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논증, 그릇된 길로 이끄는 표현
 <교리에 대한 질문(Questions on Doctrine)>이란 책에서 사용된 해석상의 절차와 방식은 신 그리스도론의 기본적 자료에서 사용된 것들과는 무언가 다르다. 여기에 제안자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가 당신의 인성 가운데 완전하고 죄 없으”26시다는 것을 굳게 유지하고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타락 전 아담의 죄 없는 본성을 취하셨다”고 강하게 단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가 둘째 아담이었고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는 것을 더 이상 부인하지 않는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엘렌 G, 화잇이 “죄 있는 본성”이라든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타락한 본성”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을 인정하기까지 한다.28 (356.2)
 그러나 여하튼, 그들은 “예수께서 취하신 것이 무엇이었든 그것이 당신의 본질적이거나 본래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열성을 내어 강조한다. ∙∙∙ 예수께서 취하신 모든 것, 그가 담당하신 모든 것은 대리적으로 취하고 담당하셨다”29는 것이다. <교리에 대한 질문(Questions on Doctrine)>이란 책의 저자들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엘렌 G. 화잇이 때때로 죄 있는, 타락하여 품질이 저하된 인성에 대해 언급한 것이 이런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30 (356.3)
 만약 엘렌 G. 화잇이 실제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타락한 인성을 단순히 대리해서 취하고 아울러 온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취했다고 기록했다면, 그것은 큰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사실은 엘렌 G. 화잇이 “대리하여(vicariously)”31란 용어를 결코 사용한 적이 없었고, 그리스도가 “죄 없는 인성을 취했”32다고 기록한 적이 없다. (356.4)
 다른 한편으로, 엘렌 G, 화잇은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희생에 관련해서 ‘대리하는(vicariously)’이란 용어를 사용했다.33 분명히 예수는 대신함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의(義)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회개한 죄인들을 용서할 수 없고, 의를 부어줄 수도 없으셨다. (356.5)
 그러나 예수께서 타락한 인성을 대신하여 취했다고 하는 것은 당신이 그것을 다만 취하시는 척 했고 실제로는 취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의 삯이 사망인고로 대신하여 사망하셨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의 인성은 죄가 없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략히 말하면 이런류의 이유는 궁극적으로 가현설(假現說, Docetism)로 인도할 것이다. 곧 예수께서는 겉보기로만 사람이 되셨다는 그리스도론으로 이끌 것이다. (357.1)
 우리는 엘렌 G. 화잇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인간의 ‘살과 피’에 참여하신 그리스도의 실재를 강조했어야만 하였다고 생각할 수 없고 반면, 이런 참여가 궁극적으로 단지 대리적으로 참여했다는 의미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 표현은 화잇 부인의 기록 가운데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해석은 어디서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엘렌 G. 화잇은 그리스도에 의해 취해진 인간의 타락한 본성의 실재를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357.2)
 그녀는 이것을 어떻게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취하신 것처럼 믿게 하신 것이 아니라 참으로 인성을 쓰셨다. 주님께서는 실제로 인성을 소유하셨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히 2:14)셨다.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아들이었고 인간의 혈통을 따라서 다윗의 후손이었다. 주님께서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로 그 신분을 밝히셨다.”34 “그는 단지 우리와 비슷한 몸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인성을 취하셨고, 인간의 생활에 참여하였다.”35 (357.3)
 “그는 육신이 되셨을 뿐 아니라 죄로 가득한 육신의 모양이 되셨다.”36 (357.4)
