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V부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주심 (18-20) 제 14 장 예수의 체포, 심문, 그리고 죽음 (18, 19)
 요한복음 19:16b-42를 적어도 두 번 읽은 후에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324.2)
 1. 마태복음(27:32-66), 마가복음(15:21-47), 그리고 누가복음(23:26-56)에 나타나는 평행 구절들을 읽어라. 요한복음에만 나타나는 기사를 모두 열거해 보라. 요한복음에서 생략된 모든 기사를 열거해 보라. 이 사건들에 대해 요한이 접근하는 독특한 방식에 대해 짧게 써 보라. 19:16b-42에서 이 복음서 앞부분에 다루었던 내용을 상기시켜 주는 어떤 독특한 신학적 주제들이 있는가? (324.3)
 2. 전체적인 사건에 비추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 보라. (324.4)
 3. 성경 관주를 사용하여 이 문단에 인용된 각 본문과 그것의 출처인 구약의 문맥을 비교해 보라. 요한은 원문의 의도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가? 그대는 요한이 이곳에서 매우 강하게 성경의 성취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요한의 시대나 오늘날 모두 이와 같은 성취 모티프가 그리스도교 증거에 도움을 주는 방법들을 열거해 보라. (324.5)
 ■ 말씀을 탐구함
 문단의 구조와 배경
 요한복음 19:16b-42는 네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예수의 십자가형(16b-27절), 예수의 죽음(28-30절),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는 사건(31-37절), 그리고 예수의 장사(38-42절). (325.1)
 십자가형에 관한 장면 중에 요한복음에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것이 많이 있다. 이는 31-42절 사건의 경우에 더욱 두드러지는데,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 전혀 평행되는 구절이 나타나지 않는다. (325.2)
 십자가형은 독특한 로마의 처형방식이다. 다른 이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각자가 자신의 십자가를 공개된 장소에서 지고 가야했다. 어떤 이들은 못에 박혔고, 밧줄로 묶인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핵심 사항은 호흡하도록 하기 위해, 처형 받는 이는 자신의 몸을 조금이라도 세우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그들이 탈진하여 자신의 몸은 더 이상 세울 수 없게 되었을 때 호흡 곤란으로 죽음이 이르러 왔다. 그러므로 죽음은 느리게, 고통스럽게 이르러왔다(Barton, 1923). 물론 처형 집행자의 편이성을 위해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이 그 과정을 앞당겨 주었다. 그 형의 부가적인 요소는 가족과 친구 앞에 기후에 상관없이 벌거벗은 채 매달려 있음으로 해서 가지게 되는 수치와 노출이었다. (325.3)
 문단의 세부 사항
 19-22절에서 뜻밖에도 “새로운” 빌라도가 출연한다. 모든 복음서들이 십자가 위에 붙여진 패를 언급하고 있는데, 오직 요한만이 그 내용에 관한 빌라도와 유대인 사이의 논쟁을 언급하고 있다. 오직 요한복음만이 그 명각(銘刻)은 제국의 3대 언어인 아람어(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동방에서 사용된 가장 보편적인 언어), 헬라어(특히 서방에서 사용된 가장 보편적인 언어), 그리고 라틴어(공식 법령의 언어)로 빌라도가 친히 준비한 것임을 기록하고 있다. (326.1)
 빌라도에 의해 선택된 그 말들은, 그 처형의 방법이 갖다주는 수치와 모욕과 더불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팔레스타인과 유대교에 대한 로마의 통치권에 대한 상징이 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언어들을 선택함으로 빌라도는 이 사건을 유대인들과 그 종교 지도자들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공개된 사건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제사장들의 항의는 간단히 기각되었다. 그들은 이제 빌라도에 대해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326.2)
 23-24절에서 십자가는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로 초점이 바뀐다. 이제 모든 상황을 자신이 완전히 주관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빌라도와 더불어 독자들은 궁극적인 주관은 성경의 하나님 손에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요한은 그 장면에 이르러오는 흑암(마 27:45; 막 15:33; 눅 23:44, 45)이나 십자가 위에 있는 예수를 조롱하는 일(마 27:39-44, 47-49; 막 15:29-32, 35, 36; 눅 23:35-37, 39)을 상세히 묘사하는 데는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다른 복음서에 상세히 다룬 것을 세세히 반복하기를 원치 않은 것 같다. 어떤 경우든지 간에 그의 흥미는 다른 곳에 있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의 죽음은 자원한 것이고,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 요한은 병사들의 행위가 놀랍도록 정확히 예언을 성취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19:36, 37). (326.3)
