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23장 천년기와 최후의 심관
 그 천년기의 끝에, 사탄은 무저갱의 독방 쇠사슬에서 풀려난다. 사탄이 풀려나는 것은 다섯째 나팔 때, 백성을 해하는 악마의 무리가 무저갱에서 풀려 나오는 것과 흡사하다(계 9:1). 사탄의 석방은 구원받지 못한 악인들의 둘째 부활과 동시에 일어난다(계 20:5). 사탄의 무저갱 감금이 세상에 인간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면, 사탄의 감금의 해제는 악인들의 부활로 시작된다(계 20:7-8). 그러나 사탄의 석방은 짧은 기간 동안이다. (308.2)
 악인들의 부활은 사탄이 다시 과거와 같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사탄은 이것이 하나님을 폐위시키고 자신이 지상의 통치권을 가지게 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사탄은 기만적인 활동을 통해, 모든 시대의 악인들을 거룩한 도성인 새 예루살렘과그 성 안에 진을 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항하도록 모을 수가 있게 된다(계 20:8). 새 예루살렘성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기사는 요한계시록 21장에 가서야 묘사되었으나, 그 성 안에 거하는 의인들과 새 예루살렘성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은 사탄의 공격이 시작되기 이전인 것이 분명하다. 사탄의 지휘 아래 모든 악인들은 거룩한 성을 포위하며, 아마겟돈 전쟁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려고 공격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이 오기 전에 하나님은 그성 안에 있는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시려고 개입하신다. 그때에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사탄과 그의 큰 무리를 영원히 멸망시킨다. (308.3)
 이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요한은 곡과 마곡의 멸망에 대한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의 언어를 사용하며, 이것은 요한계시록 16-18장의 마지막 때의 배도한 종교 체제의 멸망을 묘사하기 위하여 고대 바벨론의 멸망에 사용된 언어를 사용한 예와 흡사하다. 에스겔 38-39장에서 곡과 마곡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진을 치고 전쟁을 준비하였으나, 하나님은 곡과 마곡의 군대를 완전히 멸망시켰다. 요한은 천년기의 끝에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성도들을 해하려는 사탄의 최후의 공격과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을 구약의 모티프를 이용하여 묘사한다(참고 겔 38:22-23; 39:6). (308.4)
 거룩한 성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한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강퍅한지를 보여 준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으로 사탄의 미혹이 얼마나 망상인가를 깨달았을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에나 다름없이 이 반역적인 마음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 대해 중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악인들의 상태는 그들이 마지막 멸망을 받는 것이 타당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309.1)
 이 장면은 사탄과 그를 따르는 자들의 완전한 패배로 끝난다. 불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와 그들을 태운다. 사탄과 타락한 천사들은 불못에서 소멸되며, 이는 과거에 사탄의 삼두 연합체의 두 구성원이 받은 것과 같은 운명이다(계 20:10). 요한계시록은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20:10;참고 14:10-11)라고 기록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세세토록”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그 일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사탄이 받을 벌은 번복시킬 수 없다. 사탄을 따르는 모든 인간은 사탄과 똑같은 운명을 받는다. 한편 하나님의 백성은 성 안에서 하나님의 보호 아래 안전하다. 이것은 11-15절에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309.2)
 최후의 심판 (계 20:11-15)
 위에서 간단히 사탄과 그의 군대의 멸망을 묘사한후, 요한은 이제 더 자세하게 악한자들의 영원한 멸망을 이렇게 설명한다. (309.3)
 성경절 : 요한계시록 20:11-15

 (309.4)
 사탄과 그의 군대가 거룩한 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시작하려 할 때, 갑자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나타나신다. 하나님의 보좌는 대쟁투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소망과 구원의 원천이었으나(참고 히 4:16), 이제 악인들에게는 공포의 근원이 되었다.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이 위대한 순간에, 온 우주는 격변을 일으키는 공포속에서 경련을 일으킨다(계 20:11). (310.1)
 죽은 자들을 심판할 때가 왔다(참고 계 11:18). 어떻게 죽었든지 간에 모든 죽은 자들은 둘째 부활로 살아나 심판대에 서게 된다. “바다가 그 속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계 20:13). 땅 위에서 산 모든 사람 중에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와 심판을 받는다. 모든 역사의 시대를 통해 살아온 사람들과 모든 사회—경제적 계층을 불문하고, 그들은 그 심판대에 선다. 아무도 예외가 없이 그들이 범한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 (310.2)
 이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의로 심판하시는 때가 온 것이다(시 96:13; 98:9). 하늘의 기록책들이 펼쳐져 있다. 여기서 두 가지의 책들이 언급되었다. 첫 번째 책들은 모든 인간의 행실이 다 기록된 책이며, 개개인의 인간들이 하나님께 충성했는가, 또는 사탄을 섬겼는가를 기록한 책들이다. 둘째는 생명책으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다(눅 10:20; 빌 4:3; 계 3:5). 생명책에 그 이름이 없는 자들은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계 20:15). 이들은 이제 자기 행위에 따라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계 20:12; 참고 롬 2:6). (310.3)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때, 가려졌던 장막이 열린 듯이 자신들의 온 생애가 각자의 눈앞에 전개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얼마나 노력하셨는지를 알게 되고, 또 그들이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구원을 알면서도 짐짓 거절한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 그들은 자신의 선택의 결과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한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왕국이 행복하지 못할 장소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생애를 살았으며, 영원한 시간 동안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기쁘지 못한 삶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이 불못에서 사라지는 것이 오히려 복수의 형벌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의 표시일 수도 있다. (311.1)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한 모든 사람은 “마귀와 그의 사자들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못에서 그들의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마 25:41). 불못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믿고 있는 것과 같이, 지옥에서 영원히 타는 불이 아니다. 여기에 기록된 불못은 은유적 수사로, 온 지구가 불에 타는 것을 뜻한다(계 20:9). 요한이 여기서 불못을 둘째 사망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계 20:14). 둘째 사망은 첫째 사망과 대조되며, 성경은 첫째 사망을 잠자는 것으로 불렀다. 불못은 궁극적 멸망을 뜻하며(마 10:28), 의식 있는 채로 당하는 영원한 고통의 시작이 아니다. 불못은 하나님께 반역한 모든 자들이 궁극의 최후를 맞는 곳이다. 이 불은 그 이상 더 태울 것이 없어질 때까지 타는 불이다. 이 불은 “그 뿌리와 가지를”(말 4:1) 남기지 않고, 완전히 태우며, “뿌리 인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인 가지를 모두 태운다.”2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완전히 없어진다. (311.2)
 둘째 사망은 동시에 사망의 끝이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계 20:14). 바울은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고전 15:26)이라고 했다. 구속을 받은 자들의 영생은 그 큰 사망의 원수가 없어질 때 시작된다. 이제 죄와 죄인이 없는 영원한 시대의 출발이 준비되었다. (3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