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부 록 A. 로마 세계에 있어서 행성 주간(Planetary Week)제도의 성립
 일곱 날을 한 단위로 묶는 7일 주간의 방식은 고유한 것이다. 이 제도는 해나 달이나 별의 운행 같은 자연계의 사건들과 전혀 무관하며 일년 열 두 달의 달력과도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시대 이전의 고대 동방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순환하는 7일 주간의 제도를 찾아 볼 수 없고 오직 히브리 전통에서만 이 제도가 나타나고 있다. (295.1)
 물론 일곱날을 한 묶음으로 묶는 사례는 고대 근동세계에도 잘 알려지고 있지만 이것이 주간적 순환으로 정착하지는 못했다. 즉 7일 주간이 규칙적인 순환하는 제도로 정착되지는 못했다. 바빌로니아의 자료들에서는 태음력의 한 달 안에 일곱 번째로 건너뛰는 날들(한달의 제 7일, 제 14일, 제 21일, 제 28일)이 흉일들로 나타나고 있다.1 북 이탈리아의 고대 에트루스칸 민족(Etruscans)들과 그들의 문화적 후손들인 로마인들이 “8일 장날 제도”(Eight-day market week)를 이용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러한 주장은 전문적인 의미에서 정확치 않다. 로마인들이나 그들의 선배 민족들에게는 7일의 묶음을 뜻하는 단어가 없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눈디나이”(nundinae) 또는 “제 9일들”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장날에 로마 같은 큰 도시로 나들이하였다. 오늘날의 우리들의 방식에 따른다면 이 사람들의 “제 9일”장날들은 사실상 “8일들”을 뜻하게 된다. 만 8일만에 장이 섰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지난번에 장이 섰던 날과 다음에 장이 서는 날 모두를 포함하여 날들을 셈했기 때문에 9일이 되었던 것이다. 성경의 기자들을 포함하여 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날수를 셈했다.2 그런데 로마의 고전적인 자료들에서는 “눈디눔”(제 9일들)이 하나의 시간단위로 나타난 경우가 한번도 없기 때문에 “눈디눔”을 가지고 8일 단위로 순환하는 주간 제도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3 (295.2)
 1세기 말엽의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셉푸스(Flavius Josephus)는 로마세계에 소개된 주간 제도(week)가 유대인들의 7일 제도를 모방한 것이라고 정확히 지적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제 칠일에 일을 하지 않는 우리(유대인)의 관습이 전파되지 않는 곳은 희랍이나 야만지역을 막론하고 한 도시도, 한 민족도 없다.”4 진실로 오늘날 세계 전체에서 사용되고 있는 주간(week)제도는 일차적으로 히브리 성경과 유대인들의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다.5 (295.3)
 점성술적 주간 제도와 로마세계
 세계의 관심을 주간적인 순환제도(weekly cycle)로 이끈 민족은 히브리인들이었으나 이 순환적인 제도를 대중화시켜 급기야는 로마제국 전역에까지 보급시킨 것은 행성 주간제도(Planetary week)이다. 행성주간 제도는 헬레니즘시대에 발생하였다. 그리고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주간 제도는 그 성격상 로마제국 시대에 일반화된 점성술적인 주간 제도에 이차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 사실은 행성주간 제도의 다음과 같은 뚜렷한 특징들로 미루어 볼 때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296.1)
 1. 점성술적인 주간제도에서는 한 날의 시작이 구약 성경에서 처럼 저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레 23:32; 창 1:5)이 아니라 밤 자정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6 (296.2)
 2. 히브리 주간의 첫째날은 제칠일의 다음 날인데(마 28:1)반해 행성주간의 첫째 날은 토요일이다.7 (296.3)
 3. 히브리 주간에서는 제칠일 안식일이 가장 존중받는 날로 되어있는데(출 20:8-11)반해 행성주간에서는 어느 날보다 일요일이 존중되고 있다.8 (296.4)
 4. 히브리 주간에서는 날들이 단순히 첫째 날, 둘째 날 등 숫자로 불려지고 있는 반면 행성주간에서는 모든 날에 고유한 이름이 부여되었다. (296.5)
 5. 다음은 앞의 무엇보다도 중요한 행성주간의 특징이다. 즉 행성 주간에서는 모든 날과 모든 시간에 신으로 간주된 행성의 주재자가 배당되어 그 주재 신이 자신의 특성에 따라 그 시간과 날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9 (296.6)
 로마제국이 그 전역에 보급시킨 이 행성주간의 날짜들과 그 신들의 이름을 차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토성(saturn)신의 지배를 받는 사투르니 디에스(Saturni dies:토요일), 태양신의 지배를 받는 솔리스 디에스(Solis dies;일요일). 달(月)신의 지배를 받는 루나이 디에스(Lunae dies:월요일), 화성(Mars)신의 지배를 받는 마르티스 디에스(Martis dies. 화요일), 수성(Mercury)신의 지배를 받는 메르쿠리이 디에스(Mercurrii dies. 수요일), 목성(Jupiter)신의 지배를 받는 요비스 디에스(Jobies dies;목요일), 금성(venus)신의 지배를 받는 베네리스 디에스(Veneris dies;금요일). 이와 같은 요일 명칭들은 라틴어에서 파생한 오늘의 여러 유럽 언어들에 그대로 남아있다. 또 라틴 명칭의 동일한 신들은 게르만 신들의 이름으로도 바뀌어졌는데 현대 영어의 요일 명칭들에는 라틴계 유럽언어들의 요일 명칭들의 경우에서 처럼 게르만 신들의 이름들이 남아 있다.10 (296.7)