 25-27절은 제4 복음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 구절은 이 복음서의 저자가 십자가 곁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26절; 참고 21:20-24). 요한은 예수와 가장 친밀한 관계를 체험했던 제자였다(13:23“예수의 품에”; 참고 1:18). 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예수의 영광을 본 유일한 제자이다(참고 12:23-25).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인 제2 세대에게 예수에 대한 궁극적인 증인이 되었다. 그는 알고 있는 자였다(19:35). 그의 복음서는 그들의 영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하였다. (326.4)
 둘째, 이 장면은 큰 고통 가운데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관심을 기울이시는 예수의 무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원문에서 두 번 이상 보라[behold]는 단어가 강조되어 있다—26, 27절; 참고 5, 14절). 그녀는 이 복음서에서 이곳과 가나의 혼인 잔치(2:1-5, 12) 두 곳에서만 나타난다. 두 상황 모두에서 예수께서는 그녀를 “여인”으로 부르셨다. 두 곳 모두에 십자가가 나타난다. 특히 이곳에서 그의 영광을 충분히 보고 이해한 유일한 사람인 그의 사랑하는 제자에게 그의 모친과 그리스도인 제2 세대를 부탁했다. (327.1)
 19:28-30에 나오는 독특한 요소들 중의 하나가 “다 이루었다”는 외침인데, 이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고 자신이 성경을 성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계셨음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다시 한번 우리는 예수께서 그 상황을 주관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327.2)
 십자가 위에서 무엇이 다 이루어졌는가?(혹은 보다 더 정확하게, 성취—완성되었는가). 하나님의 율법이 십자가 위에서 성취된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이 죄인인 인류를 대신하여 죄의 삯을 예수께 전가하신 것 이상으로 그의 언약에 더 신실하실 수가 없었다(롬 6:23). 바울처럼 요한에게 있어서 예수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였다(15:10; 18:11; 비교 빌 2:8). 하나님의 율법이 변경될 수 있었다면, 인류는 십자가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대신에 하나님은 그 언약의 신실함을 십자가 위에서 비준하셨다(Jameisen, Fausset, and Brown, 1074). (327.3)
 십자가에서 무엇이 이루어졌는가? 요한은 메시야와 연관된 예언들이 성취되었음을 매우 분명히 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는지, 무엇을 위해 제비를 뽑았는지(19:23, 24), 그리고 예수의 몸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35-37절), 등과 같은 아주 세부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327.4)
 32-33절에서 요한은 예수의 죽음의 실재성이 그 일을 판단하는 데 전문가였고 예수에 대해 무관심하던 사람들에 의해 입증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창을 찌르는 것과 그 결과(34절)는 그 죽음의 실재성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복음에 독특한 이런 정보는 고대로부터 자주 있어 온, 예수가 진짜 죽은 것이 아니라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제자들이 그를 살린 후에 그의 부활을 전파한 것이라는 이론을 깨뜨리는 데 도움을 준다. 빈 무덤에 대해서는 그대가 원하는 방식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예수께서 금요일 오후에 참으로 돌아가신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이야기에 관한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들은 성경을 응하게 한 것이다(35-37절; 비교 출 12:46; 민 9:12; 슥 12:10). (328.1)
 비록 모든 복음서들에서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요구하고 있지만, 요한은 이 이야기 속에 독특한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그는 예수의 비밀 제자로서의 요셉과 니고데모의 성격에 강조를 두고 있다(19:38, 39). 여러 면에서 그들은 빌라도와 비슷했다. 그들의 직업, 지위, 그리고 명성은 그들이 예수에 관하여 내려야 될 결정으로 인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빌라도처럼 그들의 행위는 십자가 곁에서 더욱 담대하게 되었다. “죽은 듯이 보이는 그리스도가 살아 있을 때 불러일으킬 수 없었던 동정심을 일깨웠다. 과거에 아주 두려움이 많았던 사람이나 제자가 아니었던 사람에 의해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믿음의 영웅적 행위가 대개 절박한 상황에 의해 촉발된다”(Jameison, Fausset, and Brown, 1075). (328.2)