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과 술 제 5 장 예수와 포도 음료 4. 예수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었는가?
 본문이 중요한 이유
 예수께서는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마 11:19; 참조 눅 7:34)라는 비난을 받았다. 예수께서 음주자였다는 주장은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내려 오고 있다. 주정 음료에 빠진 이들은 예수의 모본을 자신들의 음주 구실로 들면서 예수께서 음주자였다고 주장한다. (146.1)
 이 귀절이 나오는 전 문맥은 다음과 같다(일단은 개역성경을 그대로 인용하여 보자). “침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하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눅 7:33~35). (146.2)
 적당론자들은 이 귀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이 귀절이 예수께서 포도주를 마시었다에 관한 요지부동의 증거가 된다고 그들이 믿기 때문이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그리스도께서 발효된 포도주를 만드셨다고 추정되었고, 새 가죽 부대와 묵은 포도주의 비유에서 포도주를 권하셨다고 그리고 예수께서 어떻게 사신바에 관한 묘사에서는 공개적으로 포도주를 마셨다고 추정되었다. (146.3)
 케네스 젠트리는 예수께서 직접 포도주를 마셨다. 예수께서는 사실 누가복음 7:33~35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자신의 습관을 자신과 자신의 전주자(품浬諒)인 침례 요한 간을 뚜렷이 구별하여 주는 생생한 예증으로 언급하고 계신다.”49 호레이스 범스테드(Horace Bumstead)도50 이와 같이 생각하고, 얼빙 레이몬드(Irving Raymond)도 그리스도를 요한과 대조한 것이 예수의 음주 관습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라고 말하면서 이에 동조하고 있다.51 예수께서 포도주를 직접 마시고, 마시는 것을 직접 승인하셨을 뿐만 아니라, 포도주가 본질상 악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셨다고 말한다.52 (146.4)
 예수와 침례 요한의 상이한 생활 양식
 “요한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마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실 수 있다”는 추론은 몇 가지 중요한 고려점들을 간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먹고 마시매”라는 문구는 예수와 요한의 상이한 먹고 마시는 습관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요한의 상이한 사회 생활 양식을 기술하는 데 관용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147.1)
 그리스도의 생활 양식은 분명 사교적이었다. 그러므로 당시에 쓰이던 말로 표현하면 그 분은 와서 먹고 마시었다. 요한의 생활 양식은 근본적으로 은둔자의 생활 양식이었다. 그는 사회로부터 떨어져 광야의 외딴 곳에서 지냈다. 그러므로 당시에 쓰이던 일반적인 말로, 그는 “와서 떡도 먹지 아니 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였다.” 이 두 문구는 요한이 사회적으로 절연(絶聯)한 채로 산 생활 양식과 그리스도께서 자유롭게 사회적으로 어울리 면서 사신 생활 양식 간의 대조성을 강조하고자 함이었다. 강조점은 알코올이 아니라 사회적인 생활 양식이었다.53 (147.2)
 예수와 침례 요한의 각기 다른 사명
 예수와 요한 간의 다른 생활 양식은 그들이 받은 다른 사명을 나타내 준다. 요한은 회개하고 개혁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함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하여 길을 준비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 광야에서 절제 생활을 삶으로서 당시의 부절제를 꾸짖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복된 소식을 선포하는 것과 같은 요한의 것과는 다른 사명을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았다. 예수께서는 이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광야로 물러가시지 않고 집, 마을,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가셨다. (147.3)
 요한이 금욕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를 중상 모략하는 이들은 그가 귀신 들렸다고 비방하였고, 예수께서 사교적으로 생활하셨기 때문에 비판자들은 그가 감각적인 쾌락에 빠져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방하였다. 두 비방이 모두 근거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와 요한이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라는 모본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기 다른 사명을 지녔기에 다른 생활 양식으로 살았다. (147.4)
 나실인인 요한
 예수께서 “침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눅 7:33)라고 말한 중요한 이유는 요한이 그의 어머니의 태 속에서부터 나실인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도 천사가 스가랴에게 침례 요한에 대해서 저가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 1:15)라고 한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나실인은 포도주나 “독주(소주)”를 멀리할 뿐만 아니라 포도즙과 포도도 금함으로써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것을 보인 사람들이었다(민 6:1~4). (148.1)
 나실인이 아니었던 예수님께는 포도나무의 과실로 만든 포도즙을 마시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마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 요한과 다르게 “와서 마시되” 모든 종류의 포도 음료, 즉 발효된 것이나 발효되지 않은 모든 것을 마시었다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 분이 모든 종류의 포도 음료를 마셨다면, 예수께서 깨끗하거나 부정한 것에 상관 없이 모든 종류의 음식을 잡수셨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렇게 주장하는 이는 없다. (148.2)
 주께서 어떤 음식을 잡수셨던지 혹은 어떤 음료를 마셨던지 간에 그것들은 그 분의 육체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지 자신의 방종을 채우고자 함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4:34). 예수께서 성경이 명백하게 정죄하고 취하게 하는 술을 마심으로 자기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셨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마신 음료와 잡수신 음식이 그 분의 명료한 정신적인 분별력과 영적인 애정을 없애버리는 부절제한 식욕을 채우는 것이었다는 추정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148.3)
 예수께서 언급하시지도 않은 포도주란 단어
 예수께서 자기 자신의 생활 양식을 묘사하면서 “포도주”를 언급하시지 않은 점은 자주 간과 되는 중요한 점이다. 예수께서 “침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셨지만 본인에 대해서는 간단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라고만 말하였다. 어떤 이들은 첫번째 진술에 내포된 개념이 두번째 진술에 내포된 사상과 반대일 때 쓰는 용어인 대구적 평행귀(antithetic parallelism)는 “두번째 진술에서도 ‘포도주’란 단어가 사실상 나와 있는 것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54 (148.4)
 이 주장은 그럴 듯하지만 만일 예수께서 침례 요한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자신이 “포도주를 마신다는 것이 알려지기를 원하셨다면 강조하고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포도주란 단어를 계속해서 반복 사용하셨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마신 음료나 잡수신 음식의 종류를 정확하게 밝히지 아니 하심으로 비방자들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방할 수 있는 근거를 아예 없애 버리셨을 수도 있다. 두번째 진술에서 ”“과 ”포도주가 생략된 것은(마태는 두 진술에서 다 생략한다) 이 비방이 몰상식한 것임을 드러내고자 의도적으로 그러셨을 수도 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예수께서는 “나를 비판하는 자들은 단지 내가 혼자 음식을 들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종종 먹기 때문에 내가 떡을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나는 사교상 먹는다. 그러나 나를 비판하는 자들은 실제로 내가 무엇을 먹는지 모른다”고 말하셨던 것처럼 보인다. (149.1)
 예수께서 포도즙에 취하셨는가?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가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단언되어질 수가 있었겠는가?” 라고 논박한다.55 포도즙이 사람을 취하도록 하지 않기에 그리스도께서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면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술고래)이라고 절대로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1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