 로마세계에 점성술적인 주간 제도가 도입된 증거는 B.C. 27년부터 나오고 있다. B.C. 27년은 로마제정의 첫 황제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제위 1년이다. 알비우스 티불루스(Albius Tibullus)는 전쟁에 승리한 메살라(Messala)와 더불어 동행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피력한 글을 그 해(B.C. 27)에 출판하였는데 그는 이 글의 내용속에 주간의 날들에 대한 점성술적인 신앙을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는 그의 글에서 말하기를 “메살라, 그대는 나를 두고 에게해 물결을 건너 갈 것이다∙∙∙나는 여기에 머뭇거리며 지체할∙∙∙.이유들을 찾았다. 새들과 나쁜 전조의 말들도 나의 핑계들이 되었다. 또 토성의 거룩한 날도 나를 못 떠나게 붙들었다.”11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토성과 화성이 불길한 행성들로 간주되었다. 즉 토요일(Saturni dies)과 화요일(Martis dies)은 새로운 기업이나 모험을 시작하거나 특별히 바다를 건너는 여행을 나서기에 알맞지 않는 흉일들 이었다.12 그가 행성들이 날자나 시간을 지배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은 그가 출판한 동일한 글에 로마제국의 여러 시대가 각각 그 시대의 수호신들에 의하여 인도를 받았다고 하면서 그 신들을 행성들로 언급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명백해지고 있다.13 (296.8)
 길일과 흉일의 완전한 목록은 메노로기아(menologia)로 일컬어지는 초기 로마시대의 농장 달력(farm calender)의 형태로도 나타나고있다.14 (297.1)
 이 농장 달력의 한 단편은 A.D. 1세기의 것인데 열두 달의 한 달 한 달이 각기 그 달의 황도(黃道)적 표시에 의해 소개되고 있다. 점성술적 특성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로마의 제 8일 장날을 표시해 놓은 눈디나이(nundinae:제 9일들)와 나란히 7일 행성주간 제도가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또 각 날은 24시간으로, 또 각 시간은 60분으로 표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 A.D. 79년 이전에 이탈리아에 점성술적인 주간 제도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분명한 증거는 고고학 발굴에 의하여 그 모습을 드러낸 베수비우스 폼페이 폐허의 한 벽면에 새겨진 명문(銘文)들과 그림들이다. 희랍어로 된 “신들의 날들”(Days of Gods)이란 표제의 머릿말에는 일곱 행성일(行MB)들의 신들이 토성신(Saturn)으로부터 금성신(venus)까지 차례로 나타나고 있다.16 (297.2)
 A.D. 60년으로 연대가 분명히 밝혀진 한 라틴 벽화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네로 가이사르 아우구스투스(Nero Caesar Augustus)와 코쑤스 렌툴루스(Cossus Lentulus)의 집정관 시절에, 3월의 이데스(Ides of March) 앞의 8일, 일요일에, 달(Moon)의 제 16일에, 쿠마이의 장날, 폼페이의 장날 앞의 5일.”17 (297.3)
 아폴로니우스 티아나이우스(Apollonius Tyanaeus)의 전기에 따르면 A.D. 1세기 중엽에는 동쪽의 인도까지 행성주간 제도가 전파되고 있다.18 아폴로니우스는 B.C. 4년경에 카파토키아의 티아나에서 출생하였는데 고대 세계의 전설에 조예가 깊었고 초자연적인 신통력의 소유자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중년의 나이 때 인도로 여행하여 북부 판잡 지역의 탁실리아 지방에서 인도 브라만 계급의 우두머리인 이아르카스(larcas)를 만났다. 그런데 그는 아폴로니우스에게 일곱개의 반지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 반지들은 각각 일곱 행성의 하나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폴로니우스는 한 주간의 요일의 순서에 따라 일곱 개의 반지들을 하나씩 차례로 끼었다고 한다.19 (297.4)
 이 기록은 다미스(Damis)의 기억에 기초한 것이지만 사실상 필로스트라투스가 자손들을 위해 A.D. 210년과 220년 사이에 기록하여 간직한 것이다. 필로스트라투스의 기록 속에 여러가지 믿기 어려운 우화들이 함께 들어있기 때문에 아폴로니우스가 행성들의 이름들을 기념하는 반지를 인도의 브라만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의심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아폴로니우스가 피타고라스파 철학자이고 킬리키아에서 수학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두가지 요소들은 모두 행성주간의 보급과 밀접히 연관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A.D. 1세기에는 피타고라스가 B.C. 6세기에 희랍의 행성적 순서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20 이 주장은 킬리키아와 그 밖의 지역에서 활동한 피타고라스파 철학자들이 행성 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킬리키아 지역은 동방의 점성술적인 전설에 깊이 침잠된 곳이었다. 일요일을 주간의 특별한 날로 높이 받들었던 종파인 미트라(Mitra)종파 신자들도 이 지역에 많이 퍼져 있었다.21 점성술적인 영향력이 아니었다면 아우구스투스의 시대(27B.C.-A.D. 14)에 행성주간 제도가 서방세계에 그렇게 신속하게 대중적인 영합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시대에 이르면 지중해 세계에 종교적인 사색들이 편만해지고 있다. (297.5)
