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23. 야훼 샬롬—평화를 이루시는 여호와 (평강의 왕)
 드보라와 바락이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할 때, 주께서는 대(對) 시스라 전쟁에서 그들에게 대승을 허락하셨다. 거기에 고마움을 느낀 백성은 그 후 몇 해 동안 하나님께 충성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들은 다시 배도의 길에 빠져 하나님의 천사들의 보호 영역을 벗어났으므로 사단의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미디안 족속은 다시 몰려와 약탈과 살인을 일삼고,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살면서 백성을 괴롭혔다. 백성들 중 과거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길 때의 생활을 기억하는 자들은 정신을 좀 차리고 반신반의하는 태도로 하나님께로 돌아와 자비와 용서를 구했다(삿 6:6). (334.1)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이 곤경에 빠진 원인을 알려 주셨다. 그들의 죄에서 벗어날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음을 그는 강조하셨다. 참된 회개로 하나님의 뜻으로 돌아와 진심으로 개혁 노선을 따르면 그들이 다시 은혜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주인을 섬기기로 선택한 결과 스스로 빠진 곤경에서 그들을 건지고 원수들을 내어쫓으실 수 있었다. (334.2)
 지도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이 위기의 때에 기드온이 지도자로 선택되었다. 농사 일에 여염이 없는 그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그를 불러 민족을 위한 일꾼으로 세우셨다. 기드온은 하늘의 사자와 대화하는 동안 믿음과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그는 능력의 영 부어 주심을 받았다. 성령은 “기드온을 옷 입었다”(삿 6:34 난외주). 성령으로 완전히 충만된 인간의 모습, 이 얼마나 전율적인 그림인가! (335.1)
 청년 기드온은 당장 임무에 착수하여, 먼저 할 수 있는 일부터 처리하라는 명령에 따랐다. 자기 행위의 위험한 결과를 도외시하고, 그는 우선 자기의 가친이 세운 우상의 제단부터 파괴했다(삿 6:25-27). 먼저 자기 집안부터 질서를 바로잡아 본을 세웠으므로 그는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일에 보다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었다. (335.2)
 그 후 기드온은 이스라엘 전 국민에게 적을 격퇴하자는 메시지로 도전했다. 반응은 대단했다! 원근 각지에서 무려 3만 2천 명이나 되는 장정들이 그의 깃발 아래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렇게 많은 인력을 요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간의 조직을 쓰지 않고 승리하는 당신의 권능을 과시하고자 하셨다. 백성은 그의 영도를 따라야 했다.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를 유일한 구원자로 알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상황을 조정하셨다. 그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병력 규모나 물적 자원이 성공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더 이상 갖지 않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전쟁에 나갈 용기가 없는 자들을 전원 귀가시키도록 기드온에게 명하셨다. 그 결과 무리의 3분의 2가 즉시 사라지고 말았다(삿 7:1-3). (335.3)
 장정이 1만 명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본 기드온은 분명히 어떤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아직도 너무 많다고 하셨다. 그는 용사의 자격을 시험하는 매우 간단한 방법을 제시하셨다. 그것이 개울물 마시기였다. 자기 임무에 정신을 쏟는 자들은 간단히 손으로 물을 떠서 갈증을 해결했으나, 경각심이 없이 태평한 자들은 편안한 자세로 엎드려 물을 마셨다. 주께서는 기드온에게 이런 태평한 자들은 당신의 군대에 소용이 없다고 이르시고 그들을 귀가시키게 하셨다. 그 결과 남은 것은 경각심 있는 300명뿐이었다(삿 7:4-8). 그들은 “마치 두 떼의 작은 염소 새끼”(왕상 20:27) 같아 보였다. (335.4)
 300명 나팔수의 개선(凱旋)
 그 즈음 머뭇거리던 기드온의 믿음은 매우 특별한 섭리로 굳게 섰다. 그는 어느 날 정찰 임무를 수행하러 나갔던 길에 한 미디안 병정이 가까운 전우에게 말하는 전날 밤의 꿈 이야기를 엿들었다. 기드온은 즉시 그 뜻을 깨달았다. 적군의 사기가 꺾이고 있음을 그는 직감했다. 그들은 임박한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을 두려워한 나머지 모든 장병이 투지를 잃고 얼들이 빠져 있었다(삿 7:9-18).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기드온은 즉시 하나님의 전투 계획을 결행했다. 칼, 나팔, 횟불, 항아리, 이 네 가지 무기 앞에 미디안 군대의 수비는 삽시간에 무너지고 곧 그들을 뒤쫓아 온 이스라엘 군대의 손에 여지없이 섬멸되었다. (336.1)
 그러나 전투 개시에 앞서, 전투와 승리와 그 후의 평강이 있기에 앞서, 기드온은 하나님을 굳게 신뢰했다. 그는 겸비한 헌신과 감사 예배로 그분 앞에 엎드려 야훼샬롬 (Yahweh šalom), 즉 여호와는 평화를 만드시는 분이란 칭호로 그를 공경했다(삿 6:24). 이 성호는 기드온의 임박한 승리를 훨씬 넘어 장차 오실 승리의 메시야를 전망하는 이름이었다. 복음 선지자는 그 후 그를 “평강의 왕”이라 불렀고(사 9:6), 그 후에 다시 바울은 그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영원한 화목을 회복하시는 분으로 소개했다(엡 2:14-17). (336.2)
