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십자가 (안식일의 신앙의 의미) 제 2 부 안식일과 거룩 제 10 장  안식일 계명과 우상숭배
 언약의 저버림은 교만과 탐심과 이기심에 의한 배은망덕으로 출발한다. 하나님과 부모님과 형제와 자식과의 거룩한 천륜을 잊고 부부의 지극한 인륜을 망각하는데서 언약은 더럽혀지기 시작하고 사람의 영적 생명은 쇠잔하기 시작한다. (242.1)
 반면 언약의 항구적인 힘은 사랑의 기억에서 비롯한다. 안식일 준수의 출발은 제칠일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부모와 부부와 형제와 이웃을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덕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고 피 남편이 되심을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두 마음을 품지 말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242.2)
 따라서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의 합일이 이루어지고 그 합일이 열락되는 “주의 장막,”“주의 성산에 거할 자가 누군가”(시 15:1). “어린양의 시온 산에 설 자가 누구인가”(계 14:1).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계 14:3) 창조의 첫 안식일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한”(욥 38:7) 그 새 노래를 부를 자가 누구인가?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우상으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이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던지 따라가는 자이며 그 입에 거짓이 없고 흠이 없는 자이다”(계 14:4, 5).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정절 있는 신부들이다. (242.3)
 안식일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시간 안에 예비하신 에덴 동산이다. 거룩한 하나님이 사람을 초청한 당신의 깊은 품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이다. 하나님의 속살같이 거룩한 숨이 샘솟는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이다.” “온 족속이 다 나를 기쁘게 섬기고 내가 기쁘게 그들을 맞이하는 곳”(겔 20:40) 이다. (242.4)
 또한 안식일은 사람이 하나님을 맞아들이는 그 마음속의 거룩한 합일의 처소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고전 3:16)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안식일의 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만이 그리로 들어가고 그리고 곧이어 닫히는” 하나님의 은밀한 곳이며 사람의 은밀한 처소이다.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겔 44:2) 거룩한 금지구역이다.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다”(아 4:12). 하나님께 사람이 그렇고 사람에게 안식일이 그렇다. 사람이 거룩하게 존중하고 지키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금역이고, 성역이고, 성산이다. 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신다”(고전 3:17). (243.1)
 불행하게도 인류는 “음행으로 쇠한 여인같이”(겔 23:43) 이 닫힌 문, 잠근 동산을 헐고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할 빛과 존귀와 영원한 능력의”(딤전 6:16) 거룩한 침전으로 우상, 곧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그들로 내 성소 안에 있게 하여 내전을 더럽히며”(겔 44:7) 하나님의 전에 “가증한 미운 물건,”“음란한 여인의 그 연애하는 자 같은”(겔 23:7, 17) 우상을 세워 “행음하였다”(겔 23:43).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이었다(마 24:15). 우상숭배로서 안식일 언약을 대신한 것이다. (243.2)
 하나님께서 낳으신 인류는 언약의 거룩한 처소인 제칠일 안식일 “여기에서 크게 가증한 일과 다른 큰 가증한 일”(겔 8:6)과 “더 큰 가증한 일을 하였다”(8:13). “투기의 우상을 세우고”(8:5), “그림을 그리고”(8:13), “딤무스를 위하여 애곡하고”(8:14), “여호와의 전 안뜰에서 여호와를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였다”(8:16). 인류는 이렇듯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하나님의 “내 성소”인 안식일을 욕되게 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내 성소”인 사람을 떠나게 하였다(겔 8:6). (243.3)
 하나님이 사람을 낳아 그들을 존귀하게 하고 “그들의 모든 환난 날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고 안으셨으나”(사 46:9) 그리고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하나님이 처녀 시온을 기뻐하였으나” 인류는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키사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다”(사 63:10).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추방하셨고 노아의 때는 홍수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내셨고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수중으로 밀어내었다. 사람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 그가 “기억하고” “거룩하게 해야”할 합일의 언약을 잊고 욕되게 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네 어렸을 때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던” (겔 16:20) 날을 잊었던 것이다.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내 등뒤에 버렸다”(겔 30:35). “내 성소를 더럽혔고 내 안식일을 범하였다”(겔 30:38).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언약의 도리를 저버렸다. 슬픈 일이다. 인류는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 있는 자”가 되지 못했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지 못했다. 마귀와 더불어 자신을 더럽혔고 정절을 잃었다. 그 입에 거짓이 많고 흠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244.1)
 이제 저는 하나님의 아내가 아니오, 하나님은 저의 남편이 아니다(호 2:2). 하나님이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파하였기 때문이다(렘 31:32).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게 하여 내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하였으나”(겔 20:20). 사람은 “내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 열조의 우상을 사모하였기” 때문이다(겔 23:30).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을 섬겼기” 때문이다(호 2:13). “내게 범죄하여 나를 욕되게 했기 때문이다”(겔 20:27).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했기 때문이다”(호 6:6). (244.2)
 안식일을 저버리고 반역과 죄와 죽음을 선택한 인간
