 시대의 성도들은 믿음의 밝은 눈으로 이 도성을 바라보았다. 아브라함은 그 성으로 가는 길에 여러 해 동안 길도 없는 사막을 걸었고 팔레스타인 온 지방을 종횡으로 다니며 장막에 살았다. 그는 이 땅에 가족을 양육할 정해진 거쳐가 없었으나(히 13:14), 하늘 도성을 바라보고 살았으니, “그것을 세우시고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셨다(히 11:10). 각 부조는 이 소망을 마음에 품고, 그의 믿음의 생애로 그가 참으로 찾는 것은 다른 나라, 즉 하늘 나라임을 선언하며 살다가 죽었다. 성도들은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살았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으로 인정받는 것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다. (354.3)
 세월이 여러 백년이 흐르는 동안 그의 자비는 그의 은혜와 임재를 갈망하는 자들을 찾아 구원하는 일을 결코 그치지 않았다. 복받은 그들을 보고 시편 기자는 노래했다: “주께 구속받은 자들은 그렇게 말할지니, 그가 그들을 원수의 손에서 구속하셨으며, ... 그들이 ... 거할 성읍을 찾지 못하여 굶주리고 목마름으로 그들의 혼이 그들 안에서 기진하였도다. 그 때 그들이 그들의 고난 속에서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건져내시고 옳은 길로 인도하셔서 거처할 성읍으로 가게 하셨도다”(시 107:1-7). (354.4)
 이사야의 예언적 식견은 하늘 시온을 이런 말로 서술했다: “너를 괴롭혔던 그들의 아들들도 몸을 굽혀 네게로 나올 것이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들도 다 네 발 아래 엎드릴 것이요, 그들이 너를 ‘주의 도성’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시온’이라 부르리라”(사 60:14). 이 이름은 거기에 살 주민의 특성을 말해 준다: “사람들이 그들을 ‘거룩한 백성’이라, ‘주의 구속받은 자들’이라 부를 것이요 또 너는 ‘찾은 자’‘버려지지 아니한 성읍’이라 불리리라”(사 62:12). (355.1)
 기쁨과 의가 넘치는 이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슥 8:3)이라 불릴 것이며, “진리”이신 예수께서 거기 계실 것이다(요 14:6). 그 도성 거리에는 “소년 소녀들”이 가득히 길에 나와 천진난만하게 뛰놀 것이다(슥 8:3, 5). 그들은 예수께서 아버지께 “보소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라”(히 2:13)고 소개한 자녀들이다. 부활의 주님께서 하늘 성소의 보좌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은 우리에게 이 영광스런 도성의 환상을 멀리서 바라보게 하며, 언젠가 거기 살게 되리라는 희망을 고취한다.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 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그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계 22:14). (355.2)
 다락방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성령을 통해 그들과의 교제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을 약속하셨다. 그날의 교제는 구속받은 자들이 그 도성에서 누리게 될 풍요한 사귐의 맛보기였다. 그 때까지 그의 약속은 모든 시대에 걸쳐 우리 각 사람을 그의 사랑으로 감동시킨다: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히 13:5). 그는 또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고아로 남겨 두지 아니하고(난외주)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약속하셨다. 그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사시기 위해 오시는 것이다. (355.3)
 그는 마지막 교회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또 그는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을 자격을 [너에게] 주리니, 이는 내가 이겨서 내 아버지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으리라”(계 3:20, 21). 영광스런 그의 도성은 성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불러 손짓한다. 우리는 거기에 이렇게 반응해야 할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어서 우리를 데려다가 우리로 영원히 그곳 야훼 샴마,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란 곳에서 주와 함께 살게 하소서.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에드워드 모우트(Edward Mote)의 노래를 즐겨 부를 것이다. (356.1)
이 몸의 소망 무엔가? 내 주의 보혈뿐일세.
   주 예수 이름밖에는 맘 붙일 곳이 없도다.
주 예수 반석 되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주 예수 재림하실 때 이 몸을 거둬 주시리.
   내 주의 의를 힘입어 그 보좌 앞에 서리라.
주 예수 반석 되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356.2)
 주여, 우리 발을 지키사 당신의 얼굴을 뵙기 위해 그 찬란한 도성으로 가다가 곁길로 빠지지 않게 하소서. (35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