 천체의 행성들과 황도 12궁의 표적들이 이 지상의 생활에 여러가지로 영향력을 끼치는 신적 권세들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점성술은 바벨로니아에서 기원하였다.22 지역적으로 이곳은 바벨론에서 페르시아 만에 이르는 갈데아 지역이다. 천궁도의 점성술이 고대 세계에 크게 중요성을 띠기 시작한 때는 페르시아 제국의 시대이다(538-331B.C.). 별자리들 중에서도 황도 대에 속해있는 행성들은 바벨로니아에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지만 사람의 태어난 시각에 하늘 별들의 배치 상황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개인의 운명을 점치는 점성술적인 신앙이 나타난 것은 B.C. 5세기 이후의 일이다. 이러한 점성술적인 신앙은 갈데아—바벨로니아적인 점성술 신앙과 페르시아의 점성술 사상이 서로 결합하여 나타난 것이었다.23 (298.1)
 한편, B.C. 5세기의 희랍에 행성들과 관련된 점성술적인 지식이 없었다는 사실은 학식이 많았던 플라톤(428-347B.C.)에 의해 예증되고 있다. 그는 그의「공화국」제 10권에서 행성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나 그들의 이름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그는 피타고라스파 철학자들로부터 천체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얻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정도의 지식으로도 그는 당대의 일반적인 지식 수준을 많이 앞서고 있었다. B.C. 5세기의 희랍 고전에서는 행성과 항성을 구별하는 지식 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플라톤의 시대가 지나가면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희랍인들은 행성들을 신으로 간주하는 개념을 가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우스, 아프로디테 같은 희랍의 올림푸스 신들의 이름을 따라 그 행성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있다.24 무엇이 희랍사람들의 점성술적인 지식을 이처럼 급격히 발전시켰는가? 소 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던 희랍의 지식인들이 갈대아의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그들로부터 점성술에 대한 지식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갈대아의 점성술적인 기술이나 갈대아의 천문학적인 재간에 희랍적인 품위와 천문학적인 발견들을 빌려준 사람들은 크니두스의 유독소스(Eudoxos from Knidus. 390-340 B.C.)와 히파르쿠스(Hipparchus from Nicaea, 190-126B.C.)같은 동쪽의 아시아 지역에 사는 희랍인들이었다. 희랍 본토에 사는 희랍인들은 소아시아에 살고 있는 희랍 지식인들을 통하여 열두개의 표징을 가지고 있는 바벨로니아 황도대(黃道帶: 또는 12 궁도)를 소유하게 되었다.25 (298.2)
 바벨로니아 사람들은 천체 운행의 특징 있는 현상들에 대해 주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행성 체제는 크고 천천히 움직이는 목성(Jupiter)과 더불어 시작된다(목성의 신 주피터는 바벨론의 수호신 마르둑(Marduk)과 일치한다). 목성의 크기와 뛰어난 광채는 관측자들에게 왕같은 권력을 암시하였다. 목성 다음의 별은 여왕같은 찬란한 빛의 별인 금성(Venus)이다(희랍의 신 비너스는 발비로니아 여신 이쉬타르 Ishtar와 일치한다). 저녁 하늘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금성의 빛은 저녁 황혼녘에는 태양빛에 의해 가려지지만 이 별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다가왔을 때는 모든 별들 중에서 가장 밝게 빛난다. 저녁 하늘에서 지구에 가장 가깝게 보이는 이 별의 따뜻한 빛은 사랑과 욕망을 암시하였다.26 세 번째의 별인 토성(Satarn)은 니누르타(Ninurta) 神을 대표했다. 토성의 희미한 빛과 느린 운행은 폐위된 늙은 태양 곧 어둔 하늘로 멀리 물러간 태양을 암시했다.27 네 번째의 별은 수성(Mercary. 나부 神)이다. 이별은 신들의 서기같은 존재로 인식되었다. 태양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이 별의 빠른 운행 때문이 이 별은 사람들에게 신경질적이고 민활한 특성의 별이란 인상을 주었다. 이 별은 늘 지식을 전달하는 신으로 여겨졌다.28 다섯 번째의 별은 불같이 맹렬한 행성인 화성(Mars, 네르갈 神)이다.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는 별로서 온갖 재앙의 원천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 별의 다음에 달(sin 神)과 태양(Shamash 神)이 뒤따랐다. (2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