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십자가 (안식일의 신앙의 의미) 제 2 부 안식일과 거룩 제 10 장  안식일 계명과 우상숭배
 안식일: 사람이 삶을 얻을 영적 계명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에 관련된 성경절들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안식일을 “더럽힌” 사람들에 대한 그 무서운 처벌 규정들을 보고 놀래지 않았던 사람들이 드물 것이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출 31:14).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31:15).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라”(렘 17:27). (236.1)
 안식일을 더럽히는 일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그토록 엄청난 잘못이 되는 것인가?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 거룩하고” “너희에게 성일이 되는 안식일의” “율례를 행치 아니하고 멸시하고 크게 더럽히며” “안식일에 일하는 자”(겔 20:13, 16, 21)는 하나님께 “범죄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한다. 안식일을 “더럽힘”(16)으로 “너희를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14) 이스라엘을 그 피 남편 되시는 하나님이 “어찌 용납하겠느냐”는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31).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단정코 다스릴지라”(33)는 것이다. (236.2)
 이점은 사도 바울이 성만찬에 대하여 고린도 교회를 경계한 사실과도 일치한다.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자이니라”(고전 11:27, 29). (237.1)
 어찌하여 안식을 더럽히는 일과 성만찬을 “업신여기는” 일이 이렇듯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시키는 죄가 되는 것인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이 우상을 사모하는 일이며 사람 자신을 “더럽히는 음행”이 되는가. (237.2)
 안식일이 거룩하게 혼인한 남녀의 언약과 같은 거룩한 합일의 언약이기 때문이다. 이 언약의 법을 준행하는 것이 사람이 삶을 얻는 길이고 이 언약을 더럽히는 것이 사람의 사는 길을 저버리는 것이다. 언약을 저버리는 것은 사람 노릇을 저버린 일이요 사람되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사람의 생명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성경이 가리키는 생명의 길은 언약으로써 삶을 얻는 길이요 언약에 충실함으로써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길이다. (237.3)
 성경의 이야기는 처음서부터 끝까지 언약의 이야기이다. 할례와 침례와 성만찬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의 가슴에 새기고자 하는 것이 생명의 이 언약이다. 에덴 동산의 선악과가 이 언약이다. 십계명이 이 언약이다. 하나 같이 하나님이 사람과 만물에게 누구이며 사람이 하나님과 만물에게 어떠한 존재인지를 밝히고 그 도리를 밝히고 있다. (237.4)
 사람은 육체로서 생명일 뿐만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과 만물에 대한 관계로서 생명이다. 사람은 팔다리가 상해서 그 생명이 손상되듯이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에 대한 관계가 상해서 그 생명력이 손상을 받는 존재이다. 사람의 생명의 진정한 존엄성은 오히려 그 관계의 생명에 있다고 할 것이다. 관계로서 사는 존재야말로 영적 존재이다. 관계로서 생명인 사람, 관계의 차원에서 그 생명의 영적 차원을 경험하는 사람은 떡으로만 살수가 없다. 하나님의 입의 말씀으로만 삶을 얻고 그 삶을 키울 수 있다. (237.5)
 실로 생명을 키우는 사람의 양식은 한 가지가 아니고 두 가지인 것이다. 입으로 먹는 육신의 양식이 있고 마음으로 먹고 마음을 키우는 관계의 양식이 있다. 이 양식이 영적 양식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요 4:32)고 하셨다. 그리고 그 양식, 곧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여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라”(34)고 하셨다. (238.1)
 그렇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 즉 하나님의 말씀, 그의 분부가 나의 영적 양식이다. 그분이 나에게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에 대하여 무엇이 되고 무엇 행하기를 바라시는지 그 뜻이 우리의 영적 양식이요 관계의 양식이다. 이 뜻이 바로 “사람이 준행하면 그를 인하여 삶을 얻을 하나님의 율례”(겔 20:11, 21)이다. (238.2)
 이 관계, 이 뜻, 이 말씀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 이 뜻, 이 말씀, 이 관계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마음의 나라, 영적 나라,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간 사람이다. 이러한 이치에서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를 아는 것이 곧 영생이다”(요 17:3). 이러한 이치에서 영적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그 의가 제일 먼저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 때문에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그 백성을 향하여 무엇보다도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호소하였다(호 6:3). 이 때문에 하나님은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고 하셨다. (238.3)