 엘렌 G. 화잇은 상징적인 언어나 이중적 의미를 지닌 비유적 언어를 하나의 규정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성서적 언어의 해석에 관해 표현한 원칙은 그녀 자신에게 똑같이 적용한다. “성경에 기록된 언어는 표상이나 상징으로 사용된 것 외에는”37 반드시 명백한 의미에 일치해 설명되어야 한다. (357.5)
 엘렌 G, 화잇은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정확한 것을 의미하는 분명한 언어를 사용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인성문제, 섬세하고도 논제가 되는 토픽에 관하여 더욱 더 필요한 것이다. (358.1)
 대안적 그리스도론의 강점과 약점
 만약 대안적 그리스도론의 기본 개념이 비평적 시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중도적인 입장이 타락 후 입장(postlapsarian)을 강화하는 미덕이 있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죄 없는 것으로 선포함으로 타락 전 입장의 치명적 과오를 지속시킬 것이다. (358.2)
 과연, 대안적 그리스도론의 지지자들은 선구자들이 그리스도의 인성이 타락 전 아담의 무흠한 인성이 아니라고 말한 것임을 주장한다. 아버지께서 예수를 “죄 있는 육신의 모양(the likeness of sinful flesh)”으로 보내셔서 구원의 역사를 완성시키기 위해 그분이 “당신의 성육신 시에 종의 겸비한 모습으로 노예적, 종속적, 복종 상태를 나타내는 가운데 오심이 필요하였다. 그는 아담이 죄를 짓기 전 완전한 본성이 아닌 연약한 인성을 취하였다.”38 (358.3)
 이 견해는 복음의 중심적 진리로 돌이키는데 힘찬 발걸음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에 의해 원죄 교리의 잘못된 견해에 여전히 매달리게 한다. 예수께서 죄를 물려받기로 허락할 수 없는 고로 그는 결점이 없는 본성으로 태어나셔야만 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인간 신체상의 약점, 곧 ‘무흠한 약점’ 곧 배고픔, 고통, 연약성, 슬픔 그리고 죽음만을 물려받고 ‘죄에 대한 경향(tendency to sin)’이나 ‘죄스런 성향들(sinful propensities)’을 물려받지 않았다고 말한다.39 (358.4)
 이런 결론들은 여러 유감스런 오류들을 숨기고 있다. 첫째로 예수의 사명을 포함한다. 성육신의 목적은 모든 ‘무흠한 약점들’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롬 7:23) 내 속에 있는 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358.5)
 예수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시고 “형제들과 같이 되심”(히 2:17, KJV)은 죄의 노예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359.1)
 또한 ‘선천적인 성향(inherent propensities)’들과 ‘악한 성향(evill propensities)’들과 같은 어떤 용어상의 오류들이 있다. 이런 표현들은 엘렌 G. 화잇의 표현 가운데 없는 것들이다. 성향은 하나의 경향, 굽은 것, 시험에 대해 유혹됨이다. 만일 저항한다면 그것은 죄가 아니다. ‘선천적 성향들’은 시험에 굴복할 때만 ‘악한 성향들’이 된다. 엘렌 G. 화잇은 “그분을 사람들 앞에 죄의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제시하지 말라. 그분은 둘째 아담이었다. 첫째 아담은 죄의 오점이 없는 순결하고 죄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죄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선천적으로 불순종의 성향을 타고 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독생자이셨다. 그는 인성을 친히 취하셨다. ∙∙∙그분 속에는 단 한 순간도 악한 성향이 없었다”40라고 말했다. 물론 “그분께서는 경험을 통하여 인간의 약점이 무엇이며, 우리의 소원이 무엇이며, 우리를 시험하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아신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기 때문이다(히 4:15)”41 (359.2)
 이와같이, ‘악한 경향들(evil tendencies)’‘악한 성향들(evil propensities)’사이에는 오해가 있다. 엘렌 G. 화잇은 두 표현들 사이의 분명한 차이를 지적한다. 그녀는 예수는 결코 ‘악한 성향들’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엄숙히 선언하는 한편,42 또한 그분은, “인간이 자신의 믿음을 파괴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일하도록 물려받고 있는 모든 악한 경향들을 대면하거나 그에 굴복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선언한다.43 (359.3)
 윌리암 하이드 (William Hyde)는 다음과 같이 깨우침을 받았다. “비록 타락한 인간의 연약성에 의해 눌려 있었을지라도 예수께서는 악한 나쁜 버릇들이 되도록 인간의 경향들과 성향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35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