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둘째 항과 관련하여, 데이빗슨은 욥기 4:1717:9에서 차다크레위기 16장에서 “정결하게 하다”라고 번역되는 타헤르와 서로 대구(對句)를 이룬다고 지적한다. 차다크는 또한 히브리어 자카(zakah)와도 평행을 이루며 사용되는데, 그 뜻은 “정결하다”이다(참조 욥 15:14;25:4;시 18:20). 그러므로 “정결하게 되다”차다크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아닐지라도 그러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192.1)
 차다크의 사법적(司法的) 의미.
 우리의 논의에서 또 한 가지 의미 깊은 점은 차다크가 구약에서 자주 사법적인 문맥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리처드 데이빗슨은 “한 집계에 의하면, 구약에 나오는 117회의 체데크(tsedaq)[차다크의 변형 중 하나]의 용례 중에서 67회, 57퍼센트는 법적인 문맥에 사용된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법적인 배경에서 체데크‘정당화(正當化)’라는 확대된 의미를 가진다.”4)고 결론짓는다. 그러한 실례들은 아래와 같다. (192.2)
• 모세는,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차다크]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신 25:1)라고 백성에게 지시하였다.
•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의 통치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고 하면서, 백성들에게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차다크]원하노라”(삼하 15:4)라고 말하였다.
• 솔로몬은, “악인을 의롭다 하고[차다크]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잠 17:15)라고 말하였다.
(192.3)
 이 본문들은 구약에서 차다크가 법정의 재판과 관련하여, 재판관이 무죄한 사람의 정당성과 악한 자의 유죄를 선고하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192.4)
 프룁스틀레는 히브리어 동사의 특정한 형(形)에서 차다크“어떤 사람이 의롭고 정당하고 옹호 받았음을 선언하는 행위를 나타낸다”고 지적하였으며, 그것은 종종 “문맥에 따라서 어떤 사람의 특성이 이미 의로움을 묘사”5)하기도 한다. 틀림없이 다니엘 8:10-12의 문맥은 하나님의 백성, 그분의 주재, 그리고 그분의 성소의 특징을 이미 의로운 것으로 묘사한다 법정에서 피고가 무죄한 것으로 밝혀졌을 때 배심원은 본질적으로 그가 내내 정당하였다고 선언한다. 그의 정당성이 입증된다. 그러므로 다니엘 8:14의 적절한 번역은 “그 때에 그 거룩한 것의 의로움이 입증될 것이다”가 될 것이며 이것은 성소뿐 아니라 10-12절에서 작은 뿔이 공격한 거룩한 것들 전체에 해당 될 것이다. (193.1)
 차다크의 사법적인 용례는 다니엘 8:147장의 심판 주제 사이에 의미 있는 문맥적 상관성이 있음을 입증한다. 양쪽 장 모두에서 한 작은 뿔이 하나님과 그분의 성도와 그분의 진리를 공격하며, 양쪽 장에서 공히 의로움이 옹호됨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 다니엘 7:22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다고 말하며, 그 말은 그들의 의로움이 입증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8:14에서는 거룩한 것, 즉 10-12절에서 공격을 받았던 거룩한 것들 모두가 니츠다크되었다고, 다시 말해서 의로움이 입증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14절에 나오는 거룩한 것들의 정결 또는 의로움의 입증이 심판의 사역을 가리키는 것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증거가 된다. (193.2)
 수동태.