 안식일 계명은 관계의 계명이다. 안식일을 저버리고 멸시하고 욕되게 하는 것은 언약의 관계를 저버리고 멸시하고 욕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부모를 멸시하고 부부의 의를 욕되게 하고 이웃과 만물을 저버리는 일이다. 그 뿐만 아니라 관계의 주체이요 영적 생명체인 자기 자신의 생명과 삶을 욕되게 하고 저버리는 일이다. 안식일을 유린하는 행위는 자신을 더럽히는 음행이요 하나님을 배반하는 불충과 불신이요 부모와 지아비와 지어미와 형제를 저버리는 불효와 불의와 부정이다. 만물을 저버리는 불선이다. (239.1)
 안식일: 총체적 계명
 사실을 말한다면 십계명 하나 하나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만물의 관계를 규정한 계명, 곧 “사람이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관계의 계명이다. 언약의 계명이다. 그러나 안식일 계명은 할례와 성만찬과 선악과처럼 모든 관계를 하나로 묶어 규정하고 있는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계명이다. 하나님과 만물을 하나의 관계로 규정하고 통합하는 통일의 계명이고 합일의 계명이다. 안식일 계명은 다른 아홉 개의 계명에 전부 관련되어 있고 다른 아홉 개의 계명이 안식일 계명 하나의 규정 속에 모두 다 들어와 있다. 이렇게 안식일 계명은 전체 10계명을 하나로 통일하고 대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을 하나로 화해시키고 하나로 합일케 하는 통일의 주체가 되었듯이 십계명의 모든 의가 십계명의 중심에 위치한 넷째 계명, 곧 안식일의 계명에 귀결하고 있다. (239.2)
 다시 말하면, 아홉 계명들의 하나 하나가 안식일 계명의 의도하는 바를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아홉 계명 전체의 의도가 안식일 계명 하나에 요약되고 통합되고 대표되고 있다. 안식일 계명은 그 안에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에 대한 사람의 언약 관계와 그 도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유를 하나로 품어 안고 그리스도 안에서 만유에 충만한 화해와 합일의 계명이다. 만유를 통일하고 만법을 통일시키는 만유의 중심이다. 곧 그리스도의 법이요 십자가의 법이다. (239.3)
 우리는 안식일을 강조하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안식일 계명이 십계명의 다른 계명들과 하나의 묶음으로 또는 여러 계명들의 대표로 선포되는 사례들을 수 없이 만나게 된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너의 안식일을 지키라”(레 19:3).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공경하라”(레 19:30). “네 가운데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다. 너는 너의 성물을 업신여겼으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다”(겔 22:7, 8). “네 가운데 피를 흘리고 이간을 붙이는 자도 있으며 산 위에서 제물을 먹는 자도 있으며 네 가운데 음란한 자도 있으며. . . 이웃의 아내와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 . 이를 탐하여 토색했으며 나를 잊어 버렸도다”(겔 22:7-12).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별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눈을 가리워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그들이 행음하였으며 피를 손에 묻혔으며 또 그 우상과 행음하여. . . 당일에 내 성소를 더럽히며 내 안식일을 범하였도다”(겔 23:37-39). (240.1)
 안식일 계명의 중추적, 통합적, 합일적 성격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출 24:12)과 성소봉사의 지침을 위한 “장막의 식양”(출 25:9)을 함께 주신 날이 안식일이란 사실에서도 표명되고 있다. 돌판은 하나님의 율법이요 성소봉사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율법과 은혜가 제칠일 안식일 한날 안에서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넷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내리신 분부로서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에 대한 사람의 도덕적 원칙을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 즉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성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안식일 계명 준수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순종과 감사를 하나로 통합하는 행위이다. 즉 안식일을 준행하는 인간의 행위는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충성과 사랑과 감사와 찬양의 총화이다. (240.2)
 안식일 계명의 정반대에 위치하는 우상숭배
 안식일의 정반대의 자리에 위치하여 안식일처럼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성격을 가진 관계의 죄악이 우상숭배이다. 우상숭배는 “선치 못한 율례와 능히 살게 하지 못할 규례”(겔 20:25)의 총화이고 그 대표이다.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규례”의 반대편에 사람이 준행해도 “능히 살게 하지 못할” 우상숭배가 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인간 자신을 더럽히고 만물의 관계를 왜곡시키는 인간행위의 핵심이고 그 통합이다. 우상숭배는 안식일 정신에 배격하는 모든 세력의 중심이다. 온갖 불충과 불효와 불신과 불의와 불선의 중심에 우상숭배가 있고 그 온갖 죄악의 통합하는 중추가 우상숭배이다. (241.1)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안식일과 우상숭배의 싸움에서 결정날 것이다. 이 싸움이 선악간의 대쟁투의 핵심이다. 에덴동산의 합일을 파괴한 첫 싸움도 우상숭배에서 비롯하였다. 거룩한 관계로 이루어진 천국의 평화와 그 충만한 삶을 손상시킨 첫 행위가 우상 숭배였다.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관계의 거룩한 언약은 더럽혀지고 파괴되고 저버림을 당했다. (2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