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의문점이 신학자들에게만 흥미와 관심사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현재 그 의문은 많은 교회 교인들에게 걱정거리이고 교회를 분리시키는 위험까지 되고 있다. 어떤 독자가 애드벤티스트 리뷰지의 편집인에게 보낸 다음의 서신은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 이 사실에 대한 좋은 지침이 된다. (344.1)
 “내가 나가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성 문제로 반으로 분열되었다. 논쟁은 안식일학교 교과 시간에 그리고 교회 예배시에, 안식일 예배 후 식사시간에, 기도회 모임에서, 전화통화시,—어느 곳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본성을 토론하면서 실제로 친구를 잃어버리고 있다. 선량한 재림교인이 되기 위해 이것을 경험하는 것이 참으로 필요한 일인가? 그것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러나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1 (344.2)
 이런 고통스런 질문들에 응하기 위하여 이런 경우에 이미 다 해결된 것처럼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큰 비밀’이 담겨진 문제라고 덮어두며 우리가 “성경과 예언의 신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하고 이 주제에 대한 몸된 교회의 가르침이 신뢰할 수 있다고 당연시 하고 그래서 모든 신랄한 논쟁은 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2 (344.3)
 교회는 또한 고통스런 양심에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한 적절한 답변을 갖고 있어서 열렬한 마음을 이런 중대한 진리를 이해하도록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엘렌 G. 화잇은 이런 중대한 진리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연결시키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금고리이다. 이 문제는 우리의 연구 과제가 되어야 한다”3고 언급하였다. (345.1)
 구원의 계획 속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의 중요성을 이해할 때 재림교회 선구자들은 그들의 그리스도론의 시금석을 놓았고 사도 요한에 의해 언급된 권면에 조화를 이루었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2, 3). (345.2)
 이것이 우리가 구원을 좌우하는 교리를 여기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독자 곧 선량한 재림교인이 되기 위해 이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실제로 필요한 것인지 그 질문에 응하기 위한 것인가? (345.3)
 그것이 정말 핵심인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논쟁이 중대한 제안으로 떠오른 오늘날, 많은 재림교인은 스스로에게 그것이 결정적인 필수 요소인가? 하고 심각하게 질 문하게 되었다. (345.4)
 1978년 초 대총회장이었던 로버트 피어슨은 자신의 마음 가운데 구원에 대해 필수적이지 않게 생각되는 문제에 관한 의견대립에 종지부를 찍기를 원하였다.4 동일한 이유로 1980년 대총회 기간에 제의된 ‘하늘의 아들(the Son)’에 관한 기본적인 신조 제4항은 논쟁점이 되지 않았다. (345.5)
 아무도 어떤 특별한 교리에 대한 정확한 지적인 이해를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345.6)
 조지 나이트(George Kinight)가 매우 타당하게 지적하였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의 신학이 아니요, 우리의 신학이 되시는 주님이시다.”5 예수를 우리의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의 신의 생명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만든다. 여러 세기를 통해 예수의 제자들 중 소수의 사람은 언제나 오늘날 서로 의논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론의 세세한 부분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십자가상의 도적과 같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확증을 소유하였다. “우리는 복음을 찬양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찬양해야 한다. 복음에 경배를 드리지 말고 복음의 주님을 경배해야 한다”6고 엘렌 G. 화잇은 외친다. (346.1)
 아무튼 복음이나 혹은 교리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과는 아주 다르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영적 성장은 “예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the truth that is in Jesus)”(엡 4:21)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엡 1:17) 하시기를 기도하라고 한 까닭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골 3:10) 자라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비밀”(고전 4:1)을 보다 잘 깨닫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리고 특별한 “경건의 비밀”에 대해,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딤전 3:16)신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힘써야 한다. (346.2)
 오늘날 통용되는 3대 해석 요약
 재림교회가 저희 믿음의 핵심이 되는 하늘의 사람(the Person)에 대한 믿음에 관하여 불분명하게 되지 않도록 우리가 그 차이를 시험하기 전에 그것들을 연결시키는 공통된 맥락을 검토해 보자. 기본신조 제4항은 재림 교회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무엇을 믿어 왔는지 매우 명확하게 선포한다. (346.3)
 다음은 1980년도 대총회 회기 중에 채택된 전체 조항이다. (347.1)
 “영원하신 아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하셨다. 그분을 통하여 만물이 창조되었고, 인류의 구원이 성취되었으며, 세상이 심판을 받는다. 영원토록 참 하나님이신 분이 참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 그분은 인간으로서 생활하셨고, 유혹을 당하셨으나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안전하게 예증해 보이셨다. 그분은 당신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셨으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이심이 증명되셨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해 우리 대신 자발적으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우리를 위해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최종적으로 구원하고 만물을 회복하고자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다.”7 (347.2)
 이 선언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논쟁점을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아무튼 1872년의 신조에 대한 선언이 1931년까지 변치 않고 남아있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타락한 인류의 구속을 위해 아브라함의 자손의 본성을 취하셨다”8는 것을 강조하였다. 1950년대 이래 이 특별한 요점에 대해 발생한 차이점 때문에, 1980년도 대총회 대표자들은 언쟁을 피하고 공식적인 신조를 나타내는 형식적 표현으로 대신 하기도 하였다. (347.3)
 이것으로 그 논쟁이 잠잠해지지 않았는데, 이 논쟁은 이 견해에 대한 차이점이 더욱 명료하게 정의되고 엇갈리는 해석으로 나타나기까지 심화되었다. 우리는 신학자들에게 타락 후(postlapsarian)와 타락 전(prelapsarian)으로 알려진 두 상반된 그리스도론으로부터 기초적 논리를 빌리기 때문에 그것은 대안론(altermative) 혹은 양자택일:역자 주)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다음은 그리스도론에 대한 세 가지 요약이다. (347.4)
 1. 전통적, 혹은 역사적 그리스도론
 이 견해는 재림교회 내에 역사적 전통을 가진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타락한 인성, 곧 아담의 타락 후의 인성으로 오셨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타락 후(postlapsarian)라고 부른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육신은 모든 인간의 육신과 같다고 간주된다. 육욕적인 육신이 아니지만 유전법칙에 영향을 받는 육신은, 죄에 대한 유전적 경향, 예수께서 결코 단 한 번도 굴복 하지 않는 그런 유전적 경향을 자체 내에 지니셨다. 비록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서”(히 4:15) 그는 죄를 범치 않았다. 그러므로 그분은 “육신 속에 있는 죄를 멸”하시고 “율법의 의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롬 8:3, KJV) 하셨다. (3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