 차다크의 수동형은 니츠다크이다. 그것이 다니엘 8:14에 사용된 동사의 형태이다. 여기서는 능동태와 수동태의 차이점을 간략하게 설명할 것이며, 그것은 14절에 수동태가 사용된 것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능동태가 쓰일 때는 문장의 주어가 있어서 그 동작의 행위자를 밝히고, 직접 목적어가 있어서 동작을 받는 것이 누구/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그러니까 “존이 공을 쳤다.”(John hit the ball.)라는 문장에서 존은 주어, 쳤다는 동사 그리고 이 경우에 공은 동사가 하는 동작의 직접 목적어이므로 그 문장은 능동형이다. 영어에서 수동태 문장은 주어와 직접 목적어의 관계를 반대로 만든다. 그 문장에서 직접 목적어는 능동태 문장의 주어가 있던 자리에 두고, 그 행위를 누가 했는지는 언급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 공이 맞았다.”(The ball was hit.)라는 수동형의 문장은 누가 그 공을 쳤는지 언급하지 않아도 완전한 문장이다. 누가 공을 쳤는지 알려면, “그 공은 존에 의하여 맞았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193.3)
 히브리어에서는 동사의 형태에 따라서 어떤 문장이 능동태인지 수동태인지 알 수 있다. 다니엘 8:14에 나오는 동사 니츠다크는 동사 차다크(능동태)의 수동태이다. 그것은 무엇이 정결하게 될 것인지는 알려주지만(성소), 누가 정결하게 할 것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알려면 그 문장은 “성소가∙∙∙(정결하게 하는주체)에 의하여 정결하게 되었다.”라고 쓰였어야 한다. (194.1)
 물론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분은 분명히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다니엘8:14에서 차다크가 수동태로 쓰인 것은 아마도 그 정결, 옹호에 가담한 분이 하나님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 장에서 더 탐구할 것이다. (194.2)
 2,300일
 우리는 다니엘 8:13에서 한 “거룩한 이”가 다른 이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에 관한 그 환상이 얼마나 오래 계속될 것입니까?”(강조는 첨가된 것임)라고 묻는 것을 앞장에서 보았다. 그리고 14절에서 그 대답이 주어진다. “이천삼백 주야까지니.”(영어〈제임스왕역〉과〈새제임스왕역〉에 “days”[날들]라고 번역된 히브리말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저녁들—아침들”이다. 그래서, 다수의 번역본들은〈새국제역〉과 같이 “2,300 저녁과 아침”[evenings and mornings]으로 번역한다.) (194.3)
 이것은 2,300일이 어떠한 기간에 관한 예언을 구성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로 거의 모든 다니엘의 해석자들은 2,300일이 역사중의 한 기간이라고 이해한다. 다니엘 8:14에 관한 이슈는 그것이 모종의 기간에 관한 예언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그것을 어떤 기간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하는 것도 틀리지 않다. 진짜 문제는 그 절이 얼마 동안의 기간을 가리키는가 하는 것이다. 2,300일을 문자 그대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상징적으로 볼 것인가? (195.1)
 문자적인 해석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그 기간을 안티오코스에 의하여 유대인들에게 가해진 공포의 통치 기간의 실제 날 수에 적용한다 200년 전, 많은 예언 해석자들은 2,300일을 상징으로 보고, 그것이 실제로는 2,300년을 나타낸다고 믿었으며, 그 중의 다수는 그 기간이 1843, 1844, 또는 1847년에 끝난다고 생각했다.6) 하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오늘날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유일하게 2,300일이 메대-바사 시대에 시작하여 1800년대 중반까지 이르는 실제의 2,300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는 견해를 수용한다. 독자들을 위하여 각 해석의 기본적인 이슈들을 요약해 드리겠다. (195.2)
 문자적 해석
 나는 이 책의 제9장에서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의 성전을 유린한 것이 정확히 3년 동안 지속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3년은 1,095일밖에 되지 않는다. 한편, 2,300일은 6년 4개월에 해당된다. 안티오코스 해석을 수용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역사의 사실과 2,300일을 더 근사(近例)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저녁들과 아침들이라는 말이 유대 제사 제도의 저녁과 아침 제사를 말하는 것이라 가정하고, 2,300의 절반은 저녁 제사를 나타내고 절반은 아침 제사를 나타낸다고 하면서, 2,300일의 절반인 총 1,150일이라는 수를 얻어낸다 이것은 성소가 더럽혀진 채로 있던 기간의 길이에 좀 더 가까워지긴 하였지만, 안티오코스의 시대 1,095일보다 여전히 55일이 더 길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그 정도면 충분이 가깝다고 한다. 그들이 최선을 다하여 사실을 자신들의 해석에 끼워 맞춘 결과가 그것이다. (195.3)
 이렇게 문자적인 해석은 그토록 부정확하지만, 다니엘 8장의 작은 뿔이 안티오코스를 가리킨다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의문은 정말 그런가 하는 것이다. 나는 9장12장에서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겠다. (196.1)
 상징적 해석
 2,300일을 2,300년으로 계산하는 재림교회의 해석은 연一일 원칙에 근거하고 있는데, 그 원칙에 따르면 상징적인 예언의 하루는 실제의 시간으로 한 해를 나타낸다. 그 원칙에 대해서는 제27장에서 상세하게 논의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두 가지 다른 문제를 제한하여 다룰 것이다.

 (1) 다니엘 8:14의 문맥은 2,300일의 해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2) 히브리어에서 저녁아침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