 기드온의 믿음은 의의 궁극적 승리와 원수가 만든 온갖 괴로움과 긴장의 해결에 대한 전조(前兆)였다. 이스라엘의 경험은 교만과 배도의 역겨운 악순환이 투쟁과 패배로 끝난 역사였다. 그들의 고난은 겸손과 회개를 자극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은 대 쟁투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 편에 서서 승리와 자유를 쟁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행복한 상태는 곧이어 자기를 믿는 믿음과 노골적인 죄 때문에 무너져 버리고 다시 패배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기드온이 깨달은 것은 영구한 평화는 오직 평화를 만드시는 야훼샬롬 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고 그의 통치 원칙 위에 설 때만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336.3)
 샬롬 의 뜻
 구약과 신약을 통해 peace, 즉 평화, 화목, 화평, 평강, 안녕 등의 단어를 연구해 보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이다. 구약에서는 이 말의 원어가 샬롬(šalom)으로 되어 있다. 예루살렘이란 명칭의 어원이기도 한 이 말은 여러 가지로 번역되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바로는 요셉에게 부친의 건강을 물을 때 이 말을 썼다. “너희 아버지 ... 안녕하시냐(샬롬)?”(창 43:27). 엘리바스는 하나님께서 인생살이의 모든 국면을 조정하실 때 비로소 자연 환경과 사회에 화목화평 이 있을 것을 보았다(욥 5:23, 24). 이 말은 또한 완전한 추(錘)(신 25:15), 빠짐 없는 상태, 예: “유다가 ... 완전히 사로잡혀 갈 것이라.” “포로한 포로 전체를 사로잡아 ...”(렘 13:19; 암 1:6, 9). 샬롬 은 또한 개인의 평안과 건강을 말하는 “안녕,” “안전” 및 모든 행복을 누리는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욥 21:9 난외주). (337.1)
 샬롬 은 친구 지간에 서로 “화평”“번영”의 기질을 나타낼 때(삼상 16:4; 왕상 2:13), “선한 이해”“우정”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시 28:3).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개인의 “안녕” 즉, 몸과 마음의 모든 기능의 원만한 상태를 말한다(참고 창 37:14 난외주; 왕하 4:23 난외주). 샬롬 은 그러므로 이런 다양한 의미의 무지개 색깔을 복합적으로 가진 말이라 함이 좋을 것이다: 건전, 건강, 안녕, 안전, 번영, 우정, 그리고 만족하고 평온한 생활, 등이 그 개념을 설명한다. (337.2)
 샬롬 에는 역동하는 힘이 있다
 이 말이 동사로 쓰일 때를 살펴보자. 성전 건축을 마쳤다(왕상 7:51; 느 6:15), 한 시대가 끝나다(사 60:20), 잃었던 것이나 도적 맞았던 것이 회복되다 또는 변상되다(출 21:35, 36), 또는 부채를 갚다(시 37:21; 왕하 4:7), 서약을 갚다 또는 의무를 이행하다(시 50:14; 사 19:21). 이 일은 입술로 화목제를 드림(셸렘, šelem)으로 된다(호 14:3). 이는 또한 보응하다, 보답하다, 보상하다(렘 16:18; 32:18), 위로를 주다, 허락하다(사 57:18)의 뜻을 가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 또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서 한 쪽이 다른 쪽의 필요나 요구에 “스스로 응함으로써 이루는 화목”을 말한다(수 10:1 4; 11:19). 셸렘(šelem)이란 아랍어를 검토해 볼 때, 모슬렘(Moslem)이란 말은 하나님께 자신을 굴복함으로써 화평을 얻은 자를 일컫는 말이다. 「70인역」은 히브리어 샬롬(šalom)을 에이레네(eirēnē)란 헬라어로 번역했다. (338.1)
 샬롬 의 신약 용어는 에이레네(eirēnē)이다. 서구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아이린(Irene 또는 Eirene)이란 여자 이름은 여기서 온 말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생애, 특히 그의 사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대 헬라인들은 정전(停戰)을 에이레네 라 했다. 즉 그들의 에이레네 는 싸움이 중단된 상태를 의미했다. 주님은 화평을 칼, 전쟁 또는 투쟁, 사망과 대조적으로 말씀하셨고(참고 마 10:34; 렘 4:10), 사람들간의 분쟁, 분열과 반대되는 것으로 보셨다(눅 12:51). 사도 베드로는 화평의 반대를 “악”으로 보았고(벧전 3:11), 바울은 그것을 “혼란”“고통”의 반대로 보았다(고전 14:33; 롬 14:9; 살전 5:3; 참고 렘 6:14; 겔 13:10, 16). 샬롬 은 또한 완전한 건강을 의미한다(약 3:18). 샬롬 은 만날 때(눅 24:36)와 헤어질 때(막 5:34; 눅 8:48; 행 15:33; 16:36; 고전 16:11) 인사말로 쓰인다. (338.2)
 성경에 나타난 샬롬 을 전부 찾아보면 구세주의 속죄 사업의 결과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그는 성전의 건축자요, 예언의 성취자며, 선한 일을 성취하신 이요, 대도(大盜) 살인자에게 도적 맞았던 것을 도로 찾으신 회복자이시다. 그는 인간의 모든 죗값을 지불하신 물주요, 당신의 모든 약속을 이루신 성취자이시다. 실로 이신 그분은 진정으로 그 이름의 모든 뜻에 완전히 부합되는 죄인의 화목 제물이시다(실로[šiloh]는 “조용함, 평화, 평온, 잔잔함”을 뜻함). 이 일을 감당하셨기에 그는 아버지께 헌신함으로 당하는 우리의 고난을 갚으시고 보상하시며 위로를 허락하신다. 그는 당신께 맡겨진 모든 사업을 마치는 이시며, 자기를 희생하심으로 죄로 하나님과 원수된 인류를 위해 하나님과의 화목을 회복하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평화의 왕이신가! (338.3)
 “복음은 평화의 기별이다. 기독교는 그것을 받아들여 순종하여 온 땅에 평화와 조화와 행복을 퍼뜨리는 종교이다”(GC 47). (339.1)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