 옛날 하나님의 거룩한 배필이요 존귀한 자식이던 자가 이제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가 되었다”(엡 2:3, 5; 5:6; 롬 1:18). 그 뿐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에게조차 원수가 되었다(롬 5:10).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을 복되게 했던 그리스도안의 거룩한 합일, 곧 거룩한 안식의 언약이 깨어지고 더럽혀지는 자리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과의 합일을 상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245.1)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생기와 땅의 흙이 하나님의 사랑의 품속에서 거룩한 합일을 이룬 생령이었다. 그런데 이제 사람이 거룩한 안식의 언약을 저버리고 더럽히고 배반함으로써 자신의 전인적인 합일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인간의 생성원리인 생기와 흙은 생령 안의 거룩하고 밝은 합일의 빛 밖으로 내쫓겨 그 캄캄한 어둠에서 서로 반목하고 충돌하기 시작하였다. 하나의 중심, 곧 한 마음(一中心)으로 언약의 삶을 살아가는 충성스럽고 건강한 삶이 아니라, 두 마음(二中心)으로 언약을 병들게 하는 환자(患者)의 삶이 시작되었다. (245.2)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거하는 신령한 집이던 제칠일 안식일의 사람이 이제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기”(롬 7:14) 때문에 사람의 “속, 곧 내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고 죄가 거하게 되었다”(롬 7:18). 이제 사람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게 되었다”(롬 7:19). 나와 내 속이 합일을 이루지 못하고 서로 원수가 된 것이다. “내 속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온”(롬 7:22, 23) 것이다. 나와 선이 한 몸을 이루는 대신에 “악이 나와 함께 있는”(롬 7:21) 것이다. 내가 거룩한 안식일의 안식에 있을 때,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나는 하나님 안에 거했는데 이제는 “내 속에 죄가 거하고”(롬 7:2), 사람이 죄 안에 거하게 되었다. 사람은 이제 죄 중에 태어나서(사 51:5) “죄 중에서 죽게 되었다”(겔 3:20).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는”(사 63:6) 인생이 되고 말았다. 원수 같은 “죄악과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히 12:4) 인생이 되고 말았다. 사람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것이라고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마 15:19)인 그런 인생이 되고 말았다. (245.3)
 안식일의 합일이 파괴된 후 원수는 내 안으로만 들어온 것이 아니다. 원수는 “자기 집안 식구” 안에도 발생하였다. “자기 집안 식구가 사람의 원수”(마 10:36)인 것이다.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마 10:35) 되었다. (246.1)
 그러나 “사람 안에”“자기 집안 식구 안에”만 원수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은 “온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었다.” “무릇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일까”(창 4:14) 두려워하는 신세가 되었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 원수지간이 되었다. 사람과 짐승이 원수가 되었다. 뱀이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었다. 땅도 사람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창 3:18) 되었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않게 되었다”(창 4:12). “그 날에는 천주에 은 일 천 개의 가치가 되었던 포도나무가 서 있던 곳이 이제는 찔레와 형극 투성이다”(사 7:23). “보습으로 갈던 산에도 찔레와 형극 때문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하게”(사 7:25) 되었다. 사람은 “이 땅에서 저주를 받은 것이다”(창 4:11). (246.2)
 이것이 모두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기”(롬 3:2) 때문이다.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거룩한 안식일 그 합일의 언약을 더럽히고 대신 “선치 못하고 능히 살게 하지 못할”(겔 20:25) 불효, 불충, 불신, 불의, 부정, 불선의 길, 우상숭배의 길을 따랐기 때문이다. 언약의 주님이신 “어린양이 인도하는” 길을 따르지 않고 이방 사람의 길, 미혹과 배도의 길, 우상의 길, 부정의 길을 따랐기 때문이다. 안식일의 하나님과 한 몸을 이루고 거룩한 안식과 더불어 한 몸을 이루는 대신에 “악을 행하는” 죄악과 더불어 한 몸을 이루고 우상과 더불어 한 짝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하심”인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이 아니라 “악이 나에게 함께 있기”(롬 7:2) 때문이다. 내 속에 선하신 하나님이 거하지 아니하고 대신 “죄가 거하기 때문이다”(롬 7:8). 하나님이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파하였기 때문이다”(렘 31:32). (247.1)
 성소의 정결과 안식일의 재건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를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과의 언약, 곧 안식일 언약을 배반하고 우상숭배에 빠졌다. 우상은 하나님이 투기하는 대상이다.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대상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가장 감정적인 모습이 표출되는 부분은 사람의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에 관한 묘사이다. 하나님이 “미워한다,” “가증스럽다”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대상이 우상이다. 하나님의 감정을 극도로 격앙시키는 사람의 행동이 사람의 우상숭배이다. 우상숭배로써 사람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언약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경쟁자인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하나님의 사랑을 욕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247.2)
 우상은 사람의 사랑을 유혹하는 자이고,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도둑질하고 빼앗아 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우상은 하나님이 계실 자리에 들어와 앉은 자이며, 하나님이 받으실 사랑과 충성을 사람으로부터 하나님 대신 받는 자이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는 사람이 자신의 사랑의 보금자리에 신랑이요, 아버지요, 임금이요, 창조주이신 하나님 대신에 유혹자요, 간부인 우상을 들여와 있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보금자리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막 13:14)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이기 때문이다. (248.1)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위기는 사랑의 위기이다. 언제나 우상의 등장으로 야기되는 긴장이고 사람이 우상에게로 마음이 기울어짐으로써 심각하게 되는 긴장이다. 하나님과의 안식일 언약이 흔들림으로써 위태롭게되는 긴장이다. 우상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사랑을 멸망케 하고, 황폐케 하는 가증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 안식의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이 미워하고 가증히 여기는 사랑의 원수가 자리를 잡았다면 하나님과 사람의 사랑은 종말이 멀지 않은 것이다. 말세의 뚜렷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마 24:15; 단 9:27) 깨닫는 자는 구원의 산으로 급히 도망해야 한